키리고에 저택 살인사건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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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본격 미스터리계의 기수로 불리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조금은 독특한 본격 미스터리소설입니다. 1987년에 <십각관의 살인>이 나오고 1992년에 <시계관의 살인>(그 사이에 <수차관의 살인>, <미로관의 살인>, <인형관의 살인>이 발표되었죠)이 발표되었으니, 이 작품은 그 사이에(1990년에 발표된 것으로 책에는 표기가 되었네요) 위치하고 있는 작품이겠네요. 관시리즈와 비슷하면서도 분위기면에서는 무척 다른 느낌이 들어서 발표 연도를 살짝 찾아보니, 위와 같네요. 예시, 불운, 암시 등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으로 그런 면에서는 최근에 소개된 <암흑관의 살인>과도 조금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네요. 트릭과 반전은 기본으로 깔리면서 현실과 비현실(아직도 비현실적인 부분은 사건 해결이 미스터리합니다. 과연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지)이 뒤섞이고, 비과학적인 사건과 논리적인 추리가 거듭되면서 이야기는 무척 독특하게 흘러가네요. 암튼 트릭으로만 승부하던 아야츠지 유키토가 꽤나 공을 들인 작품이라는 느낌은 확실히 들더군요.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니, 뭐 엄청난 것들을 담고 있는 것은 (조금은) 당연하겠지만요.

여덟 명의 극단 '암색텐트' 단원들이 갑자기 휘몰아치는 눈보라(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추리소설의 공식과도 같은 사건들이 계속 벌어집니다. 눈보라로부터의 고립된 산장에서 벌어지는 연속 살인사건은 추리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건이죠) 때문에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엄청나게 화려한 키리고에 저택에 방문하게 됩니다. 역시나 키리고에 저택의 거주인들은 무뚝뚝합니다(저택의 거주인들이 무뚝뚝한 것이 당연한 것은 뭐 따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야 뭔가 수상해 보이고, 이들도 의심을 하게 되면서 좀 더 긴장감이 느껴지죠). 아, 그리고 눈보라 때문에 움직이지 못해 이 저택을 방문한 '닌도'라는 의사도 있습니다(연속살인사건에서 의사의 역할은 중요하죠). 그러니까 총 아홉 명이 키리고에 저택을 방문하게 된 셈이죠. 암튼 그들이 이곳을 방문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기기묘묘한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연극단원들은 가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연극단원들의 이름(가명)이 연상되는 물건들이 저택에 놓여 있고, 그 물건의 어떤 움직임에 의해 다음 사건이 예고가 됩니다(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추리소설도 꽤 있죠). 그리고 검은 그림자의 존재, 하쿠슈의 '비'라는 동요(의 구절)에 따라 벌어지는 연속 비유 살인 사건 등 흥미로운 추리요소가 무척이나 많습니다. 고립된 공간(거친 눈보라, 전화 두절, 외딴 곳)에서 벌어지는 연속 살인 사건을 다룬 추리소설은 언제 읽어도 흥미로운 것 같아요.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비유하면서 시체를 전시(?)하는 그런 살인사건은 독자들의 추리력을 극한으로 끌어 올리는 그런 재미가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여기까지는 별다른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그냥 초반에 주인공들이 열심히 토론하는 내용들입니다. 또한 아야츠지 유키토 작가 역시 (당연하게도 연극단원들은 추리소설 매니아입니다. 물론 아닌 단원도 있기는 하지만) 이미 당연한 트릭들은 모두 까발리고 이야기를 전개시킵니다. 그러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물론 이 소설은 1990년에 발표된 소설입니다. 그러니 이 점은 감안하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위에서도 조금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시, 불운, 암시 등의 불확실한 어떤 기운(분위기)이 키리고에 저택 주변을 짙은 안개처럼 감싸고 있습니다. 사실 본격 미스터리소설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그런 요소들인데, 이 소설은 그런 요소들이 여기저기 깔려 있더군요. 문장력이 필요 없이 오직 트릭으로 승부하는 작가로 알고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트릭은 물론 문장력도 어느 정도 신경 쓴 것 같고, 기존 작가의 추리소설 세계(트릭이 최고다!!)를 확장한 느낌도 많이 듭니다(개인적인 의견으로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최대로 확장한 소설이 <암흑관의 살인>이고, 현실적인 논리적 추리를 최대로 확장한 소설이 <시계관의 살인>이 아닐까 싶네요. 그냥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따라서 관시리즈를 생각하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반면 <암흑관의 살인>을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이 소설도 역시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무엇보다 이것저것 신경을 쓴 흔적이 많이 보이더군요. 암튼 본격 추리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은 트릭과 반전만으로도 충분히 즐기실 수 있을만한 작품이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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