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5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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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중에 품행이 좋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세간에 손가락질 당할 만한 일을 저지릅니다. 그런 사람이 있을 때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그런 못된 것은 내버려둬라. 잘라 내버려라. 누군가를 잘라내지 않으면, 배제하지 않으면, 배제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행복이 있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사람들이 추구하는 낙원은 이미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고, 확실히 그것을 손에 넣을 때가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반드시 자신의 낙원을 찾아낸다. 비록 그것이 아주 잠시일지라도. 뭔가를 지불한 대가로, 낙원을 가져올 수 있다."

<모방범>의 연쇄살인사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르포라이터 마에하타 시게코를 주인공으로 상처 치유(극복)와 현대 사회의 가족문제를 초능력(사이코메트리)이라는 소재로 풀어낸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어느 날 도시코라는 중년 여성이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죽은 자신의 아들(히토시)이 예지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며 조사를 부탁합니다. 시작은 조금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입니다. 믿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무시해야 할까? 시게코는 자신이 모방범 사건으로부터 너무 도망친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 상처로부터 이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을까? 라는 복잡한 심경으로 조금은 황당한 사건의 조사를 맡게 됩니다. 물론 히토시의 그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만요. 한 가족의 16년간의 가슴 아픈 비극사(불량스러운 딸을 부모가 죽인 후 마루 밑에 16년 동안 묻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는 거죠. 16년이라는 기간 동안 말이죠), 그리고 또 다시 마주치는 모방범 사건의 흔적.

이번 작품에서는 현대 가족사회의 비극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건을 처음 의뢰한 도시코의 가족사, 친딸을 죽인 후 마루 밑에 16년간 방치하고 살아 온 도이자키의 가족사, 그리고 사건의 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의 가족사. 자신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점괘를 통해 가족 위의 군림하는 도시코의 할머니, 그리고 그런 그녀의 무한한 권력에 순응하는 가족들.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딸과 그런 딸에게 휘둘리는 부모들. 딸을 죽이고 또 다른 딸에게 비밀을 숨기고 살아가는 가족. 아무리 피를 나눈 가족이라도 존재하다는 이유만으로 힘들고, 괴롭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그런 가족이 있죠? 만약 자신의 딸이 그런 통제 불가능한 상태까지 갔다면? 가족이나 친척에게 돈을 달라고 협박하고, 부모를 무시하며, 남자 친구와 어린 나이에 깊은 관계까지 갖고, 사람을 때리고, 친한 친구가 강간당하는 것을 구경하며 좋아한다면? 딸이라고 포용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런 좋지 못한 싹은 잘라내 버려야 할까요? 죽이면 될까요? 말을 안 듣는 자식, 통제할 수 없는 자식,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자식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대로 그런 부모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어렵더군요.

히토시의 초능력(사이코메트리)이란 사람들이 믿기 힘든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까? 궁금했습니다. 사실 히토시의 초능력은 도이자키 가족의 커다란 비극을 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일 뿐, 믿고 안 믿고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커다란 축은 도이자키 가족의 비극사이지만, 히토시의 학교 생활을 통한 교육문제에 대한 비판, 이익과 무관심 그리고 순응으로 꼬여버린 가족사, 모방범 사건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은 마에하타 시게코의 상처 치유 등 다양한 문제와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가족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는 소설이니만큼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답답하다고 할까요? 답이 없다고 할까요? 그냥 시간이 다 해결해 주는 것일까요? 가족문제에 대해 오랜만에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네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중에서 현대를 배경으로 한 사회파 미스터리를 좋아합니다. <화차>, <이유>, <모방범>) 전작의 사회파 미스터리처럼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은 조금 덜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흡입력도 덜어졌고요. 물론 <낙원>을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고, 기대감도 그만큼 컸기에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뭔가가 가슴에 확 와 닿는 그런 울림이 없다는 것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미야베 미유키의 현대를 배경으로 한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을 오랜만에 읽으니 무척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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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시효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김성기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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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시 요코야마 히데오는 이번에도 실망시키지를 않네요. 단편 하나하나가 정말 재미있네요. 스토리 자체도 좋지만 무엇보다 캐릭터가 정말 마음에 들더군요. F현 경찰청 수사1과의 1반 반장 구치키, 2반 반장 구스미, 3반 반장 무라세. 별명이 정말 캐릭터에 딱 들어맞더군요. 개인적으로는 냉혈한 구스미 반장이 가장 좋은데('제3의 시효'라는 작품에 등장해서 정말 캐릭터에 어울리는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합니다. 자백 받는 기술이 뛰어나다고 할까요? 보통 아무리 형사라도 사건이 해결되는 시점에서 범인의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조금이라도 동정심을 갖게 될 텐데, 정말 포커페이스입니다. 냉정합니다. 죄를 지은 범인은 잡으면 되고, 그러면 끝이다. 사실 단체생활에서는 정말 싫은 인간인데, 이상하게 이 소설에서는 매력적이게 보이더군요.), 아쉽게도 이번 작품집에서는 비중이 그렇게 많지가 않네요. 구스미 반장을 주인공으로 장편 하나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서로 다른 n개 중에서 r개를 취하여 조를 만드는 것을 조합이라고 하죠. <제3의 시효>에는 강력계 반장들 말고도 수사1과 과장, 부장, 그리고 각 반장들 밑에 있는 부하들까지 정말 미워할 수 없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제3의 시효>는 총 6개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각 강력계의 반장이 주인공인 소설도 있고, 과장이 1반, 2반, 3반에서 맡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소설도 있으며, 1반과 3반이 협력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소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말 엄청나게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어 있다고 할까요? '흑백의 반전'에서 동료 반장에게 멋진 힌트를 주는 절대 웃지 않는 남자 구치키 반장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도 장편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어린 아이와 관련된 사건에는 살짝 마음을 여는 것 같거든요. 구스미 반장은 여자에 대해 무척 냉정하고요. 애교 있는 여자한테는 보통 약한 것이 남자인데, 이 구스미 반장은 오히려 더 쌀쌀맞고 냉정합니다. 그리고 절대 봐주지 않습니다. 더 악랄하게 물고 늘어진다고 할까요? 요코야마 히데오는 이야기도 이야기이지만 정말 캐릭터를 잘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읽고 나서 확실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파 미스터리로 분류할 수 있는 단편소설이기는 하지만, 본격 미스터리에 어울리는 반전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반전이라는 것이 예상을 뒤집어엎는 식의 반전이 아닌 인간이란 존재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그런 반전이지만요. 그래서 반전 후의 씁쓸함이 남습니다. 물론 때로는 인간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하고요. 범인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인간 자체에 대한 회의감은 꽤 오래가는 것 같아요. 조폭이나 사기꾼, 강도, 강간범 등 미워하고 증오해야 할 그런 범죄자가 아닌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서 그 악의를 숨긴 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그런 범죄자, 정말 뒤통수치는 반전이고 슬픈 이야기이죠. 단편 하나하나의 완결성이 뛰어납니다. 그리고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이야기 자체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 뒤의 여운 너무 좋고요. 3박자가 아닌 4박자를 고루 갖춘 정말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사족으로 개인적으로 (물론 모든 작품이 다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인 취향을 반영하면) '페르소나의 미소'라는 작품이 가장 좋더군요. 절대 웃지 않는 남자 구치키 반장과는 대조적으로 계속 웃어야 하는 남자 야시로(구치키 반장의 부하직원). 거짓된 웃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주변에도 그런 친구들이 있잖아요. 남을 위해, 아니며 자신(의 아픔이나 상처)을 위해 항상 웃음 짓고 사는 사람, 그러나 그 내면은 황폐한 황무지 같은 사람. 암튼 그런 인물에 묘하게 마음이 끌려요. 그래서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마지막 결말을 알고는 또 다른 생각이 들었지만요. 사악함이 때로는 진실을 가장하는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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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모우 저택 사건 1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기웅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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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997년에 제18회 일본SF대상을 수상한 작품 <가모우 저택 사건>. 사실 미야베 미유키는 이 소설을 읽기 전에 게임을 소재로 한 <이코>를 읽은 후에 왠지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을 제외하고는 미야베 미유키와는 안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무척 고민한 작품입니다. 시대적 배경도 쇼와 시대라 그렇게 와 닿지도 않았고요. 그래도 SF소설이라는 장르에 조금 호기심이 생겨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은 첫 소감은 타입 슬립과 시간여행자(time traveler)가 등장하는 SF소설임에도 SF소설이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 이상한 소설이었습니다. 인간 드라마와 성장소설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장르는 SF소설이라도 소설의 내용은 역시나 미야베 미유키스럽더군요.

미야베 미유키는 아무래도 미소년(?)을 좋아하는 듯. 그녀의 소설에서는 이상하게 미소년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물론 멋진 미소년도 있지만 뭔가 부족한 듯한 그런 미소년이 많이 등장했던 것 같아요. <가모우 저택 사건>의 '다카시'는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호텔에서 수험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굉장히 자학적입니다(아버지의 영향일까요?). 대학생들이 많이 가는 카페는 왠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피하고, 주변에서 수군거리면 자신을 흉보는 거라 생각하고, 암튼 착하기는 착한데 스스로를 너무 비하시키고 자학하는 스타일이더군요. 그러니까 핑계도 잘 되는 것 같고. 원래 나는 이런 인간이야. 사실 누구나 이런 인간은 싫어하죠. 무책임하고 자학적이고 핑계나 되고 도망가려고만 하는 나약한 소년. 그런데 미야베 미유키는 그런 소년을 굉장히 멋진 청년으로 성장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책장을 덮으면 '다카시'라는 인물에게 무척 호감을 갖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위에서 얘기하고 싶은 내용은 결국은 성장소설이라는 얘기죠. 그리고 또 하나, 미야베 미유키 소설의 특징인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가 그려집니다. 주인공 소년 '다카시'와 아버지의 갈등과 화해, 쇼와 시대의 '가모우 저택'의 주인인 전 육군 대장 '노리유키'와 그의 아들 '다카유키' 물론 갈등이 심하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외에도 이 소설에는 아이와 어른(노인)이 자주 부딪힙니다. '다카시'와 의사 노인, '다카시'와 아버지, '다카시'와 시간여행자 '히라타', '다카시'와 가모우 저택의 늙은 하녀 등등 대단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꽤 유머스러우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서로를 그다지 신뢰하지는 않지만, 사건에 부딪히면서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됩니다. 결코 서로를 아주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얘기죠. 다만 방법을 몰랐을 뿐.

이래니 저래니 해도 이 소설은 SF소설입니다(일본SF대상도 수상했잖아요^^). 그리고 역시나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이라면 빠질 수 없는 미스터리한 느낌도 물씬 풍깁니다. 의문스러운 사건들이 다소 지루할 수도 있을 쇼와 시대를 배경으로 한 SF성장소설의 긴장감을 높여줍니다. 시간여행자 히라타는 왜 쇼와 시대로 왔을까?, 전 육군대장 '노리유키'는 정말 자결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의 옆에 있어야 할 총은?, 창문은 안에서 잠겨 있고 밖에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없는데 그렇다면 범인은 가모우 저택 안에? 그러니까 시대극, SF소설, 성장소설, 인간 드라마(?)를 다루면서도 의문의 살인사건을 집어넣습니다.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말이죠. 이 소설에서 시간여행자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역사는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물론 역사적인 사실은 바뀔 수 있겠죠? 소설 속에 주인공 '다카시'는 역사에 대해 무지합니다. 물론 오래 전 역사는 교과서를 통해 알겠지만 현대사는 거의 모릅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죠. 삼국, 고려, 조선시대는 왕의 이름부터 중요 사건까지 정확하게 암기하고 있음에도 현대사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모르죠. 한국전쟁에 대해 독재정권에 대해 학교에서는 많이 다루지를 않으니까요. 개개인의 행동과 말이 거대한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비록 거대한 줄기는 바꾸지 못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나름대로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시간여행자의 삶을 통해서 인간으로서의 삶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조금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금 복잡한 것 같기도 한데, 의문의 살인사건, 역시나 미야베 미유키는 영리합니다. 그나저나 마지막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후키'를 만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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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 Z 밀리언셀러 클럽 84
맥스 브룩스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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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독립 장르로 구분될 만큼 꽤나 인기가 있다는 좀비 장르소설. 처음으로 읽어봤습니다. 물론 좀비가 등장하는 소설을 읽기는 했지만, 좀비 자체가 주인공인 소설, 게다가 좀비와 인간의 전쟁을 그린 소설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즐겁더군요. 좀비영화를 무척 좋아합니다.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시체3부작, <바탈리언>시리즈, 루치오 풀치의 <좀비 3(Zombi 3)>, 데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 Jean Rollin 감독의 <The Grapes of Of Death>, 람베르토 바바의 <데몬스> 시리즈, 미셸 소아비 감독의 <델라모테 델라모레> 등등 정말 엄청나죠. 죽은 시체가 살아서 움직인다는 설정은 정말 두렵고도 때로는 흥미진진한 것 같아요. 감정과 두려움을 모르는 좀비. 이것만큼 전쟁에서 유리한 전술도 없죠. 선전 및 공포 효과, 가족 학살 및 협박 등 아무것도 통하지가 않아요. 부비트랩이나 발목 지뢰 등의 적군의 전투력을 다운시키는 전술도 이들 앞에서는 모두 무용지물. 미사일, 탱크, 박격포도 역시나 무용지물. 그리고 무엇보다 죽이면 죽일수록 적군의 전투력이 올라간다는 것. 죽인 자들은 모두 좀비가 되어버리니까요.

암튼 잡담은 그만하고 <세계대전 Z>의 작가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일본 오타쿠 청년처럼 오타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인기 있는 소재라고는 하지만, 평범한 소설이 아닌 보고서 형식으로 이렇게 좀비 자체에 애정(?)을 갖고 소설을 쓰는 것은 정말 관심이 없고서는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암튼 (상상해 보건데) 작가는 이 글을 쓰면서 '키득키득', '낄낄' 거리면서 쓰지 않았을까 싶어요. 자기만족에 빠져서 말이죠. 이 소설은 좀비 전쟁 소설입니다. 제목 그대로 세계 대전이죠. 원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중국(아니 다른 지역이었나?)에서 갑자기 (정부에서는 처음에 전염병 아니 광우병이었나?) 죽은 시체가 살아나서 인간을 물어뜯어 먹어버리는 이상한 존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말이죠. 일본, 중국, 한국, 미국, 핀란드, 아프리카 등등(작가는 세계지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정치, 군사, 지리, 상식 등의 지식도 상당히 풍부한 듯.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는 분단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진행시키지만(외국인이 보기에 우리나라의 특징은 아무래도 분단이겠죠), 일본의 오타쿠 녀석의 활약은 정말 초대박이었습니다. 주석으로 달린 부분이 사실인지 아니면 구라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정말 엄청난 조사와 상상력을 덧붙이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이 소설은 무척 유쾌합니다. 그러나 전쟁소설(또는 전재영화)과 좀비소설(또는 좀비영화)에 크게 관심이 없는 분들은 다소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형식 자체가 보고서 형식이라 조금 낯설고 불편할 수도 있거든요. 또한 정치, 군사, 지리 등 어렵기도 하고, 특정 국가의 특정 인간의 이야기가 아닌 전 세계의 모든 인간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소 집중하는데 어려울 수도 있고요. 그러나 이런 부분을 감안하고 읽으면 무척 유쾌합니다. 작가의 신랄한 풍자와 비판이 심심하면 등장하거든요. 그렇다고 진지하게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약간 비꼰다고 해야 할까요? 암튼 그런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무척 유쾌했습니다. 자살하는 인간, 좀비를 동경하는 인간, 야생의 아이들, 국가를 배신하는 군 간부, 스트레스가 부족해서 미친 인간, 이 난관을 어떻게 해서든지 극복하려는 인간, 탁상공론을 벌이는 인간, 죽이는 행위에 중독 된 인간 등등 세상이 미치니, 세상이 좀비 천국이 되니 별별 인간들이 다 등장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좀비와 인간의 전쟁 시 지금(현재) 엄청난 권력과 부를 누리는 인간들이 별 소용없다는 것. 농부와 기술자가 최고라는 사실. 회계사니 변호사니 연예인이니 청소부 자리라도 하나 얻으려고 무지 노력하더군요(이런 풍자 유쾌하지 않나요? 돈에 의해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과연 그 자본이라는 것이 정당하게 분배되고 있는가? 정말 연예인이 농부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이 당연하가?). 암튼 블랙 코미디 좀비 전쟁 소설, 다소 어렵고 불편할 수도 있지만 빠져들면 무척 유쾌하게 읽을 수 있을거에요. 작가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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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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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회랑정 살인사건>과 이야기 구조가 무척 비슷합니다. 오래 전에 죽은 지인이 자살이 아닌 타살일 것이라 생각하고 사건이 일어났던 곳으로 자신을 속인 채(<회랑정 살인사건>에서는 변장이라는 프로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백마산장 살인사건>에서는 아마추어라서 그런지 이름만 바꿉니다.) 사건을 수사하러 갑니다. 물론 사건 조사의 이유는 두 작품이 확실히 다릅니다. <회랑정 살인사건>이 복수 때문이라면 <백마산장 살인사건>은 정말 자살사건인지 확인하는 정도. 그러나 두 작품 모두 결말에서 씁쓸한 여운을 주는 공통점은 있네요. 또한 여자. 그러나 트릭이나 반전은 <백마산장 살인사건>이 좀 더 재미있는 것 같네요. 결말의 여운은 <회랑정 살인사건>이 좀 더 진한 것 같고요.

<백마산장 살인사건>은 1986년에 발표된 소설입니다(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대충 그 때쯤 발표된 것 같더군요). 그리고 글자(여기서는 영국의 전래동요 '마더구스'의 가사) 암호가 나옵니다. 물론 친절하게 일본어가 아닌 영어이지만, 영어도 어차피 외국어이기는 마찬가지인지라 암호를 해독하는 부분은 다소 어렵기도 하고 쉽게 몰입이 되지 않는 점도 있습니다. 9개의 동요가 나오는지라 앞의 동요가 무슨 동요인지 기억이 잘 안 나더군요. 그러고 보니 단순히 외국어만의 문제는 아닌 듯싶네요. 기억력의 한계인가? 아니면 글자 암호를 푸는 게 원래 어려운 것인가? 암튼 전래동요 가사의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더군요. 암튼 이야기가 조금 벗어났는데, 22년이나 전에 발표된 소설임에도 전혀 촌스럽거나 식상하지가 않아요. 사실 글자 암호에는 높은 점수를 주기 조금 그렇지만, 밀실트릭은 나름대로 괜찮았습니다. 허를 찌르는 트릭이라고 할까요? 물론 미스터리 소설을 많이 읽으신 분들은 혹시? 그러면서 풀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절대 나쁘지는 않은 트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이 발표되기 전이나 이후에도 이런 밀실트릭은 많이 있었겠지만요(이 부분에 대한 느낌은 여기까지). 그리고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여자. 이 소설에서는 여자의 질투나 욕망, 복수 등이 깊게는 아니지만 자주 등장합니다. 사실 (<환야>나 <백야행>만큼은 아니지만) 이 소설에서 남자들의 존재감은 그다지 느껴지지가 않아요. 친오빠의 자살 사건을 조사하러 오는 2명의 방문객도 여대생이거든요.

사실 동요의 가사에 숨은 암호를 해독하는 부분은 어려웠지만, 여대생 2명이 열심히 이런저런 벽에 부딪히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무척 흐뭇하더군요. 그리고 밀실트릭, 반전, 씁쓸한 결말과 여운. 그리고 여기 저기 숨은 사소한 것의 큰 의미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읽으면 기본은 하는 것 같아요. 이 소설 역시 <회랑정 살인사건>처럼 재미있게 읽었네요.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에 있어서는 만능 엔터테이너 같아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자 암호는 처음 접하는 것 같거든요. 사회파, 본격, 트릭, 의학, 글자 암호, 학원물, 민감한 소재 등등 손을 안 된 것이 없네요. 그런데도 계속 추리소설을 쓰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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