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마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회랑정 살인사건>과 이야기 구조가 무척 비슷합니다. 오래 전에 죽은 지인이 자살이 아닌 타살일 것이라 생각하고 사건이 일어났던 곳으로 자신을 속인 채(<회랑정 살인사건>에서는 변장이라는 프로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백마산장 살인사건>에서는 아마추어라서 그런지 이름만 바꿉니다.) 사건을 수사하러 갑니다. 물론 사건 조사의 이유는 두 작품이 확실히 다릅니다. <회랑정 살인사건>이 복수 때문이라면 <백마산장 살인사건>은 정말 자살사건인지 확인하는 정도. 그러나 두 작품 모두 결말에서 씁쓸한 여운을 주는 공통점은 있네요. 또한 여자. 그러나 트릭이나 반전은 <백마산장 살인사건>이 좀 더 재미있는 것 같네요. 결말의 여운은 <회랑정 살인사건>이 좀 더 진한 것 같고요.
<백마산장 살인사건>은 1986년에 발표된 소설입니다(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대충 그 때쯤 발표된 것 같더군요). 그리고 글자(여기서는 영국의 전래동요 '마더구스'의 가사) 암호가 나옵니다. 물론 친절하게 일본어가 아닌 영어이지만, 영어도 어차피 외국어이기는 마찬가지인지라 암호를 해독하는 부분은 다소 어렵기도 하고 쉽게 몰입이 되지 않는 점도 있습니다. 9개의 동요가 나오는지라 앞의 동요가 무슨 동요인지 기억이 잘 안 나더군요. 그러고 보니 단순히 외국어만의 문제는 아닌 듯싶네요. 기억력의 한계인가? 아니면 글자 암호를 푸는 게 원래 어려운 것인가? 암튼 전래동요 가사의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더군요. 암튼 이야기가 조금 벗어났는데, 22년이나 전에 발표된 소설임에도 전혀 촌스럽거나 식상하지가 않아요. 사실 글자 암호에는 높은 점수를 주기 조금 그렇지만, 밀실트릭은 나름대로 괜찮았습니다. 허를 찌르는 트릭이라고 할까요? 물론 미스터리 소설을 많이 읽으신 분들은 혹시? 그러면서 풀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절대 나쁘지는 않은 트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이 발표되기 전이나 이후에도 이런 밀실트릭은 많이 있었겠지만요(이 부분에 대한 느낌은 여기까지). 그리고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여자. 이 소설에서는 여자의 질투나 욕망, 복수 등이 깊게는 아니지만 자주 등장합니다. 사실 (<환야>나 <백야행>만큼은 아니지만) 이 소설에서 남자들의 존재감은 그다지 느껴지지가 않아요. 친오빠의 자살 사건을 조사하러 오는 2명의 방문객도 여대생이거든요.
사실 동요의 가사에 숨은 암호를 해독하는 부분은 어려웠지만, 여대생 2명이 열심히 이런저런 벽에 부딪히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무척 흐뭇하더군요. 그리고 밀실트릭, 반전, 씁쓸한 결말과 여운. 그리고 여기 저기 숨은 사소한 것의 큰 의미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읽으면 기본은 하는 것 같아요. 이 소설 역시 <회랑정 살인사건>처럼 재미있게 읽었네요.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소설에 있어서는 만능 엔터테이너 같아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자 암호는 처음 접하는 것 같거든요. 사회파, 본격, 트릭, 의학, 글자 암호, 학원물, 민감한 소재 등등 손을 안 된 것이 없네요. 그런데도 계속 추리소설을 쓰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