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5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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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중에 품행이 좋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세간에 손가락질 당할 만한 일을 저지릅니다. 그런 사람이 있을 때 가족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그런 못된 것은 내버려둬라. 잘라 내버려라. 누군가를 잘라내지 않으면, 배제하지 않으면, 배제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행복이 있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사람들이 추구하는 낙원은 이미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고, 확실히 그것을 손에 넣을 때가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반드시 자신의 낙원을 찾아낸다. 비록 그것이 아주 잠시일지라도. 뭔가를 지불한 대가로, 낙원을 가져올 수 있다."

<모방범>의 연쇄살인사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르포라이터 마에하타 시게코를 주인공으로 상처 치유(극복)와 현대 사회의 가족문제를 초능력(사이코메트리)이라는 소재로 풀어낸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어느 날 도시코라는 중년 여성이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죽은 자신의 아들(히토시)이 예지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며 조사를 부탁합니다. 시작은 조금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입니다. 믿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무시해야 할까? 시게코는 자신이 모방범 사건으로부터 너무 도망친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 상처로부터 이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을까? 라는 복잡한 심경으로 조금은 황당한 사건의 조사를 맡게 됩니다. 물론 히토시의 그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만요. 한 가족의 16년간의 가슴 아픈 비극사(불량스러운 딸을 부모가 죽인 후 마루 밑에 16년 동안 묻어 놓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는 거죠. 16년이라는 기간 동안 말이죠), 그리고 또 다시 마주치는 모방범 사건의 흔적.

이번 작품에서는 현대 가족사회의 비극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건을 처음 의뢰한 도시코의 가족사, 친딸을 죽인 후 마루 밑에 16년간 방치하고 살아 온 도이자키의 가족사, 그리고 사건의 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의 가족사. 자신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점괘를 통해 가족 위의 군림하는 도시코의 할머니, 그리고 그런 그녀의 무한한 권력에 순응하는 가족들.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딸과 그런 딸에게 휘둘리는 부모들. 딸을 죽이고 또 다른 딸에게 비밀을 숨기고 살아가는 가족. 아무리 피를 나눈 가족이라도 존재하다는 이유만으로 힘들고, 괴롭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그런 가족이 있죠? 만약 자신의 딸이 그런 통제 불가능한 상태까지 갔다면? 가족이나 친척에게 돈을 달라고 협박하고, 부모를 무시하며, 남자 친구와 어린 나이에 깊은 관계까지 갖고, 사람을 때리고, 친한 친구가 강간당하는 것을 구경하며 좋아한다면? 딸이라고 포용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런 좋지 못한 싹은 잘라내 버려야 할까요? 죽이면 될까요? 말을 안 듣는 자식, 통제할 수 없는 자식,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자식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대로 그런 부모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 어렵더군요.

히토시의 초능력(사이코메트리)이란 사람들이 믿기 힘든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까? 궁금했습니다. 사실 히토시의 초능력은 도이자키 가족의 커다란 비극을 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일 뿐, 믿고 안 믿고는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커다란 축은 도이자키 가족의 비극사이지만, 히토시의 학교 생활을 통한 교육문제에 대한 비판, 이익과 무관심 그리고 순응으로 꼬여버린 가족사, 모방범 사건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은 마에하타 시게코의 상처 치유 등 다양한 문제와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가족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는 소설이니만큼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답답하다고 할까요? 답이 없다고 할까요? 그냥 시간이 다 해결해 주는 것일까요? 가족문제에 대해 오랜만에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네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중에서 현대를 배경으로 한 사회파 미스터리를 좋아합니다. <화차>, <이유>, <모방범>) 전작의 사회파 미스터리처럼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은 조금 덜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흡입력도 덜어졌고요. 물론 <낙원>을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고, 기대감도 그만큼 컸기에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뭔가가 가슴에 확 와 닿는 그런 울림이 없다는 것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미야베 미유키의 현대를 배경으로 한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을 오랜만에 읽으니 무척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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