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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시효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김성기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역시 요코야마 히데오는 이번에도 실망시키지를 않네요. 단편 하나하나가 정말 재미있네요. 스토리 자체도 좋지만 무엇보다 캐릭터가 정말 마음에 들더군요. F현 경찰청 수사1과의 1반 반장 구치키, 2반 반장 구스미, 3반 반장 무라세. 별명이 정말 캐릭터에 딱 들어맞더군요. 개인적으로는 냉혈한 구스미 반장이 가장 좋은데('제3의 시효'라는 작품에 등장해서 정말 캐릭터에 어울리는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합니다. 자백 받는 기술이 뛰어나다고 할까요? 보통 아무리 형사라도 사건이 해결되는 시점에서 범인의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조금이라도 동정심을 갖게 될 텐데, 정말 포커페이스입니다. 냉정합니다. 죄를 지은 범인은 잡으면 되고, 그러면 끝이다. 사실 단체생활에서는 정말 싫은 인간인데, 이상하게 이 소설에서는 매력적이게 보이더군요.), 아쉽게도 이번 작품집에서는 비중이 그렇게 많지가 않네요. 구스미 반장을 주인공으로 장편 하나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서로 다른 n개 중에서 r개를 취하여 조를 만드는 것을 조합이라고 하죠. <제3의 시효>에는 강력계 반장들 말고도 수사1과 과장, 부장, 그리고 각 반장들 밑에 있는 부하들까지 정말 미워할 수 없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제3의 시효>는 총 6개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각 강력계의 반장이 주인공인 소설도 있고, 과장이 1반, 2반, 3반에서 맡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소설도 있으며, 1반과 3반이 협력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소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말 엄청나게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어 있다고 할까요? '흑백의 반전'에서 동료 반장에게 멋진 힌트를 주는 절대 웃지 않는 남자 구치키 반장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도 장편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어린 아이와 관련된 사건에는 살짝 마음을 여는 것 같거든요. 구스미 반장은 여자에 대해 무척 냉정하고요. 애교 있는 여자한테는 보통 약한 것이 남자인데, 이 구스미 반장은 오히려 더 쌀쌀맞고 냉정합니다. 그리고 절대 봐주지 않습니다. 더 악랄하게 물고 늘어진다고 할까요? 요코야마 히데오는 이야기도 이야기이지만 정말 캐릭터를 잘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읽고 나서 확실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파 미스터리로 분류할 수 있는 단편소설이기는 하지만, 본격 미스터리에 어울리는 반전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반전이라는 것이 예상을 뒤집어엎는 식의 반전이 아닌 인간이란 존재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그런 반전이지만요. 그래서 반전 후의 씁쓸함이 남습니다. 물론 때로는 인간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하고요. 범인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인간 자체에 대한 회의감은 꽤 오래가는 것 같아요. 조폭이나 사기꾼, 강도, 강간범 등 미워하고 증오해야 할 그런 범죄자가 아닌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서 그 악의를 숨긴 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그런 범죄자, 정말 뒤통수치는 반전이고 슬픈 이야기이죠. 단편 하나하나의 완결성이 뛰어납니다. 그리고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이야기 자체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 뒤의 여운 너무 좋고요. 3박자가 아닌 4박자를 고루 갖춘 정말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사족으로 개인적으로 (물론 모든 작품이 다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인 취향을 반영하면) '페르소나의 미소'라는 작품이 가장 좋더군요. 절대 웃지 않는 남자 구치키 반장과는 대조적으로 계속 웃어야 하는 남자 야시로(구치키 반장의 부하직원). 거짓된 웃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주변에도 그런 친구들이 있잖아요. 남을 위해, 아니며 자신(의 아픔이나 상처)을 위해 항상 웃음 짓고 사는 사람, 그러나 그 내면은 황폐한 황무지 같은 사람. 암튼 그런 인물에 묘하게 마음이 끌려요. 그래서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마지막 결말을 알고는 또 다른 생각이 들었지만요. 사악함이 때로는 진실을 가장하는 것 같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