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빠
김하인 지음 / 자음과모음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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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를 배경으로 해체된 가족의 슬픔, 그러면서도 끈끈하게 이어지는 정을 그린 작품이다. IMF 당시 암울함을 온몸으로 체험한 세대가 아니라서, 그냥 지금처럼 어려운 경제 속에 크고 작은 기업들 모두 힘든 때가 배경이려니 하고 읽어 내려갔다.  

주인공 민서가 가족과 어쩔 수 없이 헤어지고, 그때부터 혼자 힘으로 먹고살면서 결국 연극배우로 성장해 부모님을 계속 찾는다는 내용이다. 민서가 고생하는 부분이 마치 드라마처럼 눈에 보이는 듯해 가슴이 아팠고, 민서 아버지가 사채업자들에게 쫓기고 협박당하는 모습도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의 한 면인 듯해 짠했다.  

소설의 배경은 과거지만, 현재 우리의 경제 상황과도 통하는 면이 있어서, 마치 지금 어디선가도 이런 슬픈 가족의 이별이 있고, 혼자가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사채업자들에게 쫓기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제목은 다시 만나게 될 아빠를 향한 민서의 인사말과 동시에 대한민국 아빠들의 '안녕'을 진지하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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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 1
차이나 미에빌 지음, 이동현 옮김 / 아고라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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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지명도에 끌려 보게 된 책이다. 각종 상을 휩쓴 데다, 사회운동을 했던 특이한 이력까지, 아무튼 흥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지 않은 책 크기에, 두 권이라는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내 생각은 순전히 기우였다. 

정교하게 짜놓은 가상 세계 뉴크로부존을 배경으로, 곤충의 머리를 한 매력적인 여성, 그의 애인인 괴짜 과학자, 환각제를 먹고 날로 커가는 애벌레의 비밀, 날개를 잃은 슬픔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반인반조, 갖가지 동식물(?)이 한 몸에 모두 들어가 있는, 심하게 개조된 지하 조직의 리더 등, 누구 하나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개성을 지울 수 없는 페로몬처럼 흘려대고 있다.  

이 소설은 확실히 밀도가 있다. 등장인물들의 부지런한 행보도 그렇거니와 사회운동을 한 작가답게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갈등, 환경적, 정신적으로 더러워진 도시, 엄격한 법과 또 반면 법이 없는 빈민가의 대조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이때 다소 냉소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 작가의 시선은 등장인물들의 인간다움으로 적절히 순화되고, 그 와중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아직 1권밖에 보지 못했지만 정말 굉장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등장인물들이 앞으로 어떤 협조와 모의를 통해 공공의 적을 없앨지 궁금하고, 사회 변화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리뷰를 이렇게 써놓으니 굉장히 정치적인 소설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건 순전히 100% 오락용 소설이다. 그런데 어른을 위한 오락용이다. 사고가 함께 따라가지 않으면 재미를 느끼기 힘들 수도 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빨리 만나보고 싶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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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 - 안니바오베이 장편소설
안니바오베이 지음, 서은숙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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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내내 꽃상여를 지고 걸어가는 한 쌍의 남녀가 보였다. 꽃상여 안에는 이미 죽어버린 영혼의 짝 즉, 소울메이트가 들어 있다. 더불어 태어남과 동시에 상처받기 시작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슬픔이 깃들어 있다. 이 상여는 중국의 오지인 모퉈가 최종 목적지.

반복되는 육체의 질병 속에서도 소설가로서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잃지 않는 여자 칭자오, 오래전에 친구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속에서 잠시 벗어난 남자 샨셩. 그리고 무난하지 않은 삶 속에서도 천진하고 낙관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샨셩에게 생각과 감정의 확장을 도모하게 도와준 여자 네이허가 등장한다.

칭자오와 샨셩은 일행이 되어 모퉈를 향하고, 그곳에서 네이허를 만날 것을 기대하지만 네이허는!(이건 약간의 반전이라서-ㅅ-;;; 생략)

이 소설은 줄거리보다 정신적인 부분과 계속해서 풍경이 변하는 모퉈의 묘사에 중점이 주어진다. 그래서 일반적인 서사를 기대했다간 약간 낭패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작가는 확실히 문장이 깊다. 글에도 향이 있을 수 있다면, 한자로 깊은 의미를, 다중적인 의미를 실은 중국소설이야말로 그 범위 안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세계를 낙관하지도 비관하지도 않지만, 어쨋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세 명의 남녀를 통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조용히 피어나는 연꽃을 바라보는 시간처럼, 세계를 견지하고 나아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게 해주는 소설이다.

막장 드라마, 피로 흥건한 추리소설, 교과서 속 문학과 한 발자국도 다르지 않은 본격소설에 지친 독자들에게는 콧방울을 간지럽힐 새 바람이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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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황홀 - 보이는 것의 매혹, 그 탄생과 변주
마쓰다 유키마사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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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처럼 눈을 황홀하게 해주는 책이다. 확 튀는 노란색 표지에 책 옆 부분은 종이를 이용한 멋진 그림을 두 컷 보여준다.  

이 책은 단순히 명화를 소개하거나 착시 같은 흥미 위주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시각의 확장이 인식의 확장을 부르고, 그것이 시대에 반영되었을 때의 모습을 사례와 자료 사진으로 알기 쉽게 소개한다. 그러니까 눈이 즐거운 시각 인문서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재미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최초'에 대한 이야기들이 아닐까 싶다. 기차가 발달하면서 그림은 좀 더 멀리 있는 것을, 좀 더 길게 바라보고 그린다. 또 스트라이프 무늬는 최초에 계급이 낮은 사람들을 쉽게 알아보도록 만들어진 것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귀족들의 것이 되기도 하고 지금은 보편적인 무늬가 되었다. 고대 사람들이 벽에 그린 비슷비슷한 동작의 그림들이, 실제로 여러 명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움직임을 그리고자 했던 노력이라는 것 등, 상식의 폭이 확장되는 재미가 쏠쏠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상식에서 상식으로 더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래도 여러 가지를 소개하다보니 깊이가 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1년에 한 권씩 자신이 기획한 책을 낸다는 재미있는 저자의 다음 책이 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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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 1
정길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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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는 곧잘 심야 라디오방송을 듣곤 했다. 새벽 3시와 5시 사이에 들려오는 진행자의 낮고도 차분한 목소리, 그리고 조용한 음악들. 정길연의 <변명>은 어쩐지 그런 시간대, 그런 음성과 어울리는 소설이다.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조금 건조한 듯도, 조금 냉정한 듯도 하다.  

만일 내 남자친구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이유로 우리가 헤어지게 된다면 어떨까? 종종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것만큼 큰 상처가 없다고들 한다. 나는 아직 그런 경험이 없어서 충격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소설 속 태희는 남자와 부부 사이였으므로 그 슬픔이 더 컸으리라.  

하지만 희안하게도 주인공 태희는 남편의 외도 후 자신이 이끌어왔던 주변의 관계와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비로소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특별한 사랑 없이 지속되어왔던 부부 사이, 어머니의 산소 앞에서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당신의 삶, 남편이 다시 만나는 첫사랑 은묘에 대한 부러움보다는 그 둘 사이의 깊은 사랑을 인식하면서 내적으로 자신을 다져간다. 자신 안으로 순수하게 부서지는 태희의 모습은 섬세하다기보단 아이 '마리'가 있어 어머니다운 힘 있는 구석이 돋보인다.  

이렇게 특별한 삼각관계 속에서 남편이 교통사고로 의식 불명 상태가 되고, 그러면서 이혼까지 하고 현재는 동반자가 된 은묘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 병실에 있는 세 사람의 미묘한 긴장 관계가 소설을 정점으로 이끈다.  

이 소설은 곧 드라마화가 된다고 한다. 아주 특별한 여자 이야기가 될 것 같아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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