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한 다스 지식여행자 1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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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 제목만 보고는 도대체 이 책이 어떤 분위기일지 짐작이 안 간다. 제목에는 '마녀'가 나오는데 표지에 그려진 건 동양의 여자고, 그 여자의 뒤로는 작은 비행기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전체적으로 약간 산만한 느낌이었다.

표지는 그렇다 치고, 내용 자체는 괜찮다. 한 베테랑 동시통역사가 여러 나라의 문화와 접하면서 생긴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단순히 재밌는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갭과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갖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읽으면서 저자의 자유분방한 매력과 여러 나라의 문화에 대한 깊은 지식에 놀랐고, 많이 배웠다.

세계의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고, 나도 그걸 바라고 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부분은 역시나 다양한 나라를 이해하는 것 같다. 고양이가 그르릉거리는 것은 기분이 좋아서고, 개가 그르릉거리는 것은 기분이 나빠서다. 이 둘이 서로의 특징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불화가 이는 것은 뻔하다고 생각된다.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저자의 글은 이렇게 남아서 여러 사람들을 깨우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동시통역사가 몸으로 부딪혀 깨우친 진리, "우리는 서로 다르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라는 짧은 메시지가 다양한 일화로 흥미롭게 적혀 있기 때문에, 교양과 재미를 모두 맛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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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 꽃아 문 열어라 - 이윤기 우리 신화 에세이
이윤기 지음 / 열림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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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라는 말만 들어도 그리스 로마 신화가 반사적으로 생각나는 교육 환경에서 자라온 내게는, 우리에게도 신화가 있다는 전제하에 쓰여진 이 책이 참 낯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군과 웅녀 등의 인물들을 나는 딱히 신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애매한 기록과 비현실적인 탄생에 얽힌 이야기들 덕분에 내게는 그들이 그저 실존 인물도 신화도 아닌 '옛날 이야기 속 등장인물'로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옛날 이야기는 내가 관심이 있는 분야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는 근원에 대한 물음과, 그동안 가지고 있던 우리 신화에 대한 편견과 무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지은이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에 심취해있던 지난날을 반성하는 전문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이 점에 공감한 사람들이 책을 읽은 후에 여럿 있으리라 짐작한다.

책에는 처음 들은 신화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그리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부분도 있고, 재미 삼아 술술 넘기며 읽어도 되는 부분이 있다. 한 편의 칼럼을 위한 저자의 집요한 조사와 취재가 느껴지는 글들이다. 단, 너무 익숙하지 않은 한자 단어들에는 주석이 좀 달려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모처럼 힘이 있는 저자의 책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 나이를 떠나 누구나 읽어도 좋은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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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에 이르는 병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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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는 양은 평균 이상이지만, 분야만은 한정되어 있던 나에게, 이 책은 처음 만나는 장르소설이었다. 평소 추리소설에 취미도 없고, 일본소설에는 어느 정도 실망을 가진 내게, 이 책을 끝까지 읽는다는 건 도전에 가까웠다. 초반부터 전개되는 각종 잔인한 장면은, 주로 책을 대중교통 안에서 보는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특별히 집에서 잠들기 전에 보고 싶지도 않았고, 끝까지 읽어야겠다는 어떤 의무감만으로 중간까지 보고 있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잔인한 장면들이 지나가고, 점차 범인을 향한 수사망이 좁혀질 때부터 나는 느꼈던 것 같다. 장르소설이 주는 그 맛을. 그리고 바로 어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앞으로도 이런 책을 사서 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이런 장르라면 만화나 영화로 보면 그뿐이지, 굳이 텍스트로 봐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건방지게도 이 분야를 수준 낮게 평가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묘사, 사건의 긴밀한 상관관계, 사회적인 분위기를 고려한 상황 및 분위기 설정 등은 일반적인 소설에서 만날 수 있는 수준이었고, 반전이 주는 그 탄산음료같은 알싸함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렇게 가벼운 내용은 아닌데 표지 종이가 너무 마이너해 보인다는 것이다. 요즘 누가 그렇게 광나는 걸로 표지 하는지, 다음 책에서는 시공사에서 신경 좀 써주길 기대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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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8-29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처음부터 무지 쎈 소설을 읽으셨네요. 근데, 이 책 마이너 맞아요. 마이너에 19금에 매니아 소설이죠. 흐흐

astromilk 2007-08-29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저도 이제 마이너 입문을 한 셈이네요. ㅎㅎ
 
껍질
정진규 지음 / 세계사 / 2007년 8월
품절


다 털고 난 마른 들깻단이 왜 이리 좋으냐 슬프게 좋으냐 눈물 나게 좋으냐 참깻단보다 한참 더 좋다 들깻단이여, 쭉정이답구나 늦가을답구나 늙은 아버지답구나 빈 밭에 가볍게 누운 그에게서도 새벽 기침 소리가 들린다 서리 맞아 반짝거리는 들깻단, 슬픔도 저러히 반짝거릴 때가 있다 그런 등성이가 있다 쭉정이가 쭉정이다워지는 순간이다 반짝이는 들깻내, 잘 늙은 사람내 그게 반가워 내 늙음이 한꺼번에 그 등성이로 달려가는 게 보인다 늦가을 앞산 단풍은 무너지도록 밝지만 너무 두껍다 자꾸 미끄럽다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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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0℃ 최고의 나를 만나라
김범진 지음, 임승현 그림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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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쉽다. 빠른 것에 중독된 거북이와 토끼, 그러나 거북이는 자신이 달리는 행위에 대해 확신이 없고 전혀 즐겁지가 않다. 느림을 전혀 미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 분위기 탓에, 타고난 신체까지 바꿔가며 빠른 것을 추구하기에 이른다. 그러다 회의가 들고, 거북이는 자신이 가장 자신답다고 여기는 '느림'으로 돌아간다.

올컬러에 텍스트의 크기도 꽤 큰 책이다. 젊은이들보단 3040들에게 더 어필할 만한 내용과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속도와 승패를 중요시하는 현대사회에서 '느림'을 택하고 싶은 건 모든 이들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감하게 그것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재발견하는 거북이가 대견하다. 하지만, 이건 1차적인 감상일 뿐 꽤나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려, 개인적으로 크게 느낀 점은 없었다.

쉽게 쓰여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이야기에 요즘의 세태를 적절히 비유해 만들어 놓은 글이다. 언제까지 비슷한 내용과 비슷한 구성으로 반복되는 자기계발서만 공장에서 라면 찍어 내듯이 시장에 내놓을 것인지, 모든 출판사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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