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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조현 지음 / 민음사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어려운 소설이 좋은 소설일까? 그냥 쉽게 읽히면서 생각을 던져주는 것이 좋은 소설일까? 사실을 바탕으로 픽션을 가미한 소설이 좋은 소설일까? 개인의 취향에 따라 소설을 선택하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이 클라투 행성 지구 주재 특파원으로 활동하는 조현의 소설은 생각보다 많은 고민 혹은 어려운 단어들의 나열을 고민하면서 읽어야 할 소설인 것 같다. 마치 소설이라고 이야기하기에 망설임이 들 정도로 내용은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면서 가지가지 생각의 고리를 연결하는 방식이 과학과 시적표현 혹은 그 사이의 단어들의 어우러짐으로 인하여 생경한 느낌을 준다. 일곱 개의 단편을 모아 놓은 이 책에서도 만만하게 읽혀질 분량으로 생각하면 많은 실망감을 안겨 준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단어들이 등장을 한다. 사전을 찾아보며 읽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욕구를 잠재우며 그냥 이야기의 흐름에 생각의 흐름을 그냥 내놓아 보니 그럭저럭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우리가 속해있는 환경에서 우리의 생활을 객관적으로 보기는 그렇게 쉽지 않다. 그런 사유는 어쩌면 관념의 독립성을 제한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저자는 자신의 고향을 다른 행성으로 설정하면서 그렇게 지구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었을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과학적 법칙에 비유하면서 그렇게 유동적이고 많은 운동을 하면서 결국은 한 곳에 존재하지 못하는 것임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글에서 어쩌면 우리의 사랑의 감정이 가지고 있는 허를 말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존재를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내면의 관념을 사랑하는 것인지 그 존재의 중심에 어떤 것이 있는 것일까? 저자의 표현이 약간 시적일지 모르겠다.
어쩌면 사랑은 존재의 본질에 어울리는 참다운 이름을 찾아 미세한 부유물처럼 존재와 존재 사이의 빈 공간을 떠도는 브라운운동일지도. (91쪽)
그래 그렇게 사랑을 이야기하다가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클라투 행성의 특파원의 눈으로 들여다보자.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과학적 진실은 정말 진실이라는 말에 근접한 것일까? 이 부분에 반문을 하는 것은 아마도 합리성이라는 것을 만든 집단의 사고의 공유가 아닐까? 그렇게 인정한 것일 뿐이지 그것이 절대 진리는 아닐 지도 모른다는 의문 현상과 과학에 빠져 예술적 혹은 미적 감각을 잃어가는 현대인 아니 저자의 눈에는 지구인의 모습에는 알고 싶어하지도 알려하지도 않는 우리의 모습, 그저 현실을 살아가는 것에 익숙한 모습을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시대가 보편적으로 인정한 과학적 패러다임만을 절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존재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건 없어. 소위 말하는 과학적 합리성의 미신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시의 작용이나 은유의 현상학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세인들에게 벡터 값을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난해하다는 건 알아. (112쪽)
클라투 행성의 지구 특파원은 일곱 편의 단편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현실을 고민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야기하고, 햄버거와 냅킨의 역사를 말하는 그의 시선에서 우리의 현실에는 감성이 사라져 가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어떤 관점에서 보는 가에 따라서 소설의 이야기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아마도 많은 논쟁을 가져올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내가 느낀 느낌이 저자의 말 중에 몇 줄을 빼 놓아 보니 그렇게 편중된 해석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우리의 현실에 담겨져 있는 예술적 장르를 무시해 버리는 일을 좀 줄였으면 하는 것 혹은 시적 예술적 감각으로 자신이 말하는 행성의 감성을 가져오고 싶었던 것 그런 것 아니었을까 하는 이야기 말이다.
대신 고향 행성에서는 다른 것. 즉 하나의 감각 예술을 다른 예술 장르로 번역하는 일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것은 지극히 정교한 작업으로, 축구 선수 웨인 루니의 힘찬 드리블을 로커 지미 헨드릭스의 몰아치는 기타 연주로 번역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154쪽)
하여난 이곳 지구의 풍경을 고향 행성의 감각으로 번역해 내고 싶었다. (157쪽)
어쩌면 나는 저자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어려운 단어의 등장으로 어쩌면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조목조목 따지지 못한 것이 이해를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을지 모른다. 저자가 원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박학한 지식을 알고 접근하기를 바라는 더 많은 이해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200쪽 가까이 되는 소설이 무겁게 여겨지는 이유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