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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 - 오래된 지식의 숲, 이수광의 지봉유설
이철 지음 / 알마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조선시대의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은 어떠했을까? 이 질문을 던지다 보면 많은 서적들 중에 그 형식을 비슷하게 유지하는 것이 아마도 이수광의 지봉유설인 것 같다. 많은 신변잡기를 정리하였으며 그가 섭렵한 많은 문물들을 기록하여 놓은 것이 ‘지봉유설’ 이라면 그는 이 지봉유설을 백과사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지봉유설을 중심으로 저자는 당시의 같은 현상을 기록한 책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정리하여 우리에게 소개하여 주고 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보았던 천체의 현상과 날씨 그리고 당시의 사회풍속 그리고 역사와 학문 마지막으로 음식 문화를 소분류를 가지고 설명을 하고 있다.
전반적인 생각의 흐름은 성리학의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광해군 시절에 벼슬에 올라 낙향하였다가 인조시대에 다시 벼슬에 등극한 이수광의 전력을 보면 명나라를 추종하던 인조의 성향을 반영한다면 조금 답답한 부분을 거둘 수 없는 것은 사실이나 현상적인 부분과 저자의 성향을 파악하는 의미로 읽어 보면 재미있는 부분들을 발췌해 낼 수 있다.
음양의 논리로 우레를 설명하는 부분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을 것 같은 음양설이 잘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주자의 말을 인용한 무지개의 설명 부분에 있어서는 어이없는 해석을 받아들기도 하고, 우박을 설명하는 부문에 있어서는 도마뱀이 등장을 하면서 조금 갑갑한 마음과 멍한 웃음을 지어내게 하기도 한다. 먼저 우레를 설명한 부분을 잠시 인용하면
음은 어키고 양은 솟구치는 성질이 있는데, 엉킨 음 속에서 양이 뚫고 나오면 충돌하여 생기는 것이 천둥과 번개이다. <성호사설><천지문>‘비’ (45쪽)
무지개가 창자를 가지고 있어 물과 술을 마실 수 있다고 얘기한 주자답게 우박도 도마뱀이 물을 내뿜어 만든다고 주장했다.<성호사설><천지문>‘우박’(49쪽)
이렇듯 현상을 설명하는 것에 있어서 현재의 지식으로 받아들이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설명을 잘 하다가 성리학적인 측면의 이야기가 나오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 조금 멍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비판적인 부분이 아니라 시대상이 그랬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렇게 어이없는 일은 아니겠으나 성리학이 지배하던 세상으로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더 현실의 우리를 조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우리의 역사적 강역에 대한 논란은 계속 되고 있지만 저자 역시 패수에 대한 해석을 여러 문헌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읽는 사람의 마음이 그 책의 받아들이고자 하는 부분만을 크게 해석한다고 하였나. 나 역시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패수를 해석하는 사람들을 빗대어 말한 패수 한반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남긴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싸우지도 않고 조선의 강토를 줄이는 자’ 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명을 사대하는 조선에서부터 우리의 강역은 싸워보지도 않고 점점 줄어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부분이다.
성리학이 만들어 놓은 문화 중에 답답함을 떨치지 못하고 아직도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뿌리 깊은 생각의 잔재가 더 많은 사회문제를 만들고 있는 부분이 정절에 대한 부분이다. 오로지 여성에게 책임을 묻는 그 근원은 어디에서 시작하였을까? 조선시대에서 재가를 금지하는 법에서 시작한 것이라는 생각에 그 것을 버리지 못하는 판결과 우리의 문화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해 보게 한다.
임진왜란 때 부인들이 정절을 스스로 지킬 줄 알았기 때문에 흉악한 왜적에게 더럽힘을 당하지 않았다. 기꺼이 칼에 찔려 장렬히 죽음을 맞이한 부인들의 수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또한 무지하고 천한 여자들과 적을 꾸짖고 죽은 자가 많았다. 이 어찌 교화로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지봉유설><군도부>‘법금法禁’ (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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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자연스럽게 모든 성폭력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시선을 정당화했다. 정조는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야 하는 절대적인 그 무엇으로, 그 수호의 책임이 모두 여자에게 지워졌다.(114쪽)
너무 갑갑한 이야기만 들춰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를 뒤로하더라도 성리학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아직도 우리의 현실을 알게 모르게 지배하는 일들이 있음을 상상하기에 더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좀 재미있고 가슴 아픈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어디선가 임진왜란 당시 척후병이 왜군 진지를 정탐을 하고 와서 군량미 상황을 보고 했다고 한다. 왜구는 1개월 정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보고를 믿고 성주는 2개월 분량의 군량을 준비하고 왜군의 군량미 수송로만 차단하고 수성에 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2개월이 지나도 적들은 생생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 그 정탐병을 추궁하고 다시 정탐을 하여 보니 왜군은 조선군의 식사량의 1/3만을 먹는 다는 것을 확인하고 낙담하였다고 한다. 역시 조선시대 사람들이 먹는 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숫자를 보고 나도 놀랐다. 성인 한명이 7홉 정도의 식사를 하고 1홉이 60cc 정도 라고 하니 엄청난 양을 먹었던 것 같다.(368쪽) 지금도 결코 먹는 양이 적지는 않은 것이 여기서 유래 한 것일까?
조선시대의 생활상과 사상 그리고 그 시대의 생각을 정말 이것저것 잡학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때로는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지만 때로는 성리학이라는 것이 조선시대 전반에 미친 영향과 지금까지 우리에게 미친 영향까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한 부분이 많았다. 조금은 이곳저곳에서 인용된 글이 많아 산만하기는 하였지만 나름 생각을 전달하는 사람마다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한 저자의 노력이라고 생각이 된다. 어쩌면 현재를 보는 아주 사소한 일상을 조선시대 그리고 우리 선조들의 생활과 사물을 보는 눈 그리고 생활 습관을 통해서 그 기원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