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당신의 가족이 아니다 - 사랑하지만 벗어나고 싶은 우리시대 가족의 심리학
한기연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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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를까? 한 가족에서 태어나서 이제는 나도 가족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는 지금 어릴 적 기억과 상처 혹은 아무와도 공유하지 않았던 가족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면서 떨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너무나도 멀리 가족과 멀어져 있는 시간이었지만 그렇게 내 가족을 챙기며 살아가다 보니 내가 받은 상처를 혹은 아이들에게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부부의 자식으로 그리고 아이들의 부모로서 가족의 위치를 생각해 볼 때 어쩌면 그렇게 힘들게 어렵게 만들어가면서도 가족이라는 이름은 참 큰 굴레이기도 하지만 따뜻함 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존재도, 진흙탕에 처박힌 나를 끌어올려 줄 수 있는 존재도 가족, 가족뿐이다. 가족은 우리에게 가장 큰 절망인 동시에 가장 큰 희망이다. (5쪽)

 

많은 가족의 상처받은 이야기와 어릴 적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처받은 이야기 속에서 상담은 시작이 된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가족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 하나 혹은 둘 아니 그 이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모두 그렇겠지만 가족이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힘든 사람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게 나의 성장 과정을 잘 알고 나의 실수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잘 알기에 가족의 한 마디는 다른 사람의 말 열 마디 보다 더 상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가족 간에는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아닐 것이라는 말은 장담 할 수 없다. 누구하나 단 한 명이라도 조금 잘 못된 길로 간다면 온 가족이 모두 행복해 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 조심하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준비하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가족이 아닐까 한다.

 

여러 상담 사례를 통해서 보면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별것 아니구나 하는 위로를 받는다.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살아온 사람도 있는데 뭐 나의 기억은 새발에 피네 정도로 생각하니 나를 끝까지 붙잡고 있던 안 좋은 기억도 그렇게 놓아지는 듯하다. 상대의 불행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좀 부끄럽기는 하지만 사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가족 간에 이야기는 어쩜 이런 사람도 있을 수가 있을까 할 정도로 각양각색의 사례를 들려 고 있기 때문이다. 사례와 자신이 기겨 낼 수 있는 방법과 원인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어쩌면 심리상담을 하여 주는 저자의 말에서 가족이 아닌 것이 아니라 끝까지 가족이고 싶은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하기만 한 가족도, 하나부터 열까지 불행하기만 한 가족도 없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과 함께 행복해지기 위하여 날마다 조금씩 노력할 뿐이다. (82쪽)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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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군주 조조 난세의 능신 제갈량 - 삼국지로드를 따라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걷다
윤태옥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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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서 조조를 다시 보는 관점 즉 재해석을 하는 관점의 이야기들이 많이 흘러나오고 있다. 유비와 관우 제갈량을 중심으로 삼국지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 우리는 어쩌면 조조를 너무나도 나쁜 사람 황재의 자리를 찬탈한 사람, 유비를 괴롭히는 나쁜 사람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접한 삼국지는 삼국지연의 즉 나관중의 소설을 접하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맥락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조조에게 눈을 돌린다. 조조의 업적과 행적을 찾아가며 소설 속에서 조조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간신의 처지로 전락하게 된 부분을 짚어보고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 하고 싶어 한다. 과연 삼국지연의의 그 주술 같은 이야기를 벗어난 조조의 진짜 모습은 어떨까?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저자는 '21세기형 CEO'라 칭하고 싶어 한다. 조조의 성격과 지도력은 한마디로 법을 중시하는 원칙주의자 즉 법대로 를 외치는 리더였으며, 이천년 전에 둔전제를 시행하여 국가의 재산을 늘리고, 인재를 기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연공과 서열을 무시한 공평한 인재를 등용하는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행정 개혁을 선보인 장본인이다. 즉 중국을 통일하기 위한 발판과 중원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능력과 포부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재갈량이 없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그렇게 유비와 관우 재갈량에 밀려 역사적으로 자신의 행적을 왜곡 받으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럼 재갈량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어떨까? 인류역사상 최고의 자리에 오른 셀러리맨? 아마 재갈량을 두고 하는 말 중에 가장 저평가 된 말로 요약을 한다. 중원의 문화를 발전할 수 있는 그리고 통일된 중국을 가질 수 있었던 기회를 제갈량 덕분에 날려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주군에게 충성하여 자신만의 이름을 지킨 사람정도, 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제갈량의 최고 덕목이 지혜와 충성인데, 결과로 보면 그의 충성은 ‘자기 주군’만을 위한 것이었지 결코 역사의 진보에 기여한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주군에 대한 의리’에 충실하면서 역사의 진보에 ‘대못’을 박은 것이다. (41쪽)

 

삼국지연의라 불리는 삼국지 소설은 어떤 면에서 역사 삼국지와 다를까? 한마디로 유비 관우에 대한 우상화 작업이 아니었을까? 이로 인하여 역사적으로 적당한 평가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매장 당하고 간신으로 간웅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저자는 이 부분을 답사여행과 역사와 소설을 비교하며 현장감 있게 전하여 준다.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화타의 등장도 좀 놀라운 부분이지만 관우에 대한 이미지를 포장하기 위한 소설적 허구를 잘 보여주는 구절을 골라보니 청룡언월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관우 하면 누구나 긴 수염과 함께 청룡언월도를 떠올린다. 하지만 삼국시대에는 아직 청룡언월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언월도가 처음 등장한 것은 당, 송대며, 훈련 때 위엄을 드러내는 용도로 쓰였을 뿐 실전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의장대용 무기였지 실전 무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결국 관우는 <소설 삼국지>에서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의 무기를 들고 싸운 셈이다. (95쪽)

 

이뿐 아니라 저자는 여러 부분에서 역사와 소설의 차이를 짚어 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중국 내부에서 조차 관우보다도 대접을 못 받고 있는 느낌이다. 그의 행적과 개혁정책을 알고 있음에도 소설 삼국지의 위력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행적을 옳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소설의 힘이 너무 강해서 그런가? 인간적이며 문학적으로 혹은 로맨티스트로 그리고 행정적으로 정치적으로 나무랄 때 없는 개혁군주 조조에 대한 평가를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이 먼저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아니겠지? 그런 면에서 삼국지는 조조의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군주로서 멋진 사람이 조조였다면 신하로서 최고봉은 제갈량이다. 제갈량 역시 소설 삼국지에서 과대포장 되어서 천재 그리고 신이내린 책사 혹은 국사지만 그가 선택한 주군은 세상을 변화시킬 그런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소설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거의 모든 면에서 오너보다 우수한 참모였으나 평생 청렴한 마인드로 자기 자리에서 수장과 조직을 위해 헌신한 인물, 그가 바로 제갈량이다. 설사 그가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반동이었다 해도 말이다. (153쪽)

 

제갈량의 능력은 정사를 보더라도 훌륭하기 그지없으나 다만 그가 선택하고 충성을 바친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박하기에 그의 선택은 시대적으로 오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조조와 제갈량이 만났다면 아마 중국은 오래전에 통일 왕조를 만들고 전쟁으로 인한 소모전이 없이 더 크게 발전할 기반을 만들 우 있지 않았을까?

 

재미있는 책이었다. 제갈량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터라 이렇게 가끔은 정사를 통해서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책도 필요하다. 우유부단한 유비보다는 조조가 좋았던 터라 제갈량도 별로였는데 역사적인 사실에서 보면 조조의 행적이 그렇게 치졸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역사적 관점과 자신의 이해에 따라 소설로 만들어진 삼국지 하나 때문에 이천년이 넘게 시대의 간웅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조조의 운명은 좀 서글프다. 나라를 위하고 국가를 위하고 후세를 위한 사람이었을지 모르는 조조에게 후세의 평가는 너무 박한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역사를 보는 관점의 차이는 너무나도 현저하게 자신의 시대 중심적인 면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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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
쉘 실버스타인 지음 / 살림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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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셸 실버스타인이 다시 우리에게 전해주는 세상을 보는 많은 시선과 자신을 위로하는 시집을 우리는 그의 그림과 함께 만날 수 있다. 짧은 글과 그림 그 속에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해보며 자신의 입장을 같이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시작부터 그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말로 시작을 한다.

 

네 웃음소리를 들을 거야. 그러면 나도 미소 지을게. (9쪽)

 

지금 자신의 시집이 어떤 사람들 손에 어떻게 반응을 하든 그는 그 웃음을 기다리며 자신이 위로 받을 준비를 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그의 생각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는 어쩌면 우리에게 의미하지 않는 다른 반응을 접하는 혹은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 다음 부터는 명확하게 핫도그의 토핑을 이야기 하듯이 내 인생의 장식을 만들어 가야지 이렇게 한 장을 넘기는 데 10분이 넘게 걸린다.

 

짐은 다 쌌는데 에서는 정작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변 사람을 잊고 있는 건 아닌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자신과 같이 여행을 가기로 하였던 조를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에서 정말 중요한 우리의 중심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만들어 준다. ‘마법 유리병 속의 요정’에서는 우리 인생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사람이 우리임을 그렇게 자신이 만들어간 인생에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다.

 

어떤 마법 유리병을 여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모든 게 달라지는 것 같아. (16쪽)

 

이렇게 한편 한편의 시에서 마다 멈추고 생각을 해야 하니 좀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행복한 시간이다. 셸 실버스타인이 주로 강요하는 생각이 아니라 짧은 글로 우리들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그 상황에서 낯선 결과를 던져 주면서 생각을 이끌어 내는 말을 주로 하기 때문인지 읽어야 하는 부담 보다는 생각해야 한다는 즐거움이 더 기쁘게 만들어 준다.

 

세상을 살면서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온 나 자신에게 그리고 한 곳에 정신 팔려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인생에 그리고 가족에게 그리고 나의 선택에게 그 많은 말들을 전하기보다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마음 편하게 생긴 저자의 모습이 어쩌면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며 반성하라고 강요하는 자기계발 책이나 에세이 보다 더 뭉클하게 자리 잡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서로 뒤엉키는 건 쉬운 기술이고

뒤엉킨 걸 푸는 건 어려운 기술이야 (183쪽)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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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라는 이름의 외계인 - 소통하지 못하는 십대와 부모를 위한 심리치유 에세이
김영아 지음 / 라이스메이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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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자주 잊어버리는 것이 나는 개구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올챙이가 무엇인지 개구리가 되기 위해 꼬리가 없어지고 다리가 길어지며 불룩한 배가 없어지는 과정을 잊어버리고 물 밖의 세상으로 나오기 위한 연습을 그렇게 많이 하였을 것인데, 그 첫 발걸음이 얼마나 떨리고 두려웠을 것인데 나는 개구리가 된 뒤로는 그 두려웠던 기억을 잊어버렸다. 수시로 물과 땅을 오가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일에 익숙하여진 것 같다. 개구리인 나는 올챙이로 이제 물 밖의 세상으로 나오기를 준비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개구리처럼 행동하기를 강요한다.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라고 하고 짧은 다리로 뛰어 오르라고 한다. 아직도 꼬리가 남아 있어 묵직한 어린 티를 버리지 못한 아이들에게 어서 뛰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땅위의 맛있는 먹을거리를 놓치고 행복해지지 못하고 굶어 죽는다 하고 강요하고 있다. 그렇게 올챙이의 몸에 상체기가 나는 것을 그냥 개구리가 되는 과정인 것처럼 아파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그게 다 어른이 되는 과정인 것처럼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십대라는 이름의 외계인이 아니라 개구리가 올챙이를 외계인 보듯 하는 것처럼 말이다. 분명 내가 힘들게 아니 그렇게 기다리고 세상 구경을 시켜 주고 싶어서 열 달을 기다려 하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에게 말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잊고 사는 것이 참 많은데 그 때의 기억을 잊은 채로 말이다.

 

10개월 동안 품고 있던 핏덩이가 처음 세상에 나와 우리와 마주하던 그때를 기억한다면, 온 세상을 다 얻는 듯 눈물로 범벅된 그 기쁨과 행복을 기억한다면, 지금이라도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우리의 자녀에게 말해보는 건 어떨까. (8쪽)

 

저자는 서문을 이 글로 시작을 한다. 부모의 입장에서 갑자기 숙연해 지고 그동안 이 기쁨을 잊고 살아온 나에게 반성부터 하면서 시작을 하시죠. 하는 권유처럼 말이다. 그렇게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내 이야기를 누가 대신 하는 것처럼 들렸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를 받았을 아이를 생각하면서 무언가 모를 뜨거움이 올라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었을 아이에게 나는 더 많은 채찍을 가한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끊임없이 들게 만들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이 참 힘들었겠구나. 어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 나랑 똑같은 말을 하네. 이런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왜 이 말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대목에서는 꼭 그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나 역시 대한민국의 평범한 부모인 것 같다. 그중 하나를 콕 짚어 내면

 

세상의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말은 ‘일부러 상처주기 위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가 ‘네가 잘 되기 위해’하는 말뿐이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자녀에게 한번 물어보는 건 어떨까. 그들에게도 정말 그렇게 들렸는지 말이다. 어른들이 쓰는 언어와 아이들이 쓰는 언어는 다르다. 아이들에게는 좀 더 직접적으로 사랑을 표현해주어도 된다. (159쪽)

 

나도 어렸을 때 어른들의 말에 그런 반감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에는 그때 부모님이 했던 행동과 말을 반복하고 있다. 그게 얼마나 큰 부담이고 고통이 되는지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모든 부모는 아이들에게 해줄 만큼 해주었다고 한다. 그런 부모의 대부분이 가만히 살펴보면 물질 적인 부분이다. 그 것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비교해 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세상의 변화는 아이들에게 그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고, 아이들 스스로도 그 부담감을 당연히 가지고 있다. 다만 부모가 배운 부모의 모습을 자신이 받은 그 대로 돌려 주려하고 있기 때문에 소통의 부재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한다. 부모의 역할 역시 교사의 역할처럼 공부하고 배워야한다. 그게 지금의 부모가 십대의 자녀와 소통하는 법이 될 것이다. 배우는 것 저 밑바탕에는 자신의 자식이기에 가진 그 깊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더 배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이와 가장 많이 이야기 하는 부모가 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한 아빠의 푸념이랄까?

 

처음부터 잘못된 것은 없다. 그리고 ‘잘못하고 싶은’사람도 없다. 누구나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능숙해지고 싶다. 그러려면 서투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처음엔 누구나 서툴다. 십대라는 이름의 아이도, 부모라는 이름의 어른도, 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기란 참 쉽지가 않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움과 부딪히면서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의 역할을 다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일. 그 마음자세가 되어 있다면 반은 온 것이다.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끝까지 고집만 피우는 것, 진짜 문제는 거기에 있다. (165쪽)

 

그렇게 부모도 세상을 배우듯 아이를 배우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 첫 만남의 사랑과 기쁨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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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배운 고조선은 가짜다 - 한국고대사 천 년의 패러다임을 넘어
김운회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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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책을 읽을 때는 그 역사서를 작성한 사람을 먼저 보라고 하는 말이 있다. 그 역사서를 만든 사람의 관점을 보라는 이야기이고 그 사람이 어떤 이해관계를 가지고 그 역사를 논하게 되었는지 그 사람의 배경을 살펴보라는 이야기로 해석을 해왔다. 이 책 역시 역사서이기에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는 일을 제일 먼저 하였다. 저자인 김운회는 박사님이다. 역사학 혹은 고고학 박사가 아닌 경제학 박사이다. 기존의 역사서는 대부분 역사를 전공한 사람들의 책이다. 그래서 진보니 보수니 하는 말이 이 사학계에도 존재한다. 지금도 현직 경제학을 강의 하는 교수이고 이런 분이 역사에 대한 책을 쓰게 된다면 진보니 보수니하는 사학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롯이 근거를 가지고 역사적 기록만 가지고 이야기 할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제도권의 영향을 받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역사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책에 대한 신뢰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좀 걸리는 약력은 비 제도권 사학자 가운데 한 사람 이 문구가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저자에 대한 이력은 대충 감을 잡았으니 좀 새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은 설렘을 가지고 책장을 넘겼다.

 

고조선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면서 항상 궁금하였던 점이 패수에 대한 비정이다. 도대체 패수는 어디 일까? 국사를 배우면서 우리는 패수를 주로 대동강으로 배웠던 것 같다. 하지만 기존의 역사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패수에 대한 정의는 역사적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였던 것 같다. 이 강이 동쪽으로 흐르느냐 서쪽으로 흐르느냐에 따라서 패수를 중심으로 건국된 고조선의 강역은 어쩌면 한반도가 되느냐 중원이 되느냐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역시 이 책은 기존의 국사에서 말하는 비정을 조금 다른 각도로 본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배운 국사는 평양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였다면 이 책은 동쪽으로 흐르는 강인 패수에 대한 정의로 고조선의 강역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배운 고조선은 가짜라는 조금 자극적인 제목을 선정한 것 같다.

 

일단 강역이 한반도가 아닌 요동 혹은 요서에 중심을 두고 고조선의 강역을 선정하였다면 그 역사 지리적 배경의 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 순서고, 왜 우리는 패수를 대동강 유역이라 배워야만 했는지 그 사연도 이야기하는 것이 논리적인 순서가 될 것이다. 저자는 이 부분을 빠지지 않고 설명을 한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발전하여 강역의 위치가 바뀌게 되면서 그 지역을 근거로 살아왔던 민족에 대한 뿌리를 차례로 설명하면서 우리민족의 기원을 차례로 설명하고 있다. 기존에 이야기와 조금 다른 점은 우리가 잃어버리고 부정하려 하였던 오랑케라 말하는 선비족, 혹은 요나라를 건국한 거란을 우리 민족으로 보고 그 이유를 설명하며 근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물론 사서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한 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저자가 읽었던 근거 자료를 책 뒤편에 담아 놓은 양으로 본다면 그 근거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충분한 논리를 제공한다.

 

책의 흐름을 이야기하였다면 우리가 역사서에서 배운 내용과 무엇이 다른지 조금 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강역이 다르다, 두 번째 민족에 대한 그 주 구성원이 다르다, 기자조선 위만 조선에 대한 해석은 조선시대에 중화사상 즉 소중화 사상에 빠진 지배세력이 왜곡하였던 부분에 위만조선이라는 단어가 생기고 중국에 소속되고 싶었던 역사적 근거를 만들어 낸 조선의 역사관에 대한 비판이 따른다.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크게 진보사학과 보수사학이라는 두 세력이 공존하고 있다. 진보사학은 우리의 강역에 대한 해석과 역사적 집단에 대한 해석에 따른 차이로 보수사학이 바라보는 시각차를 많이 부정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고조선의 강역, 사도세자의 죽음, 노론에 대한 비판 등으로 우리가 배운 국사 즉 보수사학이 가진 역사적 해석에 있어서 다른 해석을 보이고 있다. 어떤 부분이 맞고 틀린지는 아직도 논쟁의 대상이기 때문에 언급할 수는 없지만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누군가에게 예속된 사상을 가진 지배 세력이 볼 수 있는 역사관은 편협하지 않을까? 이로 인하여 젊은 사람들의 나라를 위하는 국가의 자존감을 높이는 애국심 혹은 국가에 대한 자신의 충성도 등은 다른 나라에 비하여 현저히 떨어지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과연 나는 전쟁이 난다면 총을 들고 나가 싸울 것인가 하는 질문에 우리나라 젊은이의 대답 즉 참전하겠다는 비율이 가장 낮았다고 하니 말이다. 이 또한 지켜야할 역사적 가치를 심어주는 일에 좀 더 신중하고 편협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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