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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라는 이름의 외계인 - 소통하지 못하는 십대와 부모를 위한 심리치유 에세이
김영아 지음 / 라이스메이커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종종 자주 잊어버리는 것이 나는 개구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올챙이가 무엇인지 개구리가 되기 위해 꼬리가 없어지고 다리가 길어지며 불룩한 배가 없어지는 과정을 잊어버리고 물 밖의 세상으로 나오기 위한 연습을 그렇게 많이 하였을 것인데, 그 첫 발걸음이 얼마나 떨리고 두려웠을 것인데 나는 개구리가 된 뒤로는 그 두려웠던 기억을 잊어버렸다. 수시로 물과 땅을 오가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일에 익숙하여진 것 같다. 개구리인 나는 올챙이로 이제 물 밖의 세상으로 나오기를 준비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개구리처럼 행동하기를 강요한다.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라고 하고 짧은 다리로 뛰어 오르라고 한다. 아직도 꼬리가 남아 있어 묵직한 어린 티를 버리지 못한 아이들에게 어서 뛰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땅위의 맛있는 먹을거리를 놓치고 행복해지지 못하고 굶어 죽는다 하고 강요하고 있다. 그렇게 올챙이의 몸에 상체기가 나는 것을 그냥 개구리가 되는 과정인 것처럼 아파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그게 다 어른이 되는 과정인 것처럼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십대라는 이름의 외계인이 아니라 개구리가 올챙이를 외계인 보듯 하는 것처럼 말이다. 분명 내가 힘들게 아니 그렇게 기다리고 세상 구경을 시켜 주고 싶어서 열 달을 기다려 하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에게 말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잊고 사는 것이 참 많은데 그 때의 기억을 잊은 채로 말이다.
10개월 동안 품고 있던 핏덩이가 처음 세상에 나와 우리와 마주하던 그때를 기억한다면, 온 세상을 다 얻는 듯 눈물로 범벅된 그 기쁨과 행복을 기억한다면, 지금이라도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우리의 자녀에게 말해보는 건 어떨까. (8쪽)
저자는 서문을 이 글로 시작을 한다. 부모의 입장에서 갑자기 숙연해 지고 그동안 이 기쁨을 잊고 살아온 나에게 반성부터 하면서 시작을 하시죠. 하는 권유처럼 말이다. 그렇게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내 이야기를 누가 대신 하는 것처럼 들렸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를 받았을 아이를 생각하면서 무언가 모를 뜨거움이 올라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었을 아이에게 나는 더 많은 채찍을 가한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끊임없이 들게 만들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이 참 힘들었겠구나. 어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 나랑 똑같은 말을 하네. 이런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왜 이 말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대목에서는 꼭 그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나 역시 대한민국의 평범한 부모인 것 같다. 그중 하나를 콕 짚어 내면
세상의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말은 ‘일부러 상처주기 위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가 ‘네가 잘 되기 위해’하는 말뿐이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자녀에게 한번 물어보는 건 어떨까. 그들에게도 정말 그렇게 들렸는지 말이다. 어른들이 쓰는 언어와 아이들이 쓰는 언어는 다르다. 아이들에게는 좀 더 직접적으로 사랑을 표현해주어도 된다. (159쪽)
나도 어렸을 때 어른들의 말에 그런 반감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에는 그때 부모님이 했던 행동과 말을 반복하고 있다. 그게 얼마나 큰 부담이고 고통이 되는지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모든 부모는 아이들에게 해줄 만큼 해주었다고 한다. 그런 부모의 대부분이 가만히 살펴보면 물질 적인 부분이다. 그 것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비교해 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세상의 변화는 아이들에게 그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고, 아이들 스스로도 그 부담감을 당연히 가지고 있다. 다만 부모가 배운 부모의 모습을 자신이 받은 그 대로 돌려 주려하고 있기 때문에 소통의 부재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한다. 부모의 역할 역시 교사의 역할처럼 공부하고 배워야한다. 그게 지금의 부모가 십대의 자녀와 소통하는 법이 될 것이다. 배우는 것 저 밑바탕에는 자신의 자식이기에 가진 그 깊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더 배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이와 가장 많이 이야기 하는 부모가 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한 아빠의 푸념이랄까?
처음부터 잘못된 것은 없다. 그리고 ‘잘못하고 싶은’사람도 없다. 누구나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능숙해지고 싶다. 그러려면 서투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처음엔 누구나 서툴다. 십대라는 이름의 아이도, 부모라는 이름의 어른도, 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기란 참 쉽지가 않다. 하지만 그렇게 어려움과 부딪히면서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의 역할을 다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일. 그 마음자세가 되어 있다면 반은 온 것이다.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끝까지 고집만 피우는 것, 진짜 문제는 거기에 있다. (165쪽)
그렇게 부모도 세상을 배우듯 아이를 배우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 첫 만남의 사랑과 기쁨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