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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새로운 미래를 말하다 - 과거를 읽고 현재를 보고 미래를 그린다
폴 크루그먼 지음, 예상환 외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많이 아팠을까? 마지막으로 읽은 책의 이야기는 어쩌면 그분이 이루지 못한 세상을 이야기 하고 있을지 몰랐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한 번의 출간 이후 다시 출판사를 옮겨 출간된 이 책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잊혀지지 말아야 할 그 흐름의 중심을 그렇게 찾아 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미래를 말하고자 하는 저자는 먼저 미국의 과거를 이야기 하고 있다. 어떤 것이 정치 혹은 경제 궁극적으로 사람에게 좀 더 행복함을 전해 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마도 마지막으로 주변에 이 책을 권한 분의 속마음을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진보, 보수 그 경계에서 생활과 생존의 경계에서 우리는 많은 시험을 당하게 된다. 자신의 가치관의 변화는 때로는 게으름으로 때로는 자신의 이익으로 그렇게 숨은 뒷 축을 담당하며 합리화라는 포장된 언어를 이용하여 나를 혹은 지금의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다가가지는 않겠지만 진보라는 의미 그리고 보수라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어떻게 사람들이 진보의 손을 들어 주었다가 보수의 손을 들어주는 지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책과 사랑이 우리의 일상에 어떻게 다가오는 지 그렇게 차분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먼저 진보가 뭐지? 하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본다. 그게 뭘까? 신문, 방송 그리고 일상에서 그렇게 많이 들었던 ‘진보’라는 단어의 의미는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 지고 있을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그 의미가 어떤 것일까? 저자의 말처럼 변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생각, 단순하게 이렇게 정의 하고 나면 무엇이 변하기를 바라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따라온다. 정치적 의미에서 진보가 아니라 개인적인 의미에서 진보는 결코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스스로 변화하며 발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으니 정치 사회가 아닌 개인적인 의미에서는 진보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부분에서 다시 모순이 되는 생각이 떠오른다. 직장이 변하고 사회 분위기가 변하고 가치관이 변화가 이루어진다면 나는 진보적인 생각을 옹호할 것인가?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 당장 눈앞에 닥치고 그 속에서 기본적인 생활이 어려워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힘들다면 어떤 변화ㄹ를 원할 것인가?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변화를 원할 것인가? 이런 질문은 보수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져 본다.
보수는 저자의 생각으로 지금의 것을 지키는 것. 변화 보다는 현재를 옹호하는 삶이다.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 변화를 좋아할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아무리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내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은 하루의 식량을 구할 수 있는 일에 자신의 가치관을 바꿀지도 모른다. 그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순이니까. 그럼 진보와 보수의 관계에서 개인적인 생각은 어떻게 정의를 내리고 살아갈 것인가? 이는 아마도 철학자가 던진 인간이라는 질문에 근접하지 않을까? 쉽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질문. ‘너는 보수니, 진보니?’ 이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고민거리, 즉 나의 고민이기도 하다.
저자는 미국의 역사를 통해 즉 근대의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태동과 기원 그리고 정치적인 상황과 시대상을 같이 고려하며 선거를 통해 미국 국민이 보여 주었던 진보와 보수의 우세와 열세를 분석하고 있다. 마치 전장의 느낌을 받듯이 선거이야기는 시대적 변수와 국민들의 생활수준에 귀결되며 사상이 변하고 그 상황에서 어느 쪽의 손을 들어 주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떻게 사회변화에 반영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드라마틱하게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은 사회의 이슈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용하려 하였으며 혹자는 그 이슈를 놓치고 선거에 패배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우리의 정치 상황과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았을 때 비교하며 고민해 본다면 더 즐거운 책 읽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저자는 출판사의 소개에서도 드러나듯이 진보학자이다. 진보학자이기에 보수진영에 대한 정책을 그리고 그들의 전략을 비판하고 사회구성의 균열을 고민한다. 보수진영이 자주 활용하는 전쟁, 테러, 그리고 공산주의 등에 대한 비판과 그들만의 도그 휘슬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을 빌자면 보수는 돈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집단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그 전략을 따르면 굶어 죽을 일은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왜 그는 보수를 반대하고 진보를 선택한 것인가? 마지막 부분에 그가 강조하는 양극화라는 문제이다. 이 양극화가 가져올 사회적 혼란에 대한 걱정 그는 이 부분에 대한 해결을 아니 미래를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양극화가 어떤 문제를 야기 할 것인가?
정치학자 에릭 우슬러너와 미첼 브라운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양극에 위치한 사람들은 ‘거의 모든 사람은 믿을 만하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없다. 사회적 믿음은 경제적 평등에 기반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346쪽)
결국 사회구성을 위한 믿음의 문제 이것이 경제적 양극화로 갈 때 가져 올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이 어쩌면 진보라는 개념을 만들었을 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진보학자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 부족한 경제여건이라도 경제적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것을 추구하는 집단 그 것이 진보라는 개념의 출발이 아닐까한다. 이 개념은 공산주의라는 단어의 개념과 비슷하기에 주의해 사용해야 할 것이지만 말이다. 지금도 우리는 진보와 공산주의 그 것을 잘 구분할 능력이 없는 것 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읽으셨다던 이 책,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곰곰이 생각하며 읽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우리의 지금은 어떤 것인지 우리가 일지 못하는 도그 휘슬에 우리는 또 다른 해석을 하고 그렇게 다시 어려운 길을 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무엇이 정말 미래를 생각하는 일인지? 그리고 우리의 미래는 어떤 방향이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나는 이 복잡하고 모두 다 옳은 것 같은 말 속에서 어떤 곳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하는지? 머리가 복잡하고 더 힘들게 사회를 바라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