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젠다 세팅 - 당신의 생각을 조종하는 숨은 권력
맥스웰 맥콤스 지음, 정옥희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아마도 우리는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아젠다 세팅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신문사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하기도 하고 방송사 사장이 바뀔 때 마다 홍역을 치르며 그렇게 신문과 방송에 집중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어떤 면에서 그런지 이 신문과 언론이 한 성향으로 나가면 어떤 결과가 초래 되는지에 대한 생각은 구체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 재벌을 이야기 하는 이유도 그리고 그 언론이 정부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미국의 사례이기는 하지만 우리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미국에서 신문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다. 신문은 대중이 논의할 아젠다를 설정한다. 그리고 이 권력은 어떤 법에도 구속되지 않는다. 신문은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에 대해 생각해야 할지를 결정한다. (29쪽)

 

책의 초반에 박스를 쳐서 나온 문장에 몇 줄이다. 사실 무섭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인용했다. 내 생각을 신문이 결정한다고? 흥 하고 웃어 넘길 수도 있었는데 읽어 내려가면서 강한 부정은 약간의 부정으로 약간의 부정은 약간의 긍정으로 약간의 긍정은 강한 긍정으로 변화되기 시작하면서 ‘ 그래 나는 언론이 정해준 아젠다 대로 생각하고 고민하였던 거야’ 그리고 그 이외의 나머지 일들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지. 그렇게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요즘 SNS도 마찬가지 아닌가? 신문이 방송한 주제를 가지고 고민들 하면서 찬반이 나뉠 뿐이지 다른 아젠다를 세팅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팔로워가 몇 만인 사람들은 신문에 이슈를 제공해 주기도 하지만 말이다.

 

1973년 서독의 석유 위기는 언론의 집중 보도로 자극된 급격한 수요 상승에서 발생한 것이지 공급량이 감소해서가 아니다. 이 경우 신문의 아제다 세팅 영향력은 현저성 및 공공의 관심 생성 범위를 넘어섰다. 다시 말해 행동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당면 상황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개별적으로 반응하도록 행동을 유발한 것이다. 언론이 유발한 아젠다 세팅 효과는 이처럼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56쪽)

 

개인의 사고에만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던 언론의 아제다 선정방식은 집단행동으로도 나타난다. 우리의 사례는 아니더라도 서독의 오일쇼크 때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언론이 선택한 아젠다에서 일반 시민들이 반응하고 흥분하면서 액선이 행해지고 이 행동은 결구 서독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게 만들기도 한다. 아쉽지만 불안감이 들게 만들면 자신의 이익을 위한 행동을 하게 되어 있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 아닌가?

 

점점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다. 정보의 양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보다 더 많다는 SNS 시대에서 언론은 그래도 유용할까? 젊은 세대들이 종이 신문을 보고 다닐 것인가? 조용히 관찰을 해 본 결과 젊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 역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아제다에 심취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아닌가? 하는 질문에 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교육은 개인의 언론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뉴스에 나타나는 더욱 광범위한 이슈에 민감하게 하는 데 연대적 효과가 있다. 한편, 교육수준이 더 높다고 해서 뉴스의 강조 패턴에 대한 개인의 방어적 반응도 높아지지 않는다. 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미디어 아젠다를 수용하는 데 심리적 장벽을 세운다거나 반박하는 경향도 더 크지 않았다. (83쪽)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는 덜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여지없이 망가지네요. 오히려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더 안 좋은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게 만듭니다. 아젠다 세팅은 교육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지만 저자긔 역할 론은 개인의 역할 론은 아닌 듯합니다. 언론은 어떻게든 자기검열을 가동해야하고 정치는 정치대로 그리고 독자는 독자대로 자신의 위치에서의 역할을 다 잘 할때 만이 아젠다 세팅의 피해를 보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구조상 그 것을 피하기는 쉬워 보이는 일은 아닌 듯합니다. 서로의 역할과 숨은 뜻을 알아가는 과정은 언젠가 누군가 저에게 신문은 거꾸로 읽어야 한다고 한 말이 생각나게 하는 부분입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어 내려가면서 갑자기 생각나는 분이 있었습니다. 마음과 의도를 담아내는 일에 진솔하셨지만 결국은 이 아젠다 세팅에 조금 미흡하셨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힘든 일이었겠지만 지금 계시는 것과 계시지 않는 것의 차이는 많이 다른 의미일 터이니 말입니다.

 

많은 경우 국가의 최고지도자들이 뉴스 아젠다를 설정하는 데 성공을 거둔다. 대외관계 정부부처 관계자들도 영향력이 세다. 하지만 이러한 영향력은 언론의 뉴스 규범에 의해 여과되는데 이 여과력이 막강하다. 일간 짗 주간 뉴스 아젠다들이 뉴스 기관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되고 표준화된다. 이러한 미디어 사이의 아젠다 세팅 과정에서<뉴욕타임스>나 <AP통신> 같은 위상 높은 언론은 다른 언론의 아젠다 세팅에 영향을 받는다. (207쪽)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인다고 합니다. 언론과 뉴스도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거대 언론은 소수 언론의 아젠다 세팅을 주도하기도 한답니다. 그렇게 생존해야 하는 소수 언론도 있으니 말입니다.

 

책은 이렇게 아젠다 세팅의 초기부터 역사적 사실 그리고 그 역학관계와 그 세팅의 중요성 그리고 사회구조상 이 아젠다 세팅을 걸러내야 하는 수용자들의 역할그리고 언론사의 사명을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이익을 중심으로 모인 정당과 권력 그리고 언론과 기업은 도덕성에 충실한 기업이 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저의 부정적 생각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가져가는 일에 더 충실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런 언론에 우리가 휘둘리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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