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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연쇄 독서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들의 연쇄
김이경 지음 / 후마니타스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책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책을 읽는 것은 책에 대한 정보와 호기심 혹은 열독의 마음을 얻기 위한 하나의 행위처럼 생각됩니다. 마녀의 독서처방으로 책을 소개하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음을 알려준 김이경의 책 이야기는 연쇄 독서라는 이름으로 다음 책을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마녀의 독서처방은 사람들에게 감정 선을 따라 움직이는 마음을 다잡기 위한 책 이야기를 주로 하였다면, 이번의 책은 책을 읽는 사람들의 책에 대한 호기심을 따라가는 방법을 보여준 듯합니다. 하나의 책에서 다른 책으로 옮겨지는 사람의 호기심을 자연스럽게 옮겨지는 그 생각의 흐름을 책의 흐름으로 책에 고리를 묶어 놓은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저자의 책 읽는 흐름은 럭비공과 같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이 같은 소설을 찾아 움직이다가 작가의 이름과 동명의 책 이름을 찾아 읽기도 하고 그 속의 제목 속에서 또 다른 제목의 책을 찾아 읽기도 합니다. 이렇게 읽어 내려가는 책의 이야기는 여주인공의 삶에서, 정말 앵무새의 삶 혹은 멸종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멸종에서 저자는 언어의 사멸 즉 언어의 멸종에 대한 책을 찾아보게 되며, 언어의 사멸과도 같은 한 시인의 죽은 시를 찾아 떠납니다. 이 속의 주인공이 허난설헌 인데요 박지원의 혹평을 받은 허난설헌을 읽고 박지원을 찾아 열하일기를 읽으며 여행기를 찾아 떠납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찾는 여행에서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찾고 이 이야기는 삶 또한 선택의 일환이란 생각으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 갑니다. 주제도 없고, 사유의 흐름을 따라 간다고 해야 할까요? 놀라운 것은 책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저자이기에 가능했을 것 같은 일을 해 냅니다. 자신의 생각이 어디에 미치는 것에 대한 보다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는 책을 찾아 나서는 일종의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자도 연쇄의 흐름에서 몇 번 다른 주제로 갈아타기는 하지만 그 만큼의 지식이 뒷받침하기에 가능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저자의 이 재미있는 책 여행의 흐름을 보면서 제가 책을 읽는 흐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가 물어보면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요. 라고 대답은 하지만 저에게도 쉬운 방법으로 책의 연쇄를 부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반대 되는 주장을 하는 글을 읽는 것입니다. 신문을 읽을 때 한 가지 성향의 신문만 보지 말고 두 가지 신문을 비교해서 읽어 보라는 어떤 분의 말씀처럼 한 쪽으로 치우친 글을 읽는 것을 경계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래서 잠깐 정리를 해보니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가끔 책을 읽다 보면 다른 책을 찾아 읽게 만드는 데, 최근에 저는 [현대 과학.종교 논쟁]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 속에서 많은 반박의 논리를 제시하는 진화론자의 대표 주자인 리처드 도킨스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종교적 관점에서 또는 종교에 관련한 종사자의 글과 논문이기에 저에게는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에 대한 관심이 결국 [이기적 유전자]를 읽게 만들더군요. 이 두 가지 관점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지만 한 쪽의 말을 듣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을 놓고 읽게 된 책이 [권력과 인간]이라는 책이었는데, 정병설의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견해를 밝힌 책입니다. 이 책에는 당쟁의 희생이라는 논리보다는 엄한 아버지 영조를 둔 사도세자의 모자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원인은 반역이 단초가 되더군요, 이 말과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이 이덕일 이라는 분이 쓴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입니다. 하나의 사건을 보는 관점이 전혀 다른 이 책의 논리는 당쟁의 희생자인 사도세자의 모습입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하나의 책을 읽으면서 다시 읽게 된 것입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두 책을 접하고 다시 집어든 책이 신영복의 [강의]입니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는 글귀가 떠올라서 인 것 같습니다. 읽은 지 좀 되어서 인지 다시 새롭습니다.
아무 연계가 없어 보이는 책을 저자는 그 연계성을 찾아내고(말이 좀 이상하긴 합니다. 찾았다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의 흐름대로) 다시 책을 읽습니다. 이렇게 따라가다 보면 자연도 나오고 역사도 나오고 과학도 나오고, 모든 인간생활이 나옵니다. 아마도 독서는 그런 관심이 시작이 되어 더 많은 독서를 권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무언가에 편식하는 습성이 지식의 깊이를 만들어 준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마녀의 연쇄독서는 자신의 생각의 흐름을 잡아내는 일에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휩쓸린 독서가 아닌 자신만의 독서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진화론에서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단초가 되어 동성애에 대한 소설 [오렌지만이 과일이 아니다]를 찾아 읽고 이 속에서 거대기업 몬산토를 끌어내고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의 흐름이 중간에 기생충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지니 연쇄가 기상천외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아마도 저자는 독서에 흥미를 갖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편의 독서처방은 처음 독서를 접하는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 실망할 때, 때론 기쁠 때 등등 적합한 책들을 소개하였다면 이번의 책은 어느 정도 독서에 재미를 붙이신 분들에게 책을 선택하는 기준을 말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