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차일드
김현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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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의 중심에 나를 놓아두고 싶어도 나는 언제나 외곽의 한 자락에 지나지 않음을 느낀다. 많은 인파에 나를 던져 놓아도 나는 언제나 그들의 흐름에 속하지 못하고 외톨이가 되어 따로이 혼자의 길을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상은 나를 중심에 놓아두지 않으며 하나의 부속으로 세상을 돌아가는 어떤 거대한 힘 속에서 그냥 소모품처럼 느껴지고 이러한 소외는 스스로의 외로움을 감추지 못하고 자존감을 잃어 버리게 만든다.




러브 차일드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하나의 소모품이다. 거대한 조직에서 끔찍하리 만치 인격이나 자아 존중은 없으며 사회를 지탱하는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사회를 그리고 있다. 인간의 생산은 사회 소모품의 생산이고 이런 생산 활동역시 공업 용품을 생산하듯이 기계적이며, 감정과 느낌을 배제한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상황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재산적 가치와 매매의 도구로 사용될 뿐이기에 이들의 삶은 기계의 삶과 다르지 않다. 일정기간의 사용기간이 끝나면 더 사용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판단하는 시점이 도래하며 이는 불량 폐기물을 수거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소설은 이런 폐기 과정에서 만난 수와 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모품으로 살아온 60년의 생에서 필요에 따라 성장을 멈추게 하여 살아가는 삶을 살아온 사람과 그대로 인간의 삶처럼 볼품없이 늙어 져간 사람을 등장 시키면서 이들의 폐기 과정까지 오게 된 삶을 다룬다.




철저하게 인간의 본성을 배제한 삶은 일부 지배계급을 제외한 모든 인간에게 소모품과 같은 생년월일 코드를 부여하며 이 코드는 60년이라는 유통기한을 가지게 되어 이 유통기한이 지나게 되면 그들은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기계의 폐기과정을 거치듯 그렇게 폐기의 과정을 닮아간다. 끔찍하리 만치 먹먹한 상황 설정과 감정을 배제한 사회의 재구성을 통해서 작가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러브 차일드라는 제목의 의미를 알지 못하였던 나는 조금의 혼란스러움이 있었다. 미래의 어떤 가상의 공간을 설정한 작가의 모티브는 아무래도 모성을 근거로 하고 있는 듯하다. 이 모성을 애써 모른 척 하면서 살아야하는 현실의 세계를 미래의 세계에 빗대어 이야기 하고 싶어 하였던 것 같다. 아이를 낳아서 키워야하는 여성의 현실에 직장은 그들의 사정을 보아 주지 않는다. 울고 보채는 아이를 달래야 할 모성은 생산의 현장에서 재화를 만드는 일에 더 집중하게 만들어야 가는 현실의 상황을 미래의 처절한 인간 존엄이 아닌 인간 재화의 현실을 만들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모성을 가진 여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통 그리고 가족에 대한 생각을 다시하게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연 듯 떠오른다.




소설의 내용이 극단적인 인간의 재화에 대한 현상을 설정하다 보니 조금 거스를 정도로 정서에 맞지 않은 설정이 등장하여 당혹스럽기도 하였으나, 비판적인 상황을 더욱 강도 깊게 받아들여야 한다면 이와 같은 설정역시 나쁘지 않다고 본다. 아들이 어미의 사망을 선고해야 하는 장면, 팔이 잘려나간 부분을 설명하면서 기계의 부품이 하나 빠져 나간 듯 받아들이는 장면은 아마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의 이권을 위해 무시하고 눈감아 버린 상황에 대한 비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결국 세상을 지탱하는 사랑의 근본은 모성을 근간으로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을 해볼 때,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회라 할지라도 가족 그리고 모성은 인간 사회에서 보호받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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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20대, 사기史記에 길을 묻다
사마천 지음, 이수광 엮음, 이도헌 그림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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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는 그들의 인생에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 한 사람의 인생을 걸어 만든 역작 사기라는 인물 열전을 통해서 많은 위인들의 생을 통해 우리가 삶을 만들어 갈 방향을 잡기도 한다. 이렇게 사마천은 자신이 당한 궁형의 고통만큼이나 인상적인 작품을 통해서 현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지침을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기에 관한 이야기는 몇 번 접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 만난 것은 만화를 통해서였고 그 다음은 사기의 일부를 발췌해서 몇 가지 지침을 모아서 만든 이야기의 책이었다. 사기는 이렇게 만화로도 그리고 역사의 이야기로도 혹은 지침을 가질 만큼 방대한 역역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특히 사람을 중심으로 서술된 이야기로 각기 다른 성향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일생을 이야기 하면서 더 많은 생각과 삶의 지혜를 준다고 하여야 할까?

 

 이번에 접한 사기는 젊은 사람을 위한 열정과 희망과 의를 다루고 있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고사성어의 유래와 그 인물의 장점을 위주로 발췌하여 이야기를 구성하였다고 하여야 할 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인생의 방향, 하나의 열정에 인생을 다 바친 사람의 이야기, 자신의 신념을 위해 인생을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 사람을 얻고 내 사람으로 만들어 업적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지침, 원칙을 만들어 갔던 사람들, 스스로를 마인드 컨트롤하면서 자신을 단련하는 일에 집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6가지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대부분 유명한 인물은 이미 접했던 이야기와 고사성어도 있었지만, 기억하지 못했던 삶들의 이야기는 새롭게 그리고 사람을 평하는 관점을 어디에 두는 것이 올은 가에 대한 생각도 해 보았다.




 이렇게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 중에 나의 인생에 가장 큰 풀리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인물은 누구 일까? 나는 사기를 읽을 때마다 ‘굴원’과 ‘사마천’의 살에서 항상 고민을 한다. 굴원은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 군왕에게 죽음으로 의지를 표현하였고, 사마천은 궁형이라는 무시무시한 형벌을 받으면서도 자신이 의지하였던 개인적인 사명 ‘사기’를 저술 하면서 지금까지도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물이다. 사실 굴원 보다는 사마천이 더 유명한 것은 사실이다. 굴원을 알게 된 것은 시점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휘어지지 않는 그의 삶에서 멋있다는 감탄사를 연발 한 기억이 새롭다. 과연 어떤 삶이 사후에 나의 삶에 후회가 없는 삶을 살았다는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내 의지대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삶이 옳은 것인가? 세상의 굴욕을 당하더라도 내가 만들고자 하는 일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옳은 삶이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지금도, 아직도 이 고민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나의 삶에서 젊은 시절은 굴원의 삶을 더 닮아 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은 스스로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사마천의 삶을 살아가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나만 그런 것일까 하는 의문이 있지만 두 사람의 삶은 언제나 나에게 판단에 대한 시점에 항상 떠오르는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인생의 지침을 사기에서 얻었다는 사람들도 많고 나도 어쩌면 인물들을 통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지금도 배우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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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없는 세상
필립 클로델 지음, 정혜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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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부터 어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을까? 아이들의 감성을 생각을 이해하면서 살아간다고 스스로 자위하지만 아이들의 세상은 어른의 그것과는 다른 것 같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잠을 못 이루는 아이는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계를 짖지 못하는 사고에서 출발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그 것이 어쩌면 상상력을 소위 요즘 말하는 창의력이 기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이에게는 그 경계를 억지로 만들어 가라고 외치고 가르치고 있다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가끔 나는 아이들과 놀아 주면서 내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인지 아이들이 나와 놀아주는 것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만큼의 성숙한 아이들의 행동과 말을 듣기도 한다. 이렇게 아이들의 세상은 어른들의 세상 속에 살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접하고 해석하고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필립 클로델이 만들어 낸 세상은 첫 이야기의 제목처럼 아이들 없는 세상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아이들의 시선 그리고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잊혀져 가는 아이들의 감성과 생각을 말하고 있다. 총 19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블랙 코미디를 접하는 듯한 느낌과 아이의 시선으로 어른들의 세상의 모순을 숨김없이 가감 없이 그려낸 이야기로 생각이 된다. 아이들 없는 세상은 사라진 아이들이 돌아와 어른이 되면서 자신들이 없어졌던 시절의 마음을 잃어가는 어른들의 보편적인 모습을, 아빠, 지구가 뭐예요? 에서는 아이들이 흔히 하는 질문에 어른들의 답을, 흰 당나귀가 되고 싶은 회색당나귀에서는 변화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어른 들의 세상에 대한 씁쓸함 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렇게 19편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아이의 시선에서 어른들의 선입관과 가치관을 통해 아이들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모든 것에 아이의 시선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반기를 든다.




 이야기의 경중을 따지기 전에 이 책은 그림과 짧은 단문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쉽게 읽혀 질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생각 만큼 쉽게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의 시선을 왜곡하고 자신이 어렸을 때 가졌던 사고의 기준을 떠올리지 못하는 어른들에 대한 일침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린아이와 요정의 대화처럼 우리는 아이를 가르치고 배푸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아이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위안을 받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필립 클로델이 끄집어낸 아이들이 없는 세상 속의 아이들은 어른으로써 그리고 부모로써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고 생각의 깊이를 짐작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책 말미에 아이들을 보고 배운다는 느낌은 어쩌면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지회를 주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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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덱의 보고서
필립 클로델 지음, 이희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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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대학을 다닐 때 혹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끔 보고서라는 것을 작성한다. 하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적을 때는 보고서라고 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자서전 혹은 일기 형식으로 표현을 하는데 이 책의 제목은 보고서이다. 브로덱이 살아온 보고서 좀 경직되고 딱딱해 보이는 보고서라는 제목에 걸맞게 표현은 현실적이고 매우 치밀하며 가감이 없이 충격적인 장면의 묘사도 거침없이 표현한다.




 과연 브로덱의 일생에 어떤 보고서를 썼을까? 소설의 처음은 너무 무겁고 상상이 가지 않는 시점과 공간으로 인하여 초반부의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자세한 표사와 표현을 중심으로 읽다 보니 이 이야기는 흡사 2차 대전의 상황을 연상시키고 있다. 책을 읽다가 책에 대한 글을 찾아 읽는 것을 삼가는 편이지만 책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게 할 만큼 시간적 공간적 흐름을 잡기가 매우 어려웠다. 결국 2차 대전에 유대인 수용소에 관한 내용임을 짐작하고 나서야 브로덱의 인생에 대한 흐름을 잡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흐름을 잡은 이야기는 브로덱이 똥개로 불릴 만큼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면서 지켜야 했던 그의 생명 그리고 그 와중에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묘사와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들어온 상황은 점차 브로덱의 생각 속으로 빨려 들어가 이야기의 흐름을 잡는데 성공하였다. 브로덱의 보고서는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혹은 그 경험을 이야기하는 아주 사적이면서 어쩌면 인간이 가진 양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사람들은 이상해. 별 생각 없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짓을 저지르지. 그런데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한 기억을 나고서는 계속 살아갈 수가 없는 거야. 내다 버려야 하지. -Page 162




 나쁜 짓이라 명명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그 속에서 고통 받는 사람, 그리고 그 것을 지켜보고 생존해 가는 브로덱의 모습은 여타의 이야기에서 받은 감정과 다르지 않았지만, 필립 클로델은 이 이야기를 너무 생생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서술해 나가고, 브로덱의 감정을 삽입함으로 인하여 그 상황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방식을 선택하여 인상적인 장면이 지워지지 않게 만들었다. 특히 사람의 목이 잘리는 장면에서 연상되는 거위의 모습은 책을 덮은 지금에도 잊혀지지 않는 모습으로 머릿속에 그려지니 말이다.




우리를 갉아먹고 우리를 파괴시킬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죽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죽음,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다. -Page188




 극한 상황에서 브로덱은 자신의 생명에 대한 집착보다 더 견디기 힘든 상황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 정말일까? 아직 극한의 상황을 접하지 못한 나에게는 조금 새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공감이 가기도 한다. 이런 상상을 하게 만드는 한 줄의 글 역시 잊지 못할 것 같다.




 사람은 많은 악행을 범하지만 악행을 악행이라 인정하고 행하기에는 사람의 감정은 어쩌면 방어를 통한 자기 채찍을 동반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악행이 세상에 남아있는 것은 관념의 정당화, 그리고 관습의 통념화가 만들어 낸 부조리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본다. 브로덱이 겪은 모든 상황이 그의 하나의 일생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역사의 뒷자락이기 보다는 그런 행동을 하고서 후회를 하고 잊어버리는 사람들의 습성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닌지, 조금은 묵직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어 준 소설 한편에서 가벼운 책장이 무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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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괴수전
이지월 지음 / 민음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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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작가가 만들어 낸 가상의 공간에서 사람의 움직임을 묘사하고, 그 들의 고민을 전하고 있다. 여타의 소설은 나의 경험을 전제로 하지 않기에 늘 새롭고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작가가 만들어 낸 상상의 공간과 인물을 내 나름대로 만들어 내어 나마의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즐거운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은 작가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공간 속에서 나는 그 곳의 전능한 관찰자가 되거나 그 인물과 동일화 된 또 다른 나를 만들어 내기에 읽는 즐거움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변두리 괴수전은 몇 장을 넘기지 않아 많은 공간이 나의 현실의 공간과 일치감을 만들어 주었다. 시대적 배경역시 나의 학창시절과 다르지 않았으며, 학교라는 공간 역시 내가 경험을 한 공간과 일치하기 시작하였다. 작가가 은강이라는 이름으로 대체하였던 공간은 나의 성장 공간이었음을 금방 알아 차리며 공간적 이동은 그 장소에 대한 이미지와 추억으로 옮겨가기 시작 하였다. 서울의 변두리 서울로 입성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 다른 곳에는 있는지 모르지만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든 교육기관이 한 장소에 모여있는 곳, 공원 밑에 있는 중국인 거리, 시장 뒷골목의 칼국수 집과 닭 강정, 공원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청동상, 먹거리를 이야기하는 뒷골목의 음식집들, 모두 내가 경험하고 방문하며 지인들과 젊은 시절을 보냈던 장소이다. 이 쯤 되니 작가가 궁금해 졌다. 이지월 끙~ 작가의 소개는 철저한 비밀이었던가? 나이는 나보다 조금 아래 그리고 출생지 및 기타 약력, 전무한 상태 알 길이 없었다. 책 마지막 작품해설을 보고서야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해설이 말해주듯이 공간적 제약에 이 소설의 한정성을 찾겠다는 뜻은 아니나, 소설의 경험이 나의 경험과 일치하고 있음을 느꼈을 때 여타의 이야기와는 달리 깊은 몰입감과 공감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의 모습이 퇴역 장군이 만든 채단으로 10층 건물 꼭대기에 걸려 있던 그 분의 모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선생님들의 모습에 그렇게 반감을 가지거나 재단의 비리니 뭐니 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으나 세월이 흘러 작가의 나에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민주화 운동이 정점을 이루고 있던 시점에서 학교의 문화는 많은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사회를 표현하듯 당시의 학교는 작은 국가와 사회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적극 참여를 하지 못하지만 동조자인 나는 어찌 보면 많은 구성원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재단의 비리와 학생들의 반발을 주제로 하고 있는 소설 속에서 무거운 주제였거나 심각한 상황을 다루고 있었음에도 나는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작가의 글이 가지는 어린 시절 많이 접하면서 환상을 가지게 만들었던 무협 소설류의 문장은 가독성이나 공간적 일치감 속에서 너무 빠르고 쉽게 읽어 버렸다. 뒷맛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과거의 모습이겠으나 정작 과거의 모습이라 하기에는 예전의 내가 그 곳 소속이었을 때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현실에서 지금 내가 느끼지 못하고 있어 발생하는 현상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이지월 이라는 작가는 여타의 입상경력이나 글 쓰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았던 모야이다. 출판사에 직접 원고를 투고하여 출간하게 되었다는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은 아마도 내가 느끼는 매력 이외에 더 많은 것이 숨어 있었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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