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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덱의 보고서
필립 클로델 지음, 이희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보고서? 대학을 다닐 때 혹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끔 보고서라는 것을 작성한다. 하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적을 때는 보고서라고 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자서전 혹은 일기 형식으로 표현을 하는데 이 책의 제목은 보고서이다. 브로덱이 살아온 보고서 좀 경직되고 딱딱해 보이는 보고서라는 제목에 걸맞게 표현은 현실적이고 매우 치밀하며 가감이 없이 충격적인 장면의 묘사도 거침없이 표현한다.
과연 브로덱의 일생에 어떤 보고서를 썼을까? 소설의 처음은 너무 무겁고 상상이 가지 않는 시점과 공간으로 인하여 초반부의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자세한 표사와 표현을 중심으로 읽다 보니 이 이야기는 흡사 2차 대전의 상황을 연상시키고 있다. 책을 읽다가 책에 대한 글을 찾아 읽는 것을 삼가는 편이지만 책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게 할 만큼 시간적 공간적 흐름을 잡기가 매우 어려웠다. 결국 2차 대전에 유대인 수용소에 관한 내용임을 짐작하고 나서야 브로덱의 인생에 대한 흐름을 잡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흐름을 잡은 이야기는 브로덱이 똥개로 불릴 만큼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면서 지켜야 했던 그의 생명 그리고 그 와중에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묘사와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들어온 상황은 점차 브로덱의 생각 속으로 빨려 들어가 이야기의 흐름을 잡는데 성공하였다. 브로덱의 보고서는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혹은 그 경험을 이야기하는 아주 사적이면서 어쩌면 인간이 가진 양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사람들은 이상해. 별 생각 없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짓을 저지르지. 그런데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한 기억을 나고서는 계속 살아갈 수가 없는 거야. 내다 버려야 하지. -Page 162
나쁜 짓이라 명명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그 속에서 고통 받는 사람, 그리고 그 것을 지켜보고 생존해 가는 브로덱의 모습은 여타의 이야기에서 받은 감정과 다르지 않았지만, 필립 클로델은 이 이야기를 너무 생생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서술해 나가고, 브로덱의 감정을 삽입함으로 인하여 그 상황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방식을 선택하여 인상적인 장면이 지워지지 않게 만들었다. 특히 사람의 목이 잘리는 장면에서 연상되는 거위의 모습은 책을 덮은 지금에도 잊혀지지 않는 모습으로 머릿속에 그려지니 말이다.
우리를 갉아먹고 우리를 파괴시킬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죽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죽음,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다. -Page188
극한 상황에서 브로덱은 자신의 생명에 대한 집착보다 더 견디기 힘든 상황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 정말일까? 아직 극한의 상황을 접하지 못한 나에게는 조금 새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공감이 가기도 한다. 이런 상상을 하게 만드는 한 줄의 글 역시 잊지 못할 것 같다.
사람은 많은 악행을 범하지만 악행을 악행이라 인정하고 행하기에는 사람의 감정은 어쩌면 방어를 통한 자기 채찍을 동반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악행이 세상에 남아있는 것은 관념의 정당화, 그리고 관습의 통념화가 만들어 낸 부조리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 본다. 브로덱이 겪은 모든 상황이 그의 하나의 일생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역사의 뒷자락이기 보다는 그런 행동을 하고서 후회를 하고 잊어버리는 사람들의 습성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닌지, 조금은 묵직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어 준 소설 한편에서 가벼운 책장이 무겁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