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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의 결혼식
한지수 지음 / 열림원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미란다 원칙
군대에서 자신을 비아냥거리던 ‘녀석’이 복지관에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배치된다. 기억하기 싫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을 기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녀석’을 바라보지만 녀석은 나를 곤경에 빠뜨리고 나는 그의 굴레에 다시 갇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녀석’은 지적 장애인인 만성이 휘두른 볼링공에 맞아 죽지만, 만성은 내가 시켰다는 말만 계속 할 뿐 내가 시켰다는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 다만 교묘한 암시만이 남아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미란다 원칙만이 맴돈다.
충격적인 반전드라마 같은 이야기지만 그 속에서 나는 인생에 지우지 못할 수치스러운 기억을 하나쯤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법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 그 법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움직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나는 그 수치스러움을 떨쳐 내려 한다. 그것은 나만이 아는 진실이다. 누구도 의심 할 수 없는 그런 행위를 통한 나의 수치를 떨어내려는 나의 마음은 침묵만이 흐른다. 그 진실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침묵만이 진실을 지켜 줄 뿐이다. 미란다 원칙과 같이.
자정의 결혼식
결혼하는 신혼부부를 상담하는 당신은 여행사직원이다. 당신은 신혼부부를 보면서 하나의 그림과 겹쳐진 이미지를 생각한다. 부부라는 것 그리고 결혼식 그림을 바라보며 신부의 모습을 바라보던 당신은 자웅동체에 대하여 생각을 한다. 남자지만 여성성을 여성이지만 남성성을 지니고 있는 자웅동체 그리고 당신은 여성이지만 남성의 욕망을 담고 있는 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렵다. 당신이라는 호칭도 어려웠고, 저자가 말하는 당신에 대한이해가 나에게 강요되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가도 해 보았다. 결국 몸에 대한 이야기인가? 결혼하는 부부를 바라보면서 한 몸을 생각하는 암수 한 몸의 자웅동체 그리고 오롯이 남성이기를 그리고 다만 여성이기를 바라는 하나의 몸이 아닌 당신의 몸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느끼고 바라는 그런 몸을 말하는 것인가? 하나의 성으로 규정지어 버리는 세상에 대한 불만일지 모른다. 어쩌면 세상이 이렇게 규정지어 놓은 남성과 여성에 대한 반란일지 모른다. 그 반란 내 몸에 들어있는 또 다른 나 였다.
배꼽의 기원
‘나’는 자궁이다. 암 진단을 받고 당신과 결별을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당신 몸과 대화를 한다. 인생에 대한 대화 그리고 존재에 대한 대화를 한다. 정말 몸에 대한 근원을 생각한다.
나에게는 없는 것이기에 어떤 의미인지를 파악하기 힘들다. 그 것이 당신이라 불리는 몸에 주는 의미를 그리고 이별을 앞둔 이야기에 대한 슬픔이 숨겨져 있고, 아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을 그저 느낄 뿐이다. 자궁에 대한 여성성의 의미를 담았다고 생각하고 싶다. 몸에 대한 그리고 태어나면서 규정을 지어 주었던 한 부분과 진솔한 대화를 나눈 것이다. 그리고 그 속박과 자유에 대한 생각도 같이 말이다.
천사와 미모사
필리핀 중고차 시장의 매매상인 나는 부패한 정부 관료와의 연대로 얼굴이 신분증인 세상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비자 연장 문제로 이민관리국에 수용이 되면서 자신의 위세가 없어진 초라한 신세로 전략하고 만다. 더불어 가정의 문제로 인하여 더욱 외로움에 빠지면서 자신의 초라함이 더욱 허무하게 느껴진다.
미모사에 얽힌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돌돌 말리는 잎의 모습을 보면서 자만하다 실수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우리의 삶에서 자신이 가장 자신 있었던 시기에 어떻게 행동하여야 할 것인가? 그리고 가정이란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져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한다.
이불 개는 남자
한 방을 사용하는 남과 여의 모습을 여자의 시선으로 그린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여관을 낯에만 빌려 쓰는 여자와 밤에만 그 방을 사용하는 남자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방안의 소품을 보면서 그를 상상하고 자신들 생각하여 본다. 그런 여인을 바라보는 남자의 생각의 어떨지 궁금하다.
특이한 상황을 전재로 한 짧은 글에서 어쩌면 서로를 잘 모르고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고 있어 미지의 사람에 대한 관심을 보여 주며 주변 인물을 생각하게 한다.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을 주의 깊게 관찰 하여 본적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글이다.
열대야에서 온 무지개는 자신의 살에 배신 받는 한 남자가 태국에서 만난 비슷한 외모의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 이다. 여인은 무언가 다이나믹한 삶을 찾지만 남자가 찾았던 것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페르미타는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 삶을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모두 일곱 편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때로는 반전이 있고 때로는 여성의 깊숙한 성적인 대화도 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자만이 가져온 최후를 이야기 하는 것도 있고, 자신의 의지와 상대의 의지를 그리고 세상의 이치를 생각하게 만드는 글도 있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가장 좋은 것이 단편집이라고 한다. 한지수의 첫 소설집은 묵직한 감을 주고 있다. 자신을 돌아보고 굴레를 생각하게 해주고 그리고 관계를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것도 이쪽이다. 라고 가르쳐 주지 않고 이정표가 어디 있다고 알려주는 느낌. 시원한 뒷맛 보다는 무언가 조금 더 남아 있을 것 같은 데 독자에게 길을 만들어 보라는 느낌을 주는 글들이다. 신입답지 않은 묵직함이 있다는 작가에 대한 평이 어쩌면 딱 맞는 표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