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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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법정 옮김, 『숫타니파타』, 이레, 2008, 34쪽.)

 

이덕무의 삶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그의 책을 대하는 자세를 보며 나 역시 자세를 바로하고 더욱 정진해야겠다고 가만히 다짐해본다.

 

이덕무는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박지원은 그가 평생토록 읽은 책이 거의 이만 권이 넘는다고 했다. 얼마나 엄청난 양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자. 만약 우리가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날마다 책을 한 권씩 읽으면 일년에 삼백육십오 권을 읽을 수 있다.(중략)그렇게 오십 년을 해도 일만 팔천이백오십 권으로 아직도 이만 권이 넘지 않았다. 그런데 이덕무는 불과 쉰셋의 나이로 사망했다. 참으로 지독한 간서치(看書痴), 곧 ‘책만 보는 바보‘였다.(305쪽)

독서는 인생 곳곳에 스며들어 그 사람을 만든다.(317쪽)

책을 읽는 사람은 정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 최상이다. 그다음은 습득해 활용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넓고 깊게 아는 것이다.
-『이목구심서3』(320쪽)

비록 독서가 좋다고 하지만 거기에만 탐닉해 세상살이의 이치에 깜깜한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다.(중략) 사람이 독서하는 틈틈이 울타리를 두르고 담을 쌓거나, 마당을 쓸고 변소를 치우거나, 말을 먹이고 물꼬를 보며 방아 찧는 일을 한다면 몸과 체력이 단단해지고 뜻과 생각이 평안해져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이덕무의 『사소절(士小節)』에 실려 있는 말이다.(323쪽)

독서의 참된 방법이란 책 속에서 옛사람을 만나되, 도끼를 들고 진주와 옥을 캐듯 그물을 쳐서 봉황과 기린을 잡듯 하는 뜻을 배워 스스로의 정신과 기운을 기르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스스로 한 자루의 비를 들고 온 세상의 가시와 수풀을 쓸어버리고 자신만의 영토를 개척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만약 스스로 터득해 얻는 것이 없다면 독서는 단지 옛사람의 말과 글을 되풀이하는 데 불과할뿐이다. 독서는 다른 사람을 모방하거나 흉내 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하는 데서 지극한 경지를 찾아야 한다.(334~335쪽)

이덕무는 스무 살 무렵 목멱산(남산) 아래 자신의 집에 ‘구서재(九書齋)‘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재에 책을 아끼는 아홉 가지 생각을 담았다. 구서(九書)란 첫째 독서(讀書), 둘째 간서(看書), 셋째 장서(藏書), 넷째 초서(鈔書), 다섯째 교서(校書), 여섯째 평서(評書), 일곱째 저서(著書), 여덟째 차서(借書), 아홉째 폭서(曝書)를 말한다. 책을 읽는 것, 보는 것, 간직하는 것, 내용을 뽑아 베껴 쓰는 것, 내용을 바로잡아 고치는 것, 비평하는 것, 저술하는 것, 빌리는 것, 책을 볕에 쬐고 바람에 쐬는 것 등이다. 책을 좋아하더라도 ‘독서‘라는 두 글자에서만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337쪽)

진리를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계속 거기에만 머무를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순간부터 그는 진리로부터 멀어진다. 진리란 결코 절대적이지도 고정불변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다. 어떤 경우에는 옳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르고, 어떤 때에는 맞지만 어떤 때에는 틀리게 되는 것이 진리라는 놈이다. 따라서 어떤 것도 단정짓지 않고,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식견을 가져야 비로소 진리를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338~339쪽)

정약용은 이 다섯 가지 독서 방법을 구체적으로 밝혀 놓았다. 첫째 박학(博學)은 "두루 넓게 배운다"는 말이다. 둘째 심문(審問)은 "자세히 묻는다"는 말이다. 셋째 신사(愼思)는 "신중하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넷째 명변(明辯)은 "명백하게 분별한다"는 말이다. 다섯째 독행(篤行)은 "진실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실천한다"는 말이다.(341쪽)

독서의 방법 역시 이것은 옳고 저것은 틀렸다고 고집해서는 안 된다. 정독과 반복도 하나의 방법이다. 한 권을 읽더라도 정확하고 정밀하게 읽어야 한다. 내용을 파악하고 이치를 깨칠 때까지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그러나 다독과 박학도 하나의 방법이다. 수많은 책을 두루 널리 읽고 온갖 분야의 책을 훑듯이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문리(文理)가 트이게 된다.(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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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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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곧 삶이다.

이덕무의 글쓰기에서 참된 글, 참된 삶의 모습을 배운다.

글을 쓸 때 경계해야 할 해로운 적은 얽매임과 구속이다. 만약 누군가 그 얽매임과 구속 가운데 가장 큰 해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자기 검열이라고 말하겠다. 스스로를 얽어매고 구속하는 것보다 더 심한 해악이 무엇이란 말인가?(277쪽)
그렇다면 글을 쓸 때 가장 이로운 벗이 무엇인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바로 자유와 자연스러움이다.(중략)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감성과 생각을 글로 쓰는 것, 이 정신만 잃지 않으면 된다.(278쪽)

화가가 옷을 벗고 걸터앉는 모습은 시조리(始條理)다.
백정이 칼날을 잘 다듬어 보관하는 것은 종조리(終條理)다.
-『선귤당농소』
시조리는 ‘조리 있게 시작하는 것‘을, 종조리는 ‘조리 있게 끝맺는 것‘을 말한다.(중략) 첫 문장을 어떻게 쓰고 또 어떻게 글을 마무리해야 할지가 가장 힘들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글을 쓰는 사람의 자세와 마음가짐이 화가나 백정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모든 일과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그 시작을 화가의 마음과 같이 하고 끝맺음을 백정의 마음과 같이 한다면 크게 잘못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292~293쪽)

달콤하기만 한 말과 글보다는 차라리 맵고 신 말과 글이 낫다. 세상은 온통 달콤한 말과 글로 가득할 뿐 참으로 맵고 신 말과 글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평범한 것보다 기이한 게 낫지 않은가? 잘 길들여진 삶보다는 차라리 야생마 같은 삶이 낫다.(297쪽)

머리로만 글을 쓰는 사람은 애써 꾸미거나 자꾸 다듬으려고 할 것이다. 심장으로만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뜻과 기운을 어떻게든 새기려고 힘쓸 것이다. 이것은 모두 가식이고 인위다. 그러나 온몸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몸 구석구석 가득 쌓여 있는 말과 글을 도저히 참거나 막을 수 없을 때 그 말과 글을 그냥 토하고 뱉어 낸다. 이것은 모두 자연이고 천연이다.(301쪽)

옛사람의 글을 진부하게 답습하지 않아야 살아 있는 글이다. 오직 글 쓰는 사람의 참신하고 창의적인 정신이 담겨 있어야 참된 글이라 할 수 있다. 글이란 자구 하나하나마다 작자의 지기(志氣)와 정신이 살아 꿈틀거려야 한다.(303쪽)

시를 짓고 싶어하는 마음이 바로 시정이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바로 화의다. 억지로 애써 하지 않고 단지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을 가리켜 지극한 경지라고 한다. 시정이 일어날 때 쓴 시보다 더 좋은 시가 있겠는가? 또한 화의가 일어날 때 그린 그림보다 더 좋은 그림이 있겠는가?(308~309쪽)

글이란 시대와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다른 사람의 글을 답습하거나 모방하기만 한 글은 군더더기일 뿐이다.(중략) 오직 글쓴이의 진솔한 감정과 뜻과 마음과 정신이 담겨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318쪽)

문장이란 하나의 기예다. 하지만 마음 밭을 잘 가꾸어야 비로소 좋은 글을 얻을 수 있다. 글쓰기의 기술과 방법을 익히는 데 힘을 쏟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의 철학을 다져야 한다.(321쪽)

글이란 반드시 불온해야 하고 마땅히 시대와 불화해야 한다.(345쪽)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을 때 쓴 글이 가장 좋다. 단지 정말로 쓰고 싶다는 마음 외에 아무런 다른 목적도 이유도 없이 써야 비로소 좋은 글을 얻을 수 있다.(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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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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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가짐의 반영이다.

이덕무의 글에서 선비의 향기란 이런 것인가 싶다.

며칠 후면 나라의 일꾼들을 뽑는 지방 선거일이다.

그 일꾼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글귀이자, 나 역시 평생 되새기며 몸가짐을 바로하는데 기준을 삼고 싶은 글귀이다.

어제를 고찰함으로써 오늘을 통찰하고 내일을 예측한다. 오늘을 통찰함으로써 어제를 고찰하고 내일을 예측한다. 내일을 예측함으로써 어제를 고찰하고 오늘을 통찰한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역사의 수레바퀴에 넣으면 바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된다.(262쪽)

행실은 언제나 상층을 밟을 것을 생각해야 한다. 거주와 생활은 언제나 하층에 처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중략) 이러한 일은 끊임없이 겸허하게 행하는 데 달려 있다. 대체로 이와 같다면 어디에 간들 편안하고 태평하지 않겠는가.(267쪽)

마음에 망령된 생각이 없어야 한다. 그렇게 오래하면 마음에 꽃이 핀다. 입으로 망령된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오래하면 입에서 향기가 난다.(282쪽)

진실로 사람다운 삶은 더러운 곳에서 피어나는 연꽃의 아름다움과 아무 곳에서나 자라는 잡초의 생명력을 닮은 삶이다. 천해야 세상을 볼 수 있고 귀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천하게 살아야 비로소 세상의 밝은 구석과 어두운 구석을 두루 알 수 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비로소 세상을 바꿀 수 있다.(284~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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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고 몇 자 적어 남기는 것은 과시욕일까, 혼자만의 소소한 즐거움일까?

누군가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과시욕이다. 과시욕은 약자에게 강자로 군림하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거나 즐기지 말라. 그저 스스로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을 하면 그뿐 아니겠는가.(227~228쪽)

최상의 즐거움은 지극히 드물다. 그렇다면 그것만을 좇지 말라. 즐거움이 지나치면 반드시 근심이 찾아온다. 지나침은 차라리 모자람만 못하다. 최상의 즐거움은 평범한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만 못하다.(239쪽)

혼자 지내는 시간을 늘려 보라. 내 안에 있는 좋은 벗, 곧 또 다른 내가 보일 것이다. 혼자 노는 즐거움이 바로 그곳에 있다.(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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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대화가 잘 통해서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큰 바람은 가족 간의 소통이다.
그러나 현실은 일차적인 대화와 소통 뿐이다.
오히려 지인들과 더 많은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진다.
가족 독서 모임을 통해 대화와 소통을 이끌어내고 싶은데 아직은 나 혼자만의 생각뿐이다.
책을 읽지 않는 남편과는 얘기해보나마나 안될거라는 예단이 발목을 잡아서다.
가족 간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갈등을 줄이고 화합을 도모하려는 공통의 뜻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해봐야겠다.

뜻과 취향이 맞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말을 잘한다. 그러나 나와 뜻이 맞지 않고, 취향이 다르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말을 잘 하지 않는다.(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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