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가지 이야기가 있는 나라, 인도네시아 - 개정판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1
임진숙 지음 / 즐거운상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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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도네시아의 문화와 전통, 언어와 음식, 관광 정보까지 알차게 담은 책
발리 외에는 알지 못했던 인도네시아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층 가까워진 느낌을 주는 책
인도네시아에 대한 저자의 애정 덕분에 꼭 한 번 가 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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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문화의 길을 걷다 - 당신이 알고 싶은 베트남 현장 이야기
박낙종 지음 / 참(도서출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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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탈자를 무척 싫어하는 내 심기를 마구 건드려서 -1점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주베트남 한국문화원장으로 일한 저자의 홍보 서적 같아 -1점
베트남에 관한 깊고 풍부한 얘기를 기대했으나 처참히 무너져 -1점
도서 구입 전 목차와 홍보 문구가 과장 광고라서 -1점
그래도 베트남에 대한 애정만큼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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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독서토론모임 - 교내 토론 동아리에서 일반인 독서토론모임까지
지윤주 지음 / 밥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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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탈자가 많아서 별점 하나 삭제
독서 디스커션과 독서 디베이트를 다룬 책인데 디베이트 쪽에 무게중심이 있는 책
독서 디스커션에 무게중심을 두고 읽고자 했던 나의 목적에 부합되지 않아 별점 하나 또 삭제
실제 독서 토론 모임에 도움을 얻고자 읽은 책인데 도움을 받기 어려워 별점 하나 또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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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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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5년 후 아이가 생겼다.
어렵게 한 임신이 아니라 결혼하고 내 집 마련의 기틀을 다진 후에 낳자는 생각에 계획된 임신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회사는 나를 출장이 잦은 교육 부서에 배치했다.
내가 맡았던 전산 개발 업무는 신사업의 사활이 달린 핵심 업무였기에 중단 없이 추진하기 위해 이혼한 여자 후배에게 맡겨졌다.
새로운 부서의 팀장은 그룹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스카웃된 여성이었다.
자신도 다 겪어 봤다며 임신 후 9개월까지 한 달에 이삼일씩 전국을 돌며 출장을 다니게 했다.
그것도 모자라 임산부에게 하이힐에 정장 차림을 고집했다.
출장이 잦은 팀인데 운전을 못한다고 나를 은근히 나무라며, 부른 배에 배낭을 메고, 한 손엔 노트북, 또 한 손엔 커다란 빔프로젝트 가방을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충청, 전라, 경상도 등 전국으로 출장을 다녔다.
그 덕분에 산부인과 의사는 임신 초기부터 태아가 너무 아래로 쏠려 있다고 복대를 권했고, 초산임에도 불구하고 진통 세 시간 만에 3킬로그램도 안 되는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본부장이 바뀌었으니 인사하러 나오라고...
어이가 없었다.
임신 중에 얼핏 자신은 출산 휴가 한 달만 썼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긴 했지만, 출산 일주일도 안 되어 이런 전화가 올 줄은 몰랐다.

“어쩌면 자신이 여자 후배들의 권리를 빼앗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139쪽)

그 때는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설령 그런 생각을 했다 해도 나 역시 82년생 김지영처럼 입을 닫아 버렸겠지.

산후조리원을 나오자마자 본부장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회사 동료들은 나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여자의 적은 여자'란 말을 쏟아냈다.
법적으로는 육아 휴직 기간이 1년이었지만 회사 내 아무도 육아 휴직을 한 사람은 없었다.
선배 중에 누군가 회사에 문의했다가 부정적인 답변을 들었다는 소문이 있어 묻지도 못했다.

열 달 동안 고이고이 품었던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고 보니 내 손으로 키우고 싶다는 강한 모성 본능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지만 회사를 그만 두고 싶지 않아 시부모님께 맡기고 주말에만 아이를 보러 갔다.
그리고 다시 출장과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어느 날 아이에게 화상 사고가 났다.
그제야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그간 열심히 아이를 키워 준 시어머니도 나를 끝없이 괴롭히던 여성 상사도 집안일과 육아에 있어서만큼은 항상 주체적이지 않고 도와준다는 생각을 가진 남편도 모두 미웠다.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144쪽)

82년생 김지영과 달리 나는 또 굳게 입을 다물었다.

집안일엔 젬병인 전업 주부의 무능감에 경제 활동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나의 자존감을 깎아 먹었다.
서울 바닥에 아는 사람은 다 회사 사람들인데 전업 주부가 되고 보니 만날 사람도, 기댈 사람도 하나 없었다.
남편은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나는 하루 종일 아이와 집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았다.
끝도 없는 우울감이 몰려왔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어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후에야 겨우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동네의 저렴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가장 큰 사치이자 힐링 타임이었다.

그렇게 전업 주부로서의 삶에 적응해 나갈 즈음 남편이 덜컥 사표를 냈다.
있는 거라곤 서울에서 가장 저렴한 집 한 채가 다인데, 물려받을 유산은커녕 늘어가는 아이 교육비에 매달 시댁 생활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준비없는 창업은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몇 개월을 쉬다가 남편은 복직을 했다.
법적으로 정년은 60세이지만 40대 후반의 남편이 임원으로 승진하지 않는 한 60세까지 직장을 다닌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했다.
처자식 때문에 자존심 버려가며 일하는 남편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 싶었다.

“먼저 관련 교육기관들을 알아보았는데 수업이 대부분 늦은 저녁에 있었다.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가기 딱 적당한 시간.(중략)
낮 시간 강좌들은 대부분 취미반이거나 독서, 논술, 역사 지도사 같은 어린이 대상 강사 자격증 준비반이었다. 여유가 있으면 취미 생활을 하고, 여유가 없으면 내 애든 남의 애든 가르치라는 건가.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관심사와 재능까지 제한받는 기분이었다. 설렘은 잦아들고 무기력이 찾아왔다.”(162~163쪽)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자 낮 시간에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여름과 겨울의 한 달간의 방학과, 봄 단기 방학, 가을 단기 방학 등을 고려하면 여전히 제대로 된 취업은 어려웠다.
결국 남편이 퇴근한 이후에 할 수 있는 은행의 야간 전화 상담 업무에 지원해야 했다.
학창시절 운동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계주 시합처럼 밤 9시에 남편이 퇴근을 해서 아이를 재우면 나는 출근을 하고, 남편이 출근하는 아침 8시에 나는 퇴근을 해서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
그마저도 계약직이라 2년 후에는 더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김지영 씨의 주변에도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일을 다시 시작한 엄마들이 많았다. 원래 일하던 업종에서 프리랜서로 전환한 경우도 있었고, 방문 교사나 학원 강사, 공부방 창업 등 사교육 시장에 뛰어든 경우도 있었고, 캐셔, 서빙, 정수기 관리, 전화 상담 등 각종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직장을 그만둔 여성의 절반 이상이 5년 넘도록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어렵게 재취업하더라도 직종과 고용 형태 면에서 모두 하향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158쪽)

남편과 나는 사내 커플이었다.
그룹에서 새로운 대표이사가 내려왔고 그 해 창립기념일 파티에서 본부장이 새 대표에게 우리 부부를 소개했다.
스탠딩 파티여서 삼삼오오 자연스럽게 무리지어 모였는데 대표이사가 남편에게 농을 건넸다.
“하루에 몇 번 해?”
남편은 순간 얼굴이 굳었고, 나는 질문 자체를 듣지 못했다.
옆에서 본부장이 못 들은 것 같다고 하자 대표이사가 내게 하루에 밥 몇 번 먹느냐고 고쳐 물었다.
앞 상황을 모르던 나는 정말 순진하게 대답을 해줬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이 당시 상황을 얘기해 줬고 나는 엄청난 분노와 모멸감을 느꼈다.
처음엔 그룹 감사팀에 진정을 하려고 했지만 우리 부부의 밥줄만 끊길 것 같아 참아야 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여성들이 김지영처럼 눈을 감아 버리고 입을 닫아 버린다.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예상할 수 있고 그 일은 피로와 무력으로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 감정, 의견 무엇 하나 말을 하지 않고 속으로 삭이는 게 차라리 나을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서도 소수의 여성들은 목소리를 낸다. 이 여성들이라고 피로감과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리 없다. 다만 비슷한 경험에서 비롯된 공감과 누군가로부터 받은 도움에 힘입어 자신을 위해, 그리고 다른 이들을 위해 용기를 내는 것이다.”(186쪽)

대한민국 여성들의 삶은 이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고달프기만 하다. 그리고 그 책임은 나처럼 침묵한 김지영들에게 있고, 침묵을 강요한 사회 구성원 개개인에게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 구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민주주의가 오래된 미국에서도 나오지 않은 여성 대통령이 우리나라에는 벌써 나왔지만 이 역시 실패로 끝났다. 여성 대통령의 실패는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여성으로서의 고민과 한계에 대해서는 조금의 이해도 없는 사람이었기에 여성의 실패로 규정할 수 없지만 여성에 대한 미래지향적 인식을 20세기 이전으로 후퇴시킨 결과가 되었기에 뼈아픈 실패가 아닐 수 없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처럼 이 땅의 모든 김지영들이 용기 내야 할 때다. 이제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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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7-09-21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들부들부들-못된 사람들!!!

2017-09-21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행의 품격 - 박종인의 땅의 역사
박종인 글.사진 / 상상출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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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면 시설 좋은 리조트에 틀어박혀 먹고 자고 쉬는 걸 최고로 아는 여행 문외한이다.
여행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읽었다.
25년차 여행기자 박종인은 단순히 여행지의 볼거리나 먹을거리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해당 여행지의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왜곡된 역사를 소개하고 바로잡으며, 그 땅을 살았던 과거의 사람들과 현재 그 땅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서른 다섯 군데의 국내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지역은 서울의 북촌 한옥 마을이었다.

서울 종로구가 펴낸 유인물에는 '예로부터 권문세가들의 주거지였던 곳으로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뜻에서 북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졌다'고 돼있다. 서울시 자료 '북촌 산책'에는 '조선 시대 양반들이 터를 잡으면서 시작된 이곳은 당시부터 이어져 온 오래된 길과 물길들의 흔적, 그리고 한옥들을 만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사람들은 북촌 초입 관광 안내소에서 나눠주는 이 두 자료와 지도를 따라 골목길을 걷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조선 시대 양반들이 살던 집들"이라고. 거짓말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짓말이다. 21세기 눈앞에 보이는 북촌은 조선 시대와 관계가 없는 1930년대 개량 한옥 마을이다. 그 한옥 마을 전부를 한 사람이 만들었다. 이름은 정세권이다.(188~189쪽)

당시 가회동 일대는 친일파들이 일제로부터 하사받은 땅으로, 경성에 인구가 폭발하면서 친일파들은 그 땅을 주택 건설업자에게 불하했고, 여러 업체 가운데 정세권이 운영하던 건양사가 2등 없는 1등이었다고 한다. 정세권은 조선인들을 위한 주택 개발에 힘을 쏟아 "서울 전체에 집을 물산 장려한 사람"이었으며, 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의 대부분은 조선 독립의 군자금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북촌 그 어디에도 정세권 혹은 건양사에 대해 안내하는 표석과 안내판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봄, 가을 산책하기 좋은 날씨가 되면 1년에 꼭 한 두번은 찾게 되는 북촌 한옥 마을의 숨겨진 역사와 보석 같은 민족의 위대한 스승에 대해 알고 나니 북촌 한옥 마을이 다시 보인다.
정세권 덕분에 우리는 북촌에 일본식 적산 주택 단지가 아닌 한옥 집단 지구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우리의 거주 문화를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여행지를 소개받으려다 민족의 큰 어르신을 소개 받고 그 분의 고매한 인품의 향기를 시대를 초월해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이 외에도 홍천 은행나무숲과 원대리 자작나무숲, 태백 매봉산의 배추밭, 신성리 갈대밭과 고창 보리밭 등 그 땅을 일구고 가꿔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땅의 숨결을 꼭 한 번 느껴보고 더불어 내 발자취도 함께 남겨 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때마침 가을 바람 불어오는 데 한 번 떠나 볼까?
조상들이 물려준 소중한 이 땅을 한 걸음 한 걸음 마음에 새기며 걸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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