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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슈미트 새로운 디지털 시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새로운 디지털 시대 - Google 회장 에릭 슈미트의 압도적인 통찰과 예측, 개정증보판
에릭 슈미트 & 제러드 코언 지음, 이진원 옮김 / 알키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 사회는 점점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더 빠르게 변할 것이다.’ 저는 이 같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자주 듣다 보니 익숙해졌다고 할까요? 조금 진부해진 느낌입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계속되다 보니 최근에는 이런 변화 자체가 아주 당연하고 익숙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죠. 그것도 아주 빠르게요. 예컨대, 제가 만약 20년? 혹은 30년 전으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앞으로는 손바닥만 한 무선 휴대전화를 거의 모든 사람이 가지고 다닐 것이며, 그 안에서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뉴스도 보고,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미래는 예측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미래를 예측하고자 합니다. 예측하기가 쉽다면 많은 사람이 예측하려 하지 않겠죠. 그리고 많은 예측이 빗나가기도 하고요. 2001년에 구글Google의 CEO로 합류한 뒤, 2011년 이후 경영의 일선에서 물러나 현재 구글의 회장으로 있는 에릭 슈미트도 미래에 대한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구글의 싱크탱크인 ‘구글 아이디어Google Ideas’의 소장 제러드 코언과 함께 말이죠. 이 둘은 현재의 디지털 기술들이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다만, 기존의 책들과 다른 점이라면 일상생활이나 산업과 같은 특정 부문뿐만이 아니라 개인, 시민권 및 신원, 국가, 테러리즘, 전쟁 등 폭넓은 분야에 대한 전망을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의외로 개인의 일상생활에 대한 전망의 비중이 적은 편입니다. 또 한 가지의 다른 점은 디지털 기술 분야의 전문가들임에도 대체로 중립적인 입장에서 전망하려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이 같은 책들의 경우 대체로 낙관적인 전망이 가득하거나, 반대로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주장이 담긴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가상공간이 발달하고 비중이 커지면서 개인은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권력은 과거보다 더욱 분산될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사회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고, 정부는 이런 사회와 정보에 대한 통제의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통제는 개인과 사람들의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고요. 또한, 기존의 물리적인 전쟁뿐만 아니라 최근 나타나고 있는 사이버 공격과 같은 문제 또한 잦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가상공간 내에서 국가의 위상이 현실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고요. 이처럼 기술이 발달하면 혜택이 커지는 만큼 그에 따른 문제도 함께 따라오게 됩니다. 두 저자는 이를 함께 보여주려 노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기술의 발달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과 비관적인 전망, 이 둘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려 노력했음에도 두 저자가 디지털 기술 산업에 몸담고 있다 보니,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저자는

 

 무언가를 망각하고 놓치게 만드는 우리의 신경학적 한계는 우리의 욕구를 채워주도록 설계된 정보시스템에 의해 보완될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 두 가지가 ‘일정 다시 알림’과 ‘할 일 목록’ 등 기억력 보조 장치와, 당면한 모든 일에 대해 적절한 경험을 해본 친구들과 즉시 연결해주는 사회적 보조 장치다. (p.32)

 

 게다가 이러한 기술들이 교육에도 적용됨으로써 기계식 암기만을 가르치는 교육을 벗어나 더욱 독립적인 탐구와 비판적 사고를 장려하리라 예측하고 있죠. 그런데 스마트한 삶이 도래하면서부터 우리의 뇌는 점점 퇴화하고 있다는 ‘디지털 치매’와 같은 문제점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과연 위와 같은 삶이 가능할까요? 디지털 기기들을 자신의 기억장치(?)로 인식하면서 기억력이 감소하고 주의력 결핍 장애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어떻게 비판적 사고가 가능할지 궁금합니다. 다음은 두 저자가 그린 ‘미래의 어느 날 아침’입니다.

 

 알람시계는 없다. 대신 당신은 새로 끓인 커피 향을 맡고, 자동으로 커튼이 열리면서 방 안으로 쏟아지는 햇볕을 쬐고, 최첨단 침대가 제공하는 부드러운 등 마사지를 받으며 잠에서 깰 것이다. 매트리스 안에는 수면 리듬을 감시하면서 수면주기를 방해하지 않고 당신을 깨울 시점을 정확히 판단하는 특별 센서가 내장되어 있어, 보다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중략- 회의가 가상-현실 인터페이스에서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당신은 개인적으로 고객을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들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당신은 고객의 동선과 말을 정확히 포착해내는 홀로그래픽 ‘아바타’와 상호 작용한다. -중략- 로봇 개는 당신이 선택한 배달시간에서 오차범위 5분 이내에 조카 집에 도착할 것이다. (p.54)

 

 위의 삶이 행복할까요? 편리해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행복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두 저자가 그린 ‘미래의 어느 날 아침’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회의마저 화상 회의로 진행해왔기 때문에 만나본 적이 없으며, 조카의 생일 선물조차 ‘로봇 개’를 배달시키죠. 휴대폰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휴대폰 속에 머무르는 시간도 함께 늘어났습니다. 최근에 출간된 <여덟 단어>에서 광고인 박웅현 ECD는 자신이 만든 광고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여보세요’는 여기를 보라는 말입니다. 사람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전화를 만들었습니다.” 사람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물리적인 제약을 극복하여 전화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술이 발달하면서 오히려 사람을 보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커피숍에서는 함께 앉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고, 스마트폰으로 대화를 합니다. 지하철에서는 많은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봅니다. 사람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만들었다는 전화가 오히려 사람을 외면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전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전화가 오히려 사람을 외면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두 저자는 앞으로 가상공간의 비중이 더욱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커뮤니티가 생성될 것이며, 그것에 맞게 많은 일을 가상공간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요. 그렇다면 스마트폰의 기능이 확대되면서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늘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가상공간 속에 머무르는 시간도 확대되지 않을까요? 영화 <매트릭스>에서 로렌스 피쉬번(모피어스)은 키아누 리브스(네오)에게 빨간 약과 파란 약을 내밉니다. 그리고 선택을 하라고 말하죠. 파란 약을 먹으면 지금까지의 편안한 삶(환상)에 머무를 것이고, 빨간 약을 먹으면 지금의 이상한 세계(현실)에 남게 될 것이라고. 여기서 키아누 리브스(네오)는 빨간 약을 선택합니다. 만약 앞으로 가상공간의 비중이 더욱 커지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행복을 느낀다면’ 빨간 약(현실)이 아닌 파란 약(환상, 가상공간)을 택하는 사람들도 늘지 않을까요? 그것을 개인의 선택 문제라고 간단히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요?

 

<가상공간이 앞으로 더욱 확대되고, 사람들이 그 안에서 행복감을 느낀다면 빨간 약(현실)이 아닌 파란 약(환상, 가상공간)을 택하는 사람들도 늘지 않을까요?>

 

 물론,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게 되면 좋은 점도 많습니다. 생각만으로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로봇 팔과 로봇 다리, 그리고 주기적으로 사용자의 건강을 체크하여 질병을 예방하는 의료시스템 등. 이 같은 기술은 분명 인간의 삶을 좀 더 행복에 가깝게 해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빛이 강해지면 그만큼 그림자도 선명해진다는 것이죠. 미래라는 것이, 기술의 발달이 반드시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미래를 위한다며 현재를 소홀히 하고, 무작정 쫓아가는 삶은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기술의 변화가 너무나 빨라 인간이 이를 쫓아가야 했습니다. 사람들의 걸음걸이만 보아도 알 수 있죠. 지금까지는 기술의 변화를 사람이 쫓아갔다면, 이제는 기술이 사람들의 걸음걸이에 맞출 때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제 숨 좀 쉬어도 되잖아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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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30 15: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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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 - 폴 크루그먼, 침체의 끝을 말하다
폴 크루그먼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경제학 저서로 꼽히는 케인스의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이 출간(1936년)된 지도 80년 가까이 흘렀지만, 경제학은 크게 보면 여전히 ‘애덤 스미스’와 ‘케인스’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애덤 스미스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케인스는 반대로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주장합니다). 이런 점에서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서 케인스의 말은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들의 사상(思想)은, 그것이 옳을 때에나 틀릴 때에나, 일반적으로 생각되고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하다. 사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이밖에 별로 없는 것이다. 자신은 어떤 지적(知的)인 영향으로부터도 완전히 해방되어 있다고 믿는 실무가(實務家)들도, 이미 고인(故人)이 된 어떤 경제학자의 노예인 것이 보통이다. 허공(虛空)에서 소리를 듣는다는 권좌(權座)에 앉아 있는 미치광이들도 그들의 미친 생각을 수년 전의 어떤 학구적인 잡문(雜文)으로부터 빼내고 있는 것이다. (<고용·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 p.462)

 

 경제학에 관심을 두고 있는 분들은 대부분 아시겠지만, 이 책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의 저자 폴 크루그먼 교수는 케인스의 주장을 이어받은 경제학자입니다(자신도 책에서 신 케인스학파라고 밝히고 있죠). 따라서 이 책은 폴 크루그먼 교수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현재의 경제상황을 설명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보다는 신 케인스학파의 입장에서 현재의 경제상황과 정책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책인 것이죠.

 

<자신을 신 케인스학파라고 밝힌 폴 크루그먼 교수는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폴 크루그먼 교수는 해결책이 명확한데도 여전히 2008년에 시작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것이 폴 크루그먼 교수가 이제 와 뒤늦게 경제위기에 관한 책을 출간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재앙이 특별히 예외적인 것도 아니다. 과거 대공황 시절 정치인들에겐 변명의 여지가 있었다. 그때는 어느 누구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지금의 고통을 끝내버릴 수 있는 지식과 방법을 ‘모두’ 알고 있다. 문제는 아는 것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p.38)

 

 그렇다면 폴 크루그먼 교수가 언급한 ‘모두’가 알고 있는 해결방안은 무엇일까요? 간단하게 말해 ‘시장에 더 많은 돈을 풀라’는 것입니다. 경기침체 탓에 부족해진 수요를 정부가 채우라는 것이죠.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는 시장에 돈을 풀지 않았다는 것일까요? 우리는 미국 정부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천문학적인 돈을 시장에 쏟아 부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제시한 수치대로 표현하면 7,870억 달러입니다. 이는 현재 원·달러 환율로 900조 원이 넘는 액수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돈을 시장에 풀었음에도 아직 경제는 살아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폴 크루그먼 교수의 대답은 금액이 ‘너무 적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연간 국내총생산, 즉 연간 GDP 규모는 15조 달러가 넘습니다. 이를 3년간 부양해도 45조 달러의 규모를 부양하는 것인데, 그에 비해 7,870억 달러는 너무나 적은 액수라는 것이죠.

 

<폴 크루그먼 교수는 현재의 ‘이 불황’을 끝낼 수 있는 해법으로 더욱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주장합니다>

 

 게다가 미국 경제의 규모는 그야말로 거대하다. 연간 제품 및 서비스 생산량은 15조 달러에 달한다. 한번 생각해보자. 미국 경제가 3년 동안 침체에 빠지게 된다면, 경기부양책의 임무는 3년 동안 45조 달러 규모의 경제를 구제하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7,870억 달러라는 돈은 경제 전체 규모의 2%가 되지 않는다. 자, 이래도 7,870억 달러가 그렇게 커 보이는가? (p.172)

 

 즉, 폴 크루그먼 교수는 시장에 더 많은 자금을 공급하고, 건축 프로젝트 등을 통해서 일자리와 수요를 창출하고, 오바마 정부의 주택 재융자 프로그램(Home Affordable Refinance Program, HARP) 등을 통해 민간 부문의 부채문제를 해결하고, 환율 조정 등으로 수출을 늘리라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라는 것이죠. 그러면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뒤따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폴 크루그먼 교수의 대답은 ‘걱정할 것 없다’입니다.

 

 먼저 재정적자 문제입니다. 분명 재정적자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폴 크루그먼 교수는 재정적자가 그리 우려할 만한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사례를 들고 있죠. 일본은 1990년대 이후로 부채 규모가 계속해서 증가했으며, 오랫동안 부채 위기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으며, 일본 정부의 10년 만기 국채 이자율은 1%를 맴돌고 있는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아일랜드 등 이른바 PIIGS 국가들은 일본만큼 부채가 심각하지 않은데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이에 대해 유럽 국가들은 특별한 경우라고 지적합니다. 이 국가들은 자국 통화를 갖고 있지 않은데 부채는 유로화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죠. 이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재정적자는 그리 우려할 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저 부채의 증가 속도를 경제 성장 속도보다 느리게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죠. 부채의 증가 속도보다 경제 성장 속도가 빠르면 부채의 규모는 그대로지만 GDP 대비 부채비율은 꾸준히 하락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 정부의 부채는 2,410억 달러로 GDP 대비 120%에 육박했으나(2010년 말 93.5%에 비해 높은 수준), 완만한 인플레이션과 경제 성장으로 1960년대에는 GDP 대비 부채 비중을 60%까지 끌어내렸음을 이야기합니다.

 

 이제 점점 증가하고 있는 미국 정부의 부채 규모가 향후 어느 정도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인지 생각해보자. 미국 정부가 당장 그 모든 부채를 갚을 일은 없을 것이다. 미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부채 증가 속도가 경제 성장 속도보다 느리게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이자를 충분히 갚아나가야 한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부채의 실질 가치가 증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경제가 성장하면 GDP 대비 부채 비중은 지속적으로 낮아질 것이다. (p.199)

 

 즉, 폴 크루그먼 교수의 주장은 재정적자를 우려해 경기부양책을 미루거나 회피하는 정책은 오히려 경제에 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정부가 돈을 빌려 경기를 부양할 경우, 민간 부채를 공공 부채로 대체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것이죠.

 

 다음으로 인플레이션 문제입니다. 이 역시 재정적자 문제와 마찬가지로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주장합니다. 경기침체에 빠져 있는 한 폭발적인 인플레이션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일본의 사례를 들고 있는데요, 2000년 이후 일본에서는 경기침체 상황에서 급속한 통화 팽창과 함께 지대한 재정적자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었는데, 심각한 인플레이션은커녕 디플레이션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시장에 많은 돈이 풀리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폴 크루그먼 교수의 주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현실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기업은 돈이 시중에 많이 풀렸다고 해서 가격을 높이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제품의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가격을 높여도 매출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에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근로자들은 ‘신용 확대(credit expansion)’에 대한 소식을 듣고 나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다만 다른 일자리들이 많이 생겨났기 때문에 임금을 높여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임금이 인상되면 그만큼 그들의 구매력이 높아진다. 돈을 찍어내는 일, 정확히 말하면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자산을 사들이는 일이 인플레이션을 촉발하기 위해서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촉발한 신용 확대가 더 높은 지출과 수요를 자극해야 한다.

 이 말은 돈을 찍어내는 것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경제를 과열시키는 경기활성화를 통해 일어난다는 의미다. 즉, 경기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인플레이션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p.215)

 

 간단히 말해,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는 한 돈을 풀었다고 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금리가 매우 낮아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경우, 연방준비제도이사회(중앙은행)가 돈을 풀어도 은행들은 대출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매우 적기 때문에 대체로 자금을 그냥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중앙은행)가 돈을 풀어도 시장으로 흘러들어 가지 않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적절한 수준의 인플레이션(4%)은 부채의 실질 가치를 떨어뜨려 개인의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등 상당한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음을 주장합니다. 따라서 정부의 경기부양책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는 괜한 걱정이라는 것이죠.

 

 간단히 정리하자면,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으니 더욱 강력한 경기부양책으로 경제를 활성화 시키자는 것입니다. 이 같은 주장은 폴 크루그먼 교수가 케인스의 논리를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특별히 놀랍거나 새롭지는 않습니다. 이와 관련된 주장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으며, 폴 크루그먼 교수 역시 칼럼 등을 통해 주장해 왔던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 크루그먼이라는 경제학의 대가가 말하는 이야기들은 ‘장인의 깊은 장맛’을 느끼게 합니다.

 

 

* 사족)

<폴 크루그먼 교수는 더욱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주장했으나, 얼마 전 벤 버냉키 의장은 연내 양적완화를 축소할 수 있음을 밝혔고, 이에 대해 폴 크루그먼 교수는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이 책을 쓸 당시(2012년 2월) 미국경제에 나타난 긍정적인 신호를 보고 브레이크가 아니라 가속 페달을 밟아야 할 시점(p.303)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벤 버냉키 의장은 연내 양적완화를 축소할 수 있음을 밝혔습니다. 폴 크루그먼 교수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움직인 것이죠. 이에 대해 폴 크루그먼 교수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버냉키 의장의 발언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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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6 16: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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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는 경제질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는 경제 질문 - 선대인연구소가 대한민국 오천만에게 답하다 선대인연구 1
선대인경제연구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는 경제 관련 정보를 주로 신문을 통해 얻습니다. 종이 신문이든지, 인터넷 신문이든지 말이죠. TV 뉴스를 통해서 얻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런 신문은 한 사건이나 일들을 중요한 부분만 정리해 전달하게 됩니다. 신문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이죠.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하면 이에 영향을 준 과거의 수많은 요인이 있음에도 이를 전부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모든 사건, 하다못해 중요한 사건만이라도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이야기한다면 신문의 두께가 지금보다 몇 배는 두꺼워질 것입니다. 그 때문에 중요한 사항만 정리해 전달하는 것이죠. 이와 관련해서 작가 알랭 드 보통이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소재를 아침식사 때마다 신문 요약이라는 형태로 먼저 만났다면, 상당수의 문학과 드라마는 짐작컨대 매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며,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베로나의 두 연인이 맞이한 비극적 종말. 애인이 죽었다고 잘못 생각한 청년이 목숨을 끊다. 애인의 운명을 발견한 여성도 뒤따라서 목숨을 끊다. -로미오와 줄리엣

러시아의 젊은 가정주부. 가정불화로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하다. -안나 카레니나

프랑스의 지방 도시에서 어느 젊은 가정주부가 가정불화로 비소를 먹고 자살하다. -마담 보바리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p.55. 알랭 드 보통)

 

 삶을 망친 사람들에 대해 수군거리는 말은 가혹하기 짝이 없다. 만일 수많은 예술 작품의 주인공들-오이디푸스, 안티고네, 리어, 오셀로, 엠마 보바리, 안나 카레니나, 헤다 가블러, 테스-도 그들의 운명이 동료나 동창들의 입에 오르내렸다면, 그 과정을 잘 헤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신문에서 그들을 건드렸다면 훨씬 더 괴로웠을 것이다.

 

 오셀로 “사랑에 눈이 먼 이민자, 원로원 의원의 딸을 죽이다”

 마담 보바리 “쇼핑 중독의 간통녀 신용 사기 후 비소를 삼키다”

 오이디푸스 왕 “어머니와 동침으로 눈이 멀다” (<불안> p.189. 알랭 드 보통)

 

 ‘쇼핑 중독의 간통녀 신용 사기 후 비소를 삼키다’라는 신문의 헤드라인 이면에는 500페이지가 넘는 엠마 보바리의 삶이 있는 것이죠. 이를 무시하고 그저 신문의 헤드라인만을 읽었을 때 우리는 그저 하나의 자극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를 신문 헤드라인을 통해 접한다면, ‘쇼핑 중독의 간통녀 신용 사기 후 비소를 삼키다(<불안>.알랭 드 보통)’라는 단순한 자극적인 사건이 되어버립니다>

 

 이 같은 이야기는 문학이 아닌 경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몇 퍼센트다’ 같은 내용 안에는 훨씬 더 복잡하고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며칠 전에 ‘내집 마련 평균 나이는 41세이며, 기간은 8년’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났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전국 3만 3000가구를 대상으로 ‘2012년 주거실태조사’를 한 결과 생애 첫 집을 마련하는 가구주 나이가 40.9세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앞서 말씀드린 이야기처럼 많은 것들이 빠져 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이 41세에 내집을 마련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모든 응답자의 답변을 더한 뒤 가구 수로 나누어보니 41세가 나온 것인지 하는 이야기 말이죠. 만약 후자라면 조금 더 복잡해집니다. A라는 사람은 가정 형편이 넉넉해 30세에 집을 마련하고, B라는 사람은 사정이 조금 어려워 50세에 집을 마련했어도 이 둘의 평균은 40세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평균 하나만 가지고도 여러 가정이 가능한 것이죠. 평균이 가지고 있는 맹점에 관한 이야기는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평균소득은 극단적으로 높거나 낮은 값에 큰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사회의 경우 전반적으로는 소득 수준이 높지 않아 중위소득은 낮은데 평균소득은 높을 수 있다. -중략- 이해를 돕기 위해 인구가 딱 9명인 가상의 사회 A, B를 비교해보자. 두 사회 모두 전체 소득은 4500만 원으로 똑같다. 그런데 A는 비교적 소득이 고르게 퍼져 있지만 B는 상위 두 사람이 전체의 75%가량을 독점하고 있다. 중위소득은 전체 인구의 소득 순위에서 가운데 자리한 사람, 곧 다섯 번째 사람의 소득이니까 A는 500만 원, B는 200만 원이 된다. B의 중위소득은 A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중산층의 비율을 보면 이상한 결과가 나온다. A의 경우 중산층에 들어가려면 소득 범위가 250~750만 원이기 때문에 중산층에 포함되는 사람은 4명이다. 반면 B는 중산층의 소득 범위가 100~300만 원이기 때문에 중산층에 해당되는 사람이 6명이나 된다. 그러면 중산층이 더 두텁기 때문에 B가 더 좋은 경제일까?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가운데 전체가 하향 평준화된다면 중산층의 비율은 그 나라 경제의 문제점을 은폐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p.295)

 

 이 책은 위와 같이 우리가 접하는 단순한 정보 뒤에 있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가, 주식부터 부동산, 노후비용까지. 그래서 책의 부제가 ‘선대인연구소가 대한민국 오천만에게 답하다’입니다. 총 38개의 항목에 대한 나름의 답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방식의 경제 서적을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한 권의 책을 수많은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하다 보면 깊이 면에서 부족하기 십상이기 때문이죠. 이 책의 경우 314페이지의 책을 38가지 항목으로 나누었으니 한 항목당 약 8페이지쯤 됩니다. 이러면 원론적인 이야기나 신문 등에서 접할 수 있는 이야기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쓸데없는 이야기는 차치하고 본론부터 이야기하다 보니 적은 페이지에도 상당히 깊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몇 가지만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물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부에서 발표하거나 언론이 보도하는 물가와 우리가 직접 체감하는 물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물가는 안정된 수준이라는데 우리가 막상 물건을 사려고 하면 ‘이게 안정된 수준인가’하는 생각만 들죠. 이에 대해 우리가 주로 접하는 정보는 이상 기후 탓에 채솟값이 뛰었다거나 어획량이 줄었다거나 혹은 수입물가가 올랐다는 정보들입니다. 그리고 정부가 조사하는 물가 기준 품목과 우리가 실제로 소비하는 품목에 차이가 있다는 정보도 있고요. 물론 이러한 정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외에도 다른 요인들이 있습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다른 요인을 말하면 이렇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물가 통계를 작성하는 통계 당국은 일정 기간의 물가상승폭을 기준으로 물가변동률을 평가하는 반면, 일반 소비자들은 평소에 자신이 느끼던 물가를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두 달 전에 1000원 하던 물건이 한 달 전에 2000원으로 오른 후 현재 2000원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자. 이 경우 1000원에서 2000원으로 뛰던 한 달 전에 물가 당국이 인식하는 지표상의 물가상승률은 100%가 된다. 물론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상승률 역시 100%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의 물가상승률이다. 통계 당국은 한 달 전에 2000원으로 값이 오른 후 현재까지 가격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의 물가상승률을 0%로 인식한다. 다시 말해 물가가 매우 안정되어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는 여전히 물가가 두 달 전에 비해 100% 상승한 상태라고 인식한다. 즉 두 달 전 1000원을 기준으로 현재의 가격수준을 인식하고 평가한다. 소득은 두 달 전과 비슷한데 물건값은 2배로 올랐으니 이렇게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물가상승이 누적적으로 발생하면 통계 당국이 인식하는 물가와 일반 가계가 체감하는 물가사이의 괴리는 더욱 커지게 된다. (p.37)

 

 간단히 말해서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상승률은 ‘누적적’이라는 것이죠. 예를 들어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 2012년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2.2%였습니다. 2011년 대비 2.2%가 올랐다는 것이죠. 그러나 소비자가 느끼는 물가상승은 누적적이기 때문에 2011년의 소비자 물가상승률 4.0%를 같이 체감한다는 것입니다. 즉 2011년에 4.0% 오른 것에 2012년의 2.2%가 더해진다는 것이죠. 이 때문에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물가는 비교적 안정된 상황임에도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상승률은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면 주식 관련 이야기입니다. 주가는 오르는데 왜 내 주식은 떨어지느냐는 것이죠. 간단히 말해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로 우리나라는 2008년 10월에 코스피지수가 892포인트까지 떨어졌습니다. 반 토막이 났죠. 그리고 2013년 5월 현재 코스피지수는 1980포인트를 넘어섰습니다. 2008년 10월에 비해 두 배 이상 상승한 것입니다. 그러면 주식으로 소위 대박 났다는 사람들이 넘쳐날 법도 한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형우량주가 코스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있습니다. 대형 우량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다 보니 대형 우량주 중심으로 시장이 움직인다는 것이죠. 그런데 개인 투자자들은 대체로 중하위주에 투자하기 때문에 주가와 차이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종합주가지수는 앞서 삼성전자 사례에서 본 것처럼 대형 우량주가 좌지우지하고 있다. 2012년 기준으로 시가총액 10조 원 이상인 21개 기업은 전체 사장회사 가운데 2.66%에 불과하지만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이 넘는 53.8%에 이른다. 시가총액 5조 원 이상 기업까지 확대하면 전체의 6.1%인 48개 기업이 전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71.6%를 차지한다. 극소수 대기업이 주가지수를 쥐락펴락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전체의 약94%에 이르는 상장기업들의 주가가 하락하고 있어도 상위 6% 기업들의 주가가 오르면 종합주가지수는 상승할 공산이 크다. (p.46)

 

 책의 첫 문장 ‘경제가 어렵다’에서 느낄 수 있듯이 책의 내용은 대부분 그리 밝지 않습니다.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지 않습니다. 다만 ‘반드시 나아져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죠. 본래 미래라는 것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예측된 미래가 절망적이라고 해서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미래는 예측의 문제보다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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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7 09: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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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마법사들 - 융합과 혁신으로 미래를 디자인하는 MIT미디어랩 이야기
프랭크 모스 지음, 박미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미래에서 온 책이라고 하니 조금 거창하게 들립니다. 사실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해는 2011년입니다. 그러니 미래가 아닌 과거에 쓰인 책이죠.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기술들도 이미 개발되었거나 개발 중인 것들이고요. 하지만 이 기술들이 곧 다가올 미래에 우리가 사용하게 될 기술들이라는 점에서 ‘미래에서 왔다’는 표현이 지나치게 과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아래의 그림들은 책에서 다루고 있는 기술들 중 일부입니다. 이미 영화를 통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술도 있고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上)과 미디어랩 스마트 시티 팀에서 개발한 ‘시티카(CityCar)’(下)>

 

 첫 그림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신 분들이라면 다 아시는 기술이니 넘어가고, 두 번째 그림인 시티카(CityCar)에 대해서만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시티카는 교통체증, 환경오염 등의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동차입니다.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해 전기로 움직이며, 교통체증과 주차 공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 차량의 절반 크기로 접는 것이 가능합니다. 시티카가 현재의 자동차를 대체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대체하더라도 현재의 자동차들도 상당수는 계속해서 남아있겠죠. 그러나 반대로 대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시티카의 기술과 아이디어는 반드시 미래에 사용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 미래에서 왔다는 저의 표현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죠.

 

 이 같은 기술들은 모두 MIT 미디어랩에서 개발된 기술들입니다. MIT 미디어랩은 책소개에도 나와 있듯이 ‘인간을 위한 기술이라는 구호를 바탕으로 미디어, 예술, 의료 등 전 산업에 IT를 접목,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드는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는 세계 최고의 미디어융합 기술연구소’이고요. 저는 우연히 TV에 비친 미디어랩의 모습을 보고 약간의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걸 만들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죠. 그리고 때마침 미디어랩에 관련된 책이 출간되고 기회가 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 <디지털 시대의 마법사들>의 저자 프랭크 모스 교수는 2006년에 임명된 미디어랩의 소장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어떻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는지’와 같은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보다는 그들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관리자의 입장’에서 쓰인 책입니다. 물론, 각 기술들이 누구에 의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 개발되는지 자세하게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그 역시 관리자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의적인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어디에서 영감을 찾는지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보다는 ‘어떤 환경 속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나오는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몇 가지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먼저 통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최근 많은 사람이 통섭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인문학에 대한 뜨거운 관심(?)도 이와 무관해 보이진 않고요. 그래서 대학들은 복수전공이니 부전공이니 하며 다양한 방법도 시도하고 있고요. 그런데 현대의 지식은 각 분야마다 지식의 깊이가 끝이 없습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기가 쉽지만은 않지요. 자칫하다가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은커녕 전공분야에 대한 지식도 수박 겉핥기에 그칠 우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지식’을 요구합니다. 이에 대해 미디어랩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관련 분야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어도 혹은 분야와 관계없이 하고 싶은 연구개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시티카’의 개발을 주도한 윌리엄 미첼 교수와 라이언 친 역시 건축과 도시 설계의 전문가입니다. 즉 시티카의 아이디어는 건축가이자 도시 설계자로서 그린 자동차에서 시작된 것이죠. 그리고 시티카의 연구 개발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자동차 설계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놀랍게도, 이후 스마트 시티 연구팀에 들어온 10여 명의 학생들 중 자동차 설계 분야에 대한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건축, 도시 설계, 기계공학, 컴퓨터 과학, 전기공학, 시스템공학, 의학, 뇌과학, 시각예술, 경영, 인터페이스 설계, 법률, 민족학, 소재과학, 그리고 사회학 전공자들이었다. 진정한 ‘자동차 인’은 그 가운데 아무도 없었던 셈이다. (p.88)

 

 즉 자신의 전공 분야와 관계없이 참여하고, 하고 싶은 연구개발을 하게끔 하는 것이 핵심이죠. 건축가이자 도시 설계자로서 ‘당신이 살고 싶은 도시를 상상한 다음 그 이상적인 곳에 맞는 자동차를 설계해 보면 어떨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시티카의 출발이었던 것처럼 말이죠. 먼저 조금이라도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면 그를 구체화하고, 그에 필요한 사람들을 모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족한 지식은 연구개발을 진행하며 쌓아 가면 되는 것이고요.

 

 “오늘날의 현실이 이렇다고 ‘이건 컴퓨터 문제를 넘어선 것이니 컴퓨터 과학자를 데려와야겠어’, ‘이건 경제 문제를 넘어선 것이니 경제학자를 데려와야겠어’라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할 수는 없잖아요. 이젠 이렇게 말해야 해요. ‘일단 문제를 들여다보자, 그리고 그 문제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알아보자.’ 그런 다음 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밖으로 나가서 필요한 도구와 지식, 사람을 모아 와야 해요. 내가 말하는 ‘반학제적’이라는 용어는 그런 뜻이에요.” (p.68)

 

 이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대학에서는 복수전공, 부전공 등으로 학생들에게 다양한 지식을 쌓게 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전공과 관계없이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고 어울릴 기회를 제공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경영학과의 프로젝트에 법학, 의학, 음악, 건축학 등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참여할 기회 말이에요. 이를 이끌어줄 교수들 또한 마찬가지이고요.

 

 다음으로 ‘계획된 우연적 발견’이라는 것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악기를 위해 개발된 기술이 마술 공연을 위한 소도구로, 또다시 다른 공연의 소도구로 쓰이다가, 나중에는 최첨단 의료 연구 장비로 변신한 것이다. 이제야 앞서 얘기했던 야구에 대한 이야기로 바짝 다가가게 됐다. (p.154)

 

 어떻게 하나의 생각이 다른 생각을 낳고, 그것이 또 다른 생각을 낳고, 다시 그것이 또 다른 생각을 낳는지 보여 주는 최고의 사례는, 뎁 로이 교수가 수장으로 있는 인지 기계 연구팀이다. 15년 넘게 그 그룹은 스마트 로봇 제작에서부터 어린이 언어 학습법, 고객 친화적인 은행 설계, 판타지 야구를 위한 툴, 자폐증 초기 진단법, TV광고에 대한 시청자 반응 분석법까지 연구의 가지를 뻗어 나갔다. (p.155)

 

 이것은 아이디어나 기술이 본래의 목적과 관계없이 다른 분야로도 가지를 뻗어 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연에 의해서 말이죠. 다만 중요한 것은 우연적이긴 하지만, ‘일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의도적으로 조성한다는 의미에서는 계획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획된 우연적 발견’이지요. 미디어랩에서는 1년에 두 차례 자신들의 최신 발명품들을 후원자들 앞에서 시연하는 자리를 갖습니다. 이때 해당 분야에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초청합니다. 그리고 초청받은 사람들이 시연을 보고, 그 기술과 아이디어를 자신의 분야에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우연의 기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죠. 그것이 실패한 아이디어라고 할지라도 말에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책은 기술의 힘을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 쓰였습니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결국에는 기술이 그를 극복하리라는 것이죠. 또한, 올바른 목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발명품과 기술은 인간을 보다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올바른 목적을 위해 개발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최근 3D 프린터가 점점 주목을 받고 있는데, 얼마 전 이 3D 프린터로 총기를 만든 일이 언론에 보도되었죠.

 

 물론 기술이 사람을 더욱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책에도 소개된 것처럼 댄 엘시(Dan Ellsey)는 뇌성마비를 갖고 태어나 걷지도 말하지도 못했으나, 미디어랩의 토드 매코버 교수가 개발한 기술 덕분에 작곡가이자 연주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뇌성마비를 갖고 태어난 댄 엘시(Dan Ellsey)는 미디어랩의 프로젝트 덕분에 작곡가이자 연주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토드 매코버 교수의 강연과 댄 엘시의 연주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http://www.ted.com/talks/lang/ko/tod_machover_and_dan_ellsey_play_new_music.html 주소를 클릭하세요.>

 

 위와 같이 기술은 분명 사람을 더욱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기적처럼 말이에요. ‘기술이 충분히 진보하면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는 아서 클라크의 말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는 경우도 너무나 많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된 미국 무인 공격기 드론(Drone)의 후속 단계로 개발 중인 킬러 로봇, 알파 독(Alpha Dog)입니다. 이외에도 많은 나라가 군용 로봇 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같은 군용 로봇이 사람을 더욱 행복하게 할까요? 이처럼 기술은 사용하는 이에 따라 목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개발 중인 킬러 로봇, 알파 독(Alpha Dog)>

 

 기술은 사람에게 ‘편리’를 가져다줍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일일이 손가락만으로 원하는 물건을 구입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람의 감정을 읽는 기술이 발달한다면, 또 다른 ‘편리’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런데 ‘편리’한 삶이 ‘행복’한 삶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래 그림은 픽사(Pixar)의 애니메이션 <월-E (WALL-E)>의 한 장면입니다. 정말 편리해 보이는 사람들이죠. 누워서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행복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함께 누워서 각자의 화면만 바라보는 삶. 마치 커피숍에 앉아 각자의 스마트폰만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나요?

 

<픽사(Pixar)의 애니메이션 ‘월-E (WALL-E)’의 한 장면. 마치 커피숍에 앉아 각자의 스마트폰만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나요?>

 

 결국은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머리말에 2007년 5월에 작가이자 신경과학자인 올리버 색스(Oliver Sacks)가 MIT 미디어랩 심포지엄에서 했던 말을 적어 놓았습니다. ‘기술이 우리의 인간성을 몰살하기 전에 우리는 기술에 인간성을 입혀야 한다.’ 그전에 사용하는 사람들이 인간성을 잃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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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7 09: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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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불변의 법칙
알 리스 & 로라 리스 지음, 김현정 옮김 / 비즈니스맵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책 이야기를 하기 전에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광고, PR, 퍼블리시티(publicity)의 차이점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먼저, 광고와 PR은 모두 기업의 활동에 있어서 마케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의 마케팅 믹스(marketing mix), 즉 4P(product, price, place, promotion) 중에서 촉진 믹스(promotional mix)에 속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속하는 광고는 가장 대표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광고와 유사한 활동들을 구별하면 아래의 그림과 같습니다.

 

<광고와 유사한 용어들>

 

 선전(propaganda)은 어떤 정보를 전달하여 신념이나 행동에 영향을 주려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입니다. 선전은 전달하고자 하는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데에 반해, 광고는 전달하고자 하는 주체가 명확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퍼블리시티(publicity)는 광고와 여러 면에서 유사한 특징이 있으나,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기업의 활동이나 제품에 대한 정보를 언론의 기사나 미디어를 통해 내보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어서 PR(public relations)은 공중의 이해와 기업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공중의 태도를 평가하여 실행하는 모든 활동을 말합니다. 그리고 PR은 기업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설정하고,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퍼블리시티를 포함하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인적판매(personal sales)란 상품을 알리고, 질문에 답하며 주문을 끌어내기 위해 잠재고객들과 대면 접촉하는 활동을 말하는 것으로, 상대와 직접 대면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TBWA 코리아의 박웅현 ECD는 강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인류가 만든 모든 미디어 중에서 가장 천대받는 미디어가 광고’라고. 이는 사실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광고를 방해하는 요소는 점점 늘어나고 있죠. 수많은 채널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리모컨을 통해서 너무 손쉽게 광고를 외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수십억, 수백억을 쏟아 부은 광고를 사람들은 손가락 하나만으로 외면하는 것이죠. 그리고 외면하고 싶어 하고요. 게다가 광고는 신뢰도 받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광고가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정말로 광고가 가장 천대받는 미디어가 아닐까 합니다.

 

 사람들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광고. 이것이 <홍보 불변의 법칙>의 저자가 광고의 시대가 지났음을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반면, PR은 사람들에게 신뢰받기 때문에 이제는 ‘PR의 시대’라는 것이고요. 그래서 이 책의 원제가 <The Fall Of Advertising And The Rise Of PR (2002년)>입니다.

 

 개발(development), 연구(research), 광고(advertising), 브랜딩(branding) 등 4단계로 이루어진 시장 진출 전략은 비즈니스 역사에서 마치 우상처럼 숭배되어왔다. (…) 4단계 중 가장 중요한 단계는 소비자의 머릿속에 브랜드 이름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바로 마케팅 전략의 최종적인 목표다.) 소비자의 뇌리에 자사 브랜드를 깊이 새겨 넣기 위한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결코 브랜드를 구축할 수 없다. (p.17)

 

 소비자의 머릿속에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것이 마케팅 전략의 핵심인데, 과거와 비교해 광고의 힘이 약해진 지금은 더 이상 광고가 그 역할(브랜드 각인)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광고가 소비자의 신뢰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고요. 따라서 PR을 통해 브랜드를 구축(각인)하고, 이에 맞는 광고전략을 실행하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우선 저 같은 경우에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 상당 부분 동의하는 편입니다. 광고의 힘이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는 주장이나(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주장이지만), 기업에서 광고에 비해 지나치게 PR이 과소평가 받고 있다는 주장, 그리고 마케팅 전략의 핵심은 소비자의 머릿속에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것이라는 주장 등에 대해서는 저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자는 마케팅 전략의 핵심은 소비자의 머릿속에 브랜드를 각인 시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머릿속’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떤 브랜드라도 소비자의 머릿속에 자리 잡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겠지요. 그렇다면 과연 광고만큼 PR이 소비자와의 접점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생깁니다.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PR활동은 주로 언론이나 미디어를 통한 퍼블리시티(publicity) 활동인데, 그러면 언론의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을까요? 저자의 말대로 PR은 광고보다 소비자의 신뢰를 받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PR의 시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더군다나 저자가 주로 이야기하는 퍼블리시티라면 말이죠. 과연 과거처럼 매일같이 신문을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신문을 읽지만 알려진 대로 그 수는 감소하고 있죠. 저자는 TV의 등장과 함께 광고의 시대가 열렸지만, 광고가 범람하고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그 힘은 점차 감소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도구가 사람들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더 이상 소비자는 심심하거나 여유롭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기업 활동에 대한 글을 일일이 읽어볼 소비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물론 기업의 새로운 제품에 관한 기사나 영상을 보는 소비자도 많지요. 하지만 이것은 이미 이전에 기업과 제품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나 관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무작정 읽는 것이 아니죠. 그렇다면 이러한 선호도나 관심은 어떻게 형성될까요? 과연 이를 PR이 광고보다 훨씬 잘해낼 수 있을까요?

 

 또 한 가지 이야기하자면 브랜드 구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 알 리스 회장은 PR을 통해 브랜드를 구축하고, 광고를 통해 브랜드를 관리할 것을 주장합니다. 그러면 좋은 브랜드란 무엇일까요? 저는 좋은 브랜드란 하나의 카테고리를 상징하거나, 하나의 단어를 소유하는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약국에서 피로 회복제를 찾지 않습니다. 그냥 ‘박카스’를 찾습니다. 그리고 섬유탈취제를 찾지 않습니다. 그냥 ‘페브리즈’를 찾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브랜드가 하나의 카테고리를 상징하는 브랜드가 좋은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하나의 단어를 소유하는 브랜드도 좋은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볼보가 ‘안전’이라는 단어를 가진 것처럼 말이에요. 이런 측면에서 광고는 기업이 원하는 이미지나 단어를 소비자에게 제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PR은 기업이 원하는 대로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저자 역시 이를 지적합니다.

 

 광고 캠페인을 출시하는 기업은 어떤 존재가 되고 싶고, 무엇을 팔기를 원하며, 누구에게 팔기를 원하는지 직접 결정한다.

 PR 캠페인을 출시하는 기업은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의 손에 미래를 맡긴다. 자사가 어떤 기업인지, 무엇을 판매해야 할지, 어떤 판매 접근법을 활용해야 할지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미디어의 몫이다. (p.354)

 

 즉 저자는 기업 스스로 이미지를 제시하지 말고, PR 캠페인을 통해 부여된 이미지를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볼보가 PR 캠페인을 통해서 ‘안전’이라는 이미지를 얻은 것처럼 말이죠. 과연 PR을 통해 이미지를 부여받는 것이 광고를 통해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보다 확률이 높을까요? 광고보다 PR을 통해 한 단어를 소유하는 것이 쉬울까요? 저자는 광고는 아무리 열심히 꾸며도 믿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PR을 통해 신뢰를 바탕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라는 것인데, 만약 광고를 믿게 한다면 어떨까요?

 

<e편한세상 광고 중 ‘진심의 시세’편>

 

 이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이 광고 캠페인은 시장에서 매우 강력하게 기능한 광고 중 하나입니다. ‘톱스타가 나옵니다. 그녀는 거기에 살지 않습니다. (…) 저희가 찾은 답은 진심입니다. 진심이 짓는다.’ 이 광고는 톱스타가 나오고 유럽의 성 그림이 나오던 기존의 광고들을 바꿀 만큼 강력하게 기능했으며, ‘진심’이라는 단어와 브랜드를 연결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진심’이라는 단어를 제시하고, 생각나는 아파트를 묻는다면 ‘e편한세상’을 답하지 않을까요? 저자의 말대로 광고는 신뢰받기 어렵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위의 광고를 믿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회사는 진심으로 안 짓나? 진심으로 짓는지 어떻게 알아?’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다시 광고를 통해 소비자가 믿게끔 했습니다.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실제로 전국의 e편한세상 아파트를 사례로 광고를 제작한 것이죠. 그 중 하나가 아래 그림입니다.

 

 

<e편한세상 광고 중 ‘10cm의 진심’편>

 

 위의 광고는 10cm 넓은 실제 주차장으로 기업의 ‘진심’을 증명하려는 광고였습니다. 이 광고가 나간 뒤 2010년 4월 3일에는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10cm가 톱스타를 이겼다.’ 이는 광고의 힘이 과거에 비해 약해진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브랜드 구축에 있어서 광고가 강력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광고 이전에 기업이 실제로 광고의 내용처럼 아파트를 건설했기 때문입니다만)

 

 저는 이 같은 이유로 저자의 모든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이 미국에서는 2002년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보충되어야 할 부분도 보이고요. 그리고 많은 마케팅 이론들이 그렇듯 저자 주장에도 반대하는 목소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케팅 대가라고 해서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저자가 <경영자 VS 마케터>라는 책도 써냈고요. 이 책 <홍보 불변의 법칙> 역시 마찬가지로 무조건 수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광고의 역할과 PR의 역할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광고와 PR의 본질적인 역할을 말이에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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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2 10: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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