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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 MIT 경제학자들이 밝혀낸 빈곤의 비밀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지음, 이순희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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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행동경제학, 혹은 심리학에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를 풀어놓은 책으로 착각한 것이죠. 실제로는 개발경제학(development economics), 빈곤의 경제학(economics of poverty)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책 중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책으로는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들 수 있겠습니다. 한비야의 추천 도서로도 잘 알려져 있죠.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경우에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문제점들을 무척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그곳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하는 책입니다.

 

 그에 반해 이 책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는 ‘어떻게’라는 물음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까닭은 그들이 지정학적으로 열대의 불모지에 위치해 말라리아가 극심할 뿐 아니라 육지에 둘러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대적인 초기 투자로 지역 특유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지 않으면 이들 지역의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어렵다. 문제는 가난한 나라가 이러한 투자자금을 변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p.18)

 

 위와 같은 ‘빈곤의 덫(poverty trap)’에 대한 제프리 삭스와 다른 경제학자들의 논리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 스스로 가난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빈곤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이 책의 저자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는 건강, 교육, 인구정책, 보험과 같은 사회적 안전망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분야에 걸쳐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가령 인도의 경우, 학교가 부족해서 아이들이 배우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부실한 건강상태나 어려운 가정형편의 이유도 분명 있지만,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과 학교에 보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부모들의 태도가 더 큰 이유라는 것이죠.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은 공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공교육이 부실할 경우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교사가 공부를 잘하는 아이와 그러지 못한 아이로 나누고, 공부 잘하는 아이에 맞추어 교육할 때 다소 뒤처진 아이는 더욱 뒤처지게 됩니다. 게다가 그 아이를 ‘너는 똑똑하지 못하니 배워봤자 소용없다.’라는 식으로 방치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배워봤자 소용없다.’는 그 교사의 말을 믿거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멕시코의 조건부 보조금(CCT; Conditional Cash Transfer) 프로그램인 프로그레사(PROGRESA) 사례(자녀를 꾸준히 학교에 보내고 예방보건 활동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가난한 가정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듯이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교육 수요를 자극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필요함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대안학교나 보충수업 등을 통해서 아이들이 각자의 수준에 맞게 학습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 또한 교육에 대한 부모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 정보기술을 이용한 교육 제공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위 내용과 같이 저자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는 교육뿐만이 아니라 건강, 사회적 안전망 등과 같은 중요한 부분에서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매우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합니다. 결국, 이 책 전반에 걸쳐 저자들이 가장 핵심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거시경제 정책이나 제도 개혁 같은 거대한 무언가가 아니라 작은 정책과 노력만으로도 얼마든지 바꿔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그런 예를 거듭해서 살펴보았다. 중요한 것은 세부적인 내용이다. 제도도 마찬가지다. 제도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려면 거대한 제도에서 낮은 수준의 제도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아래로부터의 관점’, 즉 낮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p.328)

 

 정치는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는 조금씩 개선할 수 있으며 실제로 조금씩 개선해 나가야 한다. 언뜻 사소해 보이는 개입이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가 이 책에서 시종일관 주장해온 이 철학은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p.340)

 

 정치 환경이 좋을 때 좋은 정책이 시행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으나, 정치 환경이 나쁘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정책이 시행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정치 환경이 좋아도 얼마든지 나쁜 정책이 시행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좋은 정책과 제도는 충분히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저자들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가난에는 한계가 있죠.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진흙 쿠키’라는 것을 들어보셨나요? 국민의 75%가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최빈국. 언제부터인가 진흙으로 만든 쿠키가 주식이 되어버린 나라. 그리고 이렇게 만든 진흙 쿠키를 사 먹는 나라. 2010년에는 지진으로 25만 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100여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나라. 바로 아이티입니다. 진흙으로 만든 쿠키를 돈을 주고 사서 아침, 저녁으로 하루 두 번 먹는다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를 과연 외면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서서 가난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요?

 

<아이티에서 주식처럼 되어버린 진흙 쿠키. MBC 프로그램 W 중에서>

 

 다만 저자들의 주장에서 다소 아쉬운 점은 작은 변화가 갖는 한계에 대해서는 크게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정치적인 성격을 갖은 원조처럼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원조는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를 동반하고, 지도자들이 부패한 상황에서 원조를 계속하면 정치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p.325)

 

 위와 같은 저자들의 주장처럼 대부분의 원조는 정치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예를 들어 ‘시장 개방’과 같은 조건을 제시하죠. 그리고 이는 다국적 기업들의 진출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는 자칫 또 다른 문제점을 낳기도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남반구 지역 국가들의 부채가 끊임없이 증가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자리 잡은 나라 현지에서의 기업 활동을 통해 얻은 이윤이나 주식투자 등을 통해서 얻은 이익을 외화로 본사가 있는 나라에 송금하는 관행을 들 수 있다.

 거기에다 로열티를 지급하는 체제까지 추가해야 한다. 네슬레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중략- 이제 브라질의 경우를 보자. 네슬레는 브라질에서 터무니없이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다. 이익의 일보는 브라질 전국에 설립된 25개의 공장에 재투자된다. 또 다른 일부는 기업 확장과 새로운 시장 개척(가령, 가축 사료 시장) 등을 위한 경비로 쓰인다. 하지만 가장 큰 몫은 네슬레의 본사가 자리한 스위스의 베베이로 보내진다.

 이와 같은 자본의 유출은 브라질 중앙은행을 통해 이루어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네슬레는 안정적인 교환 가치라고는 전혀 없는 레알화가 아니라 달러로 송금하기 때문이다. -중략- 환전을 마친 돈은 즉시 대서양을 건너 본사로 향하게 되므로, 브라질 국내의 외채 사정은 한층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장 지글러, <탐욕의 시대> 중에서 p.248~p.249)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탐욕의 시대>>

 

 위와 같은 문제는 국가의 자본이 축적되지 못하는 문제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국가가 부채에 허덕이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이처럼 정치적인 성향을 갖는 원조의 경우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올 소지가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에는 경제 분야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더욱 많은 문제점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업들과 관련된 문제는 여러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한두 가지의 작은 정책변화만으로는 큰 효과를 거두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정책이 갖는 한계를 인지하고 그에 맞추어 국제적인 큰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지식과 정보를 다루고 있습니다. 게다가 내용은 무척 구체적이고 전문적입니다. 즉 술술 읽히는 경제도서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읽어볼 만한 도서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많은 사례와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그와 함께 독자에게 깊은 고민과 생각의 기회를 제공하는 그런 도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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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1 10: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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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1 12: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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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9 14: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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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9 2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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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 - 세계은행 총재 김용의 마음 습관
백지연 지음 / 알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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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세계은행의 총재에 ‘한국계’ 미국인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이 임명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저의 느낌은 ‘놀랍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우선 아무리 한국계라 하더라도 미국인이라는 느낌이 강했고, 두 번째는 저와는 너무나 먼 이야기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세계은행의 총재에 ‘한국계’인 김용 총장이 임명됐다는 소식은 놀라웠습니다. 아마 세계은행이 이름은 ‘세계’ 은행이지만 그 내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아시는 분들이라면 놀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어쨌든 저는 그 이야기에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이 책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 역시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은 상황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다만, 읽으면서 궁금했고 알고자 했던 것은 ‘왜? 그리고 어떻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어떤 인물에 대해 알고자 할 때 중점을 두는 물음이기도 한데요, 삶의 순간에서 왜 그러한 선택을 했으며, 어떻게 실천을 해나갔는지가 저에겐 무척 궁금한 사항들 이었습니다.

 

 먼저, 김용 총재는 젊은 시절부터 가난한 나라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의학과 인류학을 전공했고요. 왜 의학과 인류학을 택했으며, 왜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일까요? 어려운 사람들과 가난한 나라를 돕고자 하는 마음은 어린 시절부터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전쟁을 치른 한국을 떠난 부모님과 가난에 허덕이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퇴계 이황과 유교철학을 연구하신 어머니의 가르침의 영향도 무척 크고요.

 

 그러나 무엇보다 실용을 중시하신 아버지의 조언과 충고에 따라 의학을 전공으로 택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와 함께 자신이 배우고 싶은 인류학을 함께 배워나간다는 것이죠. 의학과 인류학을 함께 전공하고, 가난과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자 했던 자신의 바람이 결국 국제 의료봉사 조직인 PIH의 설립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여러 나라의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돕습니다.

 

 그런데 김용 총재는 현장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면 왜 현장을 떠나 다른 길을 택하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좌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신속한 약품 지원을 위해 카라바이요의 성당(페루) 옆에 약국을 지었는데, 이 약국이 그만 반군의 테러로 폭파되어 없어지고 말았다. 이때 김용은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PIH가 다른 곳에 다시 약국을 짓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김용도 낙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추쟁 같았을 것이다. -이하 생략- (p.68)

 

 페루에서의 경험을 통해 김용과 폴 파머는 더욱 가까워졌지만 서로가 다른 길을 보게 만들었다. -중략- 김용은 폴 파머와는 달리 페루에서의 경험을 통해 보다 큰 기획, 국제기구, 거대 제약회사의 횡포, 저개발국에 공금되는 약값의 통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피라미드 위쪽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부터 실질적인 개혁이 필요하며, 그것만이 가장 큰 실행력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p.70)

 

 이처럼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그는 현장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세계보건기구의 에이즈국장을 거쳐 다트머스 대학의 총장에 임명되고, 다시 세계은행의 총재에 올라서게 됩니다.

 

 그러면 김용 총재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실천하는 삶을 살아 왔을까요? 이는 이 책의 2부에서 다루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습관(Mind of Habit)끈질김(persistence)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글로벌시티즌이 되라. 여기서 말하는 글로벌시티즌이란 것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의미의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습니다. 좀 더 본질적인 것이죠. 세계 어느 곳에 가서도 통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지닌 인재가 아닌,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과 현상들에 관심을 갖고 그를 인지할 수 있는 안목과 통찰을 갖춘 인재가 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서 추론적 유연성(discursive flexibility)을 기르길 주문합니다. 글쓰기는 다양한 모든 소통을 효과적으로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

 

 다시 김용은 지적한다. 과학의 커다란 돌파구를 마련하는 진짜 위대한 과학자, 혹은 정말 창의적인 과학계의 지성들은 좁은 과학의 영역에만 관심사를 한정시키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정말 위대한 과학자, 지성들은 한결같이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거나 위대한 작가였다. 한 분야만 잘 아는 전문지식의 바보가 아닌 음악, 문학, 문화 등 융합과 통섭의 능력을 겸비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인재만이 문제를 바라보면서 다양한 관점을 적용해볼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지게 되고, 사물을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데 추론적 유연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창의력은 이런 탄탄한 실력 위에서 터져 나온다. (p.188)

 

 세 번째, 냉소주의에 함몰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식의 태도가 아니라 ‘우리는 할 수 있어.’라는 긍정의 태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매우 식상한 이야기죠. 그런데 속뜻을 살펴보면 조금 다릅니다. 여기서 할 수 있다는 것이 이성적 판단에 의한 긍정과 낙관이 아니라 도덕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거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옳다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당위성의 문제라는 것이죠. 그러한 도덕적 필연성이 ‘반드시 달성한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과 긍정으로 이어짐을 이야기 합니다.

 

 네 번째는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특정 주제에만 관심을 집중합니다. 하지만 저는 인문과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하게 믿습니다. 너무 일찍 분야를 좁혀서 특정 주제에만 집중하게 되면 정신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합니다. 음악, 예술 등을 배워야 합니다.” (p.203)

 

 김용 총재는 이와 함께 이러한 지식과 경험들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피아노 교육이 갈등 해결능력에 도움을 준다거나, 연기 수업이 물리적 학습(기억력 향상 등)에 도움을 주고, 공학과 문학을 병행한 것이 사람을 더욱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만든다고 말이죠.

 

 다섯 번째는 윤리의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돈(Money), 시장(Market), 자신(Me)이라는 3M 패러다임을 탁월함(Excellence), 사회적 약속(Engagement), 윤리(Ethics)라는 3E로 바꿔나가자고 주장합니다. 이는 현재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시대적 흐름과도 일치하는 주장이라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한국 교육에 대한 조언으로 끝맺습니다. ‘스펙 쌓기’에 매달리지 말라는 것이죠. 그보다는 무엇이 하고 싶은지 깊이 고민하고 실천하라는 것이죠. 이 이야기는 이미 널리 인식되고 고쳐 나가려고 하는 부분이고요.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다른 자기계발서나 자서전 등과 비교해 볼 때 특별함은 찾기 어렵습니다. 대부분 원론적인 이야기들이지요. 그것은 반대로 이러한 주장들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단지 실천의 문제가 남아 있을 뿐. 그리고 이렇게 대동소이(大同小異)한 내용임에도 김용 총재의 이야기는 저를 무척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저 역시 마음과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쉽게 행하지 못하는 것들을 김용 총재는 평생에 걸쳐 행해 왔던 것이죠. 그리고 김용 총재가 말하는 ‘성공의 정의’는 더더욱 저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저에게 성공이란 전에도 말했듯이, 이곳에 누군가가 되고자 온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하러 온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그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성공입니다. 내가 세상을 위해 일을 하기보다는 나의 지위를 지키려고 노력할 때 스스로 이 일에서 물러날 겁니다. 이런 일(총장직)은 엄청난 압력과 책임감을 느끼기 보다는 어떤 지위를 누리는 마음을 갖기 쉬운 자리입니다. 왜냐하면 정말 좋은 직업이니까요. 많은 똑똑한 사람들을 총장실에서 만나고, 그래서 이런 직업의 함정은 사람이 변해서 이 지위를 누리게 되기 쉽다는 겁니다.” (p.226)

 

 “저에게 있어, ‘이제 충분히 성공했다’고 말하는 시점은 결코 오지 않을 겁니다. 저에게 성공이란, 저의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세상을 위해 무엇인가 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이자 저자 백지연의 마음을 움직인 김용 총재의 말은 ‘무엇이 되고 싶으냐? 무엇이 되라.’는 질문만을 강요하는 한국 교육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충분한 고민거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무엇이 되는 것(what to be)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느냐(what to do)를 늘 생각했죠.”

 "What I've said before and I always say. I came here to DO something, and I didn't come here to BE something"

 

 

 

 

 

 

 

(참, 중요한 실수가 있더군요. 'p.149 -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오천 원권 지폐 속 인물로만 퇴계 이황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퇴계 이황은 천 원권 지폐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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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8 12: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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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관한 생각 -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생각의 반란!
대니얼 카너먼 지음, 이진원 옮김 / 김영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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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뒤에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이 책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동급 수준이다.” 『블랙스완』이라는 책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나심 탈레브의 평입니다. 아마도 최근에 제가 본 서평 중에 가장 강력한 문구지 않을까 싶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1776년에 출간되어 훗날 애덤 스미스를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위치에 올려놓았으며, 1900년에 출간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정식분석학을 탄생케 하였습니다. 말 그대로 두 책은 세상을 바꿔놓았던 책이죠. 그런데 이런 책들과 이 책 『생각에 관한 생각』이 동급이라니.

 

 대니얼 카너먼은 아모스 트버스키와 함께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행동경제학은 잘 알려져 있듯이 기존의 경제학이 주장을 뒤엎으면서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아마도 추측건대 나심 탈레브가 그토록 극찬한 이유는 『생각에 관한 생각』이 경제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대니얼 카너먼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나심 탈레브의 말이 꼭 과장됐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도 출간되었던 리처드 탈러의 『넛지』나 댄 애리얼리의 『경제 심리학』, 그리고 제가 얼마 전에 읽었던 『가격은 없다』 등 수많은 행동경제학 관련 도서들도 사실은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에서 시작된 것이죠. 제가 언급한 책 이외에도 행동경제학에 관련된 수많은 책 중에서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를 언급하지 않는 책은 없을 것입니다.

 

<대니얼 카너먼(左)과 故 아모스 트버스키(右)>

 

 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크게는 저자의 말처럼 시스템 1과 시스템 2, 이콘과 인간, 기억자아와 경험자아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이 시스템 1과 시스템 2입니다.

 

 나는 키스 스타노비치와 리처드 웨스트가 최초로 제안한 용어를 수용해 머릿속에 존재하는 두 가지 시스템을 시스템 1과 시스템 2라고 부르겠다.

 

-시스템 1: 거의 혹은 전혀 힘들이지 않고 자발적인 통제에 대한 감각 없이 자동적으로 빠르게 작동한다.

-시스템 2: 복잡한 계산을 포함해서 관심이 요구되는 노력이 필요한 정신 활동에 관심을 할당한다. 활동 주체, 선택, 집중에 대한 주관적인 경험과 연관되어 작용하는 경우도 잦다. 때가 종종 있다. (p.33)

 

 조금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먼저, 아래의 그림에서 나오는 단어를 보시고 ‘단어의 색’을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별다른 노력 없이 자동적으로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 이번에도 아래의 그림에서 나오는 ‘단어의 색’을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도 어렵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그림에서 단어의 색을 말할 때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렸을 것입니다. 첫 번째 그림에서는 단어의 뜻과 단어의 색이 일치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답을 말할 수 있었지만, 두 번째 그림에서는 단어의 뜻과 색이 달랐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눈에 보이는 단어를 자동적으로 읽으려 하는 것이 시스템 1, 이를 통제하고 단어의 색상을 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시스템 2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의 예를 더 들어 보겠습니다. 먼저 아래의 그림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 그림에서 A와 B 중에서 더 어두운 부분은 어느 것일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A가 B보다 더 어둡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그림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보시다시피 A와 B는 같은 색입니다. 단지 우리의 뇌가 원기둥의 그림자를 인식하여 A가 B보다 더 어둡다고 판단한 것이죠. 이제 다음번에 이 그림을 본다면 우리는 ‘A와 B의 색은 같다’고 할 것입니다. A와 B가 같은 색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안다고 해서 눈에도 A와 B의 색이 같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눈에는 A가 B보다 어두워 보이지만 같은 색임을 알고 있는 것이죠. 여기서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 시스템 1, A와 B가 같은 색임을 알고 인지하는 것이 시스템 2입니다. (위의 두 사례는 이 책에서 나오는 사례가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1970년대 사회과학자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을 폭넓게 수용했다. 첫째, 일반적으로 인간의 사고는 건전하며 행동은 합리적이다. 둘째, 공포와 애정, 증오 같은 감정들은 인간이 합리성과 거리를 두는 대부분의 경우를 설명해준다. (p.15)

 

 즉, 인간이 오류를 범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감정’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이죠. 그러나 대니얼 카너먼의 주장은 감정이 아닌 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이 오류를 범하는 ‘합리적인 오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시스템 1과 시스템 2를 통해서 설명해 나갑니다. 시스템 1과 시스템 2는 각각의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시스템 1은 인상, 느낌, 성향을 만들고, 자동적으로 작동하며, 직관을 발휘하며, 감정적 정합성을 과장(후광효과)합니다. 또한, 기존의 증거에 집중하고 없는 증거는 무시하며(WYSIATI; What You See Is All There Is), 어려운 질문은 쉬운 질문으로 대체(휴리스틱)해서 생각합니다. 시스템 1의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우리가 저지르는 많은 오류가 시스템 1에서 비롯됩니다. 반면, 시스템 2는 시스템 1을 통제하고, 비교·판단하고, 시스템 1의 제안을 승인하고 검토합니다. 그러나 시스템 2는 게으르기 때문에 대체로 시스템 1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하고, 우리는 오류를 범합니다.

 

 경제학에서는 대체로 인간은 합리적이라고 말합니다.

 

 “경제 이론의 행위 주체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며, 취향에 변화가 없다.” (p.345)

 

 그리고 여기서 합리성이란

 

 합리성의 유일한 테스트는 어떤 사람의 믿음과 선호도가 이치에 맞는지 여부가 아니라 내적으로 일관되는지의 여부이다. -중략- 합리성은 이치에 맞는지와 상관없는 논리적 일관성이다. (p.501)

 

 대니얼 카너먼은 이러한 주장에 반박합니다. 시스템 1과 시스템 2를 통해서 인간의 선호도가 얼마나 쉽게 바뀌는지, 그리고 합리적으로 판단해도 얼마든지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예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1) 당신은 둘 중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확실히 900달러를 얻기 VS. 1,000달러를 얻을 수 있는 90퍼센트의 확률

 

 2) 당신은 둘 중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확실히 900달러를 잃기 VS. 1,000달러를 잃을 수 있는 90퍼센트의 확률 (p.359)

 

 대부분의 사람이 물음 1)에서는 ‘확실히 900달러를 얻기’를 선택하고 물음 2)에서는 ‘1,000달러를 잃을 수 있는 90퍼센트의 확률’을 택했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렇고요. 똑같은 확률임에도 이익과 관련된 상황에서는 ‘위험을 회피’하고, 손해와 관련된 상황에서는 ‘위험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보겠습니다. 바로 프레이밍 효과입니다.

 

 95달러를 딸 확률이 10퍼센트이고 5달러를 잃을 확률이 90퍼센트인 도박을 하겠는가?

 

 100달러가 당첨될 확률이 10퍼센트이고 아무것도 당첨되지 않을 확률이 90퍼센트인 복권을 5달러에 사겠는가?

 

 현실주의자라면 두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내놓겠지만 그런 사람은 상당히 드물다. 실제로 이 중 한 가지 질문이 더 많은 긍정적인 대답을 얻는다. 바로 두 번째 질문이다. 나쁜 결과이지만 단순히 도박에서 진다는 묘사보다는, 전혀 당첨되지 못한 복권 가격으로 프레임될 때 사람들은 훨씬 더 쉽게 받아들인다. 손실은 비용보다 훨씬 더 강력한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선택은 현실주의적일 수 없다. (p.443)

 

 위의 사례는 같은 질문임에도 단어와 문장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사례와 이론을 통해 대니얼 카너먼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인 인간과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 얼마나 다른지를 명쾌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이러한 오류들을 완전히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노력을 통해서 그저 오류 발생 가능성이 높은 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좋아질 수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 때문에 그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생각의 속도를 줄이고, 시스템 2에게 도움을 요구하는 것이 오류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죠. 그래서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오류를 줄일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배우기보다는 오류가 발생하기 쉬운 상황을 인지하는 민감성을 기르길 바라고 있습니다.

 

 합리적 행동주체 모델의 신봉자와 거기에 의문을 던지는 회의론자의 주요 차이점은 무엇일까? 전자는 어떤 선택의 표현도 중대한 문제의 선호도를 결정할 수 없다는 걸 당연시한다. 그들은 그 문제를 더 알아보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열등한 결과들을 갖고 만다. 반면 합리성에 대한 회의론자는 놀라지 않는다. 그들은 하찮은 요인들이 선호도의 결정요인으로서 갖는 힘에 민감하도록 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도 이런 민감성을 습득하길 바란다. (p.455)

 

 시스템 1이 저지르는 수많은 오류에 대한 해결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책은 ‘굉장히’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별 다섯 개가 아니라 열 개라도 줄 수 있을 만큼 말이죠. 그런데 이 책에서는 정말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번역’입니다. 경제 관련 도서는 번역할 때 반드시 원문의 느낌을 살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최대한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기만 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책 『생각에 관한 생각』은 지나치게 원문을 그대로 살리려 했기 때문인지 번역이 매끄럽지가 못합니다. 저는 특별히 번역에 민감한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문장이 이해하기 무척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면

 

 뇌졸중은 모든 다른 사고들을 합친 것보다 거의 두 배나 많은 죽음을 유발하지만, 응답자들 중 80퍼센트는 사고로 인한 사고의 발생 확률이 더 높다고 판단했다. (p.200)

 

 위와 같은 방식의 번역이죠. ‘사고로 인한 사고의 발생 확률’‘사고로 인한 사망발생 확률’로만 바꾸어도 이해가 좀 더 수월할 텐데 말이죠. 또한, 곳곳의 실수도 눈에 띕니다.

 

 만일 어떤 인구의 U 지수가 20퍼센트에서 18퍼센트로 떨어진다면 그들이 감정적 불만이나 고통에서 보낸 전체 시간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p.480)

 

 20퍼센트에서 18퍼센트로 떨어졌다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가 아니라 ‘10분의 1 줄어들었다’가 되겠죠. 이 두 문장의 의미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처럼 번역으로 인한 아쉬움이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너무나 훌륭한 책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개정판이 나온다면 조금에 망설임도 없이 구매할 것입니다.

 

 행동경제학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요. 앞으로 행동경제학을 연구하는 경제학자가 늘수록, 행동경제학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이 책 『생각에 관한 생각』의 위상 역시 더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책의 겉표지에 적혀있는 ‘행동경제학의 바이블’이라는 문구처럼 말이죠. 이 책은 ‘행동경제학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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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7 16: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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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7 18: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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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정의로운가 - 서울대 이정전 교수의 경제 정의론 강의
이정전 지음 / 김영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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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경제학 교재나 입문서는 대체로 수요와 공급으로 시작합니다. 경제학의 정의로 시작하더라도 곧바로 수요와 공급, 그리고 시장의 탄력성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지요. 아마도 경제학의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수요와 공급이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에 도덕, 사회와 같은 과목들을 배우기 전에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과 같은 과목들을 먼저 배웠습니다. 그처럼 경제학을 배울 때도 기본 개념을 배우기 전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부에서 시행하는 정책이나 언론에서 쏟아지는 기사를 보아도 스스로 판단할 수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갖을까요?

 

 이 책 <시장은 정의로운가>는 ‘인문학’(특히 철학)을 바탕으로 경제학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해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꼭 이 책이 아니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저술된 책이 경제학 입문서(入門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책표지에 써있는 ‘한국의 경제학자가 이런 책을 써주길 기다렸다!’라는 문구가 과장은 아닌 듯싶습니다. 그렇다고 2010년에 가장 화재가 되었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정의에 관한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을 정의의 관점에서 조망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이 공정하다고 주장하는 기존 주류 경제학자들의 주장에 의문을 던지며 논리적인 반박을 통해 독자의 생각을 이끌어 내자는 것이지요.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만, 내용에 따라 크게 2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부(1장부터 4장까지)는 ‘기존 시장 경제체제에 대한 의문’을, 그리고 2부(5장부터 9장까지)는 ‘과거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시장 경제체제’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회의 균등’을 통해서 ‘공정한 경쟁’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대체로 ‘기회의 균등’에 초점을 맞추죠. 그런데 초점을 ‘공정한 경쟁’으로 맞춰 보면 어떨까요?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책의 저자 이정전 교수는 <정의론>으로 널리 알려진 롤스의 말을 빌려 불가능하다고 답합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불안>, <일의 기쁨과 슬픔>의 저자로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알랭 드 보통 역시 한 강연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고요.

 

<알랭 드 보통의 강연 中 >

 

 즉, 알랭 드 보통은 우리 삶에는 가정환경, 사회적 지위처럼 우연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아서 공정한 경쟁이란 불가능하며, 이를 통해 능력에 따라 사람을 구분 짓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롤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재능과 탁월한 능력, 그리고 노력까지도 우연적인 것으로 보았으며, 이렇게 우연적인 것은 결코 정의의 이름으로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보았다고 합니다.

 

 요즈음 유명 야구 선수들이 돈을 많이 버는 이유는 야구가 인기 있기 때문이다. 이기가 없다면 아무리 야구 천재라도 돈을 벌 수 없다. 그러나 야구가 인기가 있느냐 없느냐는 다분히 우연적인 것이다. 요즈음의 유명 야구 선수들이 조선 시대에 태어났더라도 그렇게 큰 인기와 함께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까? 야구 천재들이 큰돈을 버는 이유는 그들이 우연히 그런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그 재능이 우연히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연이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천부적 재능을 지닌 사람에게 그 재능만을 이유로 남보다 더 많은 소득과 재산을 허용하는 것은 공정치 못하다는 것이 롤스의 기본입장이다. (p.37-38)

 

 롤스는 노력하는 성향 역시 좋은 환경에서 성장한 결과일 가능성이 많다고 보았다. 노력하는 성격은 상당한 정도로 좋은 가정이나 사회적 여건 덕분에 얻게 되는 성격이다. 가난에 찌든 집안의 아이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알아내고 이것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할 정신적,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p.39)

 

 특히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분야가 부동산과 자본시장입니다. 불확실성이 넘치는 시장에서 과연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냐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정확한 처벌과 보상시스템이 공정하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임을 주장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한계생산이론을 들고 있습니다. 한계생산이론이란 ‘부의 창출(생산)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각자의 정당한 몫을 가늠하고 분배한다는 이론인데, 이 이론의 핵심 주장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완전한 자유경쟁시장(완전경쟁시장)에서 각 개인은 ‘생산에 기여한 정도’만큼을 보수로 받게 된다. 노동자는 생산에 기여한 만큼만 임금을 받으며, 호미를 가진 사람은 호미가 생산에 기여한 만큼만 보수를 받게 되고, 토지를 가진 사람은 토지가 생산에 기여한 만큼만 보수를 받게 된다.

 둘째, 이렇게 생산에 기여한 정도만큼을 보수로 주고 나면 기업별로 총수입과 총지출이 꼭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남는 것(잉여)이 없다. 달리 말하면 정상이윤보다 더 큰 이윤(초과이윤)은 없으며 따라서 불로소득도 없다는 것이다. (p.112)

 

 그런데 한계생산이론에 입각한 소득 정당화 논리는 앞의 내용처럼 완전경쟁시장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경쟁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지요. 굉장히 많은 독과점이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큰데, 이는 완전경쟁시장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얘기입니다. 또한 한계생산이론은 한계생산이 측정 가능함을 전제로 하는데 이것이 과연 정말로 측정이 가능하냐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가령 집을 지을 때를 생각해보자. 목수는 도구 없이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다. 목수와 도구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한계생산이론에 의하면 목수의 한계생산은 오직 목수 한 사람만 늘어났을 때 추가 생산량인데, 도구 없는 목수의 생산성이 무슨 의미를 가질 것인가? 도구의 한계생산은 오직 도구만 한 단위 증가시켰을 때의 추가 생산량인데 목수 없는 도구가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 (p.126)

 

 결국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시장 경제체제에서 불평등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는 최근 통계자료에서 나타나듯이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등 수많은 문제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 대해 철학자와 사상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오른쪽부터 벤담, 밀, 칸트, 롤스, 마르크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

 

 벤담과 밀로 대표되는 공리주의자들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행복이란 곧 쾌락을 의미했고요. 때문에 공리주의에서는 이로운 것이 옳은 것이요, 옳은 것이 이로운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반면, 칸트와 롤스는 이러한 논리를 분명하게 비판했습니다.

 

 자본주의 이전의 서구 사회는 매우 오랫동안 인간의 욕망이 이성에 의해서 적절히 통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이성이 주인의 위치에 있었고 욕망은 종속적인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와서 이성과 욕망의 위치가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성은 욕망을 가장 잘 달성하는 수단을 찾는 역할을 맡는다. 즉 욕망이 주인의 위치로 올라갔고 이성은 그 욕망에 봉사하는 일꾼의 위치로 전락하게 된다. (p.196)

 

 위의 글처럼 욕망이 목적이 되고 이성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곳이 바로 자본주의 시장임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욕망은 쉽게 조작되고 바뀌는데,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 욕망이 과연 기준이 되고 정의가 될 수 있냐는 이의를 제기합니다. 또한, 이로운 것과 옳은 것은 철저히 구분되어야 하며 의(義)가 이(利)보다 우선시 되어야 함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공리주의에서도 소득 재분배는 매우 정당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외에도 시장이 자발적 합의에 의한 것인지, 정의로운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이며 ‘정의’가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인지 등의 내용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결국 정의란 것은

 

 경제 영역에서는 성과주의에 입각해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생산을 많이 하도록 하며, 정치 영역은 평등의 원칙에 입각해서 분배를 고르게 하고, 사회화 영역에서는 필요의 원칙에 따라 알맞게 나누어 쓴다면 우리 사회는 잘 조화된 사회가 될 수 있다. 바로 이런 사회야말로 정의로운 사회요, 일찍이 그리스의 철인 플라톤이 꿈꾸던 이상적 사회다. (p.279)

 

 라고 밝힌 바와 같이 삶의 영역별로 각기 다른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 한쪽 바퀴가 비대해져 제자리를 맴도는 수레처럼, 한 영역이 다른 영역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됩니다. 최근, 복지에 대한 논쟁이 화두입니다. 한쪽에서는 복지의 필요성을 말하고, 한쪽에서는 포퓰리즘을 이야기합니다. 때문에 이럴 때 일수록, 우리 스스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담-1> 철학적, 경제학적으로 부족한 저의 식견 때문에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에 대해 반박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여담-2> 최근 유가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화두였습니다. 지난 20일 정부는 S사를 다섯 번째 휘발유 공급사로 선정했습니다. 즉, 경쟁을 택한 것이죠. 경쟁을 통해서 유가를 안정시키겠다는 것인데, 앞으로의 변화를 지켜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단, 현재 유가가 3월 중순 이후로 점차 하락세에 있는데, 이로 인한 것을 경쟁으로 인한 하락으로 착각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경쟁으로 인한 가격하락,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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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미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일의 미래 - 10년 후, 나는 어디서 누구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린다 그래튼 지음, 조성숙 옮김 / 생각연구소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작년에 국내의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직장인들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인가 조사를 해서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남녀 모두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나타낸 것은 ‘월급날(36%)’이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남성의 경우 로또(28.2%), 카드값(24.6%), 배우자 또는 애인(22.6%), 퇴근(21.9%) 순으로 나타났으며, 여성의 경우 퇴근(30.8%), 카드값(24.9%), 주말계획(21.7%), 이직(17.1%)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조사가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를 떠나서 많은 분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가 어릴 적부터 그려왔던 즐거운 직장생활과는 크게 다릅니다. 물론 우리가 생각해왔던 직장생활이 비현실적이라고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비현실적’인 기업이 있습니다.

 

 … 2009년까지 12년째 <포춘> 선정 ‘가장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포함됐고, 2010년과 2011년엔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1998년 구글을 창업한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지식 근로자’들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답을 얻은 곳도 바로 'SAS Institute'였다. 2003년 미국 CBS의 유명 시사 프로그램 <60 Minutes>는 “직원을 왕처럼 대접하는 회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 (「위클리비즈 인사이트」p.134)

 

  

 정보분석 소프트웨어분야에서 세계 1위의 회사인 ‘SAS’에는 4,240명의 직원을 위한 유아원이 회사 내에 두 곳이나 있으며, 병원도 있습니다. 또한, 신입사원을 포함해 전 직원이 개인 사무실을 쓰며, 수영장과 농구 코트, 마사지실, 미용실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야근과 잔업 그리고 해고와 정년이 없으며 주당 근무시간은 35시간이죠. 직원들의 ‘칼퇴근’을 위해서 오후 5시 이후엔 전화를 자동응답기로 전환한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꿈의 기업’이라고 할 만하지 않나요? 이러한 것들은 우리나라와는 동떨어진 꿈나라 이야기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비현실적’인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국내의 한 출판사가 ‘6시간 근무제’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들은 조금씩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면 이러한 일과 직장생활이 미래에는 어떻게 변화할까요?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2025년엔 어떻게 변할까요? 저자는 이 책 <일의 미래>에서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2025년의 생활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암울한’도 않와 ‘밝은’도 않 모두가 가능합니다.

 

 먼저 저자는 책에서 암울한 미래를 ‘수동적인 미래(Default Future)’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 미래는 이렇습니다. 파편화되고, 고립되고, 외로움이 넘치고, 빈곤과 불평등에 무감각한 사회. 말 그대로 암울한 미래지요. 반면에 밝은 미래인 ‘만들어가는 미래(Crafted Future)’는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으로 창조력이 넘쳐나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잡아가면서 행복한 여가를 보내고, 나이와 관계없이 일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래를 만들어내는 데 영향을 미치는 다섯 가지 힘으로 기술 발전, 세계화, 인구변화, 사회적 변화, 에너지 자원의 변화를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힘은 클라우드의 보편화, 인구의 도시 집중, 이민증가, 행복감 감소 등의 좀 더 구체적인 32가지 변화로 나뉩니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미래는 간단하게 ‘편리’하되 ‘편안’하지만은 않은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그리는 미래처럼 말이죠.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때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그리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과 태블릿 PC가 데스크탑 컴퓨터를 대체하고 통신이 더욱 발전하게 되면, 재택근무가 증가하면서 근무시간이 유연해집니다. 그리고 초고속 여객기처럼 교통수단의 발달은 주말의 해외여행을 가능케 할 것입니다. 이런 미래는 왠지 지금보다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미래를 이렇게 긍정적으로 그리는 것은 우리가 ‘편안’이 아닌 ‘편리’의 관점에서만 미래를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편리’와 ‘편안’은 다르기 때문에 편리하지만 편안하지는 않은 사회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스마트폰이 컴퓨터를 대체하고 재택근무가 증가하면, 아마도 일과 개인 생활의 경계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밤낮없이 동료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밤새 업무에 시달릴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휴대폰이 등장하면서 우리들의 생활은 매우 편리해졌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개인 생활이 상당 부분 사라졌죠. 그리고 최근에는 자신이 메시지를 확인했는지까지 상대방이 알 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래를 예측할 때에는 ‘편리’와 ‘편안’의 두 가지 모든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살펴보면 저자가 주장한 것처럼 수동적인 미래(Default Future)가 될 수도 반대로 만들어가는 미래(Crafted Future)가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두 미래가 함께 나타날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 저와 같은 ‘개인’은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까요?

 

 2025년의 미래를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으로 저자는 크게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로 ‘유연한 전문 능력’입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여러 분야를 조금씩 아는 제너럴리스트의 경우에는 기술의 발달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게 됩니다.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일반적인 지식을 쌓는 ‘팔방미인’의 문제는 옆 사람이 경쟁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뭄바이에 있는 사람도 아니다. 제너럴리스트의 가장 큰 경쟁자는 위키피디아, 구글 웹로그 분석(Google Analytics), 또는 보편적 지식을 대체할 온갖 기술 애플리케이션이다. (p.219)

 

 때문에 여러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지식이 ‘깊이’입니다. 과거 19세기의 장인들처럼 깊이 있는 기술과 지식을 통해서 자신만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저자가 두 번째로 주장하는 것은 ‘인적 네트워크’입니다.

 

 서로 연결된 글로벌 세상에서 혁신과 창의성은 다가올 수십 년을 대비해 계발해야 할 중요한 목표가 될 것이 분명하다. 창의성과 혁신은 주로 다른 이의 노하우와 전문성, 네트워크와 연결되었을 때 이루어낼 수 있다. 즉, 진정한 혁신의 가능성은 진정한 통합을 통해 등장한다. (p.272)

 

 이처럼 세계의 50억 명 이상이 서로 연결되면서 새로운 가치들을 창조할 미래에서는 무엇보다 자신만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소규모 수색대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대규모 아이디어 집단, 그리고 휴식과 활력을 위한 공동체와 만남을 구축할 것을 주문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탐욕스러운 소비자에서 열정적인 생산자로 변화할 것을 주장합니다. 고액의 연봉과 소비가 아닌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경험을 목표로 하라는 것입니다. 즉 일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더 균형 잡히고 의미 있는 업무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러한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르게 되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여기에 더해 ‘변화를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쩌면 저자의 말처럼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문명의 붕괴》에서 언급한 ‘잠행성 정상상태(creeping normalcy; 불규칙하고 아주 느린 변동으로 인해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는 상태)’에 빠져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무엇이 변화하고 있는지 알아채고 그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이며, 그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는 태도와 습관을 기르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 <일의 미래>는 미래를 예측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저자도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미래에 대한 예측은 빗나가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예측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해 나가면서 조금이라도 변화에 대응하고, 좀 더 주도적으로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평범한 자기계발 도서보다도 미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도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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