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만 우울하고 나만 불행하고 나만 소똥 밟은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같은 여행을 하고 있는 동지들이었다. 단지 누구는 더 멋있게 꾸미고 누구는 더 빛나 보이고 누구는 더 긴 손가락으로 V 자를 그리며 타지마할 배경의 사진을 찍을 뿐이었다. 웃는다고 해서 슬프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내가 일 종의 포모 증후군에서 놓여난 첫 순간이었다. 다들 잘나가고 일 잘하고 자유롭게 삶을 즐기고 있는데 나 자신만 뒤처지고 소외되어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 깨달음이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 누구도 예외 없이 우리 모두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다.

우리 모두 그렇지 않은가요?

우리 모두는 도움이 필요하다. 자만은 ‘나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 이다. 그리고 겸손은 ‘나는 다른 존재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이다]


첫장부터 끝장까지 뼈와 살이 되는 글들로 위로와 위안과 공감과 감동과 자유를 얻었다.





새는 해답을 갖고 있어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노래하는 것이다._마야 안젤루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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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되는 일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후회되는 일은 장만옥을 만나러 가지 않은 일이다.

그때 왜 그토록 용기가 없었을까? 치파오 복장을 보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어쩌다. 등려군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들려도 마음은 그때로 돌아가는데 만나면 말하려고 영화 속 대사를 수없이 외워 지금도 현지인처럼 말할 수 있는데.]
“我想 每天 正开眼睛 都 看到妳 ” 워시앙 메이티엔 쩡카이얜찡 떠우 칸 따오 니. p122

1000% 공감하는 글이다.

1989년 1월 대만과 홍콩을 다녀와서 중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북경어가 아닌 대만표준어였다.
기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언어의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일취월장, 괄목상대의 실력을 발휘하면서 1년6개월만에 일기를 중국어로 쓸 수 있었고 매일밤 100 여명의 홍콩배우들의 이름을 한자로 쓰면서 잠들었다.
1991년 타이페이는 한번 더 다녀왔지만 1992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번체자 주음부호에서 간체자 한어병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공부했다.
반복보다 좋은 학습은 없다.
내가 중국어를 배운 이유는 오직 하나, 유덕화가 한국에 오면 통역사로 그의 옆에 서 있기를 꿈꾸면서.
華仔天地의 국제팬클럽회원도 되었다. 지금의 아미들 못지 않은 열정으로.
그러나 잠실체육관, 유덕화의 첫 콘서트 무대와 나와의 간격 150m의 거리를 끝내 좁히지 못했다. 찰랑찰랑 긴생머리를 좋아한다고 해서 십수년을 유지했다.
후회되는 일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후회되는 일은 유덕화를 만나러 홍콩에 다시 가지 않은 일이다. 낼모레 환갑인데 아직도 ‘화華‘ 자만 봐도 심쿵심쿵하는데 말이다. 동시통역도 가능했던 능력은 출산후 소멸해 버렸고 이제는 겨우 하고 싶은 말만 할 수 있다.
배운 중국어로 수 많은 중국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내가 진정한 유덕화의 연인이라 인정한다.
나는 아화메이 다. 我是阿华妹。

不要问我一生曾经爱过多少人?
나에게 묻지마세요 일생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사랑했었는지?
我一辈子只爱一个人,就是您。
내 일생 사랑한 사람은 당신 하나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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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자에게는 아름다움을 주고 슬픔을 발견하는 자에게는 슬픔을 준다. 기쁨이나 지혜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반영이다."

(카이오아족 큰 구름이 한 말) - P30

편지 내용에 심금이 울린 사람은 스스로의 글에 도취한 나 자신뿐이었다. 받은 편지를 들고 와서 현실적으로 성공한 다음에 꿈에 도전하라고 훈계하고 라면을 대접 받고 간 일은 있었다. 결국 내 꿈을 이뤄 줄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분명히 설명했다. - P54

언제나 니체의 책을 들고 다니지만 한 번도 읽지 않은 하지만 너무 오래 들고 다녀서 표지가 해지고 수십 번 읽은 것처럼 보이는 비결을 터득한 철학과 복학생도 있었다. 그는 마치 삶이라는 책을 들고 다니지만 한 번도 제대로 펼쳐본 적 없는 우리를 각성시키려는 듯 고독한 선지자 같은 자세로 등장하곤 했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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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일일일사선행一日一事善行》을 가훈으로 정했다
살면서 매사에,누구에게나, 자타가 착하다고 여길 정도의 언행. 친절하게 대하면 원怨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할즈음 《˝착하고 친절하라˝》로 가훈을 써 벽에 걸었다.
사실은 나 자신이 착하지도 친절하지도 못해 내게 가장 필요한 실천 강령이었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 그들의 혼이 뼈와 만나는 저 안쪽에서 어떤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는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 P49

혼이 뼈와 만나는 곳에서.....

‘일자리를 잃었어요‘

‘병과 싸우고 있어요‘

‘이혼의 상처로 아파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어요.‘

‘자존감이 바닥이에요?‘

‘그저 껴안아 줄 사람이 필요해요‘

"방세를 못 내고 있어요?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스티커를 등에 붙인 고독한 전사이다. 
그 등은 어떤 책에도 담을 수 없는 이야기를 지고 다닌다. 따라서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참고‘ 친절해야 한다.
인도인 친구가 다음의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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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책이 없는 가방이라니... 죽전역 스마트도서관에서 급하게 선택 버튼을 누르고 꺼낸 책
🤫돌려주기 싫다 🫢 그렇다면
🤔구입하는 수 밖에.



˝외로운 소년이 밤하늘을 본다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
지켜야 할 약속
빌린 책은 돌려줘야한다.
6월11일

paradox 소유가 자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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