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문명의 충돌’은 청각 장애인들이 말로 나누는 대화와 같다. 누구도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조현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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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문화가 기사도와 기독교를 어떻게든 조화시키는 데 실패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계는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 모순은 모든 인간 문화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사실 이것은 문화의 엔진으로서, 우리 종의 창의성과 활력의 근원이기도 하다. 서로 충돌하는 두 음이 동시에 연주되면서 음악작품을 앞으로 밀고 나아가듯이, 우리의 생각과 아이디어와 가치의 불협화음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고, 재평가하고, 비판하게 만든다. 일관성은 따분한 사고의 놀이터다.

만일 긴장과 분쟁과 해결 불가능한 딜레마가 모든 문화의 향신료라면, 어떤 문화에 속한 인간이든 누구나 상반되는 신념을 지닐 것이며 서로 상충하는 가치에 의해 찢길 것이다. 이것은 모든 문화에 공통되는 핵심적 측면이기 때문에, 별도의 이름까지 있다. ‘인지 부조화’다. 인지 부조화는 흔히 인간 정신의 실패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핵심자산이다. 만일 사람들에게 모순되는 신념과 가치를 품을 능력이 없었다면, 인간의 문화 자체를 건설하고 유지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예컨대 기독교인인 당신이 근처 모스크에 참배하러 가는 무슬림을 정말로 이해하고 싶다면, 모든 무슬림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순수한 가치들이 무엇인지 찾아볼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무슬림 문화에서 가장 극심한 딜레마의 현장을 찾아봐야 한다. 규칙이 서로 충돌하고 규범이 서로 난투를 벌이는 지점 말이다. 무슬림들이 두 가지 지상명제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지점이야말로 당신이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다.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조현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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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을 보장하는 방법은 형편이 더 나은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이외에 없다.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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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도 마찬가지다. 정치권력, 교육학자, 교육관료의 입김으로부터 한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많은 교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2015 교육과정 개정을 밀어붙였다. 이렇듯 교육과정을 포함한 교육정책에서 교사들은 늘 들러리였다. 학교는 폭력의 온상으로, 교사는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에 우리는 교사가 교육의 주체로 서겠다는 열망을 표출하고 싶었다. 교사의 삶과 꿈을 이야기하며 우리 교육의 거품을 덜어내고 새로운 교육을 상상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 <교사독립선언, 실천교육교사모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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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육계의 흐름은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자율적으로 학습하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학교들은 민주적인 학습환경, 관용적이고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는 생활지도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요즘은 ‘지도‘란 말에 대해서로 불편함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로 인한 결과들은 썩 만족스럽지 않다. 교실붕괴라는 신조어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어쩌면 우리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책의 저자 ˝베른하르트 부엡˝은 독일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엄격한 훈련의 필요성을 이야기 한다. 그가 지적한 문제들을 보면 마치 지금 한국을 보는 것 같다. 문화배경이 달라도 교육문제는 다 비슷한 모양이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엄격함이란 과거 학교의 체벌이나 폭력에 의해 유지되는 그런 형태는 아니다. 도리어 저자는 이를 인격을 무시하는 비인도적인 방법이라 비판한다. 어디까지나 벌이라는 것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권위‘다. 권위가 없이 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나 역시 동의한다. 오늘날 교육자들 중 상당수가 학생과 교사의 동등함을 이야기한다. 물론 학생이나 교사나 같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동등하다. 그러나 그 역할은 분명 다르며 ‘선생‘이라는 단어의 뜻처럼 더 오래 살아온 이의 권위는 인정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교육이라기보다는 그저 상호배움이다.

어떤 이는 이를 가장 이상적인 교육형태로 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럴거면 뭐하러 ‘학교‘란 교육기관을 둔단 말인가. 보편교육의 근거를 어디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저자의 말처럼 교육은 뱃사공이 노를 젓는 것과 같다. 한쪽에 치우침은 교육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여유와 자유로움만 강조한 결과 교사들은 티비, 유튜브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다. 물론 이는 과장된 표현이긴 하다. 아직까지 그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미디어의 영향력이 가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종일제 교육같이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러나 다양한 체험활동에 대한 강조와 엄격한 훈련과 일관적인 질서제시 같은 부분은 반복해서 읽을 만 하다. 어쩌면 우리는 자유, 인권, 민주주의라는 이념에 지우쳐 정작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이 아닐까? 실상 이 이념들이 현실에 구현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짧은 책이고 짜임새도 괜찮다. 생각이 다른 분들이라도 읽어볼만하다. 분명 오늘날 교육계의 모습은(중등은 모르겠지만)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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