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제나 불안에 시달리는 것 같다. 특히 현대사회처럼 복잡한 사회에서 내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불안하다.

물론 둔감한 사람들은 왜 이런 고민을 하냐고 하겠지만 나는 나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다. 어떻게 보면 중증의 강박관념이라 하겠다.

내가 내 행동의 결과를 모두 알게 된다면 어떨까? 그러니까 전지해지만 어떨까? 그럼 불안해하지 않을까? 글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안해할지도 모른다. 내 불안은 이성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차를 운전하고 나서부터 언제나 사고가 나지 않을까 불안하다. 물론 평소에는 그렇지 않지만 간혹 부딪히지 않았나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별 일 없었을 것이라 확신해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안감을 느낀다.

차라리 옛날 사람들은 불안해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도 않겠다. 그때는 그 시대만의 불안이 있었을 것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오롯히 자유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법정스님처럼 무소유를 실천해얄까? 하지만 난 그 스님처럼 살기는 삶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누릴 것은 좀 누리며 살고 싶은데.

지지대가 필요하다. 그 어떤 불안해도 위로해주고 돌아갈 곳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 또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얽매이고 싶진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에게 얽매이고 싶은게 내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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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08-26 0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느긋하게 하루를 열고
차근차근 삶을 지으면서
언제나 노래하는 마음이 된다면
불안이라고 하는 아이는
어느덧 살그마니 사그라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1. 들어가며

[6] 친근한 열 가지의 먹을거리를 연결 고리로 다채롭고 풍성한 이야기를 담았다. 세계사는 결코 책 속에 박제되어 있는 학문이 아니다.


2. 감자(부제: 아일랜드 사람들이 영국에 품은 원한)

[11] “나는 램프 불빛 아래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하였다.”

- 감자는 간식이 아니라 한 끼 식사. 배고픈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소중한 작물.

3. 악마의 과일? 돼지나 먹는 것.

[15] 그렇게 되기까지 거의 200년이나. 선입견의 무서움.

[16] 프랑스의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도 감자 보급에 애썼다는 기록이 있어. 1770년 프랑스에 흉년이 들어 기근이 심각했을 때 감자 덕분에 겨우 어려움 극복.

4.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20] 아일랜드에서 감자는 18세기 이후부터 주식으로 사용. (참고)22쪽. 그러던 중 감자에 심각한 병충해(감자 마름병)가 생기고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굶어죽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갔다. 당시 신대륙으로 이주한 유럽사람 다섯 명 가운데 2 명이 아일랜드 사람.

[23] 그런데 영국인 지주들은 그 와중에도 원조는커녕 아일랜드에서 계속 곡물 공출. 영국인 지주들에게 아일랜드는 단지 이윤추구를 위한 기지일 뿐. 오늘날에도 자본가-노동자 관계는 마찬가지.

[26] 최근 1인당 국민 소득이 영국을 뛰어넘은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영국에 대한 적대감도 나아진다. 우리나라가 몽골보다 일본에 분개하는 것도 이런 심리적 열등감이 있을지도 모른다.

5. 소금. (부제)간디의 비폭력 저항

[38] “아름다움으로 옷을 입지 말고 위엄으로 입읍시다.”

- 아름다움이란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다. 그저 돈 주고 유행을 쫓아 옷을 사 입는 것이 눈으로는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란 여러 관점이 있지 않은가?

[46] “악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선에 협조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의무입니다.”

- 선에 협조하는 것이 목숨을 내걸어야 되는 시대가 될 경우 선에 협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폭력으로 봐야될지 모른다. 하지만 악에 협조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6. 후추. (부제)대항해 시대를 연 원동력

[57] 자극적인 맛이 나는 먹을거리가 거의 없는 유럽. 황금보다 비싼 후추.

[58] 국가차원의 도움. 세계지리와 천문에 관한 지식. 지도. 튼튼한 배를 만드는 조선술.

[61] 콜럼버스가 발견한 것, 감자, 옥수수, 토마토, 담배, 코코아 같은 새로운 작물들.

7. 탐험가들의 영광과 오욕

[54] 그 숱한 고생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탐험을 해나가는 탐험가들의 항해사들의 용기와 도전 정신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있었던 숱한 약탈과 핍박은 영원한 오욕으로 기록될만하다.

[55] 천연두, 코르테스, 피사로 → 잉카, 아스테카 문명 파괴, 스페인의 식민지배
그들은 과연 영웅인가

8. 돼지고기, 대장정에서 문화 대혁명까지.

9. 중국 돼지와 세계 인플레

[66] 중국은 전통적으로 돼지고기를 지지거나 볶아서 즐겨 먹었기 때문에 ‘특별 관리 품목’에 들어있다. 하루에 소비되는 돼지고기의 양이 약 14만 톤으로 다 자란 돼지 약 70만 마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67] 돼지의 수요↑ ≫ 사료(주로 옥수수) 수요↑ ≫ 사료 가격↑ ≫ 돼지고기 가격↑

[68] 중국의 곡물수요↑, 석유값↑ ≫ 옥수수↑ ≫ 옥수수를 주식으로 먹는 빈곤 국가의 식량난 악화

10. 빵, 마리 앙투아네트를 둘러싼 오해들.

[84] 고대 로마는 폭동을 무마하기 위해 배급을 넉넉히 하면서 빵을 공짜로 나눠주었다. 빵과 서커스, 그리고 공중목욕탕은 로마 시대 집권층이 서민들을 달래려고 제공한 일종의 서비스인 셈.

- 고대 로마 시대에도 이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난은 돌봄의 대상이 아닌 자업자득이 되었고 지금은 복지를 하면 안 된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91] 마리 앙투아네트는 처음에는 환영받았지만 결혼 후 몇 년 동안이나 임신을 하지 못하자 민심은 차츰 멀어져 갔다. 임신을 하지 못했다고 멀어진 민심이라...

[93] 선입견의 무서움. 우리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95] 프랑스 대혁명은 위대하다. 하지만 그게 정의였을까?

11. 바게트와 크루아상, 그리고 세계의 국기

[96] 바게트=평등빵.

[97] 크루아상, 이슬람의 상징을 빵으로 빚어서 먹음으로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

12. 닭고기, 프랑스의 선량한 왕 앙리 4세와 때를 잘못 만난 미국의 후버 대통령.

[104] 백성들이 왕이나 지도자층에게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바로 등 따시고 배부른 것.

[110] 앙리 4세, 신교도였으나 카톨릭으로 개종했다. 그러나 낭트 칙령으로 더 이상의 종교 전쟁을 막고 현명한 사람을 재상으로 등용하고, 귀족의 세금을 늘리며, 상공업자들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함으로써 상업과 공업을 부흥하도록 도왔다. 그뿐 아니라 토지 관리, 도로망 확충, 운하 건설과 캐나다 퀘벡 주 개발 등등 수많은 사업들이 앙리 4세 때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는 ‘선량왕’이라고 불린다.

13. 옥수수, 미국을 방문한 흐루쇼프

[119] 현대인들이 옥수수를 소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식용유, 액상 과당 등등. 심지어 청량음료의 원료로도 사용된다.

[120] 최근에는 바이오 연료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으며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옥수수 가격이 치솟게 된다. 그 결과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더 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다.

[124] 옥수수는 다른 곡물에 비해 가격 대비 포만감이 크다.

[125] 흐루쇼프의 말. “우리는 국민들을 잘 먹고 잘 입게 잘살게 도와야만 합니다. 마르크스 이론을 수프나 옷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 40년 동안이나 공산주의를 실시했는데 어떤 사람이 한 잔의 우유나 한 켤레의 구두조차 가질 수 없다면, 사람들이 그에게 어떻게 말하든 간에 그 사람은 공산주의가 좋은 것이라고 믿지 않을 것입니다.”

[135] 미국은 이미 터키에 소련을 위협하는 미사일 기지를 가주어 놓은 상태. 미국인들이 플로리다 반도 코앞에 있는 쿠바 섬에 미사일 기지가 세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면 소련인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미국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날카롭게 반응하고 있는 오늘날 중국의 모습도 마냥 소인배로 몰아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14. 바나다, 유나이티드 프루트 사와 바나나 공화국의 수난

[141] 바나나를 생산하는 제3세계의 농장들은 대부분 대형 다국적 기업 소유. 돌, 델몬트, 치키타 같은 브랜드.

[142] 바나나는 상하기 쉬운 과일이기 때문에 많은 살충제를 뿌린다. 노동자들이 각종 질병에 노출되고 있으나 딸린 식구를 위해 열학한 환경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다.

[145] 치키타의 전신, 유나이티드 프루트 사

[149] 중남미의 원주민들이 ‘녹색 교황’이라고 부를 만큼 절대 권력을 행사해왔다. 과테말라의 정당한 선거로 뽑힌 아르벤스 대통령까지도 쫓아낼 정도로.

15. 샴페인 이름을 둘러싼 알력

[162] ‘샴페인’이라는 발포성 포도주는 그 이름이 프랑스의 샹파뉴 지방에서 만들어진 데서 유래. 그 지방에서 생산되는 포도주에만 샴페인이란 명칭을 붙일 수 있도록 베르사유 조약에서 프랑스가 압박. 그 이유는 승전국인 프랑스가 패전국인 독일의 포도주 산업을 규제하려 했기 때문이다.

[164] 미국에서는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될 때 상원 의회에서 이 조항에 대한 비준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샴페인이라는 말을 어디든 자유롭게 쓸 수 있다.

16. 이민노동자

[166] 1960년대에 유럽이 경제적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면서 노동력이 많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그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게스트 워커’ 즉,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들여왔다. 독일에는 터키사람들이, 프랑스에는 북아프리카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다. 지금 프랑스에 살고 있는 알제리 노동자만 해도 백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168] 경제적 혼란이 지속되면서 최근에는 이민 노동자에 대한 시선도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17. 아편전쟁

[174] 영국은 차를 아주 좋아했지만 기후조건이 맞지 않아 주로 중국에서 수입하였다. 또한 중국 도차 제품도 인기가 많았다. 그 결과 무역 적자가 심각해졌다. 무역 적자를 극복하기 위하여 생각해낸 것이 바로 아편이다.

[183] 중국은 아편중독 문제를 막기 위하여 영국인이 소지한 아편까지 모두 파기시켰다. 이에 대해 영국은 1840년 전쟁을 일으켰다. 소위 ‘무역전쟁’ 또는 ‘아편전쟁’이라고 불린 이 전쟁의 승자는 영국이었고 그 결과 중국은 1842년 난징조약을 맺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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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첫 번째 독서모임은 김산 선생님의 그림책 읽기로 시작되었습니다. ‘나무는 좋아라는 책을 읽어주셨는데 이번 독서모임 책의 주제와 잘 어울리는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용은 좀 밋밋한 감이 있지만 장마다 흑백과 컬러가 교차되는 특이한 구성, 나무를 심자 라는 교훈은 꽤 의미심장한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림책 읽기 후 본격적인 밑줄 독서 나눔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기존에 이미 독서모임을 해본 사람들부터 나눈 후 새로 오신 분들의 나눔이 있었습니다.

많은 나눔이 있었지만 여기에는 몇 개만 간추려봅니다. 먼저 장인에 대한 이야기인데, 과거와 달리 사회가 분업화 되면서 장인이라고 불릴만한 존재가 사라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장인이라는 존재가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과정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사라짐으로 인하여 아이들이 생활에 필요한 것을 배울 기회가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사들 중에도 아이들 주변의 삶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어떻게 탄생하고 사라져 가는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고명재 선생님 말씀 따라 교사는 깊이는 아니어도 전반적인 내용을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치 대목장처럼 말입니다.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교사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삶과 유리된 우리네 교과서, 교육과정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이 글에서 교육이야기도 등장하는데 이 책의 교육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학교교육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른바 도제교육인데 이는 과거 르네상스 시절 유럽 길드에서 등장한 것으로 어떤 특수한 기술은 여전히 이런 교육이 실시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제교육에서 스승은 제자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지 않습니다. 그저 함께 생활할 뿐이고 제자가 스스로 학습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은 스승의 입장에서 굉장한 조바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런 조바심을 견딜 수 있는 인내심이 바로 스승에게 요구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도제교육의 이야기는 오늘날 학교와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학교교육이 배워야 할 점도 분명히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교사는 전반적인 내용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동시에 교사는 이를 앎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사들은 강의식 수업에 너무 익숙해져 말로 전달하는 것으로 교육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물론 말로 전달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고 아이들이 마땅히 잘 전달받아야 옳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보여줘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사실입니다. 교과서의 글들은 교과서답게 잘 정련된 것이지만 추상적·개념적인 것들이 대다수입니다. 아무래도 언어로 표현된 것이라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그치지 말고 실질적으로 본이 될 수 있도록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학교의 의무 중 하나는 사회화입니다.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인간을 키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무는 아이들의 원만한 사회 생활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아이들의 개성, 책에서는 성깔이라고 표현되는데 이러한 다양성을 목재를 합판 만들 듯이 죽여버린다면 이는 사회의 진보를 꺾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자가 말했듯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생각해얍니다. 학교 내에서 지금 사회 내에서 쓸모없어 보이는 재능이 미래에는 다른 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 쓸모라는 것도 사회의 인식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가지치기는 필요하지만 아예 죽여버리는 것은 지양해야할 바입니다.

책의 모든 내용이 다 일맥상통합니다.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신 모든 나눔들이 다르지만 하나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저자의 나무에 대한 태도는 우리가 배워야 할 바가 아닌가 싶습니다. 동시에 사람을 다룬다는 점에서 더 강한 인내심과 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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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3-29 0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서는 어버이가
학교에서는 교사가
서로 아름다운 어른으로서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즐겁게 잘 클 테지요.

시골에서 살며 날마다 느끼는데
나무는 우리가 심거나 돌보지 않아도
스스로 아름드리로 크게 뻗어요.
따사로운 손길이 아니라면
나무한테 도움이 되는 일이 없더군요.

깊은 숲에서 수천 해를 살아온 나무는
사람 손길을 닿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우람하게 자라는구나 싶어요.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는
우람하게 나무가 뻗기가
참 힘들거든요...
 

한동안 귀에 들리지 않았던 불쾌한 소식이 다시 들린다. 고용부에서 1023일까지 해직자도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정을 폐기하지 않으면 노조아님을 선포하겠다고 한다. 즉 전교조가 누리고 있던 법적 지위를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교조는 법외노조가 되며 그동안 체결한 여러 단체협약 등이 무효화 되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용부의 권고를 일단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해고자가 제대로 노조활동을 할 수 있다고 여겨지지도 않고 여하튼 3년이란 시간이 있었으며, 대법원 재판에서도 그 권고가 부당하지 않다고 판결한 이상 이를 계속 무시할 명분은 없다. 비록 맘에 들지 않더라도 그 법이 아주 부당하지 않는 이상 일단은 따라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후 법 개정을 위한 노력을 해야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고용부의 권고를 설령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시행령의 한 조항만 가지고 노조 지위를 박탈하는 것은 분명 과다한 조치다. 그냥 벌금을 때려도 되지 않은가? 그런 논리라면 법 조항을 신나게 무시하는 대기업들은 다 폐업조치 시켜야 옳은 것 아닌가? 왜 대기업에게는 솜방망이 벌금만 때리면서 전교조에 대해서는 노조아님을 선포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말 불쾌하기 그지없다. 법과 원칙? 물론 법과 원칙은 중요하다. 그러나 국정원에 대해서 묵묵부답으로 있는 청와대는 물론이려니와 노동자들의 탄압에 실눈만 뜨고 있는 고용부가 이를 운운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더불어 법과 원칙의 중요성과 아예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조치는 전혀 상관이 없다. 법과 원칙은 민법과 민사소송법처럼 이를 지키기 위한 법과 원칙이 따로 존재하기 마련이고 이에 근거하여 지켜져야 옳다. 노조 지위 박탈이 과연 법과 원칙에 근거하여 이루어지는 조치인가? 노조 지위 박탈에 대해 법률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는 아직 조항도 없고 판결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불어 지금 국회에 해고자의 노조원 지위를 인정하자는 법률이 계류된 상태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런 조치에 대해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현재 국제 노동계는 전교조 입장에 서 있으며 해외 선진국 어느 나라도 해고자의 노조원 지위를 인정한다는 사실만으로 노조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지 않는다. 심지어 시장 자유주의의 천국이라는 미국조차 그러하다.

최근에 청년(15~39) 근로자와 구직자들이 만든 세대별 노조인 '청년유니온'이 전국 단위 노동조합으로 공식 인정을 받았다. 구직자도 노조원으로 인정되는데 해직자가 노조원으로 인정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법률도 아니고 시행령으로 이를 강제하는 것도 문제다. 법과 원칙은 언제나 그것이 정말 옳은지 점검받아야 한다.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050211293466471

밤에 우울한 소식을 들으니 더 우울하다. 일단 법외노조가 되는 것은 너무 손해가 막심한 일이고 3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시행령을 거부할 명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약자에게만 발휘되고 허구헌날 글로벌을 외치면서 세계적 흐름과 동떨어진 정부의 법과 원칙 적용이라는 구호는 정말 밥맛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스스로 방문을 걸어 잠근 국정원녀에 대해서는 인권을 드높이 외쳤던 박근혜 대통령이 인권 중 하나인 부당 해고자의 노동권에 대해서는 왜 갑자기 법과 원칙만 되풀이 하는지 아마 알 사람은 알 것이다. 결국 자기 입맛에 맞게 법과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 어떤 분석도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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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학교에 비고츠키를 연구하시는 박동섭 교수님께서 오셔서 강의를 해주셨다. 비고츠키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 알 뿐 잘 모르기 때문에 새로운 이론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들었다. 반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의 재탕일지도 모른다는 작은 우려도 들었다.

 

학교가 인사업무와 성과급 관련 회의로 분주한 까닭에 강의의 시작은 약간 늦어졌다. 특히 학교 컴퓨터가 자동으로 리부트 되는 말썽을 부리는 바람에 노트북으로 교체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약간 늦어졌지만 강의는 정상적으로 시작되었다. 교수님은 초반부라 그런지 바로 비고츠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상식이라 불리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셨다. 생각해보면 이것도 본론인 비고츠키의 사상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강의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박동섭 교수님게서 말씀하신 비고츠키는 데카르트로 대변되는 서구 본질주의의 영향을 받은 주류 심리학에 의문을 품고 반기를 든 학자다. 그는 마음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통해 존재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확실히 사회적, 문화적 관습은 우리의 눈에 색안경을 끼우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백인과 흑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심리적 이미지가 본질적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은 백인 문화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는 나에게 있어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본질주의에 의문을 제기한 주장은 이미 니체나 비트겐슈타인 등을 통해 접한 바 있고 이는 현대 서구철학의 주류 흐름이기도 하다. 비록 깊게 공부하지는 못했지만 철학과 관련된 책은 제법 읽었던 터라 그다지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양한 사례와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박동섭 교수의 강의는 들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특히 강의의 백미는 닥터 진 영화에서 비고츠키의 사상을 찾는 것이었다. 이 영화의 에피소드 말미에서 주인공이 남긴 메시지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그는 자신이 잘난 줄 알았지만 에도시대에 떨어져보니 내가 잘난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연구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라는 고백을 남긴다. 그 고백을 들으면서 박동섭 교수가 발견하고 알리고 싶어하는 비고츠키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우리가 말하는 본질이란 과거의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노력에서 탄생한 것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다고 볼 때 본질이란 것은 어쩌면 거대한 대양 위에 떠도는 빙산 한 조각일 뿐이다.

 

박동섭 교수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고 세상을 분리된 것으로 보는 현대 사회에 귀중한 이야기다. 그런데 한편으로 불편함도 느껴졌다. 문화와 관계에 좌지우지 되는 것이 인간이라면 는 무엇일까? 양승현이라는 이름을 지닌 나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나에게 있어 이것은 정체성과 자유의지의 문제다.

 

특별한 근거는 없지만 나는 인간이 환경과 문화의 영향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인생이 너무 덧없지 않은가?

 

그리고 오랜 역사 속에서도 유지되는 가치는 존재한다. 오늘날 인권이라 불리는 이것은 문화의 가치와 수준을 논할 수 있는 근거이자 본질이다.

 

우리는 모든 문화를 인정할 수 없다. 식인 풍습을 아무리 문화상대주의 관점을 고수하더라고 인정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바람직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도 가장 근본적인 본질은 존재해야 한다. 본질이 없다면 바람직한 문화를 어떻게 판단할 것이며 인류가 어떻게 진보할 수 있단 말인가?

 

비고츠키에 대해 교육학으로만 접한 사람들은 박동섭 교수의 강의에 상당한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교육학이라는 좁은 영역에서 피상적으로 비고츠키를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비고츠키에 대해 많은 의문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요즘 혁신학교 패러다임에서 비고츠키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기 때문이다. 박동섭 교수와 같은 열정적이면서 탐구적인 학자들이비고츠키의 진면목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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