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그릇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3
마츠모토 세이조 지음, 허문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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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보다는 단편이 훨씬 더 좋은 작가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코 아사다 지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또 여기에 한명의 작가를 추가하고 싶다.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다. <점과 선>에 이어 <모래그릇>을 읽었다. 장편치고는 짧아서 중편이라고 볼 수도 있는 <점과 선>과는 달리 <모래그릇>은 장장 560페이지가 넘는, 말 그대로 장편추리소설이다. 이 두 작품은 일본인들로부터 가장 기억에 남는 세이초의 작품 1,2위로 선정된 바있다.

 

 

철도와 국내선 비행기의 출발시각과 도착시각의 차이를 트릭으로 이용한 <점과 선>은 범죄의 동기보다는 범인의 범행 방법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정통 추리소설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다소 미흡하고 작위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1950년대에 쓰여진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추리소설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모래그릇> 역시 선(善)을 악(惡)으로 되갚는다는 내용을 중심 줄거리로 하고 있어 처음부터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작품이다.

 

 

한센병을 앓는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방랑하던 일곱살짜리 어린 소년이 있다.

우연히 만난 순경의 호의로 아버지는 자광원이라는 한센병 환자 치료기관에 입소를 하게 되면서 어린 아들의 행방은 묘연해진다.

직업 의식이 투철한 순경이었으니 분명 7살짜리 어린이를 그냥 놔두지는 않았을텐데....

어린 소년은 어째서 그의 보호에서 벗어난 걸까. 바로 여기에서부터 미키 겐이치의 불운은 시작된다.

 

인간은 절대악도 절대선도 아닌 무지(無知)의 상태에서 태어난다고 가정할 때, 와가 에이료 아니 모토우라 히데오의 악마성은 한센병 환자와 그 가족들을 철저하게 소외시키는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빚어진 건 아니었을까. 오히려 사회적 편견을 깨고 한센병 환자를 보듬어 안은 사람이 피해자라는 사실이 가슴을 친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일찌감치 수면위로 들어난다. 세이초는 범인이 '왜(범행동기' 그리고 '어떻게(범행방법)'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역추적해나간다.

 

유일한 단서인 '가메다'라는 동북지방 사투리를 시작으로 펼쳐지는 이마니시 형사의 추적은 상당히 지루하게 전개된다. 나루세 리에코가 이마니시 형사의 동네에 이사오게 되고, 그러면서 리에코의 집 근처에서 휘파람을 불며 얼씬거리던 미야타 구니오가 이마니시 형사의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이마니시 형사의 여동생 집에 미우라 에미코가 세들게 된다는 점등은 남발까지는 아닐지라도 우연성이 지나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양자로 받아들여 키워준 것도 아니고, 그저 단 한번 그것도 7살때 스쳐지나친 인연을 잊지 않고 찾아갔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잃는다는 설정 역시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부분이다.

 

 

사실, 피해자 미키 겐이치와 가해자인 와가 에이료 사이에는 목숨이 오고갈만큼 뿌리 깊은 원한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 미키 겐이치는 와가 에이료를 협박하지도 않았는데 와가 에이료가 과거의 비밀이 탄로날까 지레짐작 겁을 집어먹고 20여년만에 나타난 미키 겐이치를 잔인하게 살해한다는 설정은 어딘지 어색하다. 솔직히 세이초답지 못하다.

 

특히, 세이초가 범행동기에 무게를 둔 작가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반면, 범행에 사용된 옷과 그 옷을 처분하는 방식이라든지 작은 단서를 이용하여 예를 들면 영화관에 내걸렸던 대형기념사진처럼 일상의 작고 사소한 것들을 단서화시키고 하나씩 조각난 실마리들을 차례로 이어붙여 재배치하는 솜씨는 감탄을 불러올만큼 탁월하다.

 

 

<모래그릇>은 평소 아카데미식 파벌과 기성 문단과 평론계에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었던 세이초가 그들의 위선과 현학을 작심하고 폭로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작품속에서는 이마니시 에이타로와 같은 인물이 있어 결국 추악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만, 작품 밖에서는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도 상당수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더욱 슬퍼진다. 자신의 야망과 출세를 위해 타인의 호의를 철저하게 이용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타인의 소중한 목숨까지 빼앗는 일들이 작품 밖의 세상에서는 더욱더 기세등등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 컬렉션 상중하 세권을 모두 읽은 다음에 만나서 그런지 <모래그릇>은 생각만큼 속도감있게 읽히지는 않았다. 단편에 비해 호흡도 다소 길고 부연설명도 길뿐만 아니라 초음파로 사람을 죽인다는 점 역시 상상력은 돋보이나 어딘지 사실성이 떨어지고...

 

그렇지만 세이초의 단편들이 지친 여름철에 마시는 탄산음료같은 강렬한 맛이라면, 그의 장편작품은 한모금씩 쉬엄쉬엄 마시는 녹차의 맛처럼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더 깊숙히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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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무너지고 말 모래그릇을 빚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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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중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2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미야베 미유키 엮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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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마쓰모토 세이초의 걸작 단편컬렉션을 드디어 모두 읽었다.

미야베 미유키가 책임 편집을 맡아 더욱 유명해진 세이초 단편컬렉션은 모두 상중하 3권으로 출판되었다. 그러나 내가 자주 가는 도서관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상,하권만 비치된 상태였다. 일단, 상하권을 모두 읽은 후 도서관측에 중권이 누락되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참만에야 마침내 중권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비교적 최근인 2009년도에 나온 책이라서 절판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만약, 절판이라도 되었더라면 도서관측으로서는 구입하고 싶어도 구입할 방도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쓸쓸한 여인들의 초상'과 '불쾌한 남자들의 초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중권의 제5장과 6장은 인간의 내면적 심리에 대한 심도깊은 관찰이 특히 돋보인다. 특히 <서예강습>은 겉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인간의 모습을 세이초 특유의 반전을 통해 형상화한 아주 빼어난 작품이라 하겠다. 이야기 구조와 전개 방식 및 세부적인 묘사까지 어느것 하나 부족함이 없다.

 

 

『은행원인 가와카미 가쓰지는 외근 중, 변두리에 자리한 기모노점의 예사롭지 않은 필체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기모노점 바깥양반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모노점은 사라지고 만다. 한편, 가와카미가 종종 들리곤 하던 고서점은 쉰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주인과 그런 남편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젊은 안주인이 번갈아가면서 가게를 지킨다. 가와카미는 육감적인 고서점 안주인에게 호감을 품었지만 음침한 남편으로부터 그녀를 빼앗아 보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와카미는 이런 속마음과는 달리 파친코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후미코에게 서서히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순전히 첫눈에 반한 고서점 안주인과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결국, 따지고 보면 고서점 안주인에게 첫눈에 반한 것이 가와카미에게는 불행의 씨앗이었던 것이다.

 

 

가와카미는 뜻밖의 곳에서 우연히 '가쓰무라'라는 문패를 발견하게 된다. 그 이층집은 기모노점의 미망인이 옮겨온 곳으로 서예강습 팻말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드디어 본격적으로 취미를 살리나 보다고 가와카미는 생각했다. 평소 서예에 관심이 있던 가와카미는 망설이는 가쓰무라 히사코를 졸라 서예강습을 받게 되는데, 단 한번도 다른 강습생과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 점이 가와카미의 흥미를 끌었다.

 

 

한편, 후미코에게 돈을 뜯기기 시작하면서 매일매일 생지옥을 헤매는 것같은 가쓰무라의 마음은 서예강습을 받으면서 약간의 위안을 얻는다. 그런데 가쓰무라는 서예강습소가 사실은 남들 눈을 피해 은밀히 운영되는 '업소'라고 짐작하게 된다. 그가 뜬금없이 왜 이렇게 짐작했던 걸까?

 

이런 가쓰무라의 추측은 고서점 안주인인 다니구치 다에코가 젊은 남자와 이곳으로 드나드는 것을 목격하고는 더욱 굳어진다. 그러던 어느날. 젊은 남자와 외도를 즐기던 다니구치 다에코가 가나가와 현 사가미 호숫가의 산림 속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서예강습소로 다에코가 들어갔음을 확인한 가쓰무라는 젊은 남자가 서예강습소로 위장한 '업소'에서 밀애를 즐기다가 다에코를 죽이고 다음날 아침 유유히 사라져버리자, 가쓰무라 히사코는 자신의 비밀영업이 탄로나지 않도록 사람을 시켜 몰래 다에코의 시신을 호숫가 근처에 유기했다....? 가와카미는 이렇게 추측한다. 그리고 자신의 추측을 확신하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파국을 향해 첫발을 내딛게 된다.

 

 

후미코의 협박이 집요해지자 가와카미는 드디어 결심을 한다.

서예강습소로 후미코를 유인하여 죽인 후, 시체처리는 히사코에게 맡기는 것이다.

 

가와카미의 계획은 행동으로 옮겨지고 언뜻 성공한 듯 보인다.

 

그가 아내 야스코에게 기모노만 사주지 않았더라도... 아니, 하필 새로 부임해간 지방 소도시의 집에 도둑이 들지만 않았더라도... 아니, 도둑이 가와카미의 고급양복과 새로 구입한 아내 야스코의 기모노만 훔쳐가지 않았더라도... 아니, 아내 야스코가 잃어버린 기모노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하지만 않았더라도....아니, 기모노 장물아비조직을 검거하는데 일조하여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된 아내가 한껏 우쭐해지지만 않았더라도....평소 마음 속 깊이 내재되어 있던 아내의 지적 허영심이 발현되어 취재기자에게 "(우리) 남편도 서예를 배운 적이 있지만,"이라는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말따위는 하지 않았을 터. 그랬더라면 가와카미의 후미코 살인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았을 것이다. 』

 

 

 

 

<멀리서 부르는 소리>는 연애할때 종종 동생을 데리고 나갔던, 사소하지만 다소 이기적인 언니의 행동이 부른 슬픈 결말이 참으로 가슴을 치게 만드는 작품이다.

 

"예전의 처제였다면 저 보리밭 속에 숨어서 우리를 불렀을 거야. 그래, 예전에 주젠지 호숫가 안개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게이코는 그 말에도 이렇다 할 대답 없이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쓸쓸한 얼굴이었다.

두 시간쯤 뒤, 두 사람은 역으로 돌아왔다. 두 시간 동안 요컨대 그런 정도밖에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시오는 그녀를 만나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차가 도착하자 두 사람은 개찰구에서 헤어졌다. 움직이기 시작한 차창으로 내다보니 게이코는 얼굴 가득 웃음을 짓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열흘쯤 지나면 또 만날 것 같은 인사였다.

객실에서 자리를 잡고 나자 문든 눈물이 나왔다. 게이코의 속을 비로소 알았다고 생각했다.

자기 부부가 고엔지에 신접살림을 차리자 발길을 딱 끊었던 것도, 훗카이도로 옮겨 아기를 낳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이 많은 남자의 후처 자리로 기꺼이 들어간 것도, 그리고 금세 다른 사내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인 것도ㅡ아기는 잘 자라냐고 물었을 때 미처 숨기지 못한 그녀의 복잡한 표정을 보고 도시오는 깨달았다.

게이코는 자신을 연모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 부부의 생활이 단단히 뿌리를 내릴 때마다 애써 멀어지려는 행동을 취했다. 자기와의 거리를 더 떼어 놓으려고 스스로 굴러 떨어졌던 것이다.

남학생들과 어울리고 후처로 들어가고 사랑의 도피 행각을 할 때마다 그녀는 멀리서 자기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형부ㅡ."

"형부ㅡ."

주센지 호숫가 안에서 모습을 감춘 채 부르던 그녀의 목소리가 그의 귓불에 되살아 났다.

 

도시오가 귀경하고 한 달 남짓 지나자 게이코가 또 처자식 딸린 탄갱부와 눈이 맞아서 도망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도시오는 다시 게이코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마쓰모토 세이초, <멀리서 부르는 소리> 中, 1957년 作-

 

 

<멀리서 부르는 소리>는 행동거지가 얌전하지 못한ㅡ특히 남자편력이 화려한(?)- 여자들에게 갖었던 평소 나의 선입관을 다소나마 완화시킨 작품이다.

어쩌면 그녀들도 게이코처럼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몸부리 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과거의 사랑이 되지 못한, 영원히 현재진행형인 사랑으로부터 멀리 멀리 도망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사연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남자인 마쓰모토 세이초는 어떻게 여성의 내면을 이다지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의 뛰어난 관찰력 덕분이라는 말은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눈을 뜨고 보아도 보이는 않는 것들이 존재하는 법이므로. 세이초는 눈으로 관찰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성별을 초월한 인간 내면의 심리에 대한 세이초의 깊은 통찰을 설명할 방도가 없다.

 

 

 

 

<권두시를 쓰는 여자>는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무의탁 환자를 범죄를 감추는 '도구'로 철저하게 이용하는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난 후, 다음과 같은 질문에 시달려야만 했다.

도대체 인간의 '악의스러움'의 끝은 어디인가?

 

아내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던 구사카베 슌스케는 생명 보험금 이백만 엔을 노리고 있었다. 애인이 애광원 간호사의 친구였는데, 그 간호사를 통해 가족없고 죽음이 임박한 시무라 사치코라는 시료 환자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그 이야기를 슌스케에게 전하자 그는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냈다. 사치코를 데리고 나와서 죽기를 기다렸다가 아내 이름으로 사망 절차를 밟자는 것이었다. 나이도 그리 차이 나지 않는다. 사치코가 시코쿠 M시 출신이라는 사실은 간호사를 통해 알고 있었으므로 동향인에게 기부한다는 구실로 사치코에게 접근했다. 종종 병문안을 가다가 그는 사치코를 사랑하게 된 것처럼 연기했다. 사랑에 주려 있던 사치코는 금세 슌스케에게 기울었고, 청혼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나카노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이집도 그가 계획을 세우면서 미리 빌려 둔 집이었다.

사치코는 자기 병이 암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냥 위궤양이라고 믿고 있었으므로 자택에서 요양하게 하겠다는 슌스케의 배려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가정부까지 붙여 주었다. 이 가정부가 슌스케의 애인이며 살인 공범자임을 그녀는 전혀 몰랐다.

(...)

사치코는 사월 십일 오후 열시가 지나서 사망했다. 죽을 즈음에는 가정부의 정체를 눈치 챈 듯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치코가 숨을 거두자마자 임종을 지키던 슌스케는 재빨리 세타가야 자택으로 가서 아내를 자동차에 태웠다.

(...)

슌스케는 아내 구사카베 다이코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자마자 뒤에서 넘어뜨리고 목을 졸라 죽였다.

의사는 사치코의 사망을 확인하고 사망진단서를 써 주었다. 그녀는 의사에게 이미 구사카베 다이코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연령도 엇비슷했다.

의사가 돌아가자 슌스케는 미리 준비해 둔 관에 아내의 교살 사체를 넣고 뚜껑을 닫았다. 한밤중에 못질 소리가 나면 곤란하므로 동이 트고 나서 했다고 한다. 병사한 사치코의 사체는 슌스케가 안고 대문 밖 자동차에 실은 후 직접 운전해서 옮겼다. 이것이 열두시경으로, 역시 이웃집 아들이 차가 출발하는 소리를 들었다.

슌스케는 심양의 고슈 가도를 달려 기타타마 군의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논길 옆에 사체를 버리고 돌아왔다.

(...)

그가 집을 나가 있던 두 시간 동안 애인은 대담하게도 본처 사체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쓰모토 세이초, <권두시를 쓰는 여자> 中, 1958년作-

 

'그래, 인간은 한없이 악해질 수도 있어.'

그렇지만, 그런 만큼 또한 한없이 착해질 수도 있는 거야. 그게 바로 인간인 거야.'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람의 행방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하이쿠 동인잡지 <가마노호>의 주간 이모토 바쿠진과 같은 사람이 나의 터무니없는 위와 같은 확신을 뒷바침해 주니 참으로 고맙다.

 

 

 

범인의 심문 과정을 작품 곳곳에 등장시켜 범인의 목소리로 사건을 재현하고 고백하도록 하는 기법은 이젠 흔한 형식이지만 세이초가 한창 작품 활동을 하던 5,60년대에는 상당히 참신한 시도였으리라. 세이초는 이와 같은 구성을 통해 작품의 리얼리티를 높였다. 대학 교수 구무라 다케지의 성공과 몰락을 그린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라는 작품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검사는 구무라 다케지를 상해치사죄로 기소했다. 검사는 중년 남자였는데, 다음과 같이 논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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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건은 상해 치사죄로 기소했지만 상당한 의문이 남아 있다. 처음에 나는 피고의 진술이 사실이리라고 판단했다. 피고는 대학교수이므로 지성으로 보나 사회적 지위로 보나 일반 범죄 피고인과 동일시할 수 없었다. 나는 피고의 인격을 믿었다.

(...)

피고와 오쓰루 게이노스케의 관계를 조사해보니 피고가 오쓰루 교수를 은사로서 매우 존경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오쓰루 게이노스케가 공직 추방에서 풀려나자 지금의 대학으로 복직시키려 노력하고, 종종 집에 초대하여 대접하고 서적을 빌려주는 등 은사를 후대한 적이 많았다는 것을 알았다. (...) 따라서 피고가 피해자 스미코에게 은사를 위해 즉시 고소를 취하하라고 종용했다는 말은 신뢰해도 좋았다고 생각했다.

(...)

조사에 따르면 당일 밤 피고는 열시경 집을 나서서 긴자에 있는 술집에 갔다. 피고의 부인에 따르면 집을 나설 때까지 피고는 매우 불안한 표정으로 초조해했다고 한다. 긴자에서는 술집을 세 군데나 전전하고, 나아가 새벽 한시경 신주쿠 유흥가로 가서 술집을 다시 두군데나 거쳤으며, 새벽 세시경에야 귀가했다.

(...)

이것은 기이한 일이다. 피고의 성격을 보면 꼼꼼하고 냉정한 편이다. 술은 즐기지만 여때까지 그렇게 마신 적도 없고 그렇게 만취한 적도 없다고 가족과 지인들이 증언하고 있다.

(...)

스미코는 피고의 애인이다. 애인이 지금 다른 남자에게 욕을 당하고 있다, 또는 당할 예정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각을 전후한 몇 시간 동안 단절부절못했던 것이다.

(...)

단적으로 말하면 피고와 스미코가 그 일을 상의했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억측을 해 보자면 피고가 스미코에게 지시했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참으로 기괴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는 작정하고 오쓰루 게이노스케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계획이 아닌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과연 그럴 만한 이유가 피고와 오쓰루 게이노스케 사이에 있었을까. 나는 그 점을 조사해 보았지만, 전혀 찾을 수 없었다.

(...)

다음으로, 피고의 서재를 조사해 보니 형법 책이 한 권 있었다. 피고의 서재는 전공인 역사학에 관련된 서적분이었고 형법에 관한 책은 그 책이 유일했다. 그것도 새 책이었는데, 표시를 해 놓은 것인지 책 중간에 빨간 색연필이 끼워져 있었다. 긴급 피난 항목이 설명되어 있는 페이지였다.

(...)

색연필을 끼워둔 페이지는 '카르네아테스의 판자'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조난당한 두 사람이 나무판자 하나에 매달렸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밀어내고 자기만 살아남는다는 일화다. 피고는 왜 그런 일화에 흥미를 느꼈을까? 판자에 남은 사람이 피고라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사람은 스미코일까 오쓰루 게이노스케일까.

이상을 보건대 나는 피고가 실수로 스미코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진술에 강한 의심을 품고 있다. 즉 처음부터 살해를 계획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피고의 진짜 목적을 알 수 없다. 명확한 증거도 없고 추측만으로 기소할 수도 없으므로 상해 치사죄로 기소하기로 한 것이다.

 

 

-마쓰모토 세이초, <카르네아데스의 판자>中, 1957년 作-

 

 

 

 

마쓰모토 세이초는 작품을 구상하기 전에 철저한 조사와 자료 수집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형법의 긴급구조란에 '카르네아데스의 널'이라는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

 

세이초 역시 다량의 문헌조사와 신문 등을 읽으면서 형법에 위와 같은 내용이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세이초는 신문에 나온 범죄사건과 법원의 판결에 관한 내용등을 꼼꼼하게 읽고 스크랩하고 기억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과정에서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기소되지 않거나 혹은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에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고, 생각을 집중하고 상상력을 더욱 진전시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일년 반만 기다려>라는 작품 역시 '정당방어'에 대한 법조문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었다.

 

 

 

<공백의 디자인>은 거대한 사회구조 속에서 작은 부품에 지나지 않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섬뜩하리만큼 신랄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지방지인 Q신문 광고부장 우에키 긴사쿠는 일류제약회사 와도 제약의 신제품 '랑키론'의 광고를 광고 대행업체인 고신샤로부터 받아 싣는다. 그러나 랑키론 광고가 실린 면에 랑키론 주사를 맞고 사망한 사건이 2단으로 실린 기사를 발견하고는 기겁한다. 와도 제약의 광고가 끊기는 것은 물론이고 광고 대리업체가 다른 광고까지 주지 않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우에키는 오만한 편집국장의 얼굴을 떠올린다.

 

 

직접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올라간 우에키는 고신샤의 향토신문과 과장은 만나보지도 못한 채 부과장인 나카타에게 갖은 수모를 다 당한다. 그렇지만 일개 지방신문사에 불과하지만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를 위해서 꾹 참는다. 도쿄에서 며칠 머무르며 매일같이 고신샤를 찾아가 무시와 수모를 당한 우에키는 마침내 나카다를 통해 이번 일은 나구라 다다카즈과장이 직접 Q신문사를 찾아가 매듭짓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간신히 전해 듣고는 귀향한다.

 

 

직접 내려온 나구라 과장을 영접하고 접대하는 일은 자연히 광과부장인 우에키 긴사쿠의 몫이다. 그는 나구라 과장이 접대 자리에서 호탕하게 웃으면서 기분 좋게 즐기는 것을 보고는 일이 잘 풀릴 것으로 확신하다. 그동안 노심초사하면서 공을 드린 결과이리라. 전무님도 이런 우에키 부장의 노고를 잊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이거 대접이 소홀해서 어쩌지요."

전무가 고개를 납죽 숙이며 인사했다.

"천만에요. 신세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선물까지 주시고, 송구스럽습니다."

(...)

"전무님"

나구라가 말했다. 나구라 다다카즈의 얼굴에서 지금까지 내내 보이던 호방한 웃음이 갑자기 사라졌다. 얇은 눈썹 밑에서 가는 눈이 이상하게 번뜩였다. 나구라는 전무 귀에 입을 바짝 댔다.

"저도 모처럼 여기까지 왔으니 이번에 일어난 골치 아픈 문제와 관련해서 와도 제약에게 내놓을 선물을 들고 돌아가야겠습니다. 이것만은 양해해 주셔야겠습니다."

열차가 플랫폼으로 미끄러져 들어오기 전, 겨우 이삼 분 새였다.

전무의 안색이 변했다. 선물이란 말의 뜻을 알아들은 것이다.

"자, 그럼 이만"

나구라는 열차가 도착하자 다시 큰 소리로 호방하게 웃으며 전송 나온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특급칸 차량 속으로 사라졌다.

 

Q신문 광고부장 우에키 긴사쿠는 전무의 애원에 못 이겨 그날로 사표를 냈다.

 

                                                  -마쓰모토 세이초, <공백의 디자인>中, 1959년作-

 

 

씁씁함을 넘어 목에서 '울컥' 시큼한 것이 넘어왔다.

와도 제약회사에게 전해줄 선물이란 바로 그동안 회사를 위해 살아온 우에키 긴사쿠의 해고였다.

우에키는 대학입시를 앞둔 큰아이와 중학교에 다니는 둘째를 둔, 네 식구를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이다.

 

 

거대한 사회구조와 싸워야 하는가? 아니면 그 속에 철저하게 동화되어 스스로 사회구조가 되어야 하는가?

우린 모두 매일 매일 이런 얄굳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우치보리 히코스케는 스스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믿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공범>은 반전이 돋보이는, 색다른 공포감을 그린 대단한 작품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범죄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까하고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으며, 알려진 잔인한 범죄행위에 대해서 몸서리를 친다. 공포라면 의레 이런 종류의 것이리라.

반면, 범죄자가 느끼는 두려움의 원천은 범죄행위가 발각되진 않을까 하는 것이다.

<공범> 은 바로 이런 범죄자가 느끼는 공포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공포는 '공범'으로부터 온다.

 

이제 모든 행복이 그에게서 떠나려 하고 있다. 그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남자가 그를 향해서 뚜벅뚜벅 다가오고 있다. 그자가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우치보리 히코스케는 은행 강도였다는 실체가 폭로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서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하게 되리라. 그자는 언제라도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물귀신처럼 부자가 된 공범을 물고 늘어질 것이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마치다는 집과 재산을 자포자기한 상태다. 그는 자기와는 달리 성공한 자리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은 공범에게 질투와 증오를 품을 게 틀림없다.

돈을 우려내자고 마치다 다케지는 작심했으리라. 그래서 혈안이 되어 히코스케를 찾고 있는 것이다. 마치다는 히코스케에게 악랄하게 우려낼 속셈이다. 그것이 성공한 공범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마쓰모토 세이초, <공범> 中, 1957년 作-

 

 

 

 

 

우연히 깊은 산속에서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 시체를 감춘 사람의 신원을 알게 되었다면?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번거로움을 면하기 위해 '누군가 신고하겠지...'라는 심정으로 못 본 척 할 것이다.

 

반면, 이를 누군가를 협박하여 돈을 갈취하는 '기회'로 이용하려는 사람은 없을까? 아마 드물긴 하겠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특히, 경제적으로 쪼들리거나 말 못할 비밀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신고하는 대신 타협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더군다가 협상 상대가 성공한 사업가로 남몰래 바람을 피우다가 상대 여성이 단순실족사하자 자신의 부정이 탄로날까 두려워 시체를 숨기고 자기만 아는 비밀로 한 것이라면 말이다. 이런 비밀을 기회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이를텐면 죽은자의 억울함보다는 산자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선의를 베푼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회사공금을 횡령하고 도망다니는 아즈오카와 남편과 이혼한 후 온천 여관의 종업원이 된 기쿠가 바로 이처럼 죽은자가 아닌 산자에게 '선의'를 베풀고자 한 이들이다.

 

아즈오카와 기쿠가 이치사카 히데히코의 '약점'을 이용한 방법과 사건의 진상을 풀어 나가는 방법은 '과연 세이초구나...'할만큼 절묘하다.

 

 

1, 평소 미인도를 표지로 삼고 있는 신생 월간지 <신류>가 뜬금없이 산(山) 그림을 표지로 올린다.

2,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언니 하마에의 앨범 속에는 쌍둥이산 사진이 있다. 평소 언니는 사진 촬영를 좋아했으며 행방불명되기 직전에도 사진기를 챙겨들고 어느 지방으로 촬영 여행을 떠난 터였다.

3, 월간지 <신류>의 편집장은 판매부수나 편집에는 신경쓰지 않고 사장으로부터 엄청난 운영경비를 받아내고 있다. 사장이 경비를 줄이려하자 표지가 산 그림으로 바꾸고...사장은 오히려 경비를 풍족하게 내놓는다. 그러자 표지는 다음호부터 다시 산그림에서 미인도로 되돌아온다.

4, 한편, 사장으로부터 엄청난 편집비를 착복하고 있는 편집장은 그닥 예쁘지도 않은 연상의 아내에게 꽉 붙잡여 살고 있다.

 

 

<신류> 편집장의 이름은 아즈오카, 아내는 한때 여관과 꼬치점 점원으로 일했던 기쿠. 그리고 <신류> 사장은 레스토랑 체인을 여럿 갖고 있는 실업가인 아치사카 히데히코다.

 

 

악의는 전혀 없었지만 자신의 안위를 위해 타인의 억울함을 모른 척 한 죄와 타인의 약점을 이용하여 협박과 갈취를 일삼은 죄 중 어느 쪽이 더 무거울까? 아마도 전자는 단 한번의 실수로 법적인 문제는 둘째치고 동정의 여지가 충분해보인다. 반면, 후자는 지속적으로 당사자에게 고통을 주는 야비하기 그지없는 짓임에 틀림이 없다.

 

 

전자에 속하는 아치사카는 사체은닉죄에 해당되며, 후자인 아즈오카와 기쿠는 공갈협박죄에 해당될 수 있을 듯...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사체은닉죄는 5년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으며, 공갈협박죄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나와있다.

 

'휴~'하고 마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 <공범> 속 등장인물인 아치사카에게 형법 긴급구조편의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를 적용시켜야 한다면 지나치게 '사심'이 들어간 것일까. 그렇지만 아치사카의 사정은 정말 딱하기 그지없어 연민이 일어날 정도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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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벚꽃지는 계절에 읽고 싶어 여러번 도서관을 찾아갔지만 그때마다 이미 대출중이었다.

그렇게 한달 남짓 흘러갔나 보다.

 

여러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도서관에서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대출할 수 있었다. 우타노 쇼고의 작품은 <움직이는 집의 살인>이후 두번째다. <물만두의 추리책방> 리뷰을 읽지 않았더라도 시적인 제목에 이끌려 언젠가는 읽었을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기다리고 기대하던 작품이었기에 단 이틀만에 다 읽어 버렸다. 주말 초저녁의 한가한 전철안에서 막바지로 향하는 작품 속 이야기를 쫓아가면서 나는 황당스러움과 함께 배신감마저 들었다. 작가에 대한 배신감인지 나 자신에 대한 배신감인지 종잡을 수 없는 미묘한 감정으로 이미 읽은 페이지들을 더듬어 나갔다. 드물지만 간혹 일어나는 '작가의 착각'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떻게 이따위 작품이 있을 수 있지!'

나의 '분노'와 '배신감'은 옮긴이의 말을 읽고 나서 어느정도 가라앉았다. 독자로서 내가 잘못 읽은 것이 아니라 작가의 원래 의도가 그러했다는 점을 이해하고 나자, 작품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에 대해서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대단하다! 놀랍다!'라는 반응을 보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작품은 2004년 출간되자 마자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본격미스터리대상'을 수상하고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에 오르는 등 베스트셀러가 되었단다.

 

베스트셀러란 말 그대로 일정기간 동안 가장 잘 팔린 책으로 대중의 취향을 대변해 주지만, 그렇다고해서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베스트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베스트셀러는 어느정도 입소문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역시 베스트셀러가 될 수있었던 이유도 아마 다음과 같은 입소문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냥 한번 직접 읽어봐!'

 

 

작품을 읽으면서 줄곧 상상해 왔던 등장인물에 대한 이미지가 산산조각이 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작가에게 물으려고 작품을 샅샅히 뒤지지만... 이거 왠걸, 작가는 거짓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론, 독자들이 오해할만한 흔적은 곳곳에 남겨두었지만 말이다. 어쩌면 작가는 바로 그 '오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해 즉 사실과는 다른 잘못된 '선입견'말이다.

 

 

작품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그리고 독자의 오해와 선입견도 함께 시작된다.

 

사정(射精)한 뒤에는 꼼짝도 하기 싫다. 여자의 몸 위에 올라탄 채, 밀려오는 졸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예전에 치과병원 대기실에 비치된 여성 주간지에서 '후희(後戱)없는 섹스는 디저트 없는 디너'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남자들에게 그 얘기를 하면 대번에 '웃기고 자빠졌네'라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일단 사정하고 나면 젖가슴 따윈 더 이상 주무르고 싶지 않다. 설령 상대가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 미국 가수)일지라도 마찬가지다. 남자라는 동물은 먼 옛날 에덴동산 시절부터 원래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내가 이러 생각을 떠올리는 것은, 지금 막 정액을 방출하고 여자의 배 위에서 거친 숨을 내쉬고 있기 때문이다.

                                    -우타노 쇼고,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p1 中-

 

 

주인공 나루세 마사토라의 첫등장은 이처럼 다소 퇴폐적이고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세리자와 기요시가 나를 선배하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내가 일곱 살 위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현재 도립 아오야마 고교에 다니고 있고, 나는 그 학교의 졸업생이다.

                          

                                     -우타노 쇼고,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p22 中-

 

 

주인공과 함께 호라이 클럽의 범죄를 캐내는 파트너인 세리자와 기요시에 대한 설명이다.

 

 

기요시가 내게 멍한 시선을 보낸다. 구다카 아이코는 이 헬스클럽의 회원으로, 이 험상궂은 녀석이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는 연상의 여자다.

(......)

"난 지금 진지하게 말하는 거예요. 그녀를 좋아하니까 그녀의 건강을 걱정하는 거죠. 그래요, 그냥 좋아하고 걱정하는 것뿐이에요. 어떻게 해볼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그런 애정도 불순하고 비윤리적인 건가요?"

기요시가 눈을 부라리며 대답을 강요한다. 나는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들어올렸다.

(......)

양갓집여자답다. 그 집안의 여자들은 3대째 세이신에 다니고 있다. 여기서 세이신은 미치코 황후가 다녔던 세이신 여학교를 말하는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시로카네에 있다. 한쪽은 양갓집 아가씨들이 다니는 최고의 여학교 출신이고, 한족은 도립 고교 재학생. 기요시에게는 너무 과분한 상대다.

(......)

기요시가 꽃다발을 내밀었다. 아이코는 더욱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안절부절못한다. 기요시는 억지로 꽃다발을 쥐어주며 묻는다.

"더위 먹은 거예요? 몸은 좀 어때요?"

"그런 거 아녜요."

"이렇게 밖에 나오는 거 보니까 아주 심하진 않은 모양이네요. 자리에 드러누웠으면 어떡하나 하고 줄곧 걱정했는데."

"그런 거 이니라니까요. 제가 아니라 가족 중 한 명이 좀......"

아이코는 가냘픈 목소리로 말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간병?"

"그게 아니라 할아버지가......"

"아, 그래요?"

"돌아가셨어요"

"넷?"

나와 기요시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아이코는 고개를 숙인 채 갈아진 목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한다. 아래로 향한 속눈썹 사이로 눈물이 글썽거린다.

                             -우타노 쇼고,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p27~28 中-

 

 

고등학생 기요시가 짝사랑하고 있는 연상의 여인 구다카 아이코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한동안 헬스클럽에 못 나온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기요시와 주인공인 나루세 마사토라가 집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아이코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된다.

 

 

자, 그럼 이쯤해서 머리속에 주요 등장 인물들의 이미지가 어느 정도 그려질 것이다. 세명의 나이를 대충 짐작해 보면, 기요시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10대후반일 것이고, 그보다 6살 많은 주인공 '나'는 20대 중반일것이며, 명문 세이신 여학교를 졸업한 구다카 아이코의 나이는 아마도 이 둘 나이의 중간 어디쯤이 아닐까.

 

 

짐작이 언제나 사실과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무의식적으로 짐작들을 기정사실화 시켜버린다. 바로 '선입견'이다.

 

 

과연 우타노 쇼고는 전통추리소설의 대가다웠다.

야쿠자들의 세력 다툼으로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두 건의 잔혹한 미스터리 살인사건을 보기좋게(?) 해결하니 말이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에는 사건을 직접 해결하는 탐정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주인공인 나루세 마사토라가 사설탐정 노릇을 잠깐 하긴 하지만 말이다. 주인공은 아이코의 '할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위장되어 타살당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호라이클럽이라는 곳을 파헤친다. 호라이클럽은 연금생활자들을 대상으로 물건강매 및 보험사기행각을 일삼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집단이다. 겉으로는 흔히 볼 수 있는 건강식품 유통회사지만 그 내막은 야쿠자보다도 더 악날하다.

 

 

처음에는 판단력이 떨어지고 건강 문제에 유난히 집착하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건강식품이나 건강생수 이불 등을 팔다가 이들이 더 이상 물건을 살 돈이 없으면 고리대금을 빌려서 물건을 사게 하고, 고리대금을 갚지 못한 이들은 결국 천문학적인 빚을 떠안게 된다. 빚에 시다리던 사람들은 자살을 택하는가 하면, 빚을 탕감시켜주겠다는 호라이클럽의 꾐에 넘어가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선량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데에 동원되고 심지어는 보험사기를 돕기도 한다.

후루야 세쓰코가 바로 이런 경우에 속한다.

 

세쓰코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두 사내가 류이치로를 떠밀고, 다카기가 차로 친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녀 자신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류이치로를 데려오고, 두 사내가 떠밀고, 다카기가 차로 친것이다.

(......)

후루야 세쓰코는 끝없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녀는 호라이 클럽이라는 거미줄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다음 목표물은 안도 시로라는 70대 중반의 노인이다. 독신이고 일가친적도 없으니, 보험 살인의 대상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녀는 다시금 감정을 마비시키고, 악마의 종이 되어 사악한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우타노 쇼고,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p368~369 中-

 

 

인구의 1/4이 연금으로 생활한다는 고령사회 일본.

이런 일본이 안고 있는 사회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해 보인다. 세대갈등은 기본이고 아예 세대간 대립과 충돌이 곧곧에서 일어나고 있다.

일자리가 없어 프리터(단기 아르바이트족)로 전전하는 젊은이들은 수입의 상당부분을 연금이나 세금 등으로 떼인다. 안정적인 직장이 없으니 결혼도 요원한 일이다. 독신자가 늘어나고 출산율은 더욱 낮아지며 아이가 태어나지 않으니 전체 인구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높아진다.

악순환이다.

 

도심의 전철이며 공원 등은 노인들로 넘쳐난다. 전철과 공원은 경로우대라는 이름으로 노인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들이 많을수록 사회는 점점 활력을 잃고 늙어만 간다. 노인혐오 현상이 대두되면서 노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고령사회 일본의 현주소다.

 

일본의 오늘이 바로 우리의 내일일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살펴보면,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전통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사회파추리소설로 분류할 수 있다.

 

작가는 나루세 마사토라, 아사미야 사쿠라, 후루야 세쓰코, 안도 시로 등을 통해 일본의, 아니 인간의 슬픈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달빛 아래 비쳐든 그 슬픈 자화상처럼...

 

벚나무가 꽃을 피우는 5월에는 너나할 것이 없이 벚나무를 찾아다닌다. 벚꽃를 보기 위해서...

그런데 벚꽃이 지고 나면 사람들의 관심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벚나무도 단풍이 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사람도 누구에게나 벚꽃피는 화려한 시절이 있는 법이다. 그 시절이 지나고 나면 꽃잎이 떨어지고 단풍이 들다가 이내 나뭇잎마저 떨구고 말라비틀어진 나목(裸木)이 된다. 그러나 나목은 어디까지나 나목일뿐 결코 죽은 고목(故木)이 아니다. 비록 화려한 꽃잎을 피우지는 못할지언정 엄연히 벚나무인 것처럼 사람도 한창 시절이 지나갔어도 여전히 마음만은 그대로인 그때 그 사람인 것이다! 우타노 쇼고는 바로 이 점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벚꽃지는 계절에...

나는 나루세 마사토라, 아사미야 사쿠라, 후루야 세쓰코, 안도 시로를 그리워하리라.

 

그리고....

또한 그대를 그리워하리라.

.

.

.

이 책, 정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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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장자 마인드
토머스 J. 스탠리 지음, 장석훈 옮김 / 북하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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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장자 마인드1,2>는 미국 조지어대에서 마케팅을 강의하고 있는 토머스 스탠리 교수가 2000년도에 출판한 책이다. 저자는 <백만장자가 되는 법: The Millionaire Next Door>을 집필하기 위해 많은 자료들을 갖고 있었지만 백만장자의 진짜 마인드를 알기 위해서 지리인구통계학과 복잡한 수리적 모델의 힘을 빌린다. 이 수리적 모델을 통해 백만장자 마인드를 지녔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일부 동네에 밀집되어 거주하고 있음을 확인한 후, 이들 중 임의로 선정된 백만장자 가정게 질문지를 발송하여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백만장자의 마인드를 분석 도출해냈다.

 

한국의 부자학 박사로 잘 알려진 한동철교수가 스탠리박사처럼 수리적 모델과 엄청난 질문지를 통한 데이터 베이스 분석을 통해 한국의 부자들을 연구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설문지를 통한 방식보다는 1:1 대면 면담 위주로 진행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는데, 만약 그렇다면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학문적 영역으로서 인정받을 만한 부자학은 태동조차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어쨌던 학설로 인정받으려면 가설을 뒷받침해주는 강력한 실험자료들과 증거들이 있어야 하니 말이다.

 

한동철 교수가 최근 야심차게(?) 출간한 <부자학 교수가 제안하는 신한국의 부자들>이라는 책 역시 스탠리 박사의 <백만장자 마인드>를 벤치마킹한 것 같은데... 정확한 데이터나 자료 분석 및 검증 과정 없이 저자가 그동안 접해왔던 부자들과의 면담 및 그에 따른 경험담 위주여서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한국과 미국 부자들의 공통점과 차이점 등을 비교 분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째서 우리나라에는 부자들에 대한 심층적 연구 자료 하나 변변한 것이 없는 걸까?

 

백만장자의 마인드: 자기관리, 인내, 용기

 

스탠리 박사의 <백만장자 마인드>를 읽고,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다름 아닌 백만장자들의 학창시절에 관한 부분이었다. 백만장자들 대부분은 학창시절 뛰어난 학생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기업에 채용될 가능성이 적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채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악전고투 끝에 마침내 부의 최정상에 오른 것이다.

 

그럼, 부자가 되는 것과 공부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걸까?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부자가 되는 데 직접적인 연관은 없단다. 학교에서 부자가 되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지는 않기때문이다. 그러나 부자들은 공부를 아주 잘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못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백만장자 마인드를 갖고 있느냐의 여부는 성적이라는 결과보다는 과정이라는 시도에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즉, 학창시절 공부를 얼마나 잘 했느냐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해보았느냐인 것이다. 이점이 바로 핵심이다. 백만장자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도전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시켰던 것이다.

 

백만장자는 학창시절에 사람을 정확하게 보는 법을 배운다.

 

부자들은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를 해 본 경험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보았지만 성적이 신통치 않았고 그 성적으론 법대나 의대에 진학하여 변호사나 의사가 되지 못한다는 걸 일찌감치 간파했다. 그래서 공부 아닌 다른 길을 남들보다 일찍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또 스스로 부족하다는 걸 학창시절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두배 세배는 더 열심히 노력했을 것이다. 분석적 지능(IQ)이 뛰어나다고 해서 실질적인 지성까지 높은 건 아니다. 백만장자들은 실질적인 지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이들 백만장자들이 타고난 것이 있다면 그건 높은 지능지수도 좋은 운도 아닌, 비로 성실하고 모범적인 성격이 아닐까.

 

 

백만장자란 자신의 아이디어와 상품을 팔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백만장자 마인드>에 따르면 미국에서 고수익을 올리는 직종으로 사업주, 전문직 종사자, 회사중역 그리고 수수료가 유일한 수입원인 판매전문가를 꼽고 있다. 우리나라도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자신의 회사를 경영하거나 의사 변호사들은 모두 자신의 아이디어와 전문 지식을 파는 사람들이다. 기업체 임직원 역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두뇌노동자라는 점에서 전자에 속하는 부류이다. 반면, 판매전문가는 아이디어나 지식이 아닌 말 그대로 상품을 판다. 그것도 주로 남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상품이건 볼 수 없는 보험이건 고객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뭔가를 판매한다는 것. 즉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지갑을 열게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문전박대를 당해야 함은 기본이고 수입 또한 일정하지 않으며 항상 고개를 숙이고 누구에게나 자세를 낮추는 '을의 입장'이여야 하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장래의 직업으로 전문판매원을 선택한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판매원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분명 남들과 다른 사람들이다. 내면으로부터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창피함과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고객앞에서 솟구치는 분노를 눌러내야만 한다. 이런 사람들이 돈을 벌지 못한다면 누가 돈을 번단 말인가?

 

순자산의 기대치=나이*0.112*수입

 

한동철 교수가 자신의 저서에서 부자를 선행부자와 후행부자로 구분했다면, 스탠리 박사는 대차대조표부자(BA)와 소득신고서부자(IA)로 나누었다. 선행부자란 부를 물려받은 부자이고 후행부자는 흔히 말하는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스탠리박사의 대차대조표부자란 부채보다 순자산이 많은 부자를 가리키는 반면, 소득신고서부자란 순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허울뿐인 부자를 의미한다. 흥미로운 점은 BA부자는 자신이 부자라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히 꺼리는 반면, IA부자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이 두가지 유형의 부자 중 누가 더 오랫동안 부자로 남을 수 있을까?

 

백만장자는 배우자를 고를 때 외모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토머스 스탠리 교수는 미국의 대다수 백만장자들은 한 명의 배우자와 해로할 확률이 90%이상이라고 한다. 백만장자들의 이혼율이 평균 이혼율보다 훨씬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부부가 헤어지는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로 경제적인 문제를 들 수 있는데 백만장자들은 일단 '돈문제'로 싸울 일이 없다. 무일푼에서 시작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부를 이룬 부부들은 서로 전적으로 신뢰하며 헌신적이다. 그리고 부자가 될 유전자를 갖고 있는 이들은 자기관리에도 뛰어나기 때문에 부정을 저지를 가능성이 매우 낮다. 행여 실수로 부정을 저질렀더라도 오랜 부부생활 속에서 쌓아온 상호 신뢰감을 바탕으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혼에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그리고 백만장자들 중에 이혼한 사람이 적은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이혼을 하면 재산을 분할해야 하기 때문에 이혼 전에는 백만장자였을지 모르지만 이혼 후에는 더 이상 백만장자라고 불리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백만장자 혹은 백만장자가 될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사랑과 외모를 결혼 조건의 하나로 생각할 뿐 유일한 조건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배우자가 젊음을 잃어버리고 더 이상 과거처럼 매력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실망하거나 배우자를 탓하고 싫어하는 일 따위는 발생하지 않는다.

 

재테크만으로 백만장자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있다. 하와이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이 쓴 책인데 그 당시 정말 광풍이라고 할만큼 이 책의 인기가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이 책을 2010년도에나 읽게 되었는데 돈을 빌려 부동산을 사고 팔고 다시 사고 그리고 또 팔고...... 이 과정을 여러차례 반복하면 누구나(?)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였다. 이책을 뒤늦게 읽고 나서 너무 늦게(?) 읽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10년이 흐른 지금.

그 당시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고, 부자아빠가 되겠다면서 부자아빠를 따라했던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다 부자가 됐을까?

그들이 만약 '그책' 대신, 2000년 8월 한국에서 번역 출판된 스탠리 교수의 <백만장자 마인드>라는 책을 읽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백만장자란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분야의 직업을 선택한 후,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정직한 태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하루하루 한달 두달 일년 이년... 꾸준히 노력한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았을까.

 

부자란 누구이며 부자의 마인드는 무엇이며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는지 알게 해준 아주 훌륭한 책이다. 내가 만약 부자의 반열에 오른다면 바로 이 책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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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한국의 부자들 - 부자학 교수가 제안하는
한동철 지음 / 북오션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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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철 교수는 현직 경영학교수로 한국에서 부자학이라는 분야를 처음으로 체계화 시킨 인물이다. 2년 전 그가 쓴 <부자도 모르는 부자학 개론>을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자학교수가 제안하는 新한국의 부자들>은 최근에 나온 신간으로 전작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전작에 비해 뭔가 부족하고 신선함이나 체계성도 다소 떨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에 '톈엔톈'등의 재테크 카페가 등장하면서 한때 크게 유행했던 '부자되는 방법 소개' 정도에 머물러 있는 듯하여 기대에는 다소 못 미쳤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한동철 교수의 '부자학 이론'에 어느 정도 통달(?)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특별한 점이 없다는 것일 뿐,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특히 부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점이 있다면 저자인 '한동철교수 역시 부자일 것이다'라는 점이다. 일단, 교수라는 그의 신분과 80년대에 미국에 유학하여 학위를 받았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그는 부자가 되는데에 필요한 생활 태도 즉 인내심, 열정, 목표에 대한 집념 등을 고루 갖추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 가까이에서 부자들을 만나고 연구했다는 것 자체가 부자에 대한 그의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말해준다.

 

 

사람이란 무릇 관심 있는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과 경험을 쌓게 되면서 부와 명예를 얻게 되는 법이지 않는가.

저자가 지금까지 낸 책 목록을 살펴보면 전공쪽으로 5권 부자학 방면으로 11권의 책을 냈음을 알 수 있다. 대학 교수이니 전공 서적이든 부자학 관련 서적이든 일단 교재나 참고서적 등의 명목으로 책을 사는 고정 고객이 있으니 책 집필에 따른 인세 수입도 상당할 것이다. 그리고 본문에서 건물을 관리해 본 경험을 언급한 점 역시 저자가 부자일 거라는 추측을 가능케 하는 부분이다.

 

 

예전에 읽은 저자의 저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부자란 더 이상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갖고 있는 부를 유지하고 지키려는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번 신간에선 "부자란 정신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물질적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가 있고, 사회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인정을 받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둘 다 무릎을 '탁'치게 만드는 정의가 아닐 수 없다.

 

 

금융기관에서는 30억 현금자산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전체 1700만가구 중 50만 가구 이하가 부잣집에 해당된다고 정의하고 있단다. 전체 인구로는 고작 3% 미만만이 부자라고 한다.

이들 부자들은 선행부자 즉 재산을 물려받아 부자가 된 사람과 후행부자 즉 자신의 노력으로 부를 이룬 사람으로 구분되는데, 우리가 모델로 삼아야 하는 건 TV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잘 나오는 선행부자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 속에 티 하나 안내고 숨어(?)있는 후행부자들이다.

 

후행부자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지구를 탈출할 정도의 노력과 인내 그리고 좋은 습관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부자들로부터 배워야 할 첫번째 습관은 바로 남탓을 하지 않는 것이다.

빈자는 실패의 이유를 자신이 아닌 남탓으로 돌린다. 일명, '귀인이론(Attribution Theoyt)'으로 성공한 사람은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반면 실패한 사람들은 주로 외부 환경탓으로 돌린단다.

 

 

둘째,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에 매진한다.

돈을 잘 벌고 근사해 보이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우습게 여기는 직업일지라도 그 속에 혼을 남아 낸다면 그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고 결국 부와 명예까지 얻게 된다는 걸 우린 주위에서 혹은 매스컴을 통해 익히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실천을 못 할 뿐.

 

 

셋째,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속담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개처럼'이란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는 한편, 체면을 중시여기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변에서 '수전노' '피도 눈물도 없는 나쁜 사람'이라고 수근거리며 손가락질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손가락질 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손가락질을 당하는 그 사람을 눈여겨 봐야 한다. 한동철 교수의 지적처럼 부자는 '처음에는 악하나 후에 착해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의 길에 들어서는 길은 자기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사람들에게도 불편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인기 있고 좋은 평판을 얻는 사람이 있다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부자 흉내를 내는 빈자이거나 아니면 이미 빈자에서 부자의 반열에 올라 덕을 행하고 있는 부자이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자를 손가락질 하면서 겉으로 부자 흉내만 내다가 죽는다.

 

 

저자는 부자가 되려면 일단 부자의 행동과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자의 행동과 습관을 배우려면 우선 부자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행동과 삶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 그렇다면 부자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그럼, 분명 주위에 부자가 한 두명 쯤은 반드시 있다. 친척들로부터 욕을 얻어 먹는 친척일수도 있고, 매일 걸어다니는 동네 어귀나 회사 앞 대로변에서도 부자를 만날 수 있다.

 

 

내 경험을 예로 들자면, 일단 우리 회사 오너와 이사님은 부자가 틀림없다. 수수하고 소박하지만 분명 엄청난 현금매출로 돈을 갈퀴로 긁어 모으고 있다. 물론, 나 역시 그 갈퀴 중 하나로 오너와 지분을 갖고 있는 이들을 위해 열심히 온몸을 땅에 던져가며 돈을 벌어주고 있다.

 

 

그리고 또 내 주위에 누가 부자일까?

아 맞다!

내가 종종 잘가는 노점상 도너츠집 주인아줌마도 부자임에 틀림없다.

새벽 5시반에 나와 밀가루 반죽을 하고 7시경부터 도너츠를 만들어 튀겨낸단다. 무려 1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도너츠를 만들어 팔아서 지금은 흑석동에 재개발된 중형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단다. 이처럼 부자는 성실하고 절약하고 소박하다.

 

 

소박하지만 초라하지 않은 것.

이것이 바로 부자의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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