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그릇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3
마츠모토 세이조 지음, 허문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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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보다는 단편이 훨씬 더 좋은 작가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코 아사다 지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또 여기에 한명의 작가를 추가하고 싶다.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다. <점과 선>에 이어 <모래그릇>을 읽었다. 장편치고는 짧아서 중편이라고 볼 수도 있는 <점과 선>과는 달리 <모래그릇>은 장장 560페이지가 넘는, 말 그대로 장편추리소설이다. 이 두 작품은 일본인들로부터 가장 기억에 남는 세이초의 작품 1,2위로 선정된 바있다.

 

 

철도와 국내선 비행기의 출발시각과 도착시각의 차이를 트릭으로 이용한 <점과 선>은 범죄의 동기보다는 범인의 범행 방법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정통 추리소설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다소 미흡하고 작위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1950년대에 쓰여진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추리소설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모래그릇> 역시 선(善)을 악(惡)으로 되갚는다는 내용을 중심 줄거리로 하고 있어 처음부터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작품이다.

 

 

한센병을 앓는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방랑하던 일곱살짜리 어린 소년이 있다.

우연히 만난 순경의 호의로 아버지는 자광원이라는 한센병 환자 치료기관에 입소를 하게 되면서 어린 아들의 행방은 묘연해진다.

직업 의식이 투철한 순경이었으니 분명 7살짜리 어린이를 그냥 놔두지는 않았을텐데....

어린 소년은 어째서 그의 보호에서 벗어난 걸까. 바로 여기에서부터 미키 겐이치의 불운은 시작된다.

 

인간은 절대악도 절대선도 아닌 무지(無知)의 상태에서 태어난다고 가정할 때, 와가 에이료 아니 모토우라 히데오의 악마성은 한센병 환자와 그 가족들을 철저하게 소외시키는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빚어진 건 아니었을까. 오히려 사회적 편견을 깨고 한센병 환자를 보듬어 안은 사람이 피해자라는 사실이 가슴을 친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일찌감치 수면위로 들어난다. 세이초는 범인이 '왜(범행동기' 그리고 '어떻게(범행방법)'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역추적해나간다.

 

유일한 단서인 '가메다'라는 동북지방 사투리를 시작으로 펼쳐지는 이마니시 형사의 추적은 상당히 지루하게 전개된다. 나루세 리에코가 이마니시 형사의 동네에 이사오게 되고, 그러면서 리에코의 집 근처에서 휘파람을 불며 얼씬거리던 미야타 구니오가 이마니시 형사의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이마니시 형사의 여동생 집에 미우라 에미코가 세들게 된다는 점등은 남발까지는 아닐지라도 우연성이 지나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양자로 받아들여 키워준 것도 아니고, 그저 단 한번 그것도 7살때 스쳐지나친 인연을 잊지 않고 찾아갔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잃는다는 설정 역시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부분이다.

 

 

사실, 피해자 미키 겐이치와 가해자인 와가 에이료 사이에는 목숨이 오고갈만큼 뿌리 깊은 원한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 미키 겐이치는 와가 에이료를 협박하지도 않았는데 와가 에이료가 과거의 비밀이 탄로날까 지레짐작 겁을 집어먹고 20여년만에 나타난 미키 겐이치를 잔인하게 살해한다는 설정은 어딘지 어색하다. 솔직히 세이초답지 못하다.

 

특히, 세이초가 범행동기에 무게를 둔 작가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반면, 범행에 사용된 옷과 그 옷을 처분하는 방식이라든지 작은 단서를 이용하여 예를 들면 영화관에 내걸렸던 대형기념사진처럼 일상의 작고 사소한 것들을 단서화시키고 하나씩 조각난 실마리들을 차례로 이어붙여 재배치하는 솜씨는 감탄을 불러올만큼 탁월하다.

 

 

<모래그릇>은 평소 아카데미식 파벌과 기성 문단과 평론계에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었던 세이초가 그들의 위선과 현학을 작심하고 폭로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작품속에서는 이마니시 에이타로와 같은 인물이 있어 결국 추악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만, 작품 밖에서는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도 상당수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더욱 슬퍼진다. 자신의 야망과 출세를 위해 타인의 호의를 철저하게 이용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타인의 소중한 목숨까지 빼앗는 일들이 작품 밖의 세상에서는 더욱더 기세등등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 컬렉션 상중하 세권을 모두 읽은 다음에 만나서 그런지 <모래그릇>은 생각만큼 속도감있게 읽히지는 않았다. 단편에 비해 호흡도 다소 길고 부연설명도 길뿐만 아니라 초음파로 사람을 죽인다는 점 역시 상상력은 돋보이나 어딘지 사실성이 떨어지고...

 

그렇지만 세이초의 단편들이 지친 여름철에 마시는 탄산음료같은 강렬한 맛이라면, 그의 장편작품은 한모금씩 쉬엄쉬엄 마시는 녹차의 맛처럼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더 깊숙히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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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무너지고 말 모래그릇을 빚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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