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블로그, 카페, 개인홈페이지, 알라딘서재... 등등 다양한 인터넷 매체가 발달하면서 바야흐로 서평쓰기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같다.

 

 

니나 상코비치 역시 평범한 개인의 특별한 독서프로젝트로 유명해진 인물이다. 친언니를 암으로 떠나 보낸 후 슬픔에 잠겨 있던 그녀는 어느날 장장 400페이지가 넘는 <드라큘라>를 하루만에 다 읽고 나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언니의 죽음 후 3년 동안 그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한 채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그녀의 신경세포들이 장시간의 독서 끝에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것이리라.

 

 

그 다음날.

니나 상코비치는 1년 동안 하루에 한권씩 책을 읽고 개인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기로 결심한다. 그녀에게 글읽기와 글쓰기는 일종의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에서 시작된 나나 상코비치의 프로젝트는 서서히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뉴욕 타임즈>에 'The 365 Project'로 소개되는 등 화제가 되었다.

 

 

개인 블로그에 꾸준히 독후감을 올리고 있으며, 올초에 '1년동안 100권 읽고 서평 100편 쓰기'를 한해 목표로 정해 실천중인 나에게 니나 상코비치와 그녀의 책 <혼자 책읽는 시간>은 호기심과 질투심을 동시에 불러 일으켰다.

 

 

<혼자 책읽는 시간>을 읽기에 앞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점은 '과연 그녀의 프로젝트는 무사히 달성되었는가? 달성했다면 어떻게 달성했는가?'였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하루 평균 두시간을 독서에 할애하고 있는 나로서는 하루에 책 한권 읽고 서평까지 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줄곧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나나 상코비치는 비록 나처럼 매일 출퇴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은 아니지만 남편과 4명의 어린 자녀들을 돌보아야 하는 전업주부로서 어린 자녀들을 등하교시켜야 했으며 식사를 준비하고 빨래와 청소를 도맡아 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장보기와 사교모임 및 가족행사등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멋지게 자신의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물론, 그녀는 슈퍼우먼이 아니며 슈퍼우먼이 되려고 하지도 않았다. 목표가 세워지자 남편을 필두로 하여 어린 자녀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밝히고 양해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설거지 당번 정하기 등 구체적으로 가족의 도움을 구했다. 그저 말로만 양해를 구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가족 구성원에게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는 점이 신선했다. 한국이라면 그러니까 니나 상코비치가 미국이 아닌 한국의 가정주부였더라도 과연 저런 발칙한(?)발상과 행동이 받아들여졌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생각과 행동이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론 심히 부럽기까지 했다.

 

 

<혼자 책 읽는 시간>은 서평집이면서 또한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니나 상코비치는 무슨 책을 읽었고 책의 내용은 이러저러하며 어떤 느낌을 받았노라...식의 글쓰기로 독자들을 식상하게 만들지 않는다. 어렸을 때 추억이 묻어나는 책들을 넘기면서 자신의 어린시절과 부모님-특히 아버지- 더 나아가 조부모代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세 명의 형제들을 잃었다. 독일군 점령하에서 빨치산이 된 러시아군이 집안으로 갑자기 들이닥쳐 세 명의 자녀를 죽이고 만 것이다. 그때 니나의 아빠는 외출중이어서 다행이 화를 면할 수 있었지만 부엌방에서 앓아 누워 있던 엄마 즉 니나의 친할머니와 함께 가족을 죽음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평생을 시달려야했다.

 

 

타인의 슬픔을 알게 되면 내 슬픔이 가볍게 느껴지는 법이라고 했던가.

니나는 자신의 이름이 스물 세살 꽃다운 나이로 숨을 거둔 고모 안토니나의 이름을 본따 지어졌음을 알고는 언니가 숨을 거두던 순간 아빠가 어째서 "하룻밤에 셋"이라고 외쳤는지 이해하게 된다. 아빠는 딸을 먼저 떠나보낸 그 순간 어린 시절 누나와 형들을 동시에 잃어버려야 했던 슬픔을 떠올린 것이다.

 

 

개인적으로 서평집을 멀리하는 편이다. 이유는 읽으면서 느끼는 심리적인 거리감 즉,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책들을 내가 읽지 않았다는 데에서 오는 '낯설음'으로 저자와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서평집은 읽으면서 집중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 읽고 나서도 아무런 감흥조차 남아 있지 않기 일쑤다.

 

 

그런데 니나 상코비치의 <혼자 책 읽는 시간>은 이와같은 심리적 거리감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저자가 책소개와 감상에 무게 중심을 두지 않고 독서를 통한 마음의 변화와 상처의 치유 과정을 솔직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와 공감하기 위해서 반드시 저자가 읽은 책들을 읽어야 할 필요도 없고 그 내용을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

 

 

마치 한편의 잘 짜여진 1인 모노드라마라고나 할까.

니나는 독서라는 방법을 통해 자신과 마주하고 자신의 상처에 직면했다. 그녀의 성공은 1년동안 매일 한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는 것이 아니라 1년 동안 매일 매순간 자기 자신을 바라본 것이 아닐까 싶다. 과거의 자기 자신까지 포함하여 니나는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했으며 또 이를 가감없이 표현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나긴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책을 읽는 과정은 자기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다.

 

 

그래서였을까? 책 속의 소제목들이 하나같이 마음속을 파고 든다. 마치 니나 상코비치가 말을 걸어 오는 것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로 영롱하다고나 할까. 그냥 그대로 한편의 시나 명언으로 삼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친구는 떠나도 책은 남는다

꼭 한 번 보물 같은 순간

밤 10시, 책장을 넘길 순간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것

종이로 슬픔을 흡수하는 법

선물 받은 책의 딜레마

남의 사랑이야기로 복습하는 옛사랑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이해되는 순간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어찌 절망으로 생을 끝내는 걸까

나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이유

톨스토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

.

.

끝으로,

그녀가 읽은 책들 중에 몇 권은 꼭 읽어 보고 싶다. 만약,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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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두 얼굴 -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
최광현 지음 / 부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가족처럼 한 개인에게 지대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과연 또 있을까? 이 세상 그 누구도 가족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고아처럼 가족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삶은 '가족의 부재'라는 영향을 받는다.

 

 

독일에서 가족상담을 공부한 최광현 한세대 교수는 <가족의 두 얼굴>이라는 저작을 통해 모든 성인이 느끼는 감정과 표출하는 행동은 모두 어린시절의 경험 및 가족과의 관계로부터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어린시절 가족 특히 엄마로부터 받은 거절의 기억을 뇌는 잊어버렸을지 몰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 흉터로 자리하고 있다가 성인이 되어 자식들에게 표출된단다. 고통스러울수록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기억을 왜곡시키거나 망각하고 고통스러운 '이 순간과 이 곳'에서 도피하고자 한다. 모든 종류의 중독현상은 바로 고통을 느끼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피하는 행위이다.

 

 

어린시절의 심리적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자살로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마릴린 먼로(본명:노마 진 모턴슨)와 매춘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린시절의 슬픔을 아름다운 동화로 승화시킨 안데르센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준다.

 

크리스턴 콜드웰은 몸과 마음에 남아 있는 트라우마를 해결하려고 '지금 여기'의 몸을 떠나는 현상을 중독이라고 합니다. 중독이란 트라우마 때문에 상처 입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 고정된 신체 반응입니다. 트라우마의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욕구충족이란 쾌락의 경험, 즉 중독이 대체물입니다. 알코올, 니코틴, 도박, 게임, 섹스 등에 의존하여 자기 몸을 떠나려고 합니다. 중독의 특성은 반복에 있습니다. 반복을 통해 우리의 몸은 중독에 익숙해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점차 내성이 생기면서 나중에는 고통을 완화시켜 주는 도구가 아닌 자신을 옭아매는 감옥이 됩니다.

-최광현, <가족의 두얼굴> 中-

 

 

 

고통의 원인을 제공해주는 심리적 상처 즉 트라우마는 성인이 되어서도 생길 수 있지만, 대부분 정신과 마음이 연약한 어린시절에 발생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몸의 이곳 저곳을 다치듯 마음 또한 다친다. 몸에 생긴 상처는 신속하게 소독하고 치료해야 흉터가 남지 않듯 마음에 생긴 상처도 즉시 치료해야 트라우마가 남지 않는다. 어린시절 마음의 상처를 적절하게 치료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적절하게 감정을 다스리고 심리적 컴플렉스를 다독일 줄 안다.

 

 

몸의 상처가 보이지 않으면 소독도 치료도 제때 할 수 없듯이, 마음의 상처 역시 외면하거나 보이지 않게 감춘다면 치료 시기를 놓쳐 심각한 후유증 즉 트라우마를 남기고 만다. 그러므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그 순간 바로 표현하고 표출해야 한다. 애써 감추거나 속이지 말고 고통의 순간들과 직접 직면해야 한다. 그리고 자책감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따듯한 위로의 말과 함께 마음이 전해지도록 온몸으로 마주해야 한다.

 

 

"괜찮아ㅡ"

"사랑해ㅡ"

 

 

가족간에는 굳이 이런 말들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 저절로 전달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지만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몸은 괜찮지 않았던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말은 거짓으로 할 수 있지만 몸은 거짓을 말할 수 없는 법이다.

 

 

어린시절 부모의 이중적인 태도 즉,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겉으로 보여지는 태도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경험한 아이는 성인이 된 이후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대해 불안감을 갖게 된단다. 늘 생각과 감정을 부정당해 왔기에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사회생활에서 어이 없이 사기를 당하거나 미신과 사교집단에 잘 넘어가는 유형 중에는 이런 사람이 많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자, 이래도 가족간에는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것인가?

 

 

어느 깊은 밤.

달리는 차안의 라디오에서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라는 유명한 감독이 '가족이란 누가 보지만 않는다면 어딘가에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했다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 순간, 가족에 대한 가장 솔직하고도 완벽한 정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나'란 존재는...

십여년 전에 돌아가신 아빠와 이제는 늙고 병약해지신 엄마... 그리고 독신으로 외롭게 살아가는 오빠와 의사로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언니와의 관계로부터 만들어졌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어느 집이나 말 못할 가족사 한 두 가지쯤은 갖고 있듯이 우리 가족 역시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만 공유되는 비밀 아닌 비밀이 있다. 화목하고 모범적인 가정이라고 할 순 없었지만 우리 가족들은 서로를 지키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던 것같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자기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선택한 행동이었지만 결국 그와같은 노력들이 지금의 나와 엄마 그리고 오빠와 언니를 만들어낸 건 아닌지...

 

 

엄마가 자식을 위해 희생했다며 더 이상 슬퍼하지 않기를...

언니가 경제적 부담을 혼자서 다 짊어졌다고 더 이상 서운해하지 않기를...

오빠가 아빠로부터 받은 상처로 더 이상 힘겨워하지 않기를...

내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 것처럼...

 

 

 

독일에서 가족상담을 공부한 최광현 한세대 교수가 쓴 <가족의 두 얼굴>이란 책은 때론 힘이 되기도 하고 때론 짐이 되기도 하는 가족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제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인정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이다.

가족에게 전하는 따듯한 말 한마디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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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노린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4
마츠모토 세이조 지음, 문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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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의 장편은 <점과 선> <모래그릇>에 이어 <너를 노린다>가 세번째다. <너를 노린다>는 <눈의 벽>이란 제목으로 1957년 <주간 요미우리>에 연재된 작품이라고 한다. 그의 첫번째 장편인 <점과 선> 역시 같은 해에 월간 <旅>에 연재되었다고 하니, 세이초는 두 편의 장편을 동시에 집필했던 셈이다. 세이초의 놀라운 집필속도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역시 장편 두 편을 동시에 쓰다니 대단하다!

 

 

<너를 노린다>는 <점과 선>이나 <모래그릇> 등의 작품처럼 대가의 명작으로 꼽히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어음사기 과정을 구체적으로 재연한 점이며, '우익'이라는 거대한 사회조직의 존재를 그려낸 점만으로도 세이초의 역량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다만, 그가 창시한 사회파 추리소설의 출발선에 있는 작품인만큼 '범행동기를 '가난한 시골 아이의 열등감' 정도로 귀결시킨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야기는 중소기업인 쇼와전기제작소의 회계과장 세키노 도쿠이치로가 어음사기를 당해 회사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이에 자책감을 느껴 자살하면서 시작된다.

 

세키노는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는 안주머니 단추를 끄르면서 순간적으로 약간의 불안을 느꼈다. 그러나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그것을 뿌리쳤다. 무슨 걱정이 있단 말인가? 은행원에게 안내되어 들어온 은행 응접실이다. 오야마 상무도 만났다. 그 모든 것은 이 호리구치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호리구치에게 눈치채여 괜히 불쾌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돈은 꼭 필요하다. 여기서 거절당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전무를 비롯해서 5천명이나 되는 종업원이 기다리고 있는데......세키노는 자기 책임이 얼마나 중대한지 절실히 통감했다.

그는 흰 봉투를 거냈다. 그리고는 약간 떨리는 손 끝으로 안에 든 것을 끄집어냈다.

"여기 있습니다."

쇼와 전기제작소 발행의 액명 3천만원짜리 어음이었다.

 

-마쓰모토 세이초, <너를 노린다> 中 p27~28-

 

 

 

사기는 이처럼 일말의 불안이라고 하는 조짐으로부터 시작된다. 다만, 이와 같은 불안을 체면이나 어쩔 수없는 상황에서 애써 무시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이 어쩔 수 없는 상태를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내어 '먹이감'을 속이느냐가 사기범의 기술에 해당되리라.

 

 

직원 월급날을 하루 앞두고 제도권 은행으로부터 차입을 할 수 없었던 쇼와전기제작소의 회계과장 세키노는 이와 같은 절박한 상황이 사기꾼을 불러 모으는 '미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자기 딴에는 최대한 신경을 쓰고 보안에 유의하면서 돌다리를 몇 번이나 두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두드린 돌다리가 살짝 흔들리는 걸 얼핏 직감했지만 '설마...'했을 것이다. 아니, 설령 돌다리가 무너질지언정 그에게는 되돌아갈 퇴로. 즉,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막다른 길에 접어들어 버리면 터무니 없는 '용기'와 '희망'이 멀쩡한 눈을 멀게 하는 법이다.

그래서 멀쩡히 두 눈 똑똑히 뜬 상태에서 사기를 당한 후 때늦은 후회를 한다.

 

 

R상호은행의 상무 오야마가 홋카이도로 출장을 간 사이, 누군가 오야마 흉내를 낸다. 고리대금업자 야마스기 기타로 사무실의 여직원-우에자키 에쓰코-으로 부터 소개받은 호리구치라는 사기꾼은 일당 2명과 함께 국회의원 명함으로 R상호은행의 응접실에 들어가 세키노로 하여금 오야마역을 맡은 일당을 R상호은행의 오야마 이사로 당연히 여기게끔 만들었다.

 

 

나 역시 일찍이 은행 VIP고객 응접실을 개인적인 목적으로 이용해본 적이 있다. 물론, 계약이 완료된 후 그 자리에서 온라인으로 은행 업무를 보긴 했지만 말이다. 사기꾼들이 좀 더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면 은행이나 기타 관공서의 응접실 및 접대 공간을 범행 장소로 둔감시키고 버젓히 이용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행 응접실은 당연히 은행직원들만 사용하는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믿음 즉 'blind spot' 혹은 '사고의 맹점'을 사기꾼들은 덫으로 이용한다.

 

 

회계과장 세키노 도쿠이치로의 부하직원인 다쓰오 다무라는 상사의 억울함을 풀 요량으로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분서주하는 과정에서 사채업자인 야마스기 기타로의 사무실 여직원 우에자키 에쓰코를 미행하여 그녀가 우익의 한 계파를 이끌고 있는 후네자카 히데아키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아낸다.

 

그리고 그 와중에 두번째 희생자가 나타난다. 바로 쇼와전기제작소의 상임 변호사인 세누마 변호사가 고용한 전직 형사 출신인 다마루 도시이치다. 일명 신주쿠 살인사건으로 불리면서 전담 수사본부가 차려지고... 다쓰오-다무라팀과 수사팀이 마치 경주라도 하듯 앞서거니 뒷거니 범인의 흔적을 추적해간다.

 

 

수사회의가 본부에서 열렸다.

주임은 그 석상에서 경과를 보고했다. 보고가 끝나자 그는 의견을 말했다.

"신주쿠 살인의 범인은 그 구로이케라는 남자라고 단정해도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즉, 그는 바 레드문에서 야마모토라고 자칭한 바로 그 바텐더입니다. 그는 세무마 변호사가 조사하고 있는 사건에 관련된 한패이고 자기에게 집요하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변호사 사무실 직원인 다마루 도시이치를 격분해서 사살한 사람입니다. 그 흉기는 고시바 야스오로부터 산 권총임에 틀림없습니다. 즉, 감식에 따르면 미제 1911형 45구경 콜트 자동 권총입니다. 그뒤 구로이케나 그 일당은 또 권총이 필요해서 고시바가 증언하는 이른바, 깡마른 사내를 고시바에게 보냈지만 고시바는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고시바가 다리에 부상을 입고 아리요시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을 때 또다시 그 깡마른 사내가 찾아와서 권총 입수의 루트를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이때도 고시바는 거절했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날입니다. 그날은 들것이 도난당하기 며칠 전이라고 생각됩니다. 즉, 그때 그 사나이는 병원 복도에 들것이 벽에 기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뒤 구로이케가 다마루를 사살하고 도주한 사건이 일어나고 그 한패는 세누마 변호사를 납치해서 수사 당국으로부터 은신할 필요성을 느껴서, 도쿄 역으로부터 환자로 가장하여 탈출시키는 간계를 생각해 낸 것입니다."

 

-마쓰모토 세이초, <너를 노린다> 中 p274~285-

 

 

두번째 피해자가 발생했다.

납치당한 자는 어음사건 발생 당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여 다쓰오가 사기꾼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의심했던 쇼와전기제작소의 상임 변호사인 세누마다. 납치한 세누마 변호사를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도쿄 외곽으로 데리고 나오기 위해 범죄일당은 들것을 이용하여 아픈 환자로 세누마를 위장시켜 기차에 태운다. 이렇게 되자, 우익 조직이 3천만원의 어음사기에 연류되어 있으며 현금이 그쪽으로 흘러들어갔음이 밝혀진다.

 

 

한편, 우에자키 에쓰코의 뒤를 추적하던 다쓰오는 그녀가 하네다 공항에서 누군가를 전송하고 미즈나미 역 근처 우체국에서 10만원권 어음을 현금으로 교환하는 등 어음사기꾼을 도와주고 있다는 걸 알아 차리지만 웬일인지 다쓰오는 우에자키 에쓰코 만큼은 보호해주고 싶다. 이것은 연민인가 아님 사랑인가.

 

사건 해결에 별다른 진척이 없는 가운데 중앙알프스의 깊은 산속에서 숨져 있는 세누마 변호사가 발견된다. 사인은 뜻밖에도 아사(餓死)다.

 

 

변호사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레드문의 바텐더로 일했던 자칭 야마모토라는 자가 어음사기범인 호리구치며 본명이 구로이케 겐키치로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의 신병 확보에 수사력이 모아지는 상황에서 뜻밖에도 그가 백골로 변한 자살 사체로 발견된다.

 

 

어음사기 사건과 신주쿠 살인 사건은 범인이 자살한 것으로 일단락되는가 싶더니, 오랫동안 비밀에 부쳐졌던 숨겨진 가족사가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후네자카 히데아키, 아니, 우메무라 온지가 자란 환경이지. 출생이라고 해도 좋아. 요코라고 하는 곳은 부근에서도 빈농으로 알려진 마을이야. 온지는 그 가난에 견디다 못해 집을 뛰어나간 것지. 무엇보다도 지방에서는 빈곤한 농가에 대해서는 인습적으로 멸시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야."

(......)

"그런데 그에게는 반항심이 있었지. 그 반항심은 어떻게 해서든 자기를 멸시하고 있는 세상을 복수해 주려는 일념에 사로잡혔던 거야"

(......)

"그 일념은 후네자카 히데아키라고 이름을 바꾸게 하고, 우익에 가담케 했어. 즉, 우익에 의해서 한바탕 명성을 떨치고 싶었던 거야. 그는 원래 재능이 있었어. 배짱도 있고, 그러는 사이에 부하도 생기고 해서 보스가 됐지. 즉 세상을 향해 복수하는 존재로 한 걸음을 내디뎠던 것이지"

"으음,"

"그러나, 최근의 군소 우익에는 돈이 없어."

다쓰오는 말을 이었다.

"전쟁 전 우익의 재원은 군부의 기밀비였어. 그것이 그들의 커다란 금고였던 것이야. 그런데, 전후에는 예전 후원자를 잃어버렸단 말이야. 그래서 신흥 우익은 그 재원을 비합법적인 수단에 호소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약간의 기부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이지. 그래서 절조도 주의도 없는 전후의 우익은 공갈, 사기, 횡령 등을 일삼게 됐지."

후네자카의 경우는 금융업자인 야마스기 기타로와 결탁해서 야마스기로부터 정보를 얻어 가지고, 돈에 몰려서 할인 수표를 발행하는 회사를 함정에 몰아 넣어 어음사기를 하고 있었던 것야. 물론 분배는 야마스기에 주었을 것이지만, 이 돈이 후네자카의 단체에 중요한 자금이 되었던 것은 물론이지. 그 돈으로 그는, 그를 위해서라면 생명도 아깝지 않다고 복종하는 부하 10여 명을 거느리고 있었던 것이야. 이 하수인이 되었던 자가 후네카자 즉, 우메무라 온지의 사촌동생인 구로이케였단 말이야."
또 한 사람, 야마스기의 사무실에서 비서로 있으면서 연락을 취하고 있었던 우에자키 에쓰코가 있지만 다쓰오는 그것을 말할 수가 없었다. 새로 술이 나왔다

-마쓰모토 세이초, <너를 노린다> 中 p391~392-

 

 

본명 대신 가명을 쓰고 복잡하게 얽힌 가족사 등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에서 흔히 쓰이는 '트릭'이다. 우메무라 온지 역시 후네자카 히데아키로 이름을 바꾸고, 그의 사촌 동생인 구로이케 겐키치 역시 호리구치, 야마모토등 여러 가지 가명을 사용했다.

 

 

가족은 서로를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기도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개인을 고립시키는 거대한 장벽이 되기도 한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장벽에 갇혀 있으면서도 스스로 빠져 나오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장벽이 아닌 울타리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밖으로 걸어나오는 순간이 곧 가족해체요 가정파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혹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가족사라는 비밀의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그 안으로 숨어들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옳아매는 덫이 되고 만다. 마치 제때 발견하여 치료하지 않은 작은 상채기가 덧나 온몸을 못쓰게 만들 듯...

 

 

우에자키 에쓰코 역시 그런 인물이 아니었을까.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범죄집단에 가담하게 되었지만 그 범죄집단으로부터 가족을 잃고 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받게 된 상황에 처했을 때 그녀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산이라고 할 정도가 아니었다. 길에서 20미터가량 들어간 숲 속에 나무상자는 반쯤 부숴진 상태로 버려져 있었다.

그 속에는 도자기의 파편이 잔뜩 들어 있었고, 상자의 깨진 틈으로는 자잘한 파편이 쏟아져 나와 있었다.

다쓰오는 달려 있는 꼬리표를 보았다.

진흙이 묻은 꼬리표에는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발송인, 아이치 상회. XX전력주식회사 시로우마 발전소 귀중.'

다쓰오는 팔짱을 끼고 그 자리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우에자키 에쓰코는 이 꼬리표를 확인하러 왔던 것이다...

(......)

우에자키 에쓰코는 무슨 필요에 의해서 나무상자를 여기까지 와서 확인했을까? 그녀는 확실히 수풀 속에 버려진 나무상자의 정체를 보았다. 그때 그녀는 어떤 눈초리로 이 나무상자를 바라다 보았을까?

-마쓰모토 세이초, <너를 노린다> 中 p352~353-

 

 

피혁공장에서 쓰인다는 화학약품인 중크롬산이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단백질 덩어리를 녹아내리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독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처럼 상식의 범주에서 벗어난 전문지식이 종종 범죄에 악용되곤 한다는 점은 영미 전통 추리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물론, 실제 범죄에서 전문지식이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바로 이 점이 사건 해결의 단서가 되기도 하지만, 추리소설에서 작가와 두뇌 플레이를 벌이면서 책장을 넘겨야 하는 독자로서는 이와같은 트릭에 직면하게 되면 왠지 사기 당한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이초의 <너를 노린다>에서도 중크롬산이 등장하며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한다.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새롭게 개척한 세이초에게 기대했던 구성방식은 결코 아니었지만, 범죄은폐에 쓰인 소도구-중크롬산-가 마침내 범인을 단죄하는 최후의 도구로 쓰였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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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이가든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편혜영은 <토끼의 묘>로 2009년도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토끼의 묘>는 파견근무자인 '그'의 일상을 통해 현대인의 소외와 단절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그'는 어느 지방도시로 파견근무를 나가게 된다. 기간은 6개월이다.

6개월 동안만 머물다 떠날 것이므로 '그'는 도시에 대해 관심도 없고 사무실의 동료들과도 '애써' 관계를 맺으려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공원에서 버려진 토끼를 발견하곤 집으로 데리고 온다. 이내 곧 후회하게 되지만.

 

단 6개월만이라는 조건을 스스로에게 주입시키면서 어쩔 수 없이 토끼를 키우는 '그'는 서서히 토끼의 '본질'을 인식하게 된다.

 

‘개나 고양이처럼 친근하게 애정표현을 하는 경우가 없어 애완동물이나 반려동물이라고 부르기 망설여지고’, ‘사료와 양육에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차라리 소나 돼지 취급을 하는 게 적당했지만 고기를 삶아 먹기 꺼려진다는 점에서 소나 돼지보다 못하다’. 그런가하면 ‘무표정하게 누군가를 오랫동안 응시하다가는 결국 미움을 사고 만다는 걸 알려주’며 교훈을 준다.

 

더도 덜도 아닌, 인간 그 자체다.

 

 

<토끼의 묘>는 소외된 현대인을 토끼와 동일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작품의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사무실과 독신자 아파트 그리고 야외 공원은 '묘지'라고 볼 수 있다. 공적인 관계만 존재하는 사무실 풍경이며 토끼장을 방불케하는 독신자 아파트 그리고 싫증이 난 애완동물을 몰래 갔다 버리는 공원...

 

작가 편혜영은 도시화와 사무자동화가 진행된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점점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고 인간-인간, 인간-동물 간 관계 맺기에 실패하는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그려내고 있다. 다만, 회복 가능성을 열어두는 여타의 작품들과는 달리, 더욱더 자기자신 속으로 깊숙히 침잠해 들어가는 마무리 장면이 가히 충격적이다.

 

 

사무실에 있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하루에 다섯번씩 벌떡 일어섰다.

처음 일어섰을 때는 큰 소리로 웃으며 괜히 화장실에 갔고

두 번째 일어섰을 때는 멋쩍은 듯 살짝 웃으며 물을 마시러 갔다.

세 번째 벌떡 일어섰을 때는 자기 머리통을 때렸다.

네 번째 일어섰을 때는 울고 싶어졌고

다섯번째 일어섰을 때는 조금 울었다.

 

                                                                                -편혜영, <토끼의 묘> 中-

 

<크림색 소파의 방>은 중소 도시에서의 곤궁한 삶을 마치고 대도시(서울)로 입성하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이다.

 

이삿짐 차량을 먼저 보낸 후, 젖먹이 어린 자식과 젊은 아내를 태우고 서울로 향한다. 상식적으로 대도시의 새집으로 이사가는 것이니 당연히 흥겹고 희망 가득한 분위기여야 하건만, 어찌된 영문인지 어딘지 모르게 칙칙하고 어두운 분위기다.

 

 

불길한 예감은 어긋남이 없듯, 도중에 차가 고장나고 만다. 게다가 장대같은 비까지 쏟아지고...

간판을 보고 찾아들어간 주유소는 더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불량 청년들을 만나게 되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차량수리를 할 줄 아는 듯 따라나선 불량청년은 본넷을 열어 뭔가 작업을 하는 듯하지만 그의 시선은 차안에서 젖먹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젊은 아내에게 쏠려있다. 주인공 '그'는 기분이 상하면서 그 모든 불유쾌한 상황들을 모두 칠칠한 못한 아내탓으로 돌려버린다. 어쭙잖게 경찰에 신고를 하고 서울로 향하는가 싶더니 도중에 차량이 또 서버린다. 어쩔 수 없이 보험회사에 연락을 취해보지만 이미 도착할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보험회사 직원은 전화연결도 되지 않은 채, 나타날 기미조차 없다. 이런 초조한 가운데에서도 이미 새집에 도착한 이삿집 인부들의 전화는 계속 걸려온다. 거실 크기에 맞지 않은 크림색 소파가 문제였다.

 

 

새집 거실에 어정쩡하게 놓여 있는 소파는 곧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주인공의 위치를 말해준다.

 

작품은 상당히 비극적으로 마무리된다.

신고에 대한 보복으로 주인공을 따라온 불량청년들에게 구타당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홍콩 오우삼 감독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슬로우 비디오로 흐물흐물 움직이는 주먹질과 발길질 그리고 고통스럽게 이그러지는 표정들과 둥둥 떠다니는 땀방울과 빗방울들......

 

나약한 현대인의 초상이다.

 

 

 

이런 작품을 쓴 작가가 추리소설집을 갖고 있단다.

하여, 일찍부터 독서목록에 담겨 있던 편혜영의 <아오이 가든>이라는 책을 서둘러 읽게 되었다.

 

모두 9편이 실려 있었는데 첫번째와 두번째 작품인 <저수지>와 <아오이 가든>까지만 읽고 책을 덮었다.

 

시체와 꾸물거리는 구더기들 그리고 끊임없이 언급되는 역한 냄새들로 인해 시각과 후각은 물론이고 촉각마저 마비될 지경이다.

독특하고 새롭다.

그러나 상당히 고통스럽다.

 

공포 스릴러물 매니아가 아니라면 섣불리 읽기를 시도해서는 결코 안되는 책이다.

 

다만, <시체들의 괴담, 하드고어 원더랜드-이광호>라는 제목으로 실린 작품해설은 읽어 볼만했다. 작가의 신선한 시도와 독특한 상상력의 의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편혜영 소설의 서술자는 작중 인물의 정서적 개입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인물에 대한 독자들의 동일시의 가능성과도 거리를 두는 냉혹하고 무표정한 태도를 취한다. 이 하드보일드한 문체의 효과는 무엇인가? 탈내면성의 문법을 통해 세계에 대한 인간 주체의 시선의 우월적 위치 자첼르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휴먼 스토리도 배제한 채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시체의 일부로 되돌리게 한다.

(중략......)

편혜영 소설에서 인간은 '부패하기 쉬운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것은 '인간은 동물이 아니다'라는 낯익은 명제를 거슬러 다시, '인간은 동물이며 더 나아가 부패하기 쉬운 단백질에 불과하다'는 극단적인 명제로 되돌아간다.

(......)

대중화하는 하위 대중문화의 영역을 '억압적 탈승화'의 세계라고 부를 수 있다면, 편혜영의 소설 미학이 향하는 지점은 (...) 엽기적 대중문화의 시각적 쾌락 효과 혹은 도착의 기호학 너머의 세계이다. 편혜영은 시체를 시각적으로 대상화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인간 존재 자체를 '시체되기'의 국면으로 끌고 나간다. 이 '시체 되기' '동물 되기' '벌레 되기'의 상상력은, 인간 존재의 주체화 과정을 해체하고 다른 차원의 삶을 경험하게 만든다. 주요한 것은 시각적인 코드에서의 시체의 발견과 전시가 아니라, '시체 되기'를 통해 경험되는 '다른 삶'이다. 이런 맥락에서 편혜영의 소설 미학이 향하는 지점은 탈억압적인 미학적 탈승화의 지점이다.

 

-<시체들의 괴담, 하드고어 원더랜드-이광호> 中-

 

 

작품 해설자의 말처럼 불편하고 엽기적인 작품 속 장면들 속에는 인간 진화의 결과인 현대 문명이 자랑이 아닌 '악몽'이라는 은유가 내포되어 있으며, 작가의 목적이 독자로 하여금 기존의 현대 소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체험을 하게 만드는 것에 있다면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고 싶다. 단 두 편을 읽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말로 형언할 수조차 없는 체험을 했으니 말이다.

 

 

많은 고민과 용기 속에서 탄생했을 작가의 작품들을 끝까지 읽지 못해서 매우 안타깝다. 나의 독서력이 이처럼 전위적이고 독특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음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이건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독자인 나의 개인적 성향일 뿐, 작품성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말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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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 본격추리 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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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에도가와 란포(江戶川亂步)는 본명이 히라이 타로(平井太郞)로 일찍부터 에드가와 앨런 포의 작품을 즐겨 읽고 좋아한 나머지 에드가와 앨런 포의 발음을 본 떠 에도가와 란포라는 필명을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90여년 전인 1920~1930년대에 주로 발표된 그의 작품들은 이제는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라 당시 일본 사회와 일본인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역사적인 가치까지 담고 있다.

 

 

그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란포의 작품에는 전보와 기차가 수시로 등장하고 전화는 최첨단 시설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무려 한 세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랑, 돈, 질투, 원한 등등 범죄의 동기면에서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과정 역시 CC화면 등 최첨단 방식이 새롭게 도입되긴 했지만 부검 지문감식 등 그 당시 수사에 주로 사용되었던 방식이 지금도 그대도 쓰이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범죄자의 '심리(마음)'을 읽어내는 수사관의 '직관'이야말로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키워드'라는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2전짜리 동전>은 그 당시 일본에서 통용되던 두께 4mm 직경 3cm 정도 크기의 2전짜리 동전을 두쪽으로 쪼개고 그 사이에 암호를 기록한 종이를 숨긴다는 설정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물론, 일본어를 근간으로 한 암호 해독 부분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발상 자체는 기발했다. 그리고 진짜와 흡사한 가짜 돈을 만들어 문방구에서 판매한다는 사실과 훔친 돈을 문방구 납품용 가짜 돈과 바꿔치기 해서 안전(?)하게 보관한다는 아이디어 또한 100년이라는 시차를 거뜬히 뛰어넘어 21세기초의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

 

 

<심리실험>은 피의자에게 단어를 말해주고 떠오르는 단어를 피의자가 말하도록 한 후, 단어와 답변할 때까지의 시간 간격등을 총체적으로 분석하여 사건과의 연관성을 유추해내는 연상기법이 등장하는데 거짓말 탐지기의 고전판이 아닌가 싶다.

 

 

에도가와 란포가 만들어낸 탐정 아케치 코고로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D언덕의 살인사건>과 <석류>는 인간의 사디즘적 성적 취향을 모티프로 삼은 빼어난 수작이다.

 

 

이 밖에도 <몽유병자의 죽음>과 <두 폐인> 등은 몽유병 환자 혹은 가짜 몽유병 환자가 등장하는 작품이다. <몽유병자의 죽음>은 몽유병을 앓고 있는 아들이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어느날 밤 아버지가 머리에 둔기를 맞고 뜰에서 죽은 사체로 발견되자 아들은 자신이 꿈속에서 아버지를 죽인 건 아닌가 싶어 심한 자책감에 시달리다가 도망가던 중 허망하게 죽어버린다는 내용인데, 아버지의 사인인 밝혀졌을 때의 그 허망감이라니......

 

 

그리고 멀쩡한 사람을 그것도 친한 친구를 몽유병 환자로 만든 후, 하숙집 주인을 죽인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두 폐인>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마주한 마지막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몽유병 환자가 등장하는 위와 같은 작품들은 조금만 더 섬세하게 구성을 다듬고 신중하게 표현을 선택한다면 훨씬 더 뛰어난 작품으로 재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굳이 추리소설이 아니더라도 순수소설의 모티브로 삼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한번 굳게 믿어 버리면 설령 그 믿음이 현실과 정반대라고 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 두뇌의 착각을 소름끼치도록 표현해 낸 <무서운 착오>도 좋았고, 숨을 멈추게 만드는 마지막 반전이 돋보이는 <석류>도 뛰어난 작품이다.

 

<석류>는 정통추리소설의 기본 트릭 중에 하나인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일 인물로 만들어 버리는 '인물바꿔치기'수법으로 완전 범죄를 달성한 가해자가 20년이나 지난 어느날 그 당시 사건을 추리했던 형사 앞에서 자백과 동시에 깊은 계곡물 속으로 뛰어들어 자결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이는 아마도 서구 정통추리소설을 모방하며 발전하기 시작한 일본의 추리문학이 자결이나 자살을 미화하는 전통적 분위기를 녹여내면서 만들어낸 일본다운 마무리가 아닐까 싶다.

 

 

신경증과 의부증에 걸린 아내가 남편을 극도로 미워한 나머지 자살하면서 타살로 위장하여 남편을 살인자로 몰아가는 <영수증 한 장>은 발상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장편으로 만들어도 좋았을 것 같다.

 

 

에도가와 란포는 자신이 밝혔듯이 장편보다는 단편에서 두각을 나타낸 작가라 할 수 있다.

그의 단편들은 영미의 정통추리소설의 기법과 구성을 상당히 많이 모방한 면이 없지 않고, 고대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품 중간 중간에 작가의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어 설명하는 해설투 문체가 곳곳에 등장하기 때문에 현대인들에게는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고 결국 작품의 재미마저 반감시키는 단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단점들이 일본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새롭게 개척한 작가의 공로를 손상시키지는 않는다. 1955년 에도가와 란포의 환갑을 맞이하여 조성된 '에도가와 란포상'은 일본에서는 이미 명실상부한 추리소설작가들의 등용문이 되었다.

 

 

마쓰모토 세이초 역시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들을 어렸을때부터 즐겨 읽으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완성해 냈으니 이 점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일본 추리소설 분야에서 에도가와 란포의 위상과 영향력이 어느정도인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이와 같은 작가의 작품들이 한국에서는 최근에서야 본격적으로 번역 소개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저, 과거 양국간의 역사적 문제가 청산되지 않았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추측해볼 따름이다.

 

 

이번에 도서출판 두드림에서 총47편의 단편들을 3권으로 나누어 출간했다고 하는데 1,2권은 본격추리물이고 3권은 '기괴환상'으로 나눠져 있단다. 본격추리는 1권만으로도 충분히 맛을 보았으니 기괴환상물로 묶여졌다는 3권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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