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두 얼굴 -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
최광현 지음 / 부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가족처럼 한 개인에게 지대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과연 또 있을까? 이 세상 그 누구도 가족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고아처럼 가족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삶은 '가족의 부재'라는 영향을 받는다.

 

 

독일에서 가족상담을 공부한 최광현 한세대 교수는 <가족의 두 얼굴>이라는 저작을 통해 모든 성인이 느끼는 감정과 표출하는 행동은 모두 어린시절의 경험 및 가족과의 관계로부터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어린시절 가족 특히 엄마로부터 받은 거절의 기억을 뇌는 잊어버렸을지 몰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 흉터로 자리하고 있다가 성인이 되어 자식들에게 표출된단다. 고통스러울수록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하여 기억을 왜곡시키거나 망각하고 고통스러운 '이 순간과 이 곳'에서 도피하고자 한다. 모든 종류의 중독현상은 바로 고통을 느끼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피하는 행위이다.

 

 

어린시절의 심리적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자살로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마릴린 먼로(본명:노마 진 모턴슨)와 매춘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린시절의 슬픔을 아름다운 동화로 승화시킨 안데르센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준다.

 

크리스턴 콜드웰은 몸과 마음에 남아 있는 트라우마를 해결하려고 '지금 여기'의 몸을 떠나는 현상을 중독이라고 합니다. 중독이란 트라우마 때문에 상처 입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 고정된 신체 반응입니다. 트라우마의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욕구충족이란 쾌락의 경험, 즉 중독이 대체물입니다. 알코올, 니코틴, 도박, 게임, 섹스 등에 의존하여 자기 몸을 떠나려고 합니다. 중독의 특성은 반복에 있습니다. 반복을 통해 우리의 몸은 중독에 익숙해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점차 내성이 생기면서 나중에는 고통을 완화시켜 주는 도구가 아닌 자신을 옭아매는 감옥이 됩니다.

-최광현, <가족의 두얼굴> 中-

 

 

 

고통의 원인을 제공해주는 심리적 상처 즉 트라우마는 성인이 되어서도 생길 수 있지만, 대부분 정신과 마음이 연약한 어린시절에 발생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몸의 이곳 저곳을 다치듯 마음 또한 다친다. 몸에 생긴 상처는 신속하게 소독하고 치료해야 흉터가 남지 않듯 마음에 생긴 상처도 즉시 치료해야 트라우마가 남지 않는다. 어린시절 마음의 상처를 적절하게 치료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적절하게 감정을 다스리고 심리적 컴플렉스를 다독일 줄 안다.

 

 

몸의 상처가 보이지 않으면 소독도 치료도 제때 할 수 없듯이, 마음의 상처 역시 외면하거나 보이지 않게 감춘다면 치료 시기를 놓쳐 심각한 후유증 즉 트라우마를 남기고 만다. 그러므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그 순간 바로 표현하고 표출해야 한다. 애써 감추거나 속이지 말고 고통의 순간들과 직접 직면해야 한다. 그리고 자책감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따듯한 위로의 말과 함께 마음이 전해지도록 온몸으로 마주해야 한다.

 

 

"괜찮아ㅡ"

"사랑해ㅡ"

 

 

가족간에는 굳이 이런 말들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 저절로 전달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지만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몸은 괜찮지 않았던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말은 거짓으로 할 수 있지만 몸은 거짓을 말할 수 없는 법이다.

 

 

어린시절 부모의 이중적인 태도 즉,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겉으로 보여지는 태도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경험한 아이는 성인이 된 이후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대해 불안감을 갖게 된단다. 늘 생각과 감정을 부정당해 왔기에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사회생활에서 어이 없이 사기를 당하거나 미신과 사교집단에 잘 넘어가는 유형 중에는 이런 사람이 많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자, 이래도 가족간에는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것인가?

 

 

어느 깊은 밤.

달리는 차안의 라디오에서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라는 유명한 감독이 '가족이란 누가 보지만 않는다면 어딘가에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했다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 순간, 가족에 대한 가장 솔직하고도 완벽한 정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나'란 존재는...

십여년 전에 돌아가신 아빠와 이제는 늙고 병약해지신 엄마... 그리고 독신으로 외롭게 살아가는 오빠와 의사로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언니와의 관계로부터 만들어졌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어느 집이나 말 못할 가족사 한 두 가지쯤은 갖고 있듯이 우리 가족 역시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만 공유되는 비밀 아닌 비밀이 있다. 화목하고 모범적인 가정이라고 할 순 없었지만 우리 가족들은 서로를 지키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썼던 것같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자기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선택한 행동이었지만 결국 그와같은 노력들이 지금의 나와 엄마 그리고 오빠와 언니를 만들어낸 건 아닌지...

 

 

엄마가 자식을 위해 희생했다며 더 이상 슬퍼하지 않기를...

언니가 경제적 부담을 혼자서 다 짊어졌다고 더 이상 서운해하지 않기를...

오빠가 아빠로부터 받은 상처로 더 이상 힘겨워하지 않기를...

내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 것처럼...

 

 

 

독일에서 가족상담을 공부한 최광현 한세대 교수가 쓴 <가족의 두 얼굴>이란 책은 때론 힘이 되기도 하고 때론 짐이 되기도 하는 가족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제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인정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이다.

가족에게 전하는 따듯한 말 한마디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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