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미래, 누구에게 달렸나?
양중메이 지음, 홍순도 옮김, 강준영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대표적인 중국 정치 연구가로 손꼽히는 양중메이(楊中美)는 장쑤성 우진 출신으로 중국의 명문 화둥대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석,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시각과 풍부한 자료등을 인용하여 급변하고 있는 중국의 정치 판도를 그 누구보다도 적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적임자로 손꼽힌다. <중국의 미래: 누구에게 달렸나?>는 양중메이가 시진핑을 필두로 한 5세대 지도자로의 권력 이양을 앞두고 있는 중국 정계를 인물 중심으로 분석한 책이다.

 

 

양중메이는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군(群)으로 이미 낙점을 받은 시진핑과 리커창이외에도 왕양 리위안차오 보시라이 왕치산과 같은 인물들을 꼽았으며, 군부쪽 인사로 류야저우 우성리 장친성 등을 선정하여 총 아홉명에 대한 인물평과 향후 이들의 활약상을 예측했다.

 

 

시진핑은 원로 시중쉰의 아들로 태자당출신이다.

사실, 그는 어느 면에서 보거나 보시라이와 많이 비교되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보시라이와는 정반대로 침착하고 그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무난한 성격이 급격한 방향전환보다는 체제유지를 원하는 장쩌민과 쩡칭훙의 낙점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공청단 출신인 리커창을 지지했던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의 승인을 받아냄으로써 명실상부한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등극하였다.

 

 

한편, 마지막 순간까지 차세대 지도자 자리를 놓고 시진핑과 치열한 경합을 펼쳤던 리커창는 이변이 없는 한, 원자바오의 뒤를 이어 총리에 오를 전망이다. 리커창처럼 공청당 출신으로 차세대 지도자로 손꼽히는 인물로는 광둥성 서기 왕양을 빼놓을 수 없다. 왕양은 여러모로 보나 후진타오와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후진타오가 덩샤오핑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낙점을 받은 후 후계자로 양성된 것처럼 왕양 역시 1991년 안후이성 기층 간부로 있을 당시 개혁을 주장하는 글을 일간신문에 발표하여 개혁 개방을 널리 알리기 위해 남방시찰에 나섰던 덩샤오핑의 눈에 띄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후, 왕양은 주룽지, 원자바오 전총리의 지원 속에서 승승장구를 이어오고 있다.

 

 

시진핑을 차세대 지도자로 추천한 쩡칭훙이 태자당이자 상하이방으로 양대 세력 사이의 연합과 힘의 균형을 중재해온 인물이라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향후 쩡칭훙처럼 중국 정계의 핵심 세력인 공청단과 태자당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담당할 인물로는 리위안차오가 1순위다. 리위안차오는 홍군의 주력 부대였던 신사군의 원로간부 리간청의 아들이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발발하자 아버지가 홍위병의 타도의 대상이 되는 바람에 고교진학대신 상하이의 농장으로 내려가 어쩔 수 없이 노동자 생활을 하게 된다.

 

1970년 공청단 간부로 승격한 리위안차오는 1972년 노동자 농민 군인 출신 중 일부에게 대학 진학의 기회를 주었던 특별 조치를 통해 상하이 사범대학 수학과에 입학한다. 대학 졸업후, 수학교사 생활을 하던 그는 1978년 공산당에 입당하면서 푸단대 수학과에 재입학하는 행운을 얻게 된다. 졸업 후 대학에 남은 리위안차오는 대학 공청단 부서기를 거쳐 상하이 공청단 서기로 승진한다.

 

 

지난 2월 최측근인 왕리쥔 충칭시 부시장이 주중 미영사관으로 진입하면서 결국 낙마한 보시라이는 말 그대로 '풍운아'이다.

 

그는 보이보의 둘째 아들로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가 고등학생이던 때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부친이 반역파로 내몰리자 어머니 후밍은 홍위병의 위협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어머니가 억울하게 목숨을 잃자 보시융, 보시라이 그리고 보시청 등 보씨 3형제는 롄둥에 가입하여 문화대혁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가 결국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보시라이는 20세를 전후로 한 5년을 지옥같은 감옥에서 견뎌야만 했다.

 

 

마침내 보이보가 사면되자 보시라이 형제도 감옥에서 풀려난다. 감옥에서 나온 후 베이징 대학에 입학한 보시라이는 졸업 후에는 랴오닝 성 등 지방으로 내려가 초급 간부로 활약했다. 이 즈음, 군의관인 리단닝과 결혼하여 아들 리왕즈를 둔다. 구카이라이와 만난 것은 보시라이가 지방 간부로 일할 때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결국 이혼하고 베이징대학교 출신 변호사인 구카이라이와 재혼하면서 둘 사이에 보과과라는 아들을 둔다.

 

 

보시라이가 다롄시장으로 있던 당시 다롄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면서 '북방명주'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지만 다롄시 서기 차오바이춘을 필두로 한, 일부 관리들과는 화합하지 못했다. 그의 독단적인 일처리 방식이 주위의 원성을 사게 되면서 보시라이는 시진핑보다 월등한 성과에도 불과하고 중앙후보위원에 진입하는데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야심가였던 보시라이는 정치적 장벽에 굴하기는 커녕 상부부장 직위로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 다시 한번 기회를 엿본다.

 

 

시진핑과 보시라이의 운명이 선명하게 엇갈린 시점은 아마도 2006년 상하이시 서기 경선이 아닐까싶다.

그 당시 후진타오는 원자바오 총리와 손잡고 상하이방의 실세였던 당시 상하이시 서기 천량위를 축출한 다음 자신의 사람으로 상하이시 서기를 임명하기 위해 인선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었다. 이때 물망에 오른 인물들이 류옌둥, 리위안차오, 리커창, 보시라이, 시진핑 등이었다. 그러나 이때 해외 인터넷 사이트에 '보시라이가 상하이서기 적임자'라는 글이 올라간 사건이 일어나는데, 풍문에 따르면 그 글을 올린 이가 다름 아닌 그의 아내 구카이라이였다고 한다. 역시,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상하이시 서기를 놓고 버린 경쟁에서 보시라이는 시진핑에게 판정패하고 만다.

그러나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보시라이는 절치부심 다시 같은 태자당인 왕치산과 국무원 부총리 자리를 놓고 한판 승부를 준비한다.

 

국무원 부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원자바오로부터 신임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보시라이는 상무부장으로 이동할 때 자신을 도와준 상무 부총리인 우이를 저버리고 원자바오총리에게 밀착 접근한다. 우이는 여장군이란 별칭을 갖고 있는 만큼 청렴결백하고 능력있는 정치가였지만 원자바오총리와는 코드가 맞지 않았다. 자신의 도움으로 지방에서 중앙 정계로 진출한 보시라이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원자바오 총리에게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자 우이는 왕치산을 적극적으로 추천했고 원자바오 총리 역시 왕치산을 부총리로 임명한다. 보시라이로서는 세번째 고배를 마신 셈이다.

 

 

충칭 서기로 좌천 아닌 좌천을 당한 보시라이는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권력을 되찾고자 한 것처럼 좌익물결을 불러 일으킨다.

일명, '창홍타흑(唱紅打黑: 혁명가를 부르고 조직폭력배를 소탕한다)'이다. 그러나 혁명가곡 공연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 조직 폭력배 소탕은 자신에게 반기를 들고 전 서기였던 왕양광둥성 서기를 따르던 각계 인사들을 숙청하는 빌미에 불과했다.

 

 

자신이 신임하던 왕리쥔과 어떻게 반목하게 되었는지 그 내막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아마도 중앙위원 진출을 노리고 있는 보시라이에게는 그간 자신을 대신하여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왕리쥔의 존재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보시라이의 비리와 치부를 왕리쥔이 알고 있는 이상 보시라이는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이미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지목받고 있는 왕리쥔을 사정의 칼날에서 끝까지 보호해줄수도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그를 버림으로써 그와의 모든 연결 고리를 끊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시라이와 함께 산전수전 다 겪은 왕리쥔 역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염량세대에 능했던 그는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미 영사관으로 망명을 신청하고 만다. 잘만 하면 목숨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 망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행여 실패하더라도 혼자 덤터기를 쓰는 억울함만큼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그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던 그는 마지막 순간 지푸라기 대신 보시라이의 발목을 확실하게 붙잡고 말았으니 말이다.

 

현재로선 보시라이가 다시 부활할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그렇지만 저우융캉을 포함하여 과거 그의 '덕'을 본 사람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는 상황에서 사과의 썩은 부위만 도려내듯 보시라이 한명만 숙청하기도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 역시 혼자서만 외롭게 저승길에 갈 생각은 추호도 없을 테니 말이다. 아마도 최대한 많은 길동무를 데리고 가려고 하지 않을까.

 

 

보시라이만큼은 아니지만 사지에서 살아온 인물로 왕치산이 있다.

야오이린의 사위인 그는 개혁파로 1989년 6.4 톈안먼 사건 당시 하마터면 숙청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실제로 그와 뜻을 같이 했던 개혁파들은 톈안먼 사태의 여파로 대부분은 화를 면치 못했다. 화를 당하기는 커녕 왕치산은 오히려 톈안먼 사태 후, 상무 부총리로 취임한 주룽지의 신임을 받으면서 파격적으로 건설은행 총재에 임명되면서 경제계에 첫발을 내딪는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주룽지는 왕치산을 광둥성 부성장으로 임명하여 광둥성 서기 리창춘을 보좌하도록 한다. 리창춘이 누구인가? 잘 알려져있다시피 그는 장쩌민의 신임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 아니던가. 그런 그의 밑에서 호흡을 맞춘 덕에 왕치산은 2002년 하이난 성 서기로 발령받는다. 왕치산이 하이난 성 서기로 부임한지 이듬해 사스가 창궐하자 그는 다시 베이징시 부서기로 취임한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 왕치산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사스를 잘 막아낸다. 그리고 2004년 마침내 베이징 시장으로 당선된다. 그후, 탄탄대로 출세가도를 달리던 왕치산은 장인 야오이린처럼 국무원 부총리 자리에 오르면서 5세대 핵심 지도층으로 부상한다.

 

 

 

양중메이는 굳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라는 마오쩌둥의 말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인민해방군을 장악하는 자가 대륙의 진정한 패자라고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때, 중국 군부의 핵심 인물과 그들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 역시 향후 중국 정치 판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양중메이는 공군 전략가인 류야저우, 원양 해군의 미래를 걸머쥔 우성리, 총참모장 자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해있다고 평가받는 장친성 등을 앞으로 10년 동안 중국을 이끌 군부의 핵심지도자로 꼽았다.

 

 

중국의 군부는 차세대 지도자 그룹이 형성되는데에 있어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역할을 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만약 막후에서 권력 투쟁이라도 벌어진다면 최후의 승리는 인민해방군이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점은 자명해보인다. 시진핑이든 리커창이든 군부와 직접적으로 '통'하는 인물은 없다. 군인 출신이 아니므로 어쩔 수 없이 군부의 핵심 세력을 통해 군대를 장악하려 할 것이다.

 

후진타오 역시 장쩌민으로부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최종적으로 승계받으면서 명실상부한 1인자가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시진핑이 국가주석 자리에 올라 대내외적으로 중국을 대표하더라도 중앙군사위원회를 완벽하게 장악하지 않는 한 '절름발이왕'에 불과하다. 그런데 시진핑이 군부를 장악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는데, 바로 이 기간이야말로 군부내 반발 세력에 의한 쿠데타 발생 가능성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라 할 수 있다. 보시라이가 추락한 것은 어쩌면 이와같은 쿠데타를 일으킬만한 인물에 가장 가깝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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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차이나의 미래 - 중국이 말하지 않는 12가지 진실
윤재웅 지음 / 청림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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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국내의 중국 관련 출판물은 어학 방면 아니면 고전물과 관련된 자기개발서에 집중되어 있는 감이 없지 않았다. 이는 분명 나날이 성장하는 중국의 현재 모습과 그런 중국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파급력에 대해 한국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일반인들은 중국을 주목하고 있는 반면, 각계 전문가나 학계에서는 중국에 대한 연구가 10~20년 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말해서 중국을 제대로 분석한 책들을 찾아 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분석서가 출판되어 있는 일본과는 사뭇 대조되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잠자고 있는 거인의 옆에서 무사태평하게 지내다가 거인이 잠에서 깨어나려고 하자 깜짝 놀라 우와좌왕하기만 할 뿐 거인이 도대체 얼마나 크며 얼마나 강하지 그 실체를 확인해 보려고는 하지 않는 난장이의 모습이요, 마치 무섭다고 두 눈을 꼭 감아버리는 어린 아이의 모습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런 실망감 속에서 최근 상당히 의미있는 책 한권을 발견했다.

 

김광수연구소 소속의 연구원인 윤재웅이 <슈퍼차이나의 미래: 중국이 말하지 않는 12가지 진실>이라는 책을 올 2월 출간한 것이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중국에 대해서 가장 적확하게 분석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름, 중국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도 새로운 각도로 중국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니 분명 다른 이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 책은 '중국이 말하지 않은 12가지 진실'이라는 부제처럼 변화하고 있는 중국의 정치, 사회와 경제 각 분야에 걸쳐 12가지의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전체 네 파트 중, 첫번째 파트에서는 중국의 대외외교노선의 변화를 언급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1978년 개혁개방 당시 중국의 대외외교 노선 '도광양회(韜光養晦: 실력을 과시하지 않고 내공을 쌓는다)'였다. 8,90년대에 중국의 지도자들은 철저하게 이 노선을 견지했다. 비록,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두자리 수를 기록하면서 눈부신 경제성장을 구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외교 군사적으로는 철저하게 몸을 낮추어 충돌을 피해왔다.

 

 

이와 같은 중국이 21세기에 접어들면서-정확하게는 2002년- '도광양회'대신 소위 '유소작위(有所作爲: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하고 싶은 대로 한다)'를 기본 전략으로 채택하게 된다.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해내는가 하면 동북공정 등 역사 왜곡 시도로도 읽혀지는 일련의 외교 분쟁을 일으킨 것 역시 우발적인 개별 사안이라기보다는 도광양회에서 유소작위로 바뀐 중국의 외교전략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

 

 

현재 명실상부한 G2로 거듭난 중국은 과거 입버릇처럼 '패권을 다투지 않고 평화롭게 발전하겠다(不谋霸权和平崛起)'라고 강조했지만, 이제는 더이상 이런 겸손한(?) 표현은 찾아볼 수도 없고 기대할 수도 없게 되었다. 오히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등 중국이 드러내놓고 패권을 추구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올 연말이면 중국의 5세대 지도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시진핑과 리커창은 집단지도체계라는 중국 공산당의 독특한 시스템을 통해 선출된 아니 공인된 지도자들이다. 이 밖에 상무위원으로 새로 이름을 올릴 여섯 명의 지도자들에게 미래의 중국 아니 더 나아가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미래가 걸려 있다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서양의 학자들은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의 정치 제도 역시 '민주화'단계를 거쳐 점진적으로 서구화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바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예측은 틀린 것 같다. 최소한 향후 10년 안에 중국 사회에서 격변이나 민주화가 일어날 공산은 크지 않다. 아니 일어나더라도 중국 지도층에 의해 신속하게 진압될 확률이 현재로선 높아 보인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나 역시 그동안 중국의 정치 민주화를 필연적으로 받아 들여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중국의 정치 민주화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중국의 민주화가 한국에게 '득(得)'이 될지 아니면 '실(失)'이 될지에 대해서는 부끄럽게도 구체적으로 고민해 본적이 없다.

 

중국의 정치 민주화를 지지한다는 것은 반대로 중국의 정치적 독재가 한국에게 도움이 되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과연 중국의 정치적 독재가 우리에게 '실'이기만 한 것일까? 이와는 반대로 중국의 정치 민주화가 반드시 우리에게 '득'만을 가져다 줄것인가? 이와 같은 질문에 정확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이 현재로서는 단 한명도 없어 보이지만 한가지 분명한 점은 현재 전세계가 금융위기로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중국발 자스민 혁명은 심각한 혼란만을 야기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탈바꿈하려는 중국 경제의 현주소를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은 지금과 같은 대외수출전략이 아니라 내수시장확대에 달려 있으며, 내수시장을 확대시키려면 필연적으로 중국 노동자들의 임금을 상승시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향후 중국은 값싼 인건비에 의존하는 수출전초기지로서가 아니라 중국 내수 시장을 직접 공략하는 수출과 소비의 종착지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지난 90년대 중국은 국영기업의 민영화(國退民進)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지금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국영기업을 앞세워 기술력과 브랜드를 갖춘 다국적기업 매입(國進民退)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엄청난 달러 보유고로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상마저 위협하고 있다. 과연 중국이 꿈꾸는 것처럼 중국 위안화에 의해 '팍스 달러리움'시대가 몰락할지 그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그렇지만 중국에게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중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속도로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13억 거대 인구를 갖고 있는 중국의 인구구조변화는 전세계에 핵폭탄과도 같은 파급력을 미칠 것이다. 만약, 상당히 가까운 미래에 중국이 난관에 직면하거나 심지어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면 그 시작은 인구구조의 변화일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한국의 '하우스푸어'에 해당되는 '房奴(집노예)'라든가 '蚂蚁族(중국판 88만원세대)'등의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이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중국의 주택가격으로 고통받는 서민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중국의 부동산 거품은 지방정부가 앞장서서 조장했으며 중국의 높은 경제성장률은 이와 같은 지방정부의 부동산 분야의 난개발과 중복투자에 힘입은 바 크다.

 

 

'蚂蚁族'란 2001년 100만명에 불과하던 중국의 4년제 대졸자 수가 2009년도에는 500만명으로 불어나 '고학력청년실업자'가 양산되면서 나타난 신조어다. 중국 역시 우리나라처럼 고학력 청년실업자는 많은 반면 저학력 젊은 노동자(15세~35세)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중국의 기업들이 만성적인 '인력난'에 처해 있는 반면, 대도시에서는 젊은 청년 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일명, 중국사회는 '미부선로(未富先老: 부자가 되기도 전에 늙는다)'라는 기현상에 직면해 있다. 고령층의 증가로 사회보장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저임금 노동자가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 중국 사회는 고령화에 따른 심각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책의 세번째 파트는 이처럼 현재 중국 사회가 직면해 있는 어려움을 구체적인 수치와 사례 등을 통해 열거하고 있다. 마지막 네번째 파트는 중국의 성장 혹은 변화를 한국은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로 요약된다. 조선(造船)을 포함한 일부 제조업 분야는 이미 중국에게 추월당했고 태양광이나 전지차량 등 신소재 분야는 중국이 우리를 앞서가는 상황에서 한국은 중국의 발전과 변화에 예의주시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미래 발전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치 외교적으로는 철저한 실용주의 외교 일명 등거리 외교를 구사하되, 경제적으로는 과감하게 중국 내수 시장을 공략하는 도전정신과 창의성이 필요한 때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북 관계를 지렛대로 역이용할 수도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남북한이 미국와 일본 그리고 중국에 대해서 공동전선을 구축하면서 동북아시아에서 '무게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경제력뿐만 아니라 유능한 외교가 및 각 분야에서 중국 전문가를 발굴 양성해야 한다. 현재 한국에는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넘쳐 날뿐만 아니라 재중교포의 수 또한 많다.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단순히 중국어를 구사하는 데에 그쳐서는 결코 안된다. 중국 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혜안'을 갖추지 않는다면 떠오르는 중국과 함께 성장의 과실을 얻을 수 없음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본의 아니게 서평을 쓰다보니 책의 내용과 나의 생각들이 혼합되어 버렸다.

그만큼 이 책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그저 단순히 생각을 던져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읽는 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을 확대 발전시켜 전체적으로 중국 사회를 조망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었다. 슈퍼코리아의 미래를 꿈꾸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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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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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러니까 일본소설은 범죄 동기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작가 미야베 미유키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녀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마쓰모토 세이초 역시 범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범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보다는 어째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 즉 범행동기에 천착한 작가들로 유명합니다.

 

 

범죄 동기를 이해하려면 어쩔 수 없이 범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말,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범죄자를 이해하게 되고, 심지어는 '그럴 수 밖에는 없었겠다.'는 식으로 범죄자를 두둔하고 범죄행위를 합리화시키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물론, 소설 작품 속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핑계 없는 무덤없다.'라는 속담을 다들 알고 계실겁니다.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들을 읽고 있노라면 특별히 애착이 가고 연민이 생기는 사연 또한 없지 않지만 저마다 안고 있는 구구절절한 범행동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피해자나 그 가족들의 슬픔 따위는 너무도 간단하게 생략되거나 대수롭지 않게 다루어진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 무슨 희안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강력범죄자들의 인권은 법의 이름으로 철저히 보호되는 반면 피해자의 인권과 그 가족들의 사생활은 법의 테두리밖으로 무참히 내동댕이쳐지곤 해서 비판 여론이 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이 지나치게 범행 동기를 추구하고 범죄자에게 집중한 나머지 '핑계 없는 범죄없다.'식의 면죄부를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에서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 범죄'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된지 이미 오래인데, 이들의 범죄행위 역시 사회로부터 소외된 것에 따른 행동이므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책임을 다같이 반성해야 한다.라는 주장의 목소리도 들려 오곤 합니다.

 

 

물론, 장발장처럼 사회적 약자로서 어쩔 수없이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모두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열악한 현실을 극복하여 사회에 귀감이 되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위대한 성과를 이루기도 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사회로부터 억울한 고통과 슬픔을 받았다고 해서 사회에 복수하는 대신 극복함으로서 자기 승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분명 한차원 높은 행동이라 아닐할 수 없습니다.

 

 

모든 범죄행위는 어떤 상황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응당의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여기에 예외는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인간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것에 대한 자기 자신의 반응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서평을 쓰려했을 따름인데 그만 서론이 길어져버렸네요.

 

제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작품은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이란 소설입니다.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출판되자마자 일본 열도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킨 이를테면 '문제작'인가 봅니다.

 

 

아닌게 아니라 작품의 기본 줄거리는 상당히 충격적이더군요. 그리고 배경 묘사보다는 이야기 위주로 작품이 전개되어 도무지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더군요. 쉼없이 펼쳐지는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호흡이 가파지곤 하는데 역시 스토리텔링의 힘이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는 역시나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S중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여선생님의 4살배기 외동딸이 학교 수영장에서 사체로 발견됩니다.

 

사건은 싱글맘인 유코 선생이 어린 딸을 학교에까지 데리고 온 데 따른 사고사로 일단락되는 듯했습니다. 최소한 겉으로는 말이지요. 그런데 종업식날이자 유코 선생님이 학교를 그만두는 날 종례시간에 유코 선생님은 자신의 딸인 마나미를 죽인 범인이 반에 있다고 공표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유코 선생님은 자신의 어린 딸을 죽게 만든 범인이 누구인지 알았으면서도 어째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을까요? 선생님은 알았던 겁니다. 미성년자 범죄자는 철저하게 보호받는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래서 간접적으로 직접 응징에 나서기로 한 겁니다. 종업식날 교단 앞에서 모든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고백한 것이 바로 범죄자들에 대한 응징의 시작이었습니다.

 

 

두번째 응징은 에이즈 감염자인 자신의 애인인자 죽은 딸의 아빠의 피를 체취하여 범인인 두 명의 학생들이 마실 우유팩에 주사기로 몰래 주입한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드라마틱한 응징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 유코 선생님은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범인으로 지목된 아이들은 이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맙니다. 유코선생님이 노린 의도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 유코 선생님의 응징은 성공한 걸까요?

아닙니다.

선생님의 응징은 실패로 돌아간 듯 싶습니다. 범인 중 한명은 죽음의 공포에 떨기는 커녕 오히려 에이즈 반응 검사가 나오기도 전에 자신이 에이즈에 걸린 것을 내심 기뻐하고 에이즈 환자로 행세하니 말입니다. 왜냐구요? 그건 와타나베 슈야-그 학생의 이름입니다-가 세상의 이목을 받음으로써 자신을 버리고 떠나 버린 엄마의 관심을 받고자 했으니까요.

 

와타나베 슈야는 전자공학도인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도난방지지갑인가 뭔가를 만들어 결국 마나미를 죽게 만들었지요. 아이들의 영웅심과 관심받고자 하는 욕심이 사춘기 특유의 영악함과 결합하여 불러온 참극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와타나베군에게는 분명히 살해 의도가 있었지만 사실 마나미는 감전사한 것이 아닙니다. 와타나베군이 끌어들인 얼뜨기 시모무라 나오키가 기절한 마나미를 보고 깜짝 놀란 나머지 수영장에 빠트렸기 때문에 익사한 것입니다.

 

 

살해 의도는 와타나베군이 갖고 있었지만 실제 살인은 시모무라군에 의해 저질러졌다?!

시모무라군은 억울하게 되었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미나토 가나에는 이처럼 단순에게 작품을 이끌고 가지 않습니다.

더 큰 충격을 던져주고자 작심한 듯 합니다. 소심하기 그지없는 시모무라군이 와타나베군에게 모욕을 당하자 글쎄 한순간 와타나베군을 이기고자 하는 욕망이 고개를 쳐들고 맙니다. 결국, 시모무라군은 기절한 마나미가 눈을 뜨자 와타나베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걸 직감하고는 스스로 그 계획을 성공시켜 와타나베이 하지 못한 것을 자신이 해냈다는 승리감을 맞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만 마나미를 물이 가득 차 있는 수영장에 빠트리고 합니다. 눈을 반짝거리고 있는 고작 4살 밖에 안된 어린 여자 아이를 말이지요.

 

 

시모무라의 행동은 다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시모무라는 어느모로보나 사랑과 관심이 넘쳐나는 가정에서 성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불우한 와타나베군처럼 삐뚤어진 성격이나 가치관을 갖고 있을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엄마의 과잉보호가 문제였을까요? 아님, 자식을 보호할 줄만 알았지 격려할 줄 몰랐던 그녀의 질투심이 문제였을까요?

 

 

아들의 무죄를 철썩같이 믿고 있던 시모무라의 어머니는 진상을 알고 난 후, 아들과 함께 죽기로 결심하지만 오히려 거칠게 반항하는 시모무라군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맙니다. 이제 시모무라군은 존속살인까지 저지른 처지로 추락하고 맙니다.

 

 

한편, 엄마의 관심을 끌지 못한 와타나베군은 반장이자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미즈키의 목숨을 너무나도 손쉽게 빼앗아 버립니다. 그것 역시 매스컴의 관심을 받기 위해 저지른 살인이었지만 그의 기대처럼 경찰도 기자도 그를 찾지 않자, 마지막으로 자살폭탄을 감행하기에 이릅니다.

 

이 정도면 막장 드라마도 이런 막장 드라마가 없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막장 스토리를 만들어 냈을까요?

와타나베는 결국 자신의 꾐에 빠져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엄마의 연구실을 폭탄으로 날려버리고 맙니다.

 

와타나베 군, 저는 와타나베 군이 만들어 학교에 설치한 폭탄을 그저 해체만 한 게 아닙니다. 그것을 다른 장소에 새로 설치해놓았어요. 와타나베 군이 스위치를 누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와타나베 군은 스위치를 눌렀어요. 불발은 아니었습니다. 와타나베 군이 어느 정도의 규모를 예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철근 건물을 반쯤 날려버릴 정도의 효과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와타나베 군의 재능을 믿고 멀리 피신했기에 망정이지, 저도 위험할 뻔했네요.

K대한 이공학부 전자공학과 건물 제3연구실. 그곳이 폭탄을 새로 설치한 장소입니다. 폭탄을 제작한 것도, 스위치를 누른 것도 와타나베 군 본인입니다.

어떤가요, 와나베 군. 이것이 진정한 복수이자, 와타나베 군의 갱생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미나토 가나에, <고백> 中-

 

 

이 모든 비극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몸부림치던 사춘기 남학생의 마음속에서 싹텄습니다. 그의 아픔은 빛나는 재능으로 승화되는 대신, 친구가 필요했을 뿐인 동급생 '마마보이'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 그것도 모자라서 그를 친구로 감싸안은 '엄친딸'까지도 죽음으로 내몰고 맙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지만 와타나베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응당의 죄값을 치르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유코 선생님으로 하여금 직접 나서서 그를 응징하게 만들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국, 고통을 또 다른 고통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꼴이 되고 말았네요.

 

미나토 가나에는 이 작품을 통해 미성년자 범죄의 잔인함과 그들에 대한 법의 관대함 및 사회의 불합리한 시선을 지적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렇지만 너무 과격하게 앞서간 나머지 공감을 반감시킨 점이 없지 않습니다.

 

 

범죄에 대한 진정한 용서란 불가능하겠지요. 그렇지만 용서 대신 응징 역시 정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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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벌레 동서 미스터리 북스 1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김병철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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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까?

'추리 소설의 아버지'나 '괴기소설의 거장' 혹은 '최초의 사립탐정 오귀스트 뒤팡을 만들어낸 인물' 정도로 정의한다면 그에 대한 턱없는 이해 부족을 드러낸 꼴이나 다름 아니다.

 

 

<검은 고양이> <모르그 거리의 살인> <어셔집안의 몰락> 등등으로 대표되는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세계는 단순히 괴기스러운 이야기나 살인사건의 해결 과정을 나열한 것이 아니다. 그는 프로이드보다도 먼저 인간 본성 밑바닥에 깔려 있는 공포와 두려움의 근원에 접근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하게 묘사함으로써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도를 한단계 드높혔다. 그러므로 그는 작가라기보다는 인간의 정신 세계를 여행한 최초의 탐험가라 할 수 있다.

 

 

1809년 미국 보스턴에서 유랑극단 배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에드거 앨런 포는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부유한 양부모를 만나 성장하지만 빈곤과 고독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친부모와 양부모 모두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알콜에 탐닉하면서 고통스런 현실을 잊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이성과 비이성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살았던 포의 평탄하지 않은 인생이야말로 작품의 모티브가 되기에 충분했다. 포의 유별난 감수성과 지적인 날카로움은 어린 시절 5년 동안 영국에서 머물면서 받은 교육의 영향일 것이다.

 

 

17살에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하지만 약혼의 실패와 양부의 송금 거절 및 도박에 빠져 막대한 빚을 지게 되면서 입학 10개월만에 퇴학당하고 만다. 작품 <윌리엄 윌슨>의 주인공인 '나'도 학교에서 도박을 일삼다가 결국 퇴교를 당하고 만다. 주인공이 이름도 생일도 나이도 똑같을 뿐만 아니라 쌍둥이처럼 외모까지 빼닮은 친구의 등장으로 고통을 받다가 결국 타락하게 된다는 내용을 그리고 있는 <윌리엄 윌슨>은 작가의 학창시절의 모습을 재현시켜 놓은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자전적 소설로 읽힌다.

 

 

일란성 남여 쌍둥이의 병적인 생활과 죽음에 대한 일탈을 그리고 있는 <어셔집안의 몰락>도 <윌리엄 윌슨>처럼 쌍둥이를 다루고 있다. 에드거 앨런 포가 이처럼 '쌍둥이'에 대해 지대한 관심과 집착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작품 구상에 따른 우연에 불과한 것일까? 어쩌면 포는 술에 극도로 취한 상태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망상'과 '신체이탈'을 경험했던 건 아니었을까? 알콜중독의 일부 증세가 환각, 환청, 망상 등을 포함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포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어둠 그리고 몽환적인 분위기 등은 그의 비정상적인 알콜 의존적 성향으로부터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에드거 앨런 포는 1836년 14살 어린 사촌 누이동생과 결혼하지만 노름과 주벽에 빠져 모든 것을 잃고 결국 1847년 아내마처 폐병으로 잃고 만다. 아내가 임종할 당시 포의 곁에는 아내의 몸을 덮고 있던 그의 낡은 외투 한벌과 고양이 한 마리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로써 미루어 짐착컨데, 포는 고양이를 키웠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좋아했었던 것 같다. 그의 작품 <검은 고양이>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그리고 오랜 병마로 여성의 모습은 상실한 채 흩트러질대로 흩트러진 병색이 완연한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어셔家의 몰락>에 등장하는 쌍둥이 누이 동생의 이미지를 상상해 냈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신경증을 앓고 있는 어셔집안의 마지막 후계자가 자신과 꼭 닮은 누이동생을 생매장시키는데 여기에는 단순한 근친살해사건이라고 하기에는 '기막힌 구조'가 담겨 있는데 바로 자기파괴가 그것이다. 신경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이 자신처럼 신경증을 앓는 쌍둥이 누이동생을 땅굴속에 생매장시키는 것은 바로 곧 스스로도 어찌하지 못하는 자기자신을 죽이는 행위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영화로 이 작품을 볼 때에는 여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성인이 되어 포의 인생을 더듬어가며 다시 읽어 보니 역시나 포의 깊은 절망감이 느껴졌다. 어쩌면 포는 <어셔家의 몰락>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스스로도 통제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을 만큼 협오했는지도 모른다.

 

 

근현대 추리 소설의 원조로 알려진 <모르그 거리의 살인>은 포가 창조하낸 최초의 사립탐정이자 그 이후의 추리소설 속 탐정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오귀스트 뒤팡이 등장하여 모녀를 참혹하게 살해한 범인은 다름 아닌 오랑우탄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참고로, 이 작품은 한동안 <모르그가의 살인>으로 번역되어 널리 알려져왔는데, 나는 포의 또 다른 작품 <어셔가의 몰락> 때문인지는 몰라도 당연히 모르그가의 거리 '가(街)'를 집 '가(家)로 오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오해를 나 한 사람만 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최근에 출판된 책에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모르그 거리의 살인> <어셔집안의 몰락>으로 번역되어 착오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애쓴 흔적이 보이니 말이다. 초기 번역사의 실착이 만들어낸 해프닝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범죄를 감쪽같이 은폐시켰다는 환희가 교차하면서 표출되는 주인공의 돌출행동이 '도플갱어'처럼 그려지는 작품이 있는데 하나는 포의 대표작인 <검은 고양이>고 다른 하나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말하는 심장>이라는 작품이다.

 

드디어 서너번째나 그들은 땅광으로 내려갔지만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내 심장은 마치 천진난만하게 잠을 자고 있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뛰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 이리저리 유유히 활보하였다. 경관들은 완전히 의심이 풀어져 떠나려 했다. 내 마음의 기쁨은 억제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나는 다만 한 마디라도 승리를 표현해서 나의 무죄를 그들에게 한층 더 확실하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불탔다.

"여러분!" 경관들이 계단을 올라갈 때 참다 못해 나는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의 의심이 풀어져 무엇보다 기쁩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들의 건강을 빌며 경의를 표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집은요, 이 집은 말이죠, 그 구조가 아주 썩 잘 되어 있답니다. (아무거나 무작정 술술 얘기하고 싶은 격렬한 욕망에 싸여 무얼 얘기하고 있는지 나도 몰랐다.) 특별히 잘 지어진 집이라 할 수 있죠. 이 벽들은 말이죠, 자 여러분들 그만 가시렵니까? 이 벽돌은 말이죠, 견고하게 쌓여 있답니다."

여기서 일단 말을 멈추고 공연히 미치광이처럼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막대기로 아내의 시체가 있는 바로 그 부분을 힘껏 내리갈겼다.

그러나 하느님, 악마의 손길로부터 나를 구해 주소서! ㄸ깨린 소리의 울림이 채 가시기도 전에 무덤 속에서 새어 나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 왔다. 처음에는 막혔다 끊어졌다 하는 어린애 울음 소리처럼 들리던 것이, 갑자기 길고 높게 이어지는 아주 이상하고도 잔인한 비명으로 변했다. 마치 지옥에 떨어진 수난자의 울부짓는 비명소리와 그에게 형벌을 주며 기뻐 날뛰는 악마들이 동시에 지르는 공포와 승리가 반반씩 뒤섞인 외침이었다.

-에드가 앨런 포, <검은 고양이> 中-

 

 

주인공 '나'는 특별히 죽여할 이유도 없는 노인을 매일 밤 12시에 찾아갔다가 마침내 여드레째되는 밤에 죽이고 만다. 그리고 그 시체를 방바닥의 널빤지 석 장을 뜯어내고 각목 사이에 쑤셔 넣고는 간교하고도 교묘하게 널빤지를 다시 맞추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소식을 전해 들은 경관들이 들이닥쳐 가택수색이 이어졌다.

 

 

경관들은 만족해했다. 나의 태도가 그들을 납득시켰다. 나는 이상하게도 침착했다. 내가 기분 좋게 대답하는 동안 그들은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되자 나는 자신이 창백해짐을 느끼고는 그들이 가 주기를 바랬다. 머리가 아프고 귀에서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앉아 잡담을 나누었다. 울림이 더 분명해졌다. 귀울림은 계속되고 더욱 분명해져 갔다. 나는 이런 느낌을 없애기 위해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귀울림은 계속되어 그겡 달했다. 결국 나는 그 소리가 내 귓속에서 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

나는 더 빨리, 더 격렬하게 지껄였다. 그러나 소음은 꾸준히 커져 갔다. 나는 일어나 사소한 것들에 관해 논쟁을 했고 격렬한 몸짓을 써 가며 큰 목소리롤 말했다. 그러나 소음은 계속 커져만 갔다. 왜 그들은 가지 않는 것일까? 그들에게 관찰되고 있는 것에 마치 화가 난 듯, 나는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며 이쪽저쪽을 돌아다녔다.

(......)

그러나 소음은 더 커졌다. 소리는 점점 더,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경관들은 여전히 즐겁게 지껄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은 과연 듣지 못했응ㄹ까? 전능하신 신이여, 이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들었다! 그들은 의심했고 그들은 알았다! 놈들은 나의 공포를 갖고 논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어ㄸ너 것도 이런 고통보다는 낫다! 어떤 것도 이런 비웃음보다는 견딜 만하다! 이런 위선적인 웃음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나는 소리르 지르거나 죽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소리가 더 크게! 더 크게! 더 크게! 나느 소리쳤다.

"나쁜 놈들! 더 이상 시치미 떼지 마라! 내가 죽였다! 널빤지를 뜯어 봐! 여기, 바로 여기! 이 소리는 끔찍한 그의 심장박동이란 말이다!"

-에드가 앨런 포, <말하는 심장>中-

 

 

이 정도면 거의 두 작품의 클라이막스가 '도플갱어'처럼 똑같지 않은가.

 

 

소년 시절부터 에드가 앨런 포를 경외에 마지 않았던 히라이 타로(平井太郞)라는 일본인은 성인이 되어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에드가 앨런 포의 이름을 본 떠 에도가와 란포(江戶川亂步)라 지었다. 에도가와 란포는 일본에 근대 추리소설을 알리고 형식화시킨 인물로 그의 영향력은 사회파 추리소설의 창시자인 마쓰모토 세이초 그리고 '세이초의 손녀'로 불리우는 미야베 미유키까지 이어진다.

 

 

에드가 앨런 포의 작품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2전짜리 동전>은 에드가 앨런 포의 <황금벌레>와 <도난 당한 편지>와 상당히 비슷한 면이 있다. <황금벌레>는 해적이 남긴 암호 지도를 우연히 손에 넣은 주인공이 기발한 발상과 번뜩이는 재치로 암호를 풀어 마침내 보물을 찾아낸다는 이야기로 포의 문예상 당선작이라고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2전짜리 동전> 역시 에도가와 란포의 문예상 당선작으로 암호를 활용하고 있다.

 

 

<2전짜리 동전>은 그 당시 일본에서 통용되던 두께 4mm 직경 3cm 정도 크기의 2전짜리 동전을 두쪽으로 쪼개고 그 사이에 훔친 돈을 숨겨 놓은 장소를 암호로 기록한 종이를 숨긴다. 그리고 훔친 돈은 문방구에서 판매하는 진짜와 흡사한 가짜 돈과 바꿔치기 함으로써 남들이 모두 진짜돈을 가짜돈으로 믿게 만듦으로써 훔친 돈을 안전(?)하게 보관한다는 이야기인데, 사람들 눈에 드러나게 감춤으로써 의심을 사지 않는다는 이 아이디어 역시 포의 단편 <도난 당한 편지>로부터 모티브를 딴 온 것이다. 분명에 집안에 숨겨 놓았건만 경관들이 몇날 며칠 동안 샅샅이 뒤져 보아도 편지는 오간데 없다. 편지를 훔친 범인은 도대체 어디에 숨겨 놓은 걸까?

 

 

 

삶의 진실은 마치 숨은그림찾기와 같아서 뻔히 보이는데도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추리소설의 트릭 역시 사건 해결의 단서와 정보는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 있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추리공포소설에 매료되는 까닭은 어쩌면 이렇듯 추리소설이 우리의 삶과 가장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뻔히 드러나 있음에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은 내 인생의 맹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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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
최성일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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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왠지 모르게 나에게는 서평집에 대한 짝사랑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같다.

흔히, 짝사랑은 혼자서 한껏 들떠 있다가는 혼자서 시들해지지 않던가. 짝사랑하는 상대에 대해 잔뜩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다가 상대방의 작은 실수나 행동 하나에 이내 실망하고 제풀에 지쳐버리는 것이지 않던가.

 

 

나에게 서평집은 바로 이런 짝사랑 같은 존재이다. 물론, 서평집이 열에 아홉은 짝사랑으로 끝나고 마는 것은 소개된 책들에 대한 나의 이해도가 한참이나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감으로 시작해서 실망감으로 끝나고 마는 그런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또 다시 사랑이 돋아나듯 도서관에서건 서점에서건 서평집만 눈에 띄면 바로 손부터 나가곤 하니 이쯤되면 거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성일의 <한권의 책> 역시 그렇게 만난 책이다. 저자가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읽어야할 독서 목록들이 차고 넘치건만 어찌하여 덥썩 집어들어 갈 길 바쁜 걸음을 붙잡히고 말았는지...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는 나처럼 책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사람이 있다면 고개 돌려 다시 한번 쳐다 볼만큼 호감을 갖는 버릇이 있다. 한마디로 책벌레들에게는 굉장히 헤픈 편이고 해야 하리라.

 

 

약력을 보니, 저자는 책에 관한 책들을 전문적으로 쓴 진정한 '책꾼'이었다.

<한권의 책>은 그런 저자가 4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뇌종양으로 생을 마감한 후, 가족들과-아마도 아내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주변사람들에 의해 출판된 책으로 저자가 평소 써두었던 글들을 모은 일종의 유고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책의 구성과 내용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저자의 의도와 생각이 조금도 개입되지 않은 가장 非저자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저자가 살아있었더라도 이런 서평집이 탄생했을까?

글쎄...

 

<한권의 책>이라는 책을 통해 내가 이해한 최성일이라는 사람은 결코 이런 서평집은 출판하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다기 보다는 그냥 본문 중 한창 나이에 운명을 달리한 작은형의 일기(편지 포함)를 '속울음'이라는 제목으로 150부만 엮어 가까운 지인끼리만(?) 나누어 가졌다는 '착한 고백'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따름이다.

 

1부와 2부는 병마와 싸우기 직전에 쓴 글들로 이루어져 있어 시기적으로 '과거의 향수'가 짙게 배어 있지 않은 반면, 후반부로 갈수록 2000년대 초반에 발표한 글들이 불쑥불쑥 등장하여 어딘지 모르게 '한물 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마광수와 강준만 교수에 대해 언급한 문장들은 10년 전으로 독자를 돌려세우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책장을 넘기고 있노라면 저자의 정치적 견해와 생각들이 거침없이 들어나는 것에 대해 마치 예기치 않게 남의 방이라도 엿본 것처럼 당혹스럽기도 하다. '책 속에서 책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선택한 독자들라면 분명 낭패감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저자와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비슷하다면 우연한 합석에서의 부담없는 대화가 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우리사회는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폭넓은 사회를 지향하면서도 양 극단의 함성만 들리는 것같다.

'고된 시집살이를 한 시어머니일수록 며느리에게 더욱 심한 시집살이를 시킨다'는 옛말처럼 한때 목소리를 죽이고 낮출 수밖에 없었던 계층들이 점점 목소리를 높이더니 심지어는 안아무인식의 억지 주장까지 펼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한권의 책>을 통해 저자는 자신이 읽은 책들에 대한 비판에 거침이 없다. 불편하다는 점잖은 표현을 사용했지만 내심은 결코 그 정도가 아님은 한눈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혹시 저자는 자신의 글들이 그 누군가를 한없이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을까.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이 읽는 책을 보라'는 서양속담처럼 서평은 읽은 책을 논한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이 책에 대한 저자의 호불호가 들어날 수밖에 없으며 더 나아가 저자의 가치관과 인생관까지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단 '한권의 책'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비록 나는 저자의 생각에 100% 공감할 수는 없지만 <한권의 책>을 통해 여러 권의 책들을 새롭게 발견했다. 그리고 내가 언젠가 그 책들을 읽으면서 저자의 생각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어째서 신은 꼭 쓰임새 있는 사람들만 서둘러 데려가시는 걸까?

글쟁이 책쟁이들은 좀 더 오래도록 이 땅에 남아 있어도 대자연에 피해가 가진 않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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