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벌레 동서 미스터리 북스 1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김병철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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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까?

'추리 소설의 아버지'나 '괴기소설의 거장' 혹은 '최초의 사립탐정 오귀스트 뒤팡을 만들어낸 인물' 정도로 정의한다면 그에 대한 턱없는 이해 부족을 드러낸 꼴이나 다름 아니다.

 

 

<검은 고양이> <모르그 거리의 살인> <어셔집안의 몰락> 등등으로 대표되는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세계는 단순히 괴기스러운 이야기나 살인사건의 해결 과정을 나열한 것이 아니다. 그는 프로이드보다도 먼저 인간 본성 밑바닥에 깔려 있는 공포와 두려움의 근원에 접근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하게 묘사함으로써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도를 한단계 드높혔다. 그러므로 그는 작가라기보다는 인간의 정신 세계를 여행한 최초의 탐험가라 할 수 있다.

 

 

1809년 미국 보스턴에서 유랑극단 배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에드거 앨런 포는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부유한 양부모를 만나 성장하지만 빈곤과 고독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친부모와 양부모 모두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알콜에 탐닉하면서 고통스런 현실을 잊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이성과 비이성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살았던 포의 평탄하지 않은 인생이야말로 작품의 모티브가 되기에 충분했다. 포의 유별난 감수성과 지적인 날카로움은 어린 시절 5년 동안 영국에서 머물면서 받은 교육의 영향일 것이다.

 

 

17살에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하지만 약혼의 실패와 양부의 송금 거절 및 도박에 빠져 막대한 빚을 지게 되면서 입학 10개월만에 퇴학당하고 만다. 작품 <윌리엄 윌슨>의 주인공인 '나'도 학교에서 도박을 일삼다가 결국 퇴교를 당하고 만다. 주인공이 이름도 생일도 나이도 똑같을 뿐만 아니라 쌍둥이처럼 외모까지 빼닮은 친구의 등장으로 고통을 받다가 결국 타락하게 된다는 내용을 그리고 있는 <윌리엄 윌슨>은 작가의 학창시절의 모습을 재현시켜 놓은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자전적 소설로 읽힌다.

 

 

일란성 남여 쌍둥이의 병적인 생활과 죽음에 대한 일탈을 그리고 있는 <어셔집안의 몰락>도 <윌리엄 윌슨>처럼 쌍둥이를 다루고 있다. 에드거 앨런 포가 이처럼 '쌍둥이'에 대해 지대한 관심과 집착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작품 구상에 따른 우연에 불과한 것일까? 어쩌면 포는 술에 극도로 취한 상태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망상'과 '신체이탈'을 경험했던 건 아니었을까? 알콜중독의 일부 증세가 환각, 환청, 망상 등을 포함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포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어둠 그리고 몽환적인 분위기 등은 그의 비정상적인 알콜 의존적 성향으로부터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에드거 앨런 포는 1836년 14살 어린 사촌 누이동생과 결혼하지만 노름과 주벽에 빠져 모든 것을 잃고 결국 1847년 아내마처 폐병으로 잃고 만다. 아내가 임종할 당시 포의 곁에는 아내의 몸을 덮고 있던 그의 낡은 외투 한벌과 고양이 한 마리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로써 미루어 짐착컨데, 포는 고양이를 키웠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좋아했었던 것 같다. 그의 작품 <검은 고양이>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그리고 오랜 병마로 여성의 모습은 상실한 채 흩트러질대로 흩트러진 병색이 완연한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어셔家의 몰락>에 등장하는 쌍둥이 누이 동생의 이미지를 상상해 냈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신경증을 앓고 있는 어셔집안의 마지막 후계자가 자신과 꼭 닮은 누이동생을 생매장시키는데 여기에는 단순한 근친살해사건이라고 하기에는 '기막힌 구조'가 담겨 있는데 바로 자기파괴가 그것이다. 신경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이 자신처럼 신경증을 앓는 쌍둥이 누이동생을 땅굴속에 생매장시키는 것은 바로 곧 스스로도 어찌하지 못하는 자기자신을 죽이는 행위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영화로 이 작품을 볼 때에는 여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성인이 되어 포의 인생을 더듬어가며 다시 읽어 보니 역시나 포의 깊은 절망감이 느껴졌다. 어쩌면 포는 <어셔家의 몰락>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스스로도 통제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을 만큼 협오했는지도 모른다.

 

 

근현대 추리 소설의 원조로 알려진 <모르그 거리의 살인>은 포가 창조하낸 최초의 사립탐정이자 그 이후의 추리소설 속 탐정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오귀스트 뒤팡이 등장하여 모녀를 참혹하게 살해한 범인은 다름 아닌 오랑우탄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참고로, 이 작품은 한동안 <모르그가의 살인>으로 번역되어 널리 알려져왔는데, 나는 포의 또 다른 작품 <어셔가의 몰락> 때문인지는 몰라도 당연히 모르그가의 거리 '가(街)'를 집 '가(家)로 오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오해를 나 한 사람만 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최근에 출판된 책에는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모르그 거리의 살인> <어셔집안의 몰락>으로 번역되어 착오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애쓴 흔적이 보이니 말이다. 초기 번역사의 실착이 만들어낸 해프닝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범죄를 감쪽같이 은폐시켰다는 환희가 교차하면서 표출되는 주인공의 돌출행동이 '도플갱어'처럼 그려지는 작품이 있는데 하나는 포의 대표작인 <검은 고양이>고 다른 하나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말하는 심장>이라는 작품이다.

 

드디어 서너번째나 그들은 땅광으로 내려갔지만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내 심장은 마치 천진난만하게 잠을 자고 있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뛰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 이리저리 유유히 활보하였다. 경관들은 완전히 의심이 풀어져 떠나려 했다. 내 마음의 기쁨은 억제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것이었다. 나는 다만 한 마디라도 승리를 표현해서 나의 무죄를 그들에게 한층 더 확실하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불탔다.

"여러분!" 경관들이 계단을 올라갈 때 참다 못해 나는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의 의심이 풀어져 무엇보다 기쁩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들의 건강을 빌며 경의를 표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집은요, 이 집은 말이죠, 그 구조가 아주 썩 잘 되어 있답니다. (아무거나 무작정 술술 얘기하고 싶은 격렬한 욕망에 싸여 무얼 얘기하고 있는지 나도 몰랐다.) 특별히 잘 지어진 집이라 할 수 있죠. 이 벽들은 말이죠, 자 여러분들 그만 가시렵니까? 이 벽돌은 말이죠, 견고하게 쌓여 있답니다."

여기서 일단 말을 멈추고 공연히 미치광이처럼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막대기로 아내의 시체가 있는 바로 그 부분을 힘껏 내리갈겼다.

그러나 하느님, 악마의 손길로부터 나를 구해 주소서! ㄸ깨린 소리의 울림이 채 가시기도 전에 무덤 속에서 새어 나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 왔다. 처음에는 막혔다 끊어졌다 하는 어린애 울음 소리처럼 들리던 것이, 갑자기 길고 높게 이어지는 아주 이상하고도 잔인한 비명으로 변했다. 마치 지옥에 떨어진 수난자의 울부짓는 비명소리와 그에게 형벌을 주며 기뻐 날뛰는 악마들이 동시에 지르는 공포와 승리가 반반씩 뒤섞인 외침이었다.

-에드가 앨런 포, <검은 고양이> 中-

 

 

주인공 '나'는 특별히 죽여할 이유도 없는 노인을 매일 밤 12시에 찾아갔다가 마침내 여드레째되는 밤에 죽이고 만다. 그리고 그 시체를 방바닥의 널빤지 석 장을 뜯어내고 각목 사이에 쑤셔 넣고는 간교하고도 교묘하게 널빤지를 다시 맞추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소식을 전해 들은 경관들이 들이닥쳐 가택수색이 이어졌다.

 

 

경관들은 만족해했다. 나의 태도가 그들을 납득시켰다. 나는 이상하게도 침착했다. 내가 기분 좋게 대답하는 동안 그들은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되자 나는 자신이 창백해짐을 느끼고는 그들이 가 주기를 바랬다. 머리가 아프고 귀에서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앉아 잡담을 나누었다. 울림이 더 분명해졌다. 귀울림은 계속되고 더욱 분명해져 갔다. 나는 이런 느낌을 없애기 위해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귀울림은 계속되어 그겡 달했다. 결국 나는 그 소리가 내 귓속에서 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

나는 더 빨리, 더 격렬하게 지껄였다. 그러나 소음은 꾸준히 커져 갔다. 나는 일어나 사소한 것들에 관해 논쟁을 했고 격렬한 몸짓을 써 가며 큰 목소리롤 말했다. 그러나 소음은 계속 커져만 갔다. 왜 그들은 가지 않는 것일까? 그들에게 관찰되고 있는 것에 마치 화가 난 듯, 나는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며 이쪽저쪽을 돌아다녔다.

(......)

그러나 소음은 더 커졌다. 소리는 점점 더,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경관들은 여전히 즐겁게 지껄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은 과연 듣지 못했응ㄹ까? 전능하신 신이여, 이럴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들었다! 그들은 의심했고 그들은 알았다! 놈들은 나의 공포를 갖고 논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어ㄸ너 것도 이런 고통보다는 낫다! 어떤 것도 이런 비웃음보다는 견딜 만하다! 이런 위선적인 웃음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나는 소리르 지르거나 죽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소리가 더 크게! 더 크게! 더 크게! 나느 소리쳤다.

"나쁜 놈들! 더 이상 시치미 떼지 마라! 내가 죽였다! 널빤지를 뜯어 봐! 여기, 바로 여기! 이 소리는 끔찍한 그의 심장박동이란 말이다!"

-에드가 앨런 포, <말하는 심장>中-

 

 

이 정도면 거의 두 작품의 클라이막스가 '도플갱어'처럼 똑같지 않은가.

 

 

소년 시절부터 에드가 앨런 포를 경외에 마지 않았던 히라이 타로(平井太郞)라는 일본인은 성인이 되어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에드가 앨런 포의 이름을 본 떠 에도가와 란포(江戶川亂步)라 지었다. 에도가와 란포는 일본에 근대 추리소설을 알리고 형식화시킨 인물로 그의 영향력은 사회파 추리소설의 창시자인 마쓰모토 세이초 그리고 '세이초의 손녀'로 불리우는 미야베 미유키까지 이어진다.

 

 

에드가 앨런 포의 작품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2전짜리 동전>은 에드가 앨런 포의 <황금벌레>와 <도난 당한 편지>와 상당히 비슷한 면이 있다. <황금벌레>는 해적이 남긴 암호 지도를 우연히 손에 넣은 주인공이 기발한 발상과 번뜩이는 재치로 암호를 풀어 마침내 보물을 찾아낸다는 이야기로 포의 문예상 당선작이라고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2전짜리 동전> 역시 에도가와 란포의 문예상 당선작으로 암호를 활용하고 있다.

 

 

<2전짜리 동전>은 그 당시 일본에서 통용되던 두께 4mm 직경 3cm 정도 크기의 2전짜리 동전을 두쪽으로 쪼개고 그 사이에 훔친 돈을 숨겨 놓은 장소를 암호로 기록한 종이를 숨긴다. 그리고 훔친 돈은 문방구에서 판매하는 진짜와 흡사한 가짜 돈과 바꿔치기 함으로써 남들이 모두 진짜돈을 가짜돈으로 믿게 만듦으로써 훔친 돈을 안전(?)하게 보관한다는 이야기인데, 사람들 눈에 드러나게 감춤으로써 의심을 사지 않는다는 이 아이디어 역시 포의 단편 <도난 당한 편지>로부터 모티브를 딴 온 것이다. 분명에 집안에 숨겨 놓았건만 경관들이 몇날 며칠 동안 샅샅이 뒤져 보아도 편지는 오간데 없다. 편지를 훔친 범인은 도대체 어디에 숨겨 놓은 걸까?

 

 

 

삶의 진실은 마치 숨은그림찾기와 같아서 뻔히 보이는데도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추리소설의 트릭 역시 사건 해결의 단서와 정보는 감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 있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추리공포소설에 매료되는 까닭은 어쩌면 이렇듯 추리소설이 우리의 삶과 가장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뻔히 드러나 있음에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은 내 인생의 맹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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