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러니까 일본소설은 범죄 동기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작가 미야베 미유키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녀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마쓰모토 세이초 역시 범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범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보다는 어째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 즉 범행동기에 천착한 작가들로 유명합니다.

 

 

범죄 동기를 이해하려면 어쩔 수 없이 범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말,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범죄자를 이해하게 되고, 심지어는 '그럴 수 밖에는 없었겠다.'는 식으로 범죄자를 두둔하고 범죄행위를 합리화시키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물론, 소설 작품 속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핑계 없는 무덤없다.'라는 속담을 다들 알고 계실겁니다.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들을 읽고 있노라면 특별히 애착이 가고 연민이 생기는 사연 또한 없지 않지만 저마다 안고 있는 구구절절한 범행동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피해자나 그 가족들의 슬픔 따위는 너무도 간단하게 생략되거나 대수롭지 않게 다루어진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 무슨 희안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강력범죄자들의 인권은 법의 이름으로 철저히 보호되는 반면 피해자의 인권과 그 가족들의 사생활은 법의 테두리밖으로 무참히 내동댕이쳐지곤 해서 비판 여론이 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이 지나치게 범행 동기를 추구하고 범죄자에게 집중한 나머지 '핑계 없는 범죄없다.'식의 면죄부를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에서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 범죄'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된지 이미 오래인데, 이들의 범죄행위 역시 사회로부터 소외된 것에 따른 행동이므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책임을 다같이 반성해야 한다.라는 주장의 목소리도 들려 오곤 합니다.

 

 

물론, 장발장처럼 사회적 약자로서 어쩔 수없이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모두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열악한 현실을 극복하여 사회에 귀감이 되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위대한 성과를 이루기도 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사회로부터 억울한 고통과 슬픔을 받았다고 해서 사회에 복수하는 대신 극복함으로서 자기 승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분명 한차원 높은 행동이라 아닐할 수 없습니다.

 

 

모든 범죄행위는 어떤 상황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응당의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여기에 예외는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인간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것에 대한 자기 자신의 반응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서평을 쓰려했을 따름인데 그만 서론이 길어져버렸네요.

 

제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작품은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이란 소설입니다.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출판되자마자 일본 열도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킨 이를테면 '문제작'인가 봅니다.

 

 

아닌게 아니라 작품의 기본 줄거리는 상당히 충격적이더군요. 그리고 배경 묘사보다는 이야기 위주로 작품이 전개되어 도무지 조금도 쉴 틈을 주지 않더군요. 쉼없이 펼쳐지는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호흡이 가파지곤 하는데 역시 스토리텔링의 힘이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는 역시나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S중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여선생님의 4살배기 외동딸이 학교 수영장에서 사체로 발견됩니다.

 

사건은 싱글맘인 유코 선생이 어린 딸을 학교에까지 데리고 온 데 따른 사고사로 일단락되는 듯했습니다. 최소한 겉으로는 말이지요. 그런데 종업식날이자 유코 선생님이 학교를 그만두는 날 종례시간에 유코 선생님은 자신의 딸인 마나미를 죽인 범인이 반에 있다고 공표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유코 선생님은 자신의 어린 딸을 죽게 만든 범인이 누구인지 알았으면서도 어째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을까요? 선생님은 알았던 겁니다. 미성년자 범죄자는 철저하게 보호받는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래서 간접적으로 직접 응징에 나서기로 한 겁니다. 종업식날 교단 앞에서 모든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고백한 것이 바로 범죄자들에 대한 응징의 시작이었습니다.

 

 

두번째 응징은 에이즈 감염자인 자신의 애인인자 죽은 딸의 아빠의 피를 체취하여 범인인 두 명의 학생들이 마실 우유팩에 주사기로 몰래 주입한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드라마틱한 응징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 유코 선생님은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범인으로 지목된 아이들은 이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맙니다. 유코선생님이 노린 의도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 유코 선생님의 응징은 성공한 걸까요?

아닙니다.

선생님의 응징은 실패로 돌아간 듯 싶습니다. 범인 중 한명은 죽음의 공포에 떨기는 커녕 오히려 에이즈 반응 검사가 나오기도 전에 자신이 에이즈에 걸린 것을 내심 기뻐하고 에이즈 환자로 행세하니 말입니다. 왜냐구요? 그건 와타나베 슈야-그 학생의 이름입니다-가 세상의 이목을 받음으로써 자신을 버리고 떠나 버린 엄마의 관심을 받고자 했으니까요.

 

와타나베 슈야는 전자공학도인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도난방지지갑인가 뭔가를 만들어 결국 마나미를 죽게 만들었지요. 아이들의 영웅심과 관심받고자 하는 욕심이 사춘기 특유의 영악함과 결합하여 불러온 참극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와타나베군에게는 분명히 살해 의도가 있었지만 사실 마나미는 감전사한 것이 아닙니다. 와타나베군이 끌어들인 얼뜨기 시모무라 나오키가 기절한 마나미를 보고 깜짝 놀란 나머지 수영장에 빠트렸기 때문에 익사한 것입니다.

 

 

살해 의도는 와타나베군이 갖고 있었지만 실제 살인은 시모무라군에 의해 저질러졌다?!

시모무라군은 억울하게 되었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미나토 가나에는 이처럼 단순에게 작품을 이끌고 가지 않습니다.

더 큰 충격을 던져주고자 작심한 듯 합니다. 소심하기 그지없는 시모무라군이 와타나베군에게 모욕을 당하자 글쎄 한순간 와타나베군을 이기고자 하는 욕망이 고개를 쳐들고 맙니다. 결국, 시모무라군은 기절한 마나미가 눈을 뜨자 와타나베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걸 직감하고는 스스로 그 계획을 성공시켜 와타나베이 하지 못한 것을 자신이 해냈다는 승리감을 맞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만 마나미를 물이 가득 차 있는 수영장에 빠트리고 합니다. 눈을 반짝거리고 있는 고작 4살 밖에 안된 어린 여자 아이를 말이지요.

 

 

시모무라의 행동은 다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시모무라는 어느모로보나 사랑과 관심이 넘쳐나는 가정에서 성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불우한 와타나베군처럼 삐뚤어진 성격이나 가치관을 갖고 있을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엄마의 과잉보호가 문제였을까요? 아님, 자식을 보호할 줄만 알았지 격려할 줄 몰랐던 그녀의 질투심이 문제였을까요?

 

 

아들의 무죄를 철썩같이 믿고 있던 시모무라의 어머니는 진상을 알고 난 후, 아들과 함께 죽기로 결심하지만 오히려 거칠게 반항하는 시모무라군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맙니다. 이제 시모무라군은 존속살인까지 저지른 처지로 추락하고 맙니다.

 

 

한편, 엄마의 관심을 끌지 못한 와타나베군은 반장이자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미즈키의 목숨을 너무나도 손쉽게 빼앗아 버립니다. 그것 역시 매스컴의 관심을 받기 위해 저지른 살인이었지만 그의 기대처럼 경찰도 기자도 그를 찾지 않자, 마지막으로 자살폭탄을 감행하기에 이릅니다.

 

이 정도면 막장 드라마도 이런 막장 드라마가 없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막장 스토리를 만들어 냈을까요?

와타나베는 결국 자신의 꾐에 빠져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엄마의 연구실을 폭탄으로 날려버리고 맙니다.

 

와타나베 군, 저는 와타나베 군이 만들어 학교에 설치한 폭탄을 그저 해체만 한 게 아닙니다. 그것을 다른 장소에 새로 설치해놓았어요. 와타나베 군이 스위치를 누르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와타나베 군은 스위치를 눌렀어요. 불발은 아니었습니다. 와타나베 군이 어느 정도의 규모를 예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철근 건물을 반쯤 날려버릴 정도의 효과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와타나베 군의 재능을 믿고 멀리 피신했기에 망정이지, 저도 위험할 뻔했네요.

K대한 이공학부 전자공학과 건물 제3연구실. 그곳이 폭탄을 새로 설치한 장소입니다. 폭탄을 제작한 것도, 스위치를 누른 것도 와타나베 군 본인입니다.

어떤가요, 와나베 군. 이것이 진정한 복수이자, 와타나베 군의 갱생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미나토 가나에, <고백> 中-

 

 

이 모든 비극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몸부림치던 사춘기 남학생의 마음속에서 싹텄습니다. 그의 아픔은 빛나는 재능으로 승화되는 대신, 친구가 필요했을 뿐인 동급생 '마마보이'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 그것도 모자라서 그를 친구로 감싸안은 '엄친딸'까지도 죽음으로 내몰고 맙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지만 와타나베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응당의 죄값을 치르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유코 선생님으로 하여금 직접 나서서 그를 응징하게 만들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국, 고통을 또 다른 고통으로 확대 재생산하는 꼴이 되고 말았네요.

 

미나토 가나에는 이 작품을 통해 미성년자 범죄의 잔인함과 그들에 대한 법의 관대함 및 사회의 불합리한 시선을 지적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렇지만 너무 과격하게 앞서간 나머지 공감을 반감시킨 점이 없지 않습니다.

 

 

범죄에 대한 진정한 용서란 불가능하겠지요. 그렇지만 용서 대신 응징 역시 정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