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
최성일 지음 / 연암서가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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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왠지 모르게 나에게는 서평집에 대한 짝사랑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같다.

흔히, 짝사랑은 혼자서 한껏 들떠 있다가는 혼자서 시들해지지 않던가. 짝사랑하는 상대에 대해 잔뜩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다가 상대방의 작은 실수나 행동 하나에 이내 실망하고 제풀에 지쳐버리는 것이지 않던가.

 

 

나에게 서평집은 바로 이런 짝사랑 같은 존재이다. 물론, 서평집이 열에 아홉은 짝사랑으로 끝나고 마는 것은 소개된 책들에 대한 나의 이해도가 한참이나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감으로 시작해서 실망감으로 끝나고 마는 그런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또 다시 사랑이 돋아나듯 도서관에서건 서점에서건 서평집만 눈에 띄면 바로 손부터 나가곤 하니 이쯤되면 거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성일의 <한권의 책> 역시 그렇게 만난 책이다. 저자가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읽어야할 독서 목록들이 차고 넘치건만 어찌하여 덥썩 집어들어 갈 길 바쁜 걸음을 붙잡히고 말았는지...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는 나처럼 책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사람이 있다면 고개 돌려 다시 한번 쳐다 볼만큼 호감을 갖는 버릇이 있다. 한마디로 책벌레들에게는 굉장히 헤픈 편이고 해야 하리라.

 

 

약력을 보니, 저자는 책에 관한 책들을 전문적으로 쓴 진정한 '책꾼'이었다.

<한권의 책>은 그런 저자가 4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뇌종양으로 생을 마감한 후, 가족들과-아마도 아내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주변사람들에 의해 출판된 책으로 저자가 평소 써두었던 글들을 모은 일종의 유고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책의 구성과 내용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저자의 의도와 생각이 조금도 개입되지 않은 가장 非저자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저자가 살아있었더라도 이런 서평집이 탄생했을까?

글쎄...

 

<한권의 책>이라는 책을 통해 내가 이해한 최성일이라는 사람은 결코 이런 서평집은 출판하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다기 보다는 그냥 본문 중 한창 나이에 운명을 달리한 작은형의 일기(편지 포함)를 '속울음'이라는 제목으로 150부만 엮어 가까운 지인끼리만(?) 나누어 가졌다는 '착한 고백'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따름이다.

 

1부와 2부는 병마와 싸우기 직전에 쓴 글들로 이루어져 있어 시기적으로 '과거의 향수'가 짙게 배어 있지 않은 반면, 후반부로 갈수록 2000년대 초반에 발표한 글들이 불쑥불쑥 등장하여 어딘지 모르게 '한물 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마광수와 강준만 교수에 대해 언급한 문장들은 10년 전으로 독자를 돌려세우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책장을 넘기고 있노라면 저자의 정치적 견해와 생각들이 거침없이 들어나는 것에 대해 마치 예기치 않게 남의 방이라도 엿본 것처럼 당혹스럽기도 하다. '책 속에서 책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선택한 독자들라면 분명 낭패감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저자와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비슷하다면 우연한 합석에서의 부담없는 대화가 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우리사회는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수용하는 폭넓은 사회를 지향하면서도 양 극단의 함성만 들리는 것같다.

'고된 시집살이를 한 시어머니일수록 며느리에게 더욱 심한 시집살이를 시킨다'는 옛말처럼 한때 목소리를 죽이고 낮출 수밖에 없었던 계층들이 점점 목소리를 높이더니 심지어는 안아무인식의 억지 주장까지 펼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한권의 책>을 통해 저자는 자신이 읽은 책들에 대한 비판에 거침이 없다. 불편하다는 점잖은 표현을 사용했지만 내심은 결코 그 정도가 아님은 한눈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혹시 저자는 자신의 글들이 그 누군가를 한없이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을까.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이 읽는 책을 보라'는 서양속담처럼 서평은 읽은 책을 논한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이 책에 대한 저자의 호불호가 들어날 수밖에 없으며 더 나아가 저자의 가치관과 인생관까지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단 '한권의 책'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비록 나는 저자의 생각에 100% 공감할 수는 없지만 <한권의 책>을 통해 여러 권의 책들을 새롭게 발견했다. 그리고 내가 언젠가 그 책들을 읽으면서 저자의 생각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어째서 신은 꼭 쓰임새 있는 사람들만 서둘러 데려가시는 걸까?

글쟁이 책쟁이들은 좀 더 오래도록 이 땅에 남아 있어도 대자연에 피해가 가진 않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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