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 생존기계가 아닌 연애기계로서의 인간
제프리 밀러 지음, 김명주 옮김, 최재천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제프리 밀러의 <연애>는 '섹스, 인간을 창조하다'라는 원제목처럼 인간의 진화를 성선택에 의한 '제한적' 관점으로 접근했다.

저자의 상상력은 수컷 공작의 거추장스러운 꽁지깃으로부터 시작된 듯 하다. 즉, 모든 생물체의 형질은 생존에 유리한 쪽으로 진화하기 마련이건만 오히려 생존에 불리한-그동안 불리한 것처럼 보였던-형질을 갖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프리 밀러는 수컷 공작의 꽁지깃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것처럼 생존에 불필요한 형질 습득은 다름아닌 '짝짓기'를 위한 성선택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제프리 밀러는 자신이 세운 '선성택 가정(假定)'을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들을 소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창의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설득력 있게 논리를 펼쳐 나간다. 저자는 인류의 언어, 미술, 음악, 문학 분야에 걸친 빛나는 예술적 성과들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인품과 같은 우리 마음의 진화까지도 이성에게 잘 보여 짝짓기에 성공하기 위한 자기과시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출산과 양육에 불리하거나 소극적인 수컷이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암컷과의 교섭에 성공하기 위해 여러 세대에 걸쳐 발달시켜 온 형질들이 수컷뿐만이 아니라 암컷에게도 나타나는 것에 대해 저자는 돌연변이적 특질들은 암수를 구별하지 않고 후대로 유전되기 때문에 암컷에게도 수컷의 성선택적 형질들이 상당수 나타날 뿐만 아니라 상호성의 원칙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아름다운 노래를 다양하게 부를 수 있는 수컷을 선택하도록 암컷의 성선택 형질이 선택, 진화되었다면 암컷 역시 노래를 잘 부를 필요는 없지만 노래를 듣고 호불호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란다. 수컷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후대가 번식에 성공하려면 역시나 이와 같은 형질을 갖고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식별 능력이 뛰어난 암컷을 선택하도록 진화되어 왔기 때문이란다.


인간 마음의 능력에서 남녀차이가 드러날 때, 평균적으로 여성들은 언어능력이 뛰어나고 남성들은 공간능력과 수학능력이 뛰어나다.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더 많은 단어를 알고 있는데, 이러한 남녀차이는 어휘력에서의 개인차의 거의 5%를 설명해 준다. 하지만 성선택은 보통 남성에게 더 큰 장식을 진화시킨다. 언어가 성적 장식으로 진화했다면, 남성의 평균 어휘력이 더  뛰어나야 한다. 이것은 치명적인 문제점 아닐까?

(......)

보통 성선택은 수컷을 과시 행위자로, 암컷을 과시 판별자로 만든다. (......)인간의 언어능력에 대한 테스트들은 대부분 언어생산력에 대한 테스트가 아니라 언어이해력에 대한 테스트다. 엄격한 '남성-과시, 여성-고르기'의 짝짓기 시스템이었다면, 우리는 여성은 언어이해력이 뛰어나고, 남성은 언어생산력이 뛰어날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 있다.


-제프리 밀러, <연애> p498 中-



여성이 남성보다 언어적 감각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여성이 남성보다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이 앞설 뿐 언어를 창조해내는 능력은 남성이 여성보다 앞선다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마치 많은 여성 독자들의 반발을 예상이라도 한듯, '여성들은 독해능력이 더 우수하고 책을 더 많이 사지만, 그 책의 저자들은 대부분 남성들이다'라는 부인할 수 없는 단 한마디로 '정곡'을 찌른다. 


지난 몇 천년간 인류가 이룬 지적, 기술적 성취는 애초에 성선택에 의해 형성된 마음의 능력들과 동기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성선택된 우리의 마음은 수년간의 의도적인 가르침에 의해 훈련받고, 정교한 지위 게임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고, 세대에 걸쳐 지식의 축적을 가능케 해 주는 문화적 기록들로 무장함으로써 그리스 수학, 불교철학, 영국의 진화생물학, 캘리포니아의 컴퓨터게임 등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냈다. 이러한 성취는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큰 뇌의 부산물이 아니라, 구애적응들로 가득한 마음의 부산물이다. 이러한 구애적응들은 사랑에 빠져 있지 않을 때보차 재훈련과 방향조정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발명할 수 있었다.


-제프리 밀러, <연애> p35 中-



이런 관점에서 볼때,

인류의 역사 과정에서 거의 전 분야라고 해도 될만큼 모든 분야에서 남성이 이룬 성과가 여성의 그것보다 양적으로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압도적인지 충분한 설명이 된다. 물론,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에게 충분한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도 일견 타당한 지적이지만, 저자에 따르면  남성의 성과물인 'history'는 여성에게 성적으로 어필하여 짝짓기에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생존상의 이유가 여성보다 훨씬 더 절박했기 때문이란다.


페미니스트들이 들으면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다윈 역시 진화론을 발표하던 1850년대에 이미 '수컷이 구애하고 암컷이 선택한다'는 자연 법칙이 인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왔다는 사실을 간파했지만, 그 당시 성선택권이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 있다는 사실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고 생각했단다. 남성들은 짝짓기와 번식의 주도권이 자신들이 아닌 여성에게 있다는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리라. 이 점은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된지 어언 1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다지 크게 바뀐 것 같진 않다.


제프리 밀러의 <연애>는 상당히 창의적이고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물 과학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다소 지루하고 어렵게 느껴질 것 같다. 특히, 진화생물학 이론들을 중심으로 설명을 이어가는 앞부분은 개념에 대한 이해의 한계 혹은 낯섦으로 인해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 고생을 했다. 그러나 중반부를 지나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인식의 새로운 지평이 펼쳐지니 부디 마지막 페이지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당부 아닌 당부를 남긴다.


이해가 잘 안되거나 난해한 부분은 그냥 넘어갔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을 100% 이해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대부분 그렇지 못한다. 자신의 전공이나 좋아하는 분야 이외의 책들을 읽으면서 어떻게 전부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신에데 낯설거나 어려운 분야의 책에 도전할 때에는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하면 끝까지 완독을 할 수없으므로. 


리처드 도킨스는 이런 이데올로기 현상들이 모두 '밈'-주위의 고나심을 사로잡고 깊은 인상을 남겨 타인에게 쉽게 학산됨으로써 자신을 증식시키도록 문화적 차원에서 진화한 바이러스 같은 아이디어들-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밈 가설은 인간의 문화에 대해 신선한 시각을 제시했지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왜 인간은 그러한 생각들을 청년기, 특히 구애기간에 열렬히 과시할까? 왜 사람들은 그들을 유명하게 만들 새로운 밈을 발명하려고 경쟁할까?

왜 대부분의 밈은 남성에 의해 만들어졌을까? 왜 자연선택은 인간이 이데올로기의 헛소리에 취약하도록 내버려두었을까? 이데올리기 과시를 구애의 일환으로 본다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대체로 성적, 사회적 지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밈을 이용한다. 밈만이 우리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제프리 밀러, <연애> p559 중-



호미니드-우리 직계조상 여부와 상관없이 지난 몇 백만 년 동안 살았던 직립원인-의 모든 지적 예술적 성과물들과 언어적 유희 및 스포츠 등이 고작(?) 짝짓기를 위해 추동되었다니, 한편으론 어이없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지만 생존 본능의 관점에서 저자의 상상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자연은 원래 무관심하다. 포식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몇 종의 먹잇감 이외에는 모든 것을 무시한다. 기생생물도 자기가 좋아하는 숙주한 종에게만 관심을 갖는다. 다윈은 폭력적인 경쟁은 대부분 종 내에서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같은 종의 동물들은 같은 자원과 같은 짝을 놓고 서로 경쟁하기 때문이다. 진화생물학이 경쟁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도 유전자들 사이의 경쟁이 진화를 추동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제프리 밀러, <연애> p392 中-



인류 역시 다른 생물종들과 본질적으로 같다.

즉, 먹고 살기 위한 몸부림이랄까.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우리의 삶은 먹고 살고 번식하기 위한 것으로 귀결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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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스, 숫자가 당신을 지배한다 - 모르면 당하는 확률과 통계의 놀라운 실체
카이저 펑 지음, 황덕창 옮김 / 타임북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사서 추천 코너에서 고른 책이다.

'넘버스, 숫자가 당신을 지배한다'

직절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에 끌려 집어들었지만 페이지를 몇 장 넘기다가 복잡다단한 통계적 설명에 금방 질려버리고 말았다. 스스로 끝까지 다 읽지 못할 거라고 지레짐작했었는데 일요일저녁시간에 인내심을 갖고 한장 두장 읽다 보니 마지막까지 완독(完讀)을 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일명 '새빨간 거짓말'로 상대방을 해치는 일반적인 나쁜 거짓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새하얀 거짓말'로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하는 선한 거짓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한가지가 바로 '통계'란다.

숫자에 쉽게 속아넘어가는 사람의 심리를 정확하게 꼬집은 말이라 하겠다.


카이저 펑 역시 자신의 책에서 통계의 함정 혹은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디 즈니가 장시간 대기행렬에 대한 타계책으로 채택한 '패스트패스'제도가 실제로는 대기 시간이 줄기는 커녕 더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만족도를 끌어 올렸다는 사실과 '녹색불이 들어오면 한대씩'이라는 램프 미터링이 운전자들의 격렬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고속도로의 차량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었다는 점 등은 매우 놀라웠다.


이 밖에도 각종 서비스센터는 실제 대기시간보다 다소 길게 고객과 약속을 잡음으로써 약속했던 시간보다 일처리를 빨리 해주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꾸며 왔다는 저자의 지적 역시 행동심리학 혹은 행동경제학 분야에서도 이미 검증된 사실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를 포함하여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숫자와 통계에 속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어이가 없다.


도핑테스트와 거짓말탐지기의 불편한 진실이라든지 비행기추락사고에 대한 대중의 과도한 불안과 복권당첨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 모두 우리가 얼마나 손쉽게 숫자에 조정당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검사관은 겁을 먹게 된다. 두 가지 오류가 각각 치러야 할 대가가 다르기 때문이다. 거짓 양성 반응은(미국반도핑기구 CEO트레비스 티가트가 말했듯이 사실은 모든 양성 반응이 다 해당된다) 호된 법정 공방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양성 판정이 뒤집힌다면 반도핑 기구는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되고 검사 프로그램에 대한 믿음도 추락할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음성 반응은 리즈처럼 선수 당사자가 실포해야만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따라서 거짓 음성 반응은 대부분 들어나지 않은채 그냥 묻히고 만다. 선수나 검사관이나 결국은 거짓 음성 반응이라는 편리한 커튼 뒤로 숨어버릴수 있는 것이다. 


-카이저 펑, <넘버스, 숫자가 당신을 지배한다> 中 p189~190-


도핑테스트의 정확도가 99%라고 한다면 1%의 오류 또한 존재하리라. 이 1%의 오류로 인해 불명예의 나락으로 떨어진 스포츠 스타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저자는 거짓 양성반응에 대한 '불운'보다는 거짓 음성 반응의 '혜택'을 더 많이 누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자면 이렇다.


어떻게 스테로이드 검사는 한 명 잡을 때마다 열 명을 놓치는가?

(1000명의 선수 중 약물 부정을 저지르는 선수가 10%라면...)



선수 (1000명)

                   약물부정(100)                                   약물부정 아님(900)

                                                                                                                                             

         진짜양성반응(9)    거짓음성반응(91)      거짓양성반응(1)       진짜음성반응(899)

                                                              

                             놓친 약물 부정 선수            〓   91   〓    10

                           잡아낸 약물 부정 선수                  9           1


진짜 양성과 거짓 양성은 합쳐서 1%(검사 대상 1,000명에서 10명의 양성 반응에 해당하는 비율)가 되어야 한다. 거짓 양성 반응이 더 많이 나오면 진짜 양성 반응은 줄어들고, 이는 거짓 음성 반응이 더 많이 나오는 결과를 낳는다.



-카이저 펑, <넘버스, 숫자가 당신을 지배한다> 中 p184 도표-



이와 같은 결과는 스파이 한 명을 잡기 위해 111명이 누명을 쓰는 상황(거짓말탐지기)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특히, 일보예보에서 자주 접하는 "100년만의 한파" 혹은 "10년만의 무더위"등과 같은 표현은 전형적인 인식의 함정을 불러온다고 한다. 100년만의 한파란 일어날 확률이 1/100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빈도를 따져 볼때 최근 10년 동안 일어날 가능성은 무려 10%라고 한다. 이는 인류가 자연 재해의 발생 가능성을 지나치게 낮게 생각하도록 만들며, 재해보험회사까지 파산으로 내모는 주범(?)이라 하겠다. 한편,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할 확률과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약 천만분의 일로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추락 사고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한편, 복권에 당첨될 가능성은 높게 보는 것 역시 대다수 사람들이 통계 수치를 얼마나 왜곡시켜 받아들이는 지를 설명해준다.


통계 수치를 분석하고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놀라움 그 자체다. 우리가 그 동안 얼마나 많이 통계 수치에 놀아났는지 통계를 낸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가늠조차 되지 않지만 아마도 상당히 놀라운 결과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통계 수치는 모두 거짓일까?

아니다!

통계는 절대로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통계를 다루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선의 혹은 악의적 착오를 불러 일으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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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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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진지함에서 벗어나 유쾌하게 읽은 책이다.

미스터리 추리소설에서 최근 진화학과 사회학에 관한 책들을 읽게 되면서 순식간에 재미에서 지식습득을 위한 독서가 되어버린 터였는데, 법학자 김두식교수의 고백에 마치 물이 스펀지에 스며들듯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제목이 말해주듯, 저자의 주장은 단순명백하다.

바로, 욕망을 억누르려고만 하지 말고 적절하게 분출하고 살아야 한다! 이다.

일명 모범생으로 대표되는 '계(戒)'의 세계에 있던 사람들이 일정한 상황과 마주하면, 어느 순간 욕망을 어찌하지 못하고 결국 '색(色)'의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고 한다.


그 실례로 저자는 2007년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학력위조 사건과 스캔들을 언급하고 있다. 바로 '신정아와 변양균 스캔들'이다. 이 사건이야말로 학벌주의와 엘리뜨주의로 똘똘 뭉친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이요 초상이라는 저자의 지적에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그 당시 스캔들의 주인공들을 맘껏 술안주로 삼았음은 물론이요, 사건을 계기로 이루어진 유명 인사들의 '학력커밍아웃'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마음껏 즐기지 않았던가. 내면속에 가라앉아 있는 내 욕망의 표출인줄도 모르고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거대한 욕망의 늪이라 하겠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깊숙히 발목이 잡힌다. 저자가 보기에 신정아 역시 학벌이라는 늪에 빠진 피해자 중 하나다. 여기에서 '피해자'란 그녀가 아무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행한 '죄'보다 훨씬 가혹한 '벌'을 받지 않았나 하는 의도에서 나온 표현일 뿐이다. 저자 역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학벌이란 무시무시한 장벽 앞에선 누구나 한번쯤 거짓말의 유혹을 느낍니다. 출신학교 이야기를 할 때 누구도 증명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아주 사소한 거짓말을 해보면 주변 분위기가 당장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신 정아씨도, 윤석화씨도 처음 시작은 그랬을 겁니다. 우리 모두가 느끼는 똑같은 열등감, 유혹 앞에서 조금씩 선을 넘다보니 그렇게 망가지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희생양 사냥이 시작되고 나면, 누구나 느끼는 학벌 앞의 우월감, 열등감, 유혹의 존재를 아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거짓말한 사람만 죽일 놈, 미친 놈이 됩니다. 사람들은 자기 욕망이 들통날까봐 두려워하며 더 맹렬한 사냥을 벌입니다. 그 과정에 분명한 쾌감이 있습니다.


-김두신, <욕망해도 괜찮아>중 p62-


왠지 숙연해진다.

칸 자스대학 졸업장도 없는 신정아로 하여금 예일대 박사학위까지 위조하게 만든 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모든 걸 다 걸만큼 그렇게 절박하게 예일대 박사학위가 필요했단 말인가? 그건 바로 내 안에서도 부글부글 끓고 있는 학벌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열등감이리라.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못 바꾼다'라는 말로 귀결되는 바로 그 열등감말이다.


한편, 스캔들의 또 다른 주인공인 변양균에 대해서 저자는 "제때 불태우지 못한 소년의 열정"이라는 말로 정곡을 찌른다. 학벌지상주의 사회에서 그 학벌을 갖춘 사람들은 모범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생 계(戒)의 세계에서 살아오면서 내면의 욕망을 억눌러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연히 내면의 욕망이 자극을 받자 하염없이 무너지고 만다. 보통은 아무런 일없이 혹은 집안의 풍파 정도로 끝이 나지만 변양균 전실장은 운이 없었다면 없다 하겠다.


이 남성들은 기본적으로 '계(戒)' 즉, 규범의 세계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들입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고, 늘 칭찬받았으며, 규범을 어긴 일이란 기껏 과속딱지 몇번 끊은 게 전부입니다. 법을 만들어 적용하고 집행하며 평생을 살아온 살마들도 있습니다.

(......)

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리에 너무 '훌륭한 어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깊은 내면에서 이들의 뒷덜미를 잡아당기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제때 불태우지 못한 '소년'입니다.


-김두신, <욕망해도 괜찮아>중 p86-


제때 불태우지 못한 소년의 열정은 결국 중년에 접어들어 '일탈'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일탈의 길에 빠져들지 못한 소년들의 반대편에는 '사냥꾼이 된 소년들'이 기다리고 있단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계(戒)'의 결정판인 이들은 남의 사생활에 유난히 관심이 많아서 억눌린 욕망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엿보기'를 선택한단다. 탁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이 밖에도 저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가족들-주로 저자의 모친-을 회상하면서 우리 사회에 고착되어 있는 '중산층 신화'를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평생 부부교사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적이 없는 저자의 모친이야말로 '중산층 신화'의 희생양이라 하겠다.


어 머니로 상징되는 중산층은 규범을 만들고 바꿀 의지도 힘도 없으면서 규범의 화신처럼 살ㄹ아온 사람들입니다. 신사보다, 귀족보다, 재벌보다 훨씬 강하게 규범을 내면화한다는 점에서 포리스티어 대위아 똑같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상류층보다는 오히려 중산층입니다.

(......)

그들은 정직이 최선의 덕목이라고 믿고 자랐지만 하루하루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도 내면화된 규범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돈이란 성실히 살면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지 굳이 추구할 목표가 아니라는 고상한 가르침을 진짜로 믿고 실천하지만 이상하게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분노가 쌓이지만 표출할 방법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기껏 분노를 표출한다는 것이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다른 당나귀를사냥하는 것입니다. 그게 지금 인터넷 공간에서 매일처럼 벌어지는 싸움입니다.

-김두신, <욕망해도 괜찮아>중 p156~p157-



나보다 윗세대이긴 하지만 <욕망해도 괜찮아>에서 언급된 저자의 유년기와 사춘기 시절은 상당히 익숙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현기증이 일었다. 바로 질투다. 저자의 부친은 중학교 교장선생님이었고 엄마는 여상 윤리선생님이란다. 누나는 수학박사에 교수남편을 두었고 형은 저저와 마찬가지로 미국 유학파에 대학교수이다.


저자는 또한 어떠한가? 교수 아내를 둔 사법고시 통과하고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석사를 땄단다. 이 정도 수준의 집안이 대한민국의 평균은 결코 아니다. 정말 아주 잘 나가는 집안이라 하겠다. 재벌과 비교하며 중산층의 비애를 운운하는 것 같아 솔직히 불편하다. 물론, 이 땅의 중산층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획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지만 세대를 거듭하며 놀고 먹어도 될 만큼 풍족한 자산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노동자'로 볼 수는 있겠지만 이마저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서민이라 불리우는-이 대다수이다. 


생존을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야하는 이들에게 '욕망'은 사치일 뿐이다. 그들에게 욕망해도 괜찮다는 저자의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하여, 이 책은 중산층을 위한 책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종교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온 저자가 가하는 종교적 비판(?) 은 상당한 수위의 통쾌감을 전해주는 한편, 선(線) 밖의 사람들에게는 역시나 상당히 억지스럽게 다가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교회오빠 출신의 자기반성처럼 들리니 말이다. 그러나 법학자로서 종교를 바라보는 저자의 태도에는 상당히 날이 서 있다.


이와 같은 작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무척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 모두 한두가지는 갖고 있는 욕망이 자극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내면에 꼭꼭 숨겨져 있는 욕망들과 하나씩 마주하는 것은 상당히 불편하고 정신적 피곤함을 불러오지만 또한 신선하고 흥미로운 작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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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경계선에서 - 오래된 믿음에 대한 낯선 통찰
레베카 코스타 지음, 장세현 옮김 / 쌤앤파커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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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출판될 당시부터 쟁쟁한 석학과 리더들의 추천사가 이어졌던 책이다.


저자는 마야, 로마, 크메르 제국이 몰락한 이유를 놀라운 통찰력으로 지적하고 있다.

현 대적인 과학 기술로도 풀리지 않는 놀라운 문명을 창조해냈던 고대 왕국이 어떻게 몰락해 갔을까?  바로, 인구증가에 따른 식량과 물부족 그리고 가뭄과 같은 자연 재해를 합리적으로 극복하지 못하자 인신공양과 물신숭배라는 종교적 '믿음'에 매달리면서 '사실'과 '지식'에 입각한 과학적인 문제 해결의 길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가 커지며 문명이 발달하면 필연적으로 해결해야하는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 두뇌의 진화 속도가 이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빨리 진화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즉, 인간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가는 속도보다 환경이 바뀌는 속도가 너무나도 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필연적으로 '인식의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정말 놀라운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컴퓨터와 무선 인터넷을 만들어낼 만큼 인류는 기술적 진보를 이루었지만, 그 진보의 결과를 누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초원을 거닐던 유인원의 인식 체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기술적 진보를 이루어냈다면 그만큼 인류의 두뇌와 생각의 틀도 바뀌고 진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답은 천만의 말씀이다.


안타깝지만 인류의 기술적 진보는 소수의 특별한 '돌연변이'들에 의해 발견되고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 제임스 왓슨, 리처드 디킨스, 그리고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까지 이들을 일반인들과 똑같은 인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마 거의 없으리라. 이들은 정글의 숲에서 제일 먼저 사바나 초원으로 내려와 인류 최초로 두 발로 걷기를 시도했던 첫번째 호모 에렉투스이며 최초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첫번째 호모 파베르라 하겠다. 

어느 순간 불연듯...

'통찰'이라는 지렛대를 이용하여, '인식의 한계'라는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저 너머에 먼저 이른 최초의 사람들 말이다.


'경계 저쪽으로 너머 갈 것인가? 아니면 계속 경계 이쪽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흔 히 시대를 앞선 이들의 진보적 발견과 발명 앞에서 대중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대다수는 변화와 진보를 선택하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는 쪽을 택한다. 하이테크 시대에 진입한 오늘날 인류가 고대 문명인들이 겪었고 해결하지 못한채 멸망해갔던 문제들에 여전히 발목이 잡혀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전세계적으로 직면한 문제들...

예 들 들면,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파괴, 테러리즘과 종교적 갈등 및 인구증가와 고령화는 여전히 난제로 우리 앞에 산적해 있다. 최첨단 위성으로 태풍의 경로를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여전히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현재 65억인 지구 인구는 2030년경에는 90억명으로 불어날 것으로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일부국가에서는 여전히 출산을 독려하고 있다. 인구증가에 따른 식량부족, 자원고갈, 전염병 확산, 지구환경파괴 등에 따른 심각한 폐해는 후손들에게 전가시킨 채 말이다.


번성하던 마야제국과 로마제국 그리고 동아시아의 크메르 제국도 처음에는 우리처럼 빠르게 기술적 진보를 거듭하면서 문명을 발전시켜 나갔을 것이다. 자연히 인구도 증가하였다. 태풍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가뭄에 대처하기 위해 댐과 수로를 축성하는 등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수천년 동안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인식의 한계와 지식의 교착을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인식과 통찰의 한계에 다다른 마야와 로마인 그리고 크메르인들은 사실과 지식의 추구 대신 믿음과 신앙에 집착하는 원시사회로 회귀하면서 몰락하고 말았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인류 문명 번영의 한가운데를 지나, 인식의 한계에 봉착하진 않았는가. 아무래도 그렇게 보인다.

그 러나 우리는 스러져간 고대 문명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는 몇 장의 카드를 갖고 있다. 첫번째 카드는 마야와 로마 그리고 크메르인들이 자신보다 앞선 문명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몰락의 과정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는 이들 제국 문명의 역사 뿐만 아니라 역사 이전의 선사시대에 대해서도 이미 상당한 지식을 확보한 상태라는 점이다. 두번째 카드는 고대 문명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기술적 진보를 거쳤기에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기만 한다면, 즉 의지만 갖고 있다면 멸망으로 이어지는 문명 진화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고, 마지막 세번째 카드는 레베카 코스타와 같은 선지적인 인물들의 목소리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귀기울이므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즉 통찰의 빈도를 늘리면서 인류 두뇌의 진화 속도를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점이리라.


이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소 길지만 레베카 코스타가 에필로그에서 남긴 말을 들려주고 싶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 이래로 우리는 진화와 이중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대다수 사람들은 진화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문제와 관련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와 지난 수세대에 걸쳐 우리를 괴롭힌 방대하고 복잡한 문제들(지구온난화, 테러리즘, 빈곤, 유행성 전염병, 핵 위협, 세계금융위기, 공교육의 쇠락 등)사이에서 우리가 아무런 연관성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지금도 진화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인간은 진화가 허용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진보할 수는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애써 진화를 등한시해 온 것은 아닐까? 이는 곧 인간에게 생물학적 제약이 있어서 한정된 범위 내의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될 테니 말이다.

생물학적 제약?

분명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 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어느 시점이 되면 문명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복잡성과 규모는 우리의 생물학적 능력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때 복잡성과 진화가 충돌하는 지점이 "인식 한계점"이며, 이것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등장했던 모든 선진문명에 종말을 초래하는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은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이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그 깨달음의 과정에서 나는 초코릿공장 포장라인에서 일하는 루시는 결코 떠올리지 못했다.

비 록 내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루시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은유다. 새로운 인식 능력을 제때 계발하지 못하면 반드시 여러 가지 불합리한 행동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우선은 미처 상자에 담지 못한 초코렛을 어딘가에 쑤셔 넣어 문제를 은폐하려 든다. 하지만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초콜릿은 끝없이 나온다. 초콜릿을 더 이상 먹거나 감출 수 없게 되면 우리는 얼어 붙는다. 우리가 정체 상태에 빠져 꼼짝도 못하는 사이에 초콜릿은 한층 빠른 속도 속도로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우리는 컨베이어 벨트를 정지시키고 공장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운이 좋으면 얼마 후에 공장을 재건하고 새로운 경영진 하에서 다시 시작할 수도 있따. 처음 잠시 동안은 일이 잘 되어 간다. 하지만 컨베이어 벨트는 다시금 속도를 올리고......

자연은 우리에게 닥친 난제를 풀 명쾌한 해법을 주었다. 뇌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통찰"이라는 놀라운 문제해결 능력을 말이다. 통찰을 발견한 것은, 루시가 문득 컨베이어 벨트 끝에다 상자를 대고 떨어지는 초코릿을 받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일이다. 이제 루시는 컨베이어 벨트가 아무리 빨라져도 손쉽게 그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

통 찰을 발견한 것 외에도, 우리는 붕괴의 패턴을 중단시킬 지식과 깃굴, 자원을 보유한 최초의 문명이기도 하다. 앞서 존재했던 그 어떤 문명도 환경에 대해 이 정도의 지배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으며, 인류 흥망성쇠의 행로를 변경할 수단을 이처럼 풍부하고 자유롭게 이용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장래를 낙관할 만한 이유도 과거 그 어떤 문명보다 많다.



-레베카 코스타, <지금, 경계선에서> 에필로그  p395~397 中-




부디 이것 하나만 기억하도록 하자.

우리는 침팬지처럼 숲 속의 나무 위에서 살다가, 맹수들의 땅이었던 초원으로 용감하게 내려와 두 발로 걷기 시작한 루시의 후예들임을...

하지만...

또한, 저자는 인류가 환경의 변화와 인류 진화의 속도 차이를 극복하고 통찰을 통한 항구적인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장벽 다섯개가 있다고 지적한다.


첫번째 장벽은 '불합리한 반대'이다.

대안은 없이 무조건 반대한다.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에어컨 사용이나 차량 이용을 제한시키는 강제적 법안이 나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 레베카의 지적처럼 대다수 사람들이 불편함을 이유로 반대할 것이다.


두번째 장벽은 '책임의 개인 전가'이다.

고 대인들이 가뭄이 깊어져 사람들이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면 신에게 산 사람을 통째로 제물로 바치듯, 우리 사회도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희생자 색출에 혈안이 된다.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관련자-말 그대로 관련만 있을 뿐 직접적인 책임이나 권한은 없는-를 문책하거나 몇몇 개인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고는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집단 착각에 빠진다.


세번째 장벽은 '거짓 상관관계'이다.

우 리는 흔히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혼동한다. 자카리 쇼어는 자신의 저서 <생각의 함정>에서 극동 지방의 한 양치기 소년 보보의 이야기를 통해 이 점을 적나라하게 꼬집고 있다. 우연히 집에 불이 나 돼지 우리에  옮겨 붙게 되었단다. 불이 꺼진 후, 마을의 보보라는 소년이 불에 타 죽은 돼지들을 만져보다가 맛을 보았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더란다. 하여, 그후 마을 사람들은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기막힌 그 맛'을 보기 위해 멀쩡한 집에 불을 놓았다는 이야기다. 보보네 마을사람들은 돼지고기가 맛있어진 이유가 불에 익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집에 불이 났었다'라는 사실에만 집착한 나머지 '집에 불을 내면 돼지고기가 맛있어진다'로 거짓 상관관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근데 이런 기막힌 상관관계의 오류에 우리는 매일 매일 빠져서 살아간다. 사소한 예를 들자면,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우리는 곧잘 인과관계를 혼동하는 우를 범한다.  어느집 고등어 구이가 맛있다고 한번 입력이 되면 1년 내내 항상 맛있는 것으로 돌같이 굳게 믿는다. 고등어가 제철일 때에는 왠만한 집 고등어 구이는 다 맛있는 법이다. 크게는 선거에서도 거짓상관관계를 잘 만들어낸다. 지난번엔 '이' 당 후보를 뽑았더니 나라가 엉망이 되었으니 이번엔 '저'당 후보를 뽑아야겠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니 말이다. 특히, 여러 사람이 선택하면 거짓도 사실이 된다. 레베카 코스타는 위키피디아를 예로 들면서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는 다수의 합의에 의해 '사실'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우려를 표한다.


네번째 장벽은 사일로식 사고이다. 사일로식 사고란 조직에 속한 개인이나 집단이 서로 소통하지 않고 정보를 독점하거나 회피함으로서 조직 전체에 피해를 입히는 사고 방식을 일컫는다. 이와 같은 사일로식 사고는 과거 초원에서 살아가던 인류의 조상들이 "영역"을 지켜냄으로써 생존 기회를 늘리려는 불합리한-혹은 아직 진화하지 못한- 원초적 본능의 일환이라고 한다.


다섯번째 장벽은 바로 '극단의 경제학'이다.

경 제적 논리가 모든 분야에 침입해 들어오면서 인류는 점점 더 고도의 이윤 추구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위에 나열된 장벽들 안에는 모두 인류 집단의 공통된 그릇된 믿음, 즉 '슈퍼밈'이 개입되어 있지만 특히 '극단적 경제학'이라는 장벽에서 인간은 더욱 더 강력한 슈퍼밈을 고수하고 있다. 저자는 그 한 예로 방글라데시의 빈민은행인 '그라민 은행'을 언급한다. 그라민 은행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극빈층 사람들을 대상으로 집단연대보증이라는 대출형식으로 낮은 이자만을 받았지만 세계적인 금융 회사들이 쓰러져 넘어갈 때에도 무사(?)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극단적으로 이윤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바로 미국 월가의 지나친 탐욕과 노벨상 수상자 조차도 놓쳐버린 금융 상품과 시장의 복잡성때문이었다.


선택 가능한 대안, 결정할 일, 알아야 할 정보가 너무 많아서 우리의 인식 능력에 지나친 부담을 주는 환경에서는 복잡성을 자초하지 않도록 좀더 신중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이롭다. 생활을 간소화하기로 결심할 때 집중력과 의지를 가지고 사고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도 생긴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생존하려면 뒤로 한 걸음 물러나 큰 그림을 볼 시간,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를 더욱 주의 깊게 고려할 시간, 보다 신중한 의사결정을 위해 심사숙고할 시간, 한숨 돌리고 휴식을 취할 시간이 꼭 필요하다.


-레베카 코스타, <지금, 경계선에서> p383 中-



인간은 모든 복잡성과 다양성에 대응하고 대처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환경이 복잡해질수록 인간은 인식의 한계에 부딪치게 되고 거짓된 인과관계와 믿음에 의해 잘못된 선택이나 선택의 포기에 내몰리게 된다.


끝으로, 저자는 장벽을 극복할 수 방법으로 두뇌의 비약적 진화라고 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강조한다. 통찰이란 좌뇌와 우뇌의 사이 어디쯤에 위치한 우리 뇌의 특별한 작용이라 하겠다. 그런데 통찰은 일반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우연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저자는 통찰 역시 '두뇌 훈련'을 통해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혹시, 지금 내가 '슈퍼밈'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전도되어 '불합리한 반대'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우려를 잠시 잠깐 해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컴퓨터를 이용한 그 어떠한 두뇌훈련 프로그램보다 산책과 명상 그리고 독서와 운동 등이 훨씬 더 쉽게 인간을 통찰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의 준거로 무엇을 삼아야 하는지....

이런 문제들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이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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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씽커블 - 생존을 위한 재난재해 보고서
아만다 리플리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재난에 직면하여 내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이며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하는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타임>지 기자인 저자는 9.11테러 생존자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엄청난 재난에 처한 사람들은 뜻밖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원인을 찾아나선다. 반드시 읽어야 할 '재난보고서'로 알려진 <언씽커블>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이처럼 여기자의 호기심 덕분이었다.


저자는 2001년 9.11테러와 2005년 미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카트리나) 등등 각종 재난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들과 심층 인터뷰를 갖고 인간은 절체절명의 위급한 상황에서 현명한 행동을 취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특히, 사고 발생 초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건 발생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낙관하고, 심지어 컴퓨터 끄기 소지품 챙기기 등등 불필요하거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하므로써 시간을 지체한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왜 지체할까? 거부 단계는 사실 비참한 단계다. 우리가 직면한 불운을 인정하고 거기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로울리는 이렇게 말한다. "화재는 남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죠."우리는 만사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거의 언제나 그래왔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경향을 "일상성의 편견(normalcy bias)"이라고 한다. 인간의 뇌는 패턴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현재에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과거의 정보를 이용하는 전략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잘 들어맞는다. 하지만 우리는 패턴이 없는 상황에서도 패턴을 찾는다. 즉, 예외적인 상황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이외에 동료집단의 압력이라는 요소도 있다. 누구나 한번쯤꼭 무슨 일이 터질것 같은 상황에 닥쳐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십중팔구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이때 우리가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하면, 과잉반응으로 다른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 위헙이 있다. 따라서 과소반응을 하는 쪽을 택하게 된다.


-아만다 리플리, <언씽커블> p35~36 中-



우리가 심봉해마지 않는 인간의 이성적 뇌는 위기의 순간 전혀 이성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극단적인 공포가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마비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난시에는 감정과 직감이 이성보다 오히려 우리의 생명을 살릴 가능성이 훨씬 크단다.


다마지오는 많은 것을 알면 알수록 점점더 감정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감정과 느낌은 이성의 훼방꾼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실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었다. (......) "감정은 우리에게 옳은 방향을 가리켜준다. 감정이 우리를 의사 결정의 공간에서 적당한 곳으로 데려가주면, 우리는 그곳에서 논리라는 도구를 이용한다."

감정의 요소를 도입한다면, 리스크 방정식은 실제로 훨씬 더 정교해질 것이며, 결코 부정확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마지오의 발견 덕분에 나는 리스크를 더 잘 판단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외면하거나 억누르려하지말고 감정을 활용해야 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두려움은 잘만 활용하면 우리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아만다 리플리, <언씽커블> p80 中-


특히, 나는 이 책을 읽기 직전 <중년의 뇌>라는 책을 읽었었는데, 그 책에서 사람은 중년에 접어 들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행복감을 더 많이 느끼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젊었을때보다 상황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점은 <언씽커블>에서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즉,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점이 행복감을 높여주지만, 또 한편으로는 바로 이와 같은 특징들로 인해 중년이후의 사람들이 재난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는 점이다.


이 밖에도 권위적이고 위계질서와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저자는 주로 백인 남성들 이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재난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크단다. 물론, 모든  백인 남성들이 모두 해당되는 건 아니다. 백인 남성일지라도 사회에서 차별받거나 소외되었거나 경재력이 낮다면 여성이나 소수집단처럼 위기감을 훨씬 더 잘 느낀다고 한다.


재난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는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기도 하는데, 저자는  똑같은 재난을 겪었더라도 회복력이 월등히 뛰어난 사람들이 있으며 이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주장 한다. 


회복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우선 세 가지 강점이 있다. 삶을 결정짓는 사건에 스스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믿음, 인생의 소용돌이에서 의미 있는 목적을 찾으려는 경향,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경험에서 모두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신념이 그것이다. 이런 자세는 일종의 완충 장치로서 재난의 충격을 오나화시켜준다. 이런 사람들은 위험에 훨씬 더 잘 대처하는 것처럼 보이고, 결과적으로 더 나은 행동들을 보여준다.

-아만다 리플리, <언씽커블> p145 中-


위기의 순간에 서로에게 의지하려는 행위는 인류의 오랜 진화의 결과이다. 으르렁거리는 거대 육식 동물의 공격을 피하려면 혼자보다는 무리가 훨씬 더 유리하지 않겠는가. '무리지어 행동하기'처럼 육식동물로부터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인간이 발달시킨 또 다른 생존방식은 바로 '마비현상' 이다. 움직임을 멈추어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2007년 발생한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사건시, 꼼짝하지 않고 누워있어 목숨을 건진 생존자가 있었다. 그는 의도적으로 마비를 선택했다기 보다는 너무 놀란 나머지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마비현상-심한 경우, 신체이탈이라는 해리까지 겪을 수 있다-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예기치 못한 뜻밖의 상황에서 흔히 겪게 된다고 한다. 강간도 예외가 아니어서 대다수 강간 피해자들은 온몸이 마비되는 현상을 겪곤 하는데 이점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았다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인류를 육식동물로부터 생명을 지켜주었던 위와 같은 집단행동과 마비현상이 오히려 화재나 스나미 혹은 전쟁과 같은 현대적인 재난 상황에서는 효과적인 탈출을 방해하여 생존 가능성을 낮춘다고 하니 진화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인간에게 "이기적인 무리"를 형성할 만큼 충분한 포식자가 있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가장 두려운 포식자는 늘 다른 인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막강한 포식자인 재난을 끝없이 유발하고 있으며, 대체로 우리의 생존 확률은 뭉칠수록 높아진다. 그렇다면 집단 사고는 집단의 화합을 우선시하는 적응적 전략일 것이다. 집단에서 의견의 불일치는 곤란하다. 개개인이 위험해질수 있기 때문이다. 간혹 우리 자신의 견해보다 집단의 견해에 따를때, 우리는 실제로 완전히 다른 무엇인가를 하게 된다. 


-아마단 리플리, <언씽커블> p181-


이 처럼 재난이 발생하여 군중집단이 만들어지면 반드시 리더가 필요하다. 리더들은 대부분 차분해 보이고 신뢰감을 주며 존경을 받는 이들이었다. 리더들은 또한 세부적인 사항들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똑똑하고 과감했다. 그리고 또한 다른 사람들의 읜견에 개방적인 특징을 갖고 있단다. 리더의 탄생과 역할은 재난시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특히, 비행기 추락사고처럼 탈출의 성공 여부가 몇 분이 아니라 몇 초 만에 결정나는 항공 재난시 승객들이 비상구로 달려가지 않고 한동안 우왕좌왕하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여 재난 전문가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곤 하는데, 이는 모두 대중이 전체 상황을 파악하고 명령을 내려줄 리더를 기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생각보다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고 한다. 오히려 불필요할 정도로 격식을 차리고 상대방을 배려하므로써 빠른 대피를 방해하기도 한다. 그렇다면우리가 흔히 접하는 대혼란은 언제 어떻게 발생하는 걸까? 바로 공황이다. 사람들은 재난 자체가 아니라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졌을때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해지고 혼란스럽게 행동한다. 특히, 성지순례와 같은 대규모 군중이 모여 있을 때 자주 발생하는 압사사고는 잠시잠깐 균형을 잃은 사람들의 집단 공황 상태와 물리학의 원리가 결합하여 발생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탁월하고 놀랍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긴 악몽에서 깨어난 듯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피로감이 몰려왔다. 읽는 내내 바짝 긴장된 상태가 지속되었기 때문이리라. 이와 같은 긴장 상태가 지속되면 제 명을 다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식은땀 위로 솟구쳤다. 그렇지만 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각종 재난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할 필요를 절실하게 느낀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정말 몰랐다'라고 생각하는 때는 이미 늦었다.

불운한 재난 뉴스를 접하면서,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라는 생각부터 갖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욕심을 좀 더 부리자면,

국가 차원에서 더 늦기 전에 발생 가능한재난에 실질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대피훈련등을 실시하고 가상으로 지진 화재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

.

.

힐링과 휴식을 위한 독서에는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독서가 가져다 주는 즐거움 중에 하나가 '몰입'이라는 점에 공감하는 이들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스트레스를잊게 해줄만큼 '몰입'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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