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의 경제학 - 늙어 가는 세계의 거시 경제를 전망하다 부키 경제.경영 라이브러리 5
조지 매그너스 지음, 홍지수 옮김 / 부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고령화 사회에 대한 분석과 전망 및 나름의 해결방안을 모색한 의미있는 책이다.

우선 경제학자답게 저자는 유엔인구국(UNPD)의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전세계적 추세인 '저출산과 고령화' 현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1,2 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포함한 서구사회는 산업화와 폭발적인 경제성장세에 힘입어 젊은층의 비율이 높아진 반면 유년층과 노년층에 대한 사회부양비는 낮아지면서 발생하는 경제적 혜택(소위 '인구 구조 배당금')을 누려왔다. 그러나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호시절은 지나가고 이제 인류는 고령화라는 직격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수명이 늘어나고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젊은층 인구는 줄어들고 노년층 부양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고 경제성장이 적체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다만, 부족자원이 풍족하고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미국과 같은 나라들은 서유럽에 비해 고령화에 따른 폐해를 덜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역시 세계적인 초저출산 국가이자 매우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나라로 '고령화 문제'는 정치적 이슈이자 사회적 화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뚜렷한 해법은 없는 실정이다. 저자 역시 아시아에서 한국과 함께 이미 초고령사회인 일본과 경제가 미처 충분히 발전하지 않은 채 고령화에 직면할 가능성이 큰 중국은 하루 속히 대책을 강구하라고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사실,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바로, 인구구조상 줄어든 생산가능인구(15~65세) 문제에 대체하기 위해 정년을 연장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다. 

 

얼마전, 한국에서는 경제계와 각종 이익단체들간의 팽팽한 대립 끝에 정년 연장 법안이 통과되었다. 기업은 젊은층 대신 노년층을 고용하면 생산성은 그만큼 낮아지고 비용은 그만큼 높아진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해 왔으나 이웃나라 일본만 보더라도 정년 연장은 기업이 존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고령화 사회를 헤쳐나갈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할 청년층이 점점 부족해지고 숙련공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 문제는 고용주와 피고용주 사이의 대립이라기보다는 세대간 갈등을 불러올 가능성이 훨씬 크다. 즉, 청년 실업을 해소시킬만큼 경제가 성장하여 고용이 확대되지 않는다면 젊은이와 노인이 일자리를 두고 경쟁할 수도 있고, 연로한 부모가 일을 해서 실업 상태인 성인 자녀를 '부양'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 취업 시장에서 청년층과 노년층이 경쟁하는 일이 일어날까?

저 자가 지적한 것처럼 실제로 청년층의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정년 단축이나 조기 퇴직 제도가 앞다투어 도입되었지만 젊은 세대의 고용 비율은 증가하지 않았다. 결국, 이와 같은 제도는 청년층의 실업율을 낮추지도 못한 채 조기 퇴직에 따른 연금 지급 등이 앞당겨 지면서 정부의 사회부양비만 높인 부작용를 초래할 공산이 크다. 그러므로 청년층을 고용하기 위해 노년층을 노동시장에서 일찍 퇴출시켜야 한다는 기업의 주장은 신뢰할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20대에 높고 30대에는 급격히 떨어지다가 다시 40대 이상에서 높아지는 U자형을 보이고 있다. 이는 결혼과 출산으로 여성 인력이 취업 시장에서 대거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모자 보건과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이루어진 걸까?  사실,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과 출산율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하나로 묶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은 여전히 낮다.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이 높으면 출산율이 낮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조금 다르다. 일본, 동유럽과 러시아, 이탈리아, 독일, 유럽 연합은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지만 출산율도 가장 낮다. 반면, 스웨덴, 이이슬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미국, 아일랜드는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과 출산율이 모두 높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가?

육아 시설이 열악하거나 이용료가 비싸고 세금 구조가 직장 여성들에게 불리하면 대부분의 여성이 육아와 직장 가운데 하나를 택하도록 내몰리게 된다.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이 높은 출산율과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이기 때문에 정부나 기업이 나서서 적절한 육아 시설을 제공하고 더욱 가족 친화적이고 융통성 있는 근무 시간을 마련해 보다 많은 여성이 자녀를 돌보며 일할 수 있도록 해 주면 된다. 정부는 주택 마련 자금 융자 제도와 각종 유인책을 사용해 젊은이들이 부모에게서 독립해 되도록 일찍 가정을 꾸리도록 해 주면 된다.

-조지 매그너스, <고령화시대의 경제학> p97~98 中-

 

그동안 여성 인권 향상 차원에서만 바라보느라 번번히 벽에 부딪쳐야만 했던 직장내 여성 차별 문제가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고용 시장에 존재하는 남여 성차별적 관행들이 사라져 여성의 경제활동이 확대되고 여성의 소득이 남성과 동등해지면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높아진다는 지적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현재 거의 모든 나라의 연금제도는 말 그대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과 거 고속 성장으로 역사적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풍요로웠던 시기에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현재 전후 세대야말로 경제성장의 첫번째 수혜자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 역시 청년층이하 세대가 자신의 부모세대처럼 부를 축적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3포세대' '88세대' 등의 신조어은 단순히 철이 덜 든 마마보이나 마마걸의 엄살이 결코 아니다. 그런 그들에게 폭발적으로 늘어난 노년층의 부양 의무까지 전가시키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고령화 사회의 해법은 없는걸까?

경 제 성장기에 혜택을 많이 본, 부자 노인들이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가난한 노인들의 부양비를 충당하도록 하는 방법이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짜피 부자 노인의 돈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이니 부의 세대간 이동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라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이는 부의 대물림과 빈부격차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밖에도 저자는 세계화와 인구문제를 하나로 아우르는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선 진국에서 종종 고령화 시대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민 정책은 실(失)은 간과한 채 득(得)만을 강조한 감이 없지 않다. 신대륙 발견 이후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인구 이동은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초강대국 미국이야말로 이와 같은 '제1차 세계화'로 탄생한 국가이지 않은가.

 

그러나 경제성장이 과거보다 현저하게 둔화될 가능성이 큰 미래의 고령화 선진사회는 경제활동인구 확대라는 달콤함에 빠져 이미 정책을 확대했다가는 혹독한 댓가를 치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보통 이민은 상대적으로 경제발전수준이 낮은 국가에서 높은 국가로의 인구이동을 말하는데 이들은 거의 대부분은 피부양가족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높은 지식층이나 숙련공이 아닌 경우 이민자들은 거의 대부분 3D 직종의 저임금 업종에 종사하는데 선진국 정부의 세율과 복지제도는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층을 돌보는 것에 더 많이 치중하고 있어 이민자들이 기여한 것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저자는 앞으로 서유럽 등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국가는 단순 노동력이 아닌, 숙련공이나 기술인력 등만을 선별하여 받아들여야만 하고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한편, 세계화는 상품과 용역 자본 분야 뿐만 아니라 HIV/AIDS와 같은 전염병 분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지역은 인구구조상 젊은층이 절대적으로 많아 '인구 구조 배당금'을 누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전염병의 만연으로 경제성장이 적체되어 빈곤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아프리카와 중동 및 인도 등은 인구구조상 젊은층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경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을 발전시켜 실업율을 낮추지 않는다면 비록 인구 고령화에 따른 직격탄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빈곤의 악순환과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이라는 더 큰 시련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 문제는 노동집약산업의 한계는 엄청난 에너지와 자원의 투입에 비례하여 발전한다는 점이다.

지금의 중국을 보라!

중국의 놀라운 경제성장은 엄청난 인구를 기반으로 한, 저임금 노동집약형 산업을 발전시킨 덕분이었고, 그로 인해 전세계인들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물건들을 사고 버리는 과소비를 일삼아 왔다. 이와 같은 발전 방식은 반드시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비록 지역적으로 인구가 줄어들겠지만 전세계적 관점으로 봤을때,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도 그렇고 대부분 인구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들이 뜻밖에도 이와 같은 문제는 소홀시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우리는 고령화 문제에 접근하는데 있어 이와 같은 기본적인 전제를 간과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고령화 사회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요량으로 서둘러 고출산 정책을 난발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구는 무한한 자원이 아니다. 무작정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다.

 

 

소제목만을 보면, 유엔인구국(UNPD)에서 제시된 각종 인구 통계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내놓은 짧은 보고서들을 한권으로 엮은 책이 아닐까 싶다. 인구 구조와 고령화 저출산 문제를 세계적으로 접근하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지역별 상황과 특징 또한 놓치지 않고 있는데 아마도 이는 유엔이라는 국제기구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덕분'이 아닐까 싶다. 하여, 저자의 창의성이나 통찰력은 다소 부족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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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명령
한윤형.최태섭.김정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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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성공이 열정 하나만으로 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면 반드시 읽어 봐야 할 책이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는 덤프트럭운전사, 네일아티스트, 정당이나 NGO단체의 상근 근로자 및 취업준비생들의 실제 삶을 추적하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을 이끌어 내는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기업체는 어째서 직원 연수에 외부강사를 초빙하여 동기부여 강연을 듣게 만드는지...

서점에는 어째서 자기개발 서적들이 베스트셀러 상위 자리를 차지하는지...

대중 매체는 어째서 하나같이 성공과 열정은 하나라고 주장하는지...


그 이유는, 바로 개인의 노동을 저렴한 가격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열정 노동의 확산은 IMF 사태라는 국내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의 창궐이라는 전 세계의 상황을 근간으로 한다. 국가와 자본은 사람들의 열정을 필요로 했다. 동시에 신자본주의는 '불안정함'이라는 운명을 새 시대에 부여했다. '나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거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요구되었다. 면접자에서도, 구직자가 열정을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 인사 담당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널 대체할 사람은 많아'라고 이야기했다.


-한윤형외,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p186~187-



이 책은 '성공과 실패는 개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는 매우 당연하고도 의미 있는 담론이 사실은 갖은 거라고는 '몸뚱아리' 하나 밖에 없는 사람들을 싼 값에 부려먹으려고 하는 고도의 계략에 다름아니라고 주장한다.


사실, 계급사회가 출현하면서 노동의 가치가 중요해졌다. 원래 필요한 만큼만 노동을 했던 인간은 잉여 생산물을 만들고 축적하기 위해 노동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특히 사회계급의 최상층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더욱 많은 잉여 생산물을 갖기 위해 일반 대중들에게 노동을 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강압적인 폭력과 함께 등장한 것이 바로 자발적으로 노동하게 만드는 '의식화' 작업이었다. 노동은 이렇게 해서 신성함을 부여받게 되었고 노동에 대해 지불하는 댓가는 항상 노동을 재생산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제한되었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대중의 열정을 계속 불지피기 위해 일부 극소수의 사람들이 노동을 통해 더 이상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계급에 편입되는 것을 용인함으로써 일반 대중의 '본보기'로 삼았다.


"자, 저 사람을 봐라! 저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저 자리에 섰다. 너의 실패는 다 네가 열정을 불태워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사회 구조적인 모순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마술 지팡이가 되었다. 


실업, 빈곤, 자살 등이 과연 모두 개인의 게으름과 나약함 때문일까?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사회 구성체 안에서 움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의 폭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국적과 성별 그리고 사회적 지위는 향후 개인의 후천적인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이와 같은 것들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부른다. 흔히 타고난 운명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위인전의 목록을 보면 알 수 있다. '본보기'로 등장하는 위인들은 하나같이 혹독한 시련을 극복하고 운명을 개척하지 않았던가. 세상은 우리에게 위인이 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반드시 누구나 위인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위인으로 이름을 남기지 않고, 그저그냥 마음 편하게 일생을 살다가면 안되는 것일까? 물론,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사람에게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사실, 개개인은 매우 약하다. 전체 속에서 개인의 선택 여지는 생각처럼 크지 않다. 쉽게 말하면, 이미 정해져 있는 전체의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질 확률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게임의 승자는 누굴까? 바로 게임의 규칙을 정한 사람이다.


'열정 노동의 전도사'들이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이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배틀 로얄>의 대사를 인용한다면 '벗어날 수 없는 완벽한 룰'에 가깝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김난도는 청춘들에게 먼 미래를 내다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조언한다. 소설가 김영하는 신춘문예에 당선되지 않고도 소설은 쓸 수 있다며 '작가적 자의식'으로 제 곤궁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청춘을 요구한다. 그보다 훨씬 많은 자기 계발의 전도사들은 당신에게 마치 스스로 사장인 것처럼 일하라고 할 것이다. 이들의 말은 잘못 되었는가?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상 우리에게 다른 대책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가장 가망 없는 열정 노동의 현장('사회운동')에 뛰어들거나,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다른 일에 열정을 불태우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열정의 반복이다. 열정의 착취로 인해 생긴 이 순환을 끊어 내기 위해서라도,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열정을 불러와야 한다.


-한윤형外,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p235-



자기개발'과 '동기부여'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게 된 배경과 이유 역시 대중의 열정을 자극하여 소위 자발적(?) 노동을 이끌어 내려는 교묘한 전략에 다름 아니었다. 진실을 뒤덮고 있던 '안개'가 걷히고 시야가 밝아졌으니 당연히 통쾌, 상쾌해야 마땅하건만 마음만은 더 한층 무거워졌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자본의 교활함에 대한 뒤늦은 자책과 깨달음도 앞으로의 대처 방안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열정은 성공하고픈 사람들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희망의 불씨와 같은 것이었는데...

그 희망의 불씨마저 사그라진 지금.

마음 속에는 열패감과 함께 의혹의 폭풍우가 휘몰아친다.

'에이, X같은 세상. 그런데 혹시 이 책 역시 '또 다른 열정'에 불을 붙이려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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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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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사람들은 혹독하고 긴 겨울을 나기 위한 방편으로 책읽기가 생활화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TV교양프로그램에서 본 것 같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

신비로운 오로라...

그리고 백야...


북극의 나라들은 이런 것들만으로도 사람을 한껏 달뜨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는 것같다. 여기에 끝없이 펼쳐진 설원 속 깊숙히 파묻혀 있는 수많은 전설과 신화 그리고 숱한 이야기들이 더해져 신비로움은 더한층 극화된다. 


<소노우맨>은 이와 같은 북극의 나라 노르웨이를 배경으로한 추리소설로, 밴드 '디 데레(DiDerre)'의 보컬이자 작곡가이기도 한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제7편이다. 전작과의 연관성이 적어 요 네스뵈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무난한 작품이라고 한다. 


기둥줄거리는 연쇄살인마를 쫒는 강력반 형사의 활약상으로 헐리우드식 범죄수사극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신적 상처를 안고 있는 어린 아이가 성장하여 연쇄살인마가 된다는 설정은 신선함이 다소 떨어지지만 현실 속 연쇄살인마의 탄생(?)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또 다른 서늘함을 느끼게 한다.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들의 15퍼센트에서 20퍼센트는 자신이 생각하는 아버지가 친부가 아니다'라는 스웨덴의 연구 결과가 바로 사건의 발단이 된다.


첫눈이 내리는 날.

마당에 눈사람이 나타나면 사람이 없어진다. 

피해자는 독특한 유전병을 앓고 있는 아이를 둔 유부녀들이다. 


이제 '누가? 어째서?'라는 범인과 동기를 찾아나서는 두뇌 게임이 펼쳐된다. 

작가는 해리 홀레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창조해냈다. 일중독, 알콜중독에 신경질적이고 고독한 사나이로 형사가 안 되었다면 범죄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캐릭터다.


에거사크리스티의 포와로나 형사 콜롬보 등이 날카로운 추리와 질문으로 범죄를 해결한다면 해리 홀레는 영화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과(科)에 속한다. 합동작전으로 범인을 체포하기보다는 1인 플레이에 의존한다는 점 등도 다분히 헐리우드적이다.  


처음부터 드라마나 영화 제작을 염두해 둔 작품인 것처럼 비주얼적인 면이 강하다. 하드코어적인 색깔도 갖추고 있어 재미를 위한 독서로는 제격일 듯. 책을 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영미식 범죄영화 한편을 봤을 때의 그 느낌 그대로다. 통쾌하고 재미있고... 투자한 영화표값과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값어치'는 충분히 하지만 뭔가 허탈하다.

'뭐랄까...?'

겨울 하늘을 가르고 날아가는 겨울새의 날개짓처럼 마음 한켠을 스산하게 가르고 지나가는 '여운'이 없다고나 할까.


<스노우맨>의 가장 큰 단점은 지나치게 영화스럽다는 점이다.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해 만들어진 헐리우드 공식이 철저하게 적용되는 영화말이다. 

활자로 읽는 추리소설만이 전해줄 수 있는 독특한 즐거움이 부족하다. 범인이 붙잡히고 대단원의 막이 내려진 후, 거친 숨결 뒤에 찾아오는 여운이 없다.

영웅(해리 홀레)에 집중하다보니 정작 주인공인 스노우맨(마티아스)은 사라지고 없었다. 


자신의 신체적 결함이 유전에 의한 것이라는 점...

더구나 그 유전자는 지금까지 아빠라고 여겨왔던 사람이 아닌 얼굴 한번 본 적도 없는 낯선 남자로부터 왔다는 점....

결국 자기 자신의 탄생은 엄마의 외도와 거짓된 행동의 결과라는 점 등을 알아버린 어린 꼬마아이의 시선으로 이 책을 다시 바라보고 싶다. 


어린 동심을 상징하는 눈사람이 어떻게 살인의 전주곡으로 변했을까?

나는 그 과정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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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 오래된미래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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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전부터 우리 사회에 거세게 불고있는 '힐링' 열풍을 타고 한국에서도 한창 인기몰이 중인 책이다. 

원래 베스트셀러목록에 오르내리는 책들은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우연히 선물로 받으면서 반은 의무감에 반은 호기심에 읽게 되었다. 물론, 다른 책들을 제쳐두고 이 책을 선뜻 집어든데에는 200페이지 내외로 읽기에 전혀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꾸베씨의 행복여행>은 정신과 의사인 주인공 꾸베씨가 일상의 권태에서 벗어나 행복을 찾기 위해 중국(홍콩)과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 그리고 미국을 차례로 여행하며 겪은 이야기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겪은 사건들을 통해 주인공 꾸베씨는 진정한 행복이란 목표가 아니며 또한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닌, 현재의 선택임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 꾸베씨는 실제로 프랑스 파리에서 정신과 의사로 16년 동안 일해 온 저자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저자 서문에서 밝혔듯이 평균 이상의 삶의 조건을 갖춘 남부러울 것 없지만 불행한 사람들을 직업적으로 자주 만나면서 저자는 진정한 행복에 대해 깊이 생각했을 터. 그리고 그 사색의 결과가 바로 꾸베씨가 행복여행 중 깨닫게 되는 배움 23가지로 요약되어 우리 앞에 펼쳐진다.  

 

배움1_ 행복의 첫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은 것이다.

배움2_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배움3_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배움4_ 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배움5_ 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는 것이다.

배움6_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배움7_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배움8_ 불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배움9_ 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배움10_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시다.

배움11_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

배움12_ 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더욱 어렵다.

배움13_ 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다가 느끼는 것이다.

배움14_ 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주목할점, 우리는 웃고 있는 아이들에게 더 친절하다.


배움15_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배움16_ 행복은 살아 있음을 축하하는 파티를 여는 것이다.

배움17_ 행복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배움18_ 태양과 바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

배움19_ 행복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배움20_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배움21_ 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

배움22_ 여성은 남성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 더 배려할 줄 안다.

배움23_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보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머나먼 타국의 여행지에서 현지 여인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치안이 불안정한 검은 대륙에서는 자동차와 함께 통째로 납치되었다가 풀려나는가 하면, 미국의 저명한 행복 전문가와 난상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오고가는 비행기안에서도 주인공의 배움은 멈추지 않는다. 특히, 인건비가 저렴한 나라에 공장을 세워 수익을 거두는 사업가와의 만남을 통해 '세계화'를 실감나게 전달하는가하면, 기업 인수합병으로 거액의 연봉을 받는 컨설턴트(뱅쌍)와 마약 재배와 판매로 부자가 된 자칭 사업가(알프레도) 그리고 휴일 도심 한복판에 천을 펼쳐놓고 무리지어 쉬고 있는 가난한 나라 출신 가정부들과의 만남 등등...


21세기 세계를 무대로 살아가는 지구촌 사람들의 모습이 양감있게 그려진다. 그러나 세계화가 국가와 국가간의 격차는 좁혔지만 국가 내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시킨 결과는 애써 외면하면서, '갖은 것이 없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케케묵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역시 서구 선진국 지식층 출신인 저자는 자신의 계급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서구 선진사회의 패러다임 속에서 행복한 여행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주인공 꾸베씨처럼 직장을 쉬고 세계 각 지역을 비행기로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행복을 논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 존을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행복에 대한 고민과 추구 자체가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시시각각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행복한 미소를 보일 수 있는 건 진짜 행복해서라기보다는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생존 자체를 어른들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어린 아기들이 사랑과 관심을 얻기 위해 습관적으로 웃는 것처럼 생존 자체를 선진국에 의존해야만 하는 제3세계 국민들이 백인들에게 습관적으로 미소를 지으며 행복을 가장하는 건 아닐까.



진정한 행복은 멋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행복을 찾아 늘 과거나 미래로 달려간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자신을 불행하게 여긴다.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선택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당신은) 얼마든지 행보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서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다.



주인공 꾸베씨가 첫 여행지에서 만난 老스님을 마지막으로 다시 찾아갔을 때 듣게되는 '행복론'이다.

어딘지 '안분자족(安 分自足)'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동양 철학을 닮아 있다. 어딘지 자신들과는 달라보이는 동양적 사고에 매료되는 서구 사회의 오래된 습관을 다시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이제야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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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에도 성별로 취향이 구분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남성독자들이 하드코어나 SF환탄지쪽에 가깝다면, 여성독자들은 내면의 심리를 깊숙하게 파고든 작품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리고보니 요즘 들어 부쩍 추리소설에 재미를 붙인 나의 경우를 봐도 그런 것 같다. 일단, 허무맹랑한 건 딱 질색이다. '상상은 자유'라고 하지만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것에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고해서 탐정과 트릭이 반드시 등장하는 전통 추리물도 어딘지 모르게 고리타분하고...

이런 나에게 마쓰모토 세이초와 미야베 미유키로 대표되는 일본의 사회파추리소설들은 제격이라하겠다.


일본의 추리소설들을 더듬어 읽다가 누마타 마호카루의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이란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근 6개월 동안 독서목록에 올라있다가 최근에서야 읽게된 작품이다. 일단, 파란만장(?)한 과거를 가진 56세 여성의 처녀작이란 점이 눈길을 끌었다. 마쓰모토 세이초도 마흔이 넘은 나이에 전업작가로 데뷰한 흔치 않은 인물인데, 그보다도 무려 십년이나 뒤늦게 작가의 길로 들어선 작가라면 뭔가 다를 것같고 뭔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적지 않은 분량의 내용을 다 읽고 난 후 첫 느낌은 "찝찝함"이었다.

사랑에는 국경도 한계도 없다고 하지만 이건 도무지 정상적인 사랑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이혼한 남편의 의붓딸 남자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중년 여인...

성폭행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을 환자로 만나 재혼까지 하는 정신과 의사....

아버지는 같고 엄마가 다른 의붓오빠를 좋아하는 여고생...

아빠가 재혼한 여성를 사랑하는 남학생 등등...


오히려 실종된 아들을 애타게 찾아 해매는 주인공 사치코 주위를 맴돌며 물심양면으로 그녀를 보살펴주는 주책없는 주인공 핫토리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인물로 다가왔다. 상대방에 대한 깊은 연민과 호감이야말로 우리에겐 익숙해서 편안한 사랑의 원형(原型)이 아닐까 싶다.


'그로테스크'라는 말로도 쉽게 설명될 수 없는 이와 같은 유형의 작품을 일컬어 '이야미스'식 작품이라고 한단다.

이야미스란 '싫은' '이상한' '묘한'이란 뜻으로 일본의 3,40대 주부층을 주된 독자층으로 하는 신경향(?) 소설을 가리키는 것같다. 


워낙 별의별 다양한 작품들이 가득한 일본 문학계지만 정말 그 한계는 어디까지일지 내심 걱정스럽다.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과 함께 '이야미스'로 분류되는 작품 중,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과 미치오 슈스케의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을 모두 읽었다. 이들 작품들이 그려내고 있는 분위기와 주제는 누마타 마호카루의 그것보다 훨씬 더 밝고 선명하다. 오히려 작품의 구성과 전개면에서는 기존의 방식을 뒤엎는 신선함마저 느껴졌다.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은 특히 1인칭 주인공인 '나'의 심리에 착안하여 독자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보면, 주인공인 사치코는 핫토리 다음으로 가장 정상에 가까운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의 눈에 비친 등장인물들은 위법은 아닐지언정 정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심리의 소유자들임에 분명하다. 


여기 아빠가 재혼한 상대(즉 자신의 계모)와 사랑에 빠져 도피행각을 벌인 십대 아들이 있다.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 불가다. 아무리 직접 배아파 낳은 친엄마라고 해도 이건 이해 불능이다. 하여, 주인공 사치코 역시 아들 후미히코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에 가닿았을 뿐이다.


후미히코는 도망쳤다. 자신을 들볶는 연심으로부터, 음란한 엄마로부터, 자신을 버린 아버지로부터, 아버지의 변태적인 행위로부터, 그 피를 물려받은 자신의 타는 듯한 욕망으로부터, 너무나 천진난만한 나즈나로부터, 그 나즈나를 속이는 것으로부터, 좋은 아들과 명랑한 친구를 연기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누마타 마호카루,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 p264-


어찌보면 자기합리화에 불과하지만 이게 엄마인 사치코로서는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이혼한지 8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사치코의 마음에 남아 있는 전남편의 이기적 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마음일까?


유이치로는 분명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치유하는 자로서 덮쳐오는 재앙으로부터, 유이치로 자신으로부터, 무엇보다 아사미를 지키고 싶었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누마타 마호카루,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 p348-


성공한 의사인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사치코 역시 남편 유이치로에 대한 비난보다는 합리화하려는 모습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내 면의 깊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그녀는  남편의 아내가 데리고 온 딸의 남자친구와의 교재를 통해 남편을 향한 자신의 욕망을 대신 채우려 한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반쪽 어른의 삐뚫어진 자화상을 엿볼 수 있다. 사치코는 이혼한지 8년이나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경제적으로도 여전히 물론 양육비라는 명목이 붙긴 하지만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역시 홀로 독립하지 못하고 언제나 피동적인 입장에 처해 있는 일본 중년 여성의 현실 혹은 소망을 상징하는 건 아닐까.


여기까지 적고 보니, 이 소설이 어째서 3,40대 일본 여성 독자층으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작중 주인공 사치코는 일본 중년 여성의 허세-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편과 착하고 똑똑한 자녀- 로 대표되는 중산층 주부의 심리 감정선과 아슬아슬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역시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다.

상당히 엇비슷한 모습에 정신없이 몰입되다가도 어느 지점에선가부터 확연히 다른 그 '낯섦'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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