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에도 성별로 취향이 구분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남성독자들이 하드코어나 SF환탄지쪽에 가깝다면, 여성독자들은 내면의 심리를 깊숙하게 파고든 작품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리고보니 요즘 들어 부쩍 추리소설에 재미를 붙인 나의 경우를 봐도 그런 것 같다. 일단, 허무맹랑한 건 딱 질색이다. '상상은 자유'라고 하지만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것에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고해서 탐정과 트릭이 반드시 등장하는 전통 추리물도 어딘지 모르게 고리타분하고...

이런 나에게 마쓰모토 세이초와 미야베 미유키로 대표되는 일본의 사회파추리소설들은 제격이라하겠다.


일본의 추리소설들을 더듬어 읽다가 누마타 마호카루의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이란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근 6개월 동안 독서목록에 올라있다가 최근에서야 읽게된 작품이다. 일단, 파란만장(?)한 과거를 가진 56세 여성의 처녀작이란 점이 눈길을 끌었다. 마쓰모토 세이초도 마흔이 넘은 나이에 전업작가로 데뷰한 흔치 않은 인물인데, 그보다도 무려 십년이나 뒤늦게 작가의 길로 들어선 작가라면 뭔가 다를 것같고 뭔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적지 않은 분량의 내용을 다 읽고 난 후 첫 느낌은 "찝찝함"이었다.

사랑에는 국경도 한계도 없다고 하지만 이건 도무지 정상적인 사랑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이혼한 남편의 의붓딸 남자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중년 여인...

성폭행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을 환자로 만나 재혼까지 하는 정신과 의사....

아버지는 같고 엄마가 다른 의붓오빠를 좋아하는 여고생...

아빠가 재혼한 여성를 사랑하는 남학생 등등...


오히려 실종된 아들을 애타게 찾아 해매는 주인공 사치코 주위를 맴돌며 물심양면으로 그녀를 보살펴주는 주책없는 주인공 핫토리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인물로 다가왔다. 상대방에 대한 깊은 연민과 호감이야말로 우리에겐 익숙해서 편안한 사랑의 원형(原型)이 아닐까 싶다.


'그로테스크'라는 말로도 쉽게 설명될 수 없는 이와 같은 유형의 작품을 일컬어 '이야미스'식 작품이라고 한단다.

이야미스란 '싫은' '이상한' '묘한'이란 뜻으로 일본의 3,40대 주부층을 주된 독자층으로 하는 신경향(?) 소설을 가리키는 것같다. 


워낙 별의별 다양한 작품들이 가득한 일본 문학계지만 정말 그 한계는 어디까지일지 내심 걱정스럽다.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과 함께 '이야미스'로 분류되는 작품 중,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과 미치오 슈스케의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을 모두 읽었다. 이들 작품들이 그려내고 있는 분위기와 주제는 누마타 마호카루의 그것보다 훨씬 더 밝고 선명하다. 오히려 작품의 구성과 전개면에서는 기존의 방식을 뒤엎는 신선함마저 느껴졌다.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은 특히 1인칭 주인공인 '나'의 심리에 착안하여 독자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보면, 주인공인 사치코는 핫토리 다음으로 가장 정상에 가까운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의 눈에 비친 등장인물들은 위법은 아닐지언정 정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심리의 소유자들임에 분명하다. 


여기 아빠가 재혼한 상대(즉 자신의 계모)와 사랑에 빠져 도피행각을 벌인 십대 아들이 있다.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 불가다. 아무리 직접 배아파 낳은 친엄마라고 해도 이건 이해 불능이다. 하여, 주인공 사치코 역시 아들 후미히코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에 가닿았을 뿐이다.


후미히코는 도망쳤다. 자신을 들볶는 연심으로부터, 음란한 엄마로부터, 자신을 버린 아버지로부터, 아버지의 변태적인 행위로부터, 그 피를 물려받은 자신의 타는 듯한 욕망으로부터, 너무나 천진난만한 나즈나로부터, 그 나즈나를 속이는 것으로부터, 좋은 아들과 명랑한 친구를 연기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누마타 마호카루,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 p264-


어찌보면 자기합리화에 불과하지만 이게 엄마인 사치코로서는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이혼한지 8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사치코의 마음에 남아 있는 전남편의 이기적 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마음일까?


유이치로는 분명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치유하는 자로서 덮쳐오는 재앙으로부터, 유이치로 자신으로부터, 무엇보다 아사미를 지키고 싶었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누마타 마호카루,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 p348-


성공한 의사인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사치코 역시 남편 유이치로에 대한 비난보다는 합리화하려는 모습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내 면의 깊은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그녀는  남편의 아내가 데리고 온 딸의 남자친구와의 교재를 통해 남편을 향한 자신의 욕망을 대신 채우려 한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반쪽 어른의 삐뚫어진 자화상을 엿볼 수 있다. 사치코는 이혼한지 8년이나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경제적으로도 여전히 물론 양육비라는 명목이 붙긴 하지만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역시 홀로 독립하지 못하고 언제나 피동적인 입장에 처해 있는 일본 중년 여성의 현실 혹은 소망을 상징하는 건 아닐까.


여기까지 적고 보니, 이 소설이 어째서 3,40대 일본 여성 독자층으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작중 주인공 사치코는 일본 중년 여성의 허세-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편과 착하고 똑똑한 자녀- 로 대표되는 중산층 주부의 심리 감정선과 아슬아슬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역시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다.

상당히 엇비슷한 모습에 정신없이 몰입되다가도 어느 지점에선가부터 확연히 다른 그 '낯섦'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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