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명령
한윤형.최태섭.김정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성공이 열정 하나만으로 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면 반드시 읽어 봐야 할 책이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는 덤프트럭운전사, 네일아티스트, 정당이나 NGO단체의 상근 근로자 및 취업준비생들의 실제 삶을 추적하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을 이끌어 내는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기업체는 어째서 직원 연수에 외부강사를 초빙하여 동기부여 강연을 듣게 만드는지...

서점에는 어째서 자기개발 서적들이 베스트셀러 상위 자리를 차지하는지...

대중 매체는 어째서 하나같이 성공과 열정은 하나라고 주장하는지...


그 이유는, 바로 개인의 노동을 저렴한 가격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열정 노동의 확산은 IMF 사태라는 국내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의 창궐이라는 전 세계의 상황을 근간으로 한다. 국가와 자본은 사람들의 열정을 필요로 했다. 동시에 신자본주의는 '불안정함'이라는 운명을 새 시대에 부여했다. '나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거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요구되었다. 면접자에서도, 구직자가 열정을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 인사 담당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널 대체할 사람은 많아'라고 이야기했다.


-한윤형외,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p186~187-



이 책은 '성공과 실패는 개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는 매우 당연하고도 의미 있는 담론이 사실은 갖은 거라고는 '몸뚱아리' 하나 밖에 없는 사람들을 싼 값에 부려먹으려고 하는 고도의 계략에 다름아니라고 주장한다.


사실, 계급사회가 출현하면서 노동의 가치가 중요해졌다. 원래 필요한 만큼만 노동을 했던 인간은 잉여 생산물을 만들고 축적하기 위해 노동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특히 사회계급의 최상층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더욱 많은 잉여 생산물을 갖기 위해 일반 대중들에게 노동을 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강압적인 폭력과 함께 등장한 것이 바로 자발적으로 노동하게 만드는 '의식화' 작업이었다. 노동은 이렇게 해서 신성함을 부여받게 되었고 노동에 대해 지불하는 댓가는 항상 노동을 재생산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제한되었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대중의 열정을 계속 불지피기 위해 일부 극소수의 사람들이 노동을 통해 더 이상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계급에 편입되는 것을 용인함으로써 일반 대중의 '본보기'로 삼았다.


"자, 저 사람을 봐라! 저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저 자리에 섰다. 너의 실패는 다 네가 열정을 불태워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사회 구조적인 모순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마술 지팡이가 되었다. 


실업, 빈곤, 자살 등이 과연 모두 개인의 게으름과 나약함 때문일까?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사회 구성체 안에서 움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의 폭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국적과 성별 그리고 사회적 지위는 향후 개인의 후천적인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이와 같은 것들을 우리는 '운명'이라고 부른다. 흔히 타고난 운명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위인전의 목록을 보면 알 수 있다. '본보기'로 등장하는 위인들은 하나같이 혹독한 시련을 극복하고 운명을 개척하지 않았던가. 세상은 우리에게 위인이 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반드시 누구나 위인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위인으로 이름을 남기지 않고, 그저그냥 마음 편하게 일생을 살다가면 안되는 것일까? 물론,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사람에게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사실, 개개인은 매우 약하다. 전체 속에서 개인의 선택 여지는 생각처럼 크지 않다. 쉽게 말하면, 이미 정해져 있는 전체의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질 확률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게임의 승자는 누굴까? 바로 게임의 규칙을 정한 사람이다.


'열정 노동의 전도사'들이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이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배틀 로얄>의 대사를 인용한다면 '벗어날 수 없는 완벽한 룰'에 가깝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김난도는 청춘들에게 먼 미래를 내다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조언한다. 소설가 김영하는 신춘문예에 당선되지 않고도 소설은 쓸 수 있다며 '작가적 자의식'으로 제 곤궁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청춘을 요구한다. 그보다 훨씬 많은 자기 계발의 전도사들은 당신에게 마치 스스로 사장인 것처럼 일하라고 할 것이다. 이들의 말은 잘못 되었는가?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상 우리에게 다른 대책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가장 가망 없는 열정 노동의 현장('사회운동')에 뛰어들거나,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다른 일에 열정을 불태우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열정의 반복이다. 열정의 착취로 인해 생긴 이 순환을 끊어 내기 위해서라도,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열정을 불러와야 한다.


-한윤형外,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p235-



자기개발'과 '동기부여'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게 된 배경과 이유 역시 대중의 열정을 자극하여 소위 자발적(?) 노동을 이끌어 내려는 교묘한 전략에 다름 아니었다. 진실을 뒤덮고 있던 '안개'가 걷히고 시야가 밝아졌으니 당연히 통쾌, 상쾌해야 마땅하건만 마음만은 더 한층 무거워졌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자본의 교활함에 대한 뒤늦은 자책과 깨달음도 앞으로의 대처 방안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열정은 성공하고픈 사람들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희망의 불씨와 같은 것이었는데...

그 희망의 불씨마저 사그라진 지금.

마음 속에는 열패감과 함께 의혹의 폭풍우가 휘몰아친다.

'에이, X같은 세상. 그런데 혹시 이 책 역시 '또 다른 열정'에 불을 붙이려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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