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말할 것도 없고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코니 윌리스의 작품 중, 가장 어려운 것 같다.

그녀의 대표작이라고 해봐야 <화재 감시원>과 <둠즈 데이 북> 을 포함하여 3편 뿐이지만...

 

참고로,

코니 윌리스 특유의 수다와 빅토리아 시대의 재현 그리고 제롬 K 제롬의 <보트 위의 세남자>에 대한 '오마주'  등등... <개는 말할 것도 없고>에 대한 부연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작가의 명성은 SF와 시대 소설를 접목시킨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에 있지 않나 싶다.

<둠즈 데이 북>을 재미있게 읽고 난 후,  작가와 작품에 이어지는 각종 리뷰와 호평을 통해 <개는 말할 것도 없고>에 도전했으나 결과는 아무래도 참패한 것 같다.

 

도무지 그녀의 수다 속에서 그 어떤 위트도 즐거움도 느끼지 못했다.

이는 작가나 역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전적으로 나의 독서 취향과 맞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주교의 새(鳥) 그루터기가 무엇이고 어떻게 찾게 되었는지 7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책읽기에 집중하지 못한 내 잘못도 크다.

그렇지만 작가가 바라는 바대로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독자가 도대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한마디로 이 책은 대중을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일부 소수의 마니아를 위한 책이라 하겠다.

 

궁금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해서 책을 다 읽은 후, 주교의 새 그루터기를 어떻게 찾게 되었는지 인터넷을 검색했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에 관한 리뷰는 대부분 내가 이해한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겨우 겨우 코번트리 성당의 마지막 사제인 돌트 신부의 부인인 리지 여사가 2018년도에 1940년으로 시간 여행을 하여 주교의 새 그루터기를 훔쳐와 보관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아냈을 뿐이다.

 

그래서 그게 어떻단 말인가?

 

코니 윌리스는 <둠즈 데이 북>과 <개는 말할 것도 없고>를 통해 인간은 설령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게 되더라도 역사를 바꿀 수 있는 그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개는 말할 것도 없고>는 그녀의 주장을 견고히 해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작품 속에서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사소한 실수로 시공체가 붕괴-역사 자체가 바뀌는 것-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 역사를 정상(?)으로 되돌리려고 갖가지 노력을 다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한 짓(?)으로 판명이 나니 말이다. 

 

'역사는 개개인의 특성과 용기와 배신과 사랑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도 조정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고와 우연한 기회에 의해서도, 그리고 유탄과 전보와 팁에 의해서도, 그리고 고양이도. 'p229  

 

인간의 작은 개입으로 역사가 바뀔 수 있다는 가정이야말로 역사(신)에 대한 인간의 오만한 도전이 아니고 그 무엇이란 말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

등등...

언제부턴가 '죽기 전에.......'로 시작하는 문장이 유행하고 있다.

 

그만큼 절박함과 절실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리라.

우 리는 죽음을 피할 순 없지만 평소 죽음에 대해 관조할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우리는 점점 '죽음'으로부터 멀어진 듯 하다.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인간의 평균 수명은 채 50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

질병과 굶주림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와 전쟁 등으로 그 당시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죽음을 의식하며 살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그중 하나였다.

언 제라도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기에 삶은 훨씬 더 진지하고 생동감 넘쳤다. 굳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강조하지 않아도 발딛고 서있는 모든 곳을 진심으로 사랑했으며,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야말로 죽기 전에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는 그의 나이 52세(헤밍웨이는 61세에 엽총 자살했다)때 쓰여진 작품으로 흔히 거장이 남긴 마지막 '스완 송'으로 불리는 명작이다.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에게는 평생 동안 모험과 도전으로 일관된 삶을 추구했던 헤밍웨이의 잔영이 깊게 투영되어 있다.  

 

 

멕시코 만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84일째 단 한마리도 낚지 못한다. 이틀 동안 망망대해에 떠 있던 산티아고의 낚시바늘을 큼지막한 청새치가 덥썩 물었다.

노인이 탄 조각배보다도 훨씬 더 큰 5.5미터짜리 청새치는 마치 노인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리 저리 배와 배위의 노인을 끌고 바다를 누빈다.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낚싯줄을 잡은 노인의 손에서 붉은 피가 흘러 내리고 마침내 청새치는 움직임을 멈춘다. 

일생 일대의 대어를 낚은 노인은 청새치를 뱃전에 묶고 항구로 돌아가는 도중 피냄새를 맡은 상어떼의 공격을 받는다.  노인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포획물을 상어떼로부터 지키기 위해 사활을 건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수는 없어."

 

상어떼의 공격으로부터 간신히 벗어나 육지에 도달한 노인에게는 살점 하나 남지 않은 청새치 뼈다귀뿐이었다. 노인은 비록 자신의 노획물을 지켜내진 못했지만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포기하기 전까진 실패도 패배도 없는 법이니까...

 

 

이 작품으로 헤밍웨이는 1953년에 퓰리처상을, 1954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문학상선정위원회는 <노인과 바다>를 '폭력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현실에서 선한 싸움을 벌이는 모든 개인에 대한 존경심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노인과 바다> 를 꼽을 것이다.

죽 기 전에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산티아고'를 선택하리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저버리지 않은 이 땅의 모든 산티아고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

.

.

.

.

최근 헤밍웨이를 다시 떠올리게 만든 계기가 된 사진입니다. 인터넷에 올라와 화제가 된 모양입니다.

생전 헤밍웨이에게 어떤 사람이 내기를 걸었답니다.

'가장 짧은 소설로 사람을 울리게 만들 수 있다면 당신이 이긴 거요.'

결과는 헤밍웨이가 이겼지요.

내기를 수락한 헤밍웨이는 단 여섯 단어로 가장 짧은, 그러나 가장 슬픈 소설을 지어냈습니다. 

 

 

 

 

For sale : Baby shoes, Never worn.

                                    - E. Hemingway

 

- 팝니다. 아기 신발, 한번도 신어본적 없음.

                                     -어니스트 헤밍웨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사장의 인문학 - 사장이라면 평생 가져야 할 인문학 키워드 30
이현숙 지음 / 팬덤북스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범한 직장인이 쓴 서평 수필집이라고 해야 할 것같다.

다분히(?) 미래 고객을 염두에 둔 제목이 다소 거슬리긴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책출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좋을 것 같다.

요즘은 블로그 등 개인 미디어 매체가 발달되어 있으니 약간의 글쓰기 솜씨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손쉽게 글을 쓰고 발표(?)할 수 있는 시대다. 특히, 서평류의 책들이 많이 출판되는 것 같다.

 

이 책의 지은이 역시 직장생활(현직 은행원이란다)를 병행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읽었던 책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주로 4,50대 그것도 (중소기업) '사장님'을 주요 독자층으로 한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읽다가 도중에 포기한 카잔차스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죽기 전에 다시 한번 꼭 읽어봐야겠다.

 

내용은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다음과 같다.

 

멕시코 만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84일째 단 한마리도 낚지 못한다. 이틀 동안 망망대해에 떠 있던 산티아고의 낚시바늘을 큼지막한 청새치가 덥썩 물었다.

노인이 탄 조각배보다도 훨씬 더 큰 5.5미터짜리 청새치는 마치 노인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리 저리 배와 배위의 노인을 끌고 바다를 누빈다.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낚싯줄을 잡은 노인의 손에서 붉은 피가 흘러 내리고 마침내 청새치는 움직임을 멈춘다. 

일생 일대의 대어를 낚은 노인은 청새치를 뱃전에 묶고 항구로 돌아가는 도중 피냄새를 맡은 상어떼의 공격을 받는다.  노인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포획물을 상어떼로부터 지키기 위해 사활을 건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수는 없어."

상어떼의 공격으로부터 간신히 벗어나 육지에 도달한 노인에게는 살점 하나 남지 않은 청새치 뼈다귀뿐이었다.

 

노인은 비록 자신의 노획물을 지켜내진 못했지만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포기하기 전까진 실패도 패배도 없는 법이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두고 <사장의 인문학>의 저자는 '승리란 패배를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는 서평을 남겼다. 

 

시련과 역경은 우리 주변에 상주하는 반갑지 않은 식객이다. 우리의 희망을 야금야금 씹어 먹으며 절망으로 되갚아 주기도 하고, 삶의 의지를 주저앉히기도 하며, 때론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리기도 한다. 상어 떼와 피나는 싸움을 벌이면서도 산티아고는 자신의 나이와 고독, 악조건에 굴복하지 않았다. 자신이 애써 잡은 노획물을 상어 떼들에게 빼앗기면서도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실을 긍정하고 자신감을 놓지 않았다. 승리란 패배를 딛고 일어서는 것, 죽을 힘을 다해 포기하지 않는 것임을 <노인과 바다>는 보여주고 있다.

백조는 평생 울지 않다가 죽기 직전에 단 한번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내고 죽는다고 한다. 흔히 예술가들의 마지막 작품을 '백조의 노래 swan song'라 하는데, <노인과 바다>는 엽총으로 자살한 헤밍웨이가 남긴 백조의 노래이다. 이 작품으로 헤밍웨이는 1953년에 퓰리처상을, 1954년에는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노벨문학상 선정 위원회는 <노인과 바다>를 '폭력과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현실에서 선한 싸움을 벌이는 모든 개인에 대한 존경심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헤밍웨이는 이 작품을 통해 삶의 환희와 허무, 영광과 상처, 강인한 생명력을 굵고 강렬한 필치로 그려 내고 있다. 그가 풀어내려고 하는 것들은 삶의 뜨거운 요소들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거둔 산티아고의 승리가 더욱 찬란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현숙, <사장의 인문학> p203~205 中 -

 

 

집중해서 읽어야 할 두툼한 책을 위한 연습용 독서였을 뿐인데...

늦은 저녁, 불면증을 몰아내기 위해 집어든 책이었을 뿐인데...

어느덧 잠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정신은 더욱 또렷해졌다.

'쿵쿵쿵'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가슴 한켠이 묵직하게 아려왔다.  

삶에 대한 진리 하나가 가슴에 와 박힌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것이 아니다. 파멸할지언정 포기할 수는 없다."

"승리란 패배를 딛고 일어서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벨벳 애무하기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핑거스미스>로 유명한 세라 워터스의 첫번째 작품이다.

이와 같은 유명세(?)에 이끌려 <벨벳 애무하기>에 도전(?)했지만 처음에는 도무지 집중할수가 없었다.

동성애적 코드에 대한 낯섦과 하이틴 로맨스같은 초반 전개에 살짝 짜증스러웠다고나 할까. 

이렇게 이 책은 다른 책들에게 밀려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탁자위에 나뒹굴고 있던 책을 다시 집어들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냥 시간이나 때울 요량으로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읽자마자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핑거스미스>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이 작품 역시 1인칭 독백이 돋보인다.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주면서 동시에 철학적 깊이가 배어 있는 세라 워터스의 독백체 문장들이야말로 그녀의 작품들이 많은 논란속에서도 살아남아 빛을 낼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난 알았다. 멋진 감정이었다. 그러나 또한 두려운 감정이기도 했다. 자기가 이런 행운을 누릴 만한 존재가 못 된다는 사실을 계속 느끼기 때문이다. 원래는 다른 사람이 누려야 할 기쁨인데 완전히 실수로 이런 행운을 누리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그 행운이 코앞에서 사라지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일단 그 감정을 맛보고 나면 가슴속 욕망을 계속 충족시키기 위해 하지 못할 일도, 희생하지 못할 대상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키티와 내가 완전히 같은 느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대상은 달랐다.

훗날, 나는 이를 기억했어야 했다.

 

-세라 워터스, <벨벳 애무하기> p88-

 

주인공 낸시가 연예장에서 남장 가수(일명 '매셔') 키티로부터 전속 의상담당으로 일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굴(oyster) 생산지로 유명한 고향인 윗스터블을 떠나 런던으로 가기로 결심하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독자들은 알게 된다. 

낸시가 가족과 고향을 버리고 키티를 따라 런던으로 온 이유는 대도시에 대한 환상도 성공에 대한 야망도 아닌, 단지 사랑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어지는 런던에서의 우연한 기회들이 그녀를 스타로 만들어 버린다. 낸시는 명성과 부를 얻게 된다. 더불어 키티의 사랑도....

그러나 낸시에겐 사랑이 전부였지만, 키티에겐 사랑은 부와 명성을 한순간에 날려버릴수도 있는 숨겨야 할 비밀이었다. 

결국, 낸시는 키티를 월터-키티의 매니저-와 함께 두고 나온다.  

낸시가 떠나온 건 키티뿐만이 아니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천직처럼 잘 어울리던 무대도 떠났다.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있는 곳을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숨었고, 실종되었다. 나는 모든 친구와 즐거움을 버리고 비참함을 내 직업으로 삼았다. 일주일 내내, 그리고 또 일주일 그리고 또 일주일 그리고 또 일주일 내내 나는 자고 울고 방을 서성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아마 내가 그러는 동안 월터와 키티는 함께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거리를 걷고 있었으리라. 내가 나를 만졌듯 월터는 몸을 숙이고 키티를 만졌으리라. 그리고 키스 했으리라. 침대에 같이 누웠으리라...... 나는 그런 생각을 천 번은 했고 흐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내 심장이 굳은 것처럼 이내 나는 사진을 보며 내 비참함과 분노와 당혹스러움도 굳어 버린 것을 알았다. 둘은 함께 걸었으며 세상은 웃으며 그 모습을 보았다! 둘은 거리에서 껴안았고 낯선 이들은 즐거워했다! 내가 모든 즐거움과 안락함과 편안함을 박탈당하고 벌레처럼 힘없이 사는 동안!

 

-세라 워터스, <벨벳 애무하기> p215~p220-

 

런던의 빈민촌 골방에 처박혀 실연의 아픔을 온몸으로 견뎌낸 낸시는 결심한다.

바로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 사랑을 능멸하기로...

'사랑 그까짓 것, 별 것란 말인가?'

배가 고프면 먹어야하고 졸리면 자야하듯, 욕정이 일거나 돈이 필요하면 상대가 누구이건 상관하지 않고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이 '사랑'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연기자인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서 낸시는 더욱 완벽하고 철저하게 변장하고 연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주인공 낸시는 거리의 '남창'이 되고 귀부인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면서, 사랑에 상처받은 만큼 철저하게 사랑을 갖고 논다. 그러나 그 결과는 더욱 더 처절하게 상처만 받을 뿐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작품의 2부는 상당히 파격적이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표현......

지나치다 싶을만큼 구체적인 성적 묘사......

세라 워터스가 작가로서의 명성을 생각했더라면 굳이 이렇게까지 지나치게 수위를 높였을까 궁금해질 정도다. 

 

암튼, 사랑에 만신창이가 된 낸시는 평범해지기 위해 퀼터 스트리트를 찾아간다. 단 한번밖에 만난 적 없는 플로렌스라는 여자를 찾아서......

 

3부로 이어지면서 작품은 훨씬 더 드라마틱하게 즉 소설(?)스럽게 전개된다.

그렇지 않아도 우여곡절의 삶을 살아온 주인공 낸시 앞에 성적소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플로렌스가 바로 이 두가지 조건에 해당되는 인물인데, 나에게 작품 속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플로렌스가 아닐까 싶다. (다이애나라는 귀부인은 충분히 비현실적이므로 언외로 쳤다.)

 

작품은 낸시가 재회한 키티 대신 플로렌스를 선택함으로써 안락하지만 인형과 같은 삶 대신 거칠고 힘들지만 사회를 변화시키는 길을 걸어갈 것임을 암시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억지스러움이 엿보이긴 하지만 3부에서는 낸시라는 개인적 공간에 국한되어 있던 시야가 넓어진다. 즉, 사회주의가 싹트고 노동운동과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움직임들이 시작된 19세기 후반 영국 사회를 그려줌으로써 작가는 낸시가 마침내 개인적 공간에서 벗어나 사회속으로 세상속으로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벨벳 애무하기> 는 외설도 통속소설도 아닌,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삶을 선택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은 성장소설이라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둠즈데이 북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Doomsday Book!

파멸의 날 책...?

가히, 충격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유명한 SF작가인 코니 윌리스의 대표작이다.

그러나 묵시록적인 책제목 'Doomsday Book'은 1086년 영국의 윌리엄 1세가 징세를 목적으로 작성한 두 권의 토지대장에서 이름을 따왔단다.


<둠즈데이 북>은 지금으로부터 머지 않은 2052년 미래의 영국 옥스퍼드와 1348년 흑사병이 만연하던 중세의 옥스퍼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작가는 '네트'라고 부르는 기계를 이용하여 시간여행을 할 수 있지만, 미래에서 온 자는 역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는 수동적 위치에 있다.고 전제한다. 

'타이머신'이나 '오즈의 마법사' 등으로 대표되는 흥미진진한 시간여행을 기대한 독자라면 페이지를 얼마 못 넘기고 말 것같다.

무 려 800페이지가 넘는 소설 <둠즈데이 북>은 독자에게 과거를 제멋대로 좌우하는 희열도 미래를 엿보고 상상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 주지 않는다. 그 대신 5년간에 걸친 철저한 고증으로 중세 유럽 특히 영국 사회를 실감나게 재현함으로써 흑사병으로 초토화된 중세가 인류의 미래에 또 다시 닥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작가가 그려낸 2052년도는 첨단 기계로 삶의 편리함이 강조된 사회이기는 커녕, 인플루엔자가 빠르게 확산되고 사람들이 죽거나 격리되는 아수라장일 뿐이다. 비록 작가의 예측(?)보다는 40여년 앞당겨지긴 했지만 21세기에 들어와 공교롭게도 인류는 조류독감과 신종플루 등 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전염병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어, 작품의 신빙성을 높여준다. 이는 순전히 작가의 운이라 하겠다.


중세는 말그대로 종교를 중심으로 한, 소위 '암흑의 시대'로 불리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신을 그토록이나 열심히 숭배하던 사람들에게 인류 종말과 같은 시련이 찾아왔다. 바로 흑사병의 창궐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흑사병으로 유럽은 인구의 1/3 심지어 1/2을 잃었다고 하니,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분명 '심판의 날'로 인식되기에 충분했으리라.


갑자기 온몸에 열이 나면서 헛소리를 하고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에 큼지막한 혹(가래톳)이 올라오더니 피부가 까맣게 괴사되면서 2~3일 안에 죽는다.

그를 보살피던 사람들 또한 얼마 지나지않아 똑같은 증상을 앓다가 죽는다.

묘지까지 옮겨줄 사람이 부족하자 죽은 이의 목에 밧줄을 매달아 걸고는 무덤까지 질질 끌고 갔다.

교회 묘지가 삽시간에 새로 들어선 묘들로 가득 차 더 이상 묻을 곳이 없어지자, 마을 한켠에 시체들이 방치되어 산처럼 높이 쌓였다.

마을 곳곳에 시체가 계속 쌓이자 교황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에 시체를 수장시키라고 명하자, 한때 푸르름을 자랑하던 강물들은 서뻘겋게 변하고 시체들이 둥둥 떠다닌다.

간신히 살아남은 자들은 집과 토지를 버리고 마을을 떠났다.

몇날 몇일을 걸어 도착한 또 다른 마을...

그러나 마을은 텅 비어있다. 



흑사병이 최고조에 이르던 중세 유럽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이런 상황에선 오히려 살아 남은 게 비극이다.  



2052년 인류의 미래 모습은 어떨까?


갑자기 한 사람이 쓰러져 병원에 실려온다.

각종 항생제를 써봐도 열은 내려가지 않으며 환자는 의식을 잃고 계속 헛소리를 한다.

바이러스 감염인 것같다. 변이를 일으킨 바이러스의 서열을 해독하고 백신을 만들어 접종을 실시해야 한다.

한동안 환자발생 지역은 격리구역으로 선포되고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게 갇힌다.

그렇지만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감염자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사망자가 속출한다. 

.......


여기까지다.

페스트가 창궐하던 중세처럼 인구가 감소하지도 않고 엑소더스가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미래에 대한 현생 인류의 예측과 기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전염병이든 전쟁이든 혹은 지금으로선 예측할수도 이해할수도 없는 이유들로 인해 인류가 종말에 직면할 개연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둠즈데이 북>은 코니 윌리스 특유의 불필요한 상황묘사와 대화들로 끝까지 읽기 위해선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지만, 흑사병이 창궐한 중세 유럽의 모습과 암울함을 가장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작품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SF소설들이 주로 마법사와 기사들의 활약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코니 윌리스의 <둠즈데이 북> 이 얼마나 독특하고 특별한지 쉽게 알 수 있으리라.

이 한가지 점만으로도 장시간 독서에 대한 보답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