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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 애무하기 ㅣ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핑거스미스>로 유명한 세라 워터스의 첫번째 작품이다.
이와 같은 유명세(?)에 이끌려 <벨벳 애무하기>에 도전(?)했지만 처음에는 도무지 집중할수가 없었다.
동성애적 코드에 대한 낯섦과 하이틴 로맨스같은 초반 전개에 살짝 짜증스러웠다고나 할까.
이렇게 이 책은 다른 책들에게 밀려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탁자위에 나뒹굴고 있던 책을 다시 집어들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냥 시간이나 때울 요량으로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읽자마자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핑거스미스>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이 작품 역시 1인칭 독백이 돋보인다.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주면서 동시에 철학적 깊이가 배어 있는 세라 워터스의 독백체 문장들이야말로 그녀의 작품들이 많은 논란속에서도 살아남아 빛을 낼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난 알았다. 멋진 감정이었다. 그러나 또한 두려운 감정이기도 했다. 자기가 이런 행운을 누릴 만한 존재가 못 된다는 사실을 계속 느끼기 때문이다. 원래는 다른 사람이 누려야 할 기쁨인데 완전히 실수로 이런 행운을 누리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그 행운이 코앞에서 사라지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일단 그 감정을 맛보고 나면 가슴속 욕망을 계속 충족시키기 위해 하지 못할 일도, 희생하지 못할 대상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키티와 내가 완전히 같은 느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대상은 달랐다.
훗날, 나는 이를 기억했어야 했다.
-세라 워터스, <벨벳 애무하기> p88-
주인공 낸시가 연예장에서 남장 가수(일명 '매셔') 키티로부터 전속 의상담당으로 일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굴(oyster) 생산지로 유명한 고향인 윗스터블을 떠나 런던으로 가기로 결심하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독자들은 알게 된다.
낸시가 가족과 고향을 버리고 키티를 따라 런던으로 온 이유는 대도시에 대한 환상도 성공에 대한 야망도 아닌, 단지 사랑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어지는 런던에서의 우연한 기회들이 그녀를 스타로 만들어 버린다. 낸시는 명성과 부를 얻게 된다. 더불어 키티의 사랑도....
그러나 낸시에겐 사랑이 전부였지만, 키티에겐 사랑은 부와 명성을 한순간에 날려버릴수도 있는 숨겨야 할 비밀이었다.
결국, 낸시는 키티를 월터-키티의 매니저-와 함께 두고 나온다.
낸시가 떠나온 건 키티뿐만이 아니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천직처럼 잘 어울리던 무대도 떠났다.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있는 곳을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숨었고, 실종되었다. 나는 모든 친구와 즐거움을 버리고 비참함을 내 직업으로 삼았다. 일주일 내내, 그리고 또 일주일 그리고 또 일주일 그리고 또 일주일 내내 나는 자고 울고 방을 서성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아마 내가 그러는 동안 월터와 키티는 함께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거리를 걷고 있었으리라. 내가 나를 만졌듯 월터는 몸을 숙이고 키티를 만졌으리라. 그리고 키스 했으리라. 침대에 같이 누웠으리라...... 나는 그런 생각을 천 번은 했고 흐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내 심장이 굳은 것처럼 이내 나는 사진을 보며 내 비참함과 분노와 당혹스러움도 굳어 버린 것을 알았다. 둘은 함께 걸었으며 세상은 웃으며 그 모습을 보았다! 둘은 거리에서 껴안았고 낯선 이들은 즐거워했다! 내가 모든 즐거움과 안락함과 편안함을 박탈당하고 벌레처럼 힘없이 사는 동안!
-세라 워터스, <벨벳 애무하기> p215~p220-
런던의 빈민촌 골방에 처박혀 실연의 아픔을 온몸으로 견뎌낸 낸시는 결심한다.
바로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 사랑을 능멸하기로...
'사랑 그까짓 것, 별 것란 말인가?'
배가 고프면 먹어야하고 졸리면 자야하듯, 욕정이 일거나 돈이 필요하면 상대가 누구이건 상관하지 않고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이 '사랑'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연기자인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서 낸시는 더욱 완벽하고 철저하게 변장하고 연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주인공 낸시는 거리의 '남창'이 되고 귀부인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면서, 사랑에 상처받은 만큼 철저하게 사랑을 갖고 논다. 그러나 그 결과는 더욱 더 처절하게 상처만 받을 뿐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작품의 2부는 상당히 파격적이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표현......
지나치다 싶을만큼 구체적인 성적 묘사......
세라 워터스가 작가로서의 명성을 생각했더라면 굳이 이렇게까지 지나치게 수위를 높였을까 궁금해질 정도다.
암튼, 사랑에 만신창이가 된 낸시는 평범해지기 위해 퀼터 스트리트를 찾아간다. 단 한번밖에 만난 적 없는 플로렌스라는 여자를 찾아서......
3부로 이어지면서 작품은 훨씬 더 드라마틱하게 즉 소설(?)스럽게 전개된다.
그렇지 않아도 우여곡절의 삶을 살아온 주인공 낸시 앞에 성적소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플로렌스가 바로 이 두가지 조건에 해당되는 인물인데, 나에게 작품 속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플로렌스가 아닐까 싶다. (다이애나라는 귀부인은 충분히 비현실적이므로 언외로 쳤다.)
작품은 낸시가 재회한 키티 대신 플로렌스를 선택함으로써 안락하지만 인형과 같은 삶 대신 거칠고 힘들지만 사회를 변화시키는 길을 걸어갈 것임을 암시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억지스러움이 엿보이긴 하지만 3부에서는 낸시라는 개인적 공간에 국한되어 있던 시야가 넓어진다. 즉, 사회주의가 싹트고 노동운동과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움직임들이 시작된 19세기 후반 영국 사회를 그려줌으로써 작가는 낸시가 마침내 개인적 공간에서 벗어나 사회속으로 세상속으로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벨벳 애무하기> 는 외설도 통속소설도 아닌,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삶을 선택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은 성장소설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