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즈데이 북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Doomsday Book!

파멸의 날 책...?

가히, 충격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유명한 SF작가인 코니 윌리스의 대표작이다.

그러나 묵시록적인 책제목 'Doomsday Book'은 1086년 영국의 윌리엄 1세가 징세를 목적으로 작성한 두 권의 토지대장에서 이름을 따왔단다.


<둠즈데이 북>은 지금으로부터 머지 않은 2052년 미래의 영국 옥스퍼드와 1348년 흑사병이 만연하던 중세의 옥스퍼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작가는 '네트'라고 부르는 기계를 이용하여 시간여행을 할 수 있지만, 미래에서 온 자는 역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는 수동적 위치에 있다.고 전제한다. 

'타이머신'이나 '오즈의 마법사' 등으로 대표되는 흥미진진한 시간여행을 기대한 독자라면 페이지를 얼마 못 넘기고 말 것같다.

무 려 800페이지가 넘는 소설 <둠즈데이 북>은 독자에게 과거를 제멋대로 좌우하는 희열도 미래를 엿보고 상상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 주지 않는다. 그 대신 5년간에 걸친 철저한 고증으로 중세 유럽 특히 영국 사회를 실감나게 재현함으로써 흑사병으로 초토화된 중세가 인류의 미래에 또 다시 닥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작가가 그려낸 2052년도는 첨단 기계로 삶의 편리함이 강조된 사회이기는 커녕, 인플루엔자가 빠르게 확산되고 사람들이 죽거나 격리되는 아수라장일 뿐이다. 비록 작가의 예측(?)보다는 40여년 앞당겨지긴 했지만 21세기에 들어와 공교롭게도 인류는 조류독감과 신종플루 등 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전염병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어, 작품의 신빙성을 높여준다. 이는 순전히 작가의 운이라 하겠다.


중세는 말그대로 종교를 중심으로 한, 소위 '암흑의 시대'로 불리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신을 그토록이나 열심히 숭배하던 사람들에게 인류 종말과 같은 시련이 찾아왔다. 바로 흑사병의 창궐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흑사병으로 유럽은 인구의 1/3 심지어 1/2을 잃었다고 하니,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분명 '심판의 날'로 인식되기에 충분했으리라.


갑자기 온몸에 열이 나면서 헛소리를 하고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에 큼지막한 혹(가래톳)이 올라오더니 피부가 까맣게 괴사되면서 2~3일 안에 죽는다.

그를 보살피던 사람들 또한 얼마 지나지않아 똑같은 증상을 앓다가 죽는다.

묘지까지 옮겨줄 사람이 부족하자 죽은 이의 목에 밧줄을 매달아 걸고는 무덤까지 질질 끌고 갔다.

교회 묘지가 삽시간에 새로 들어선 묘들로 가득 차 더 이상 묻을 곳이 없어지자, 마을 한켠에 시체들이 방치되어 산처럼 높이 쌓였다.

마을 곳곳에 시체가 계속 쌓이자 교황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에 시체를 수장시키라고 명하자, 한때 푸르름을 자랑하던 강물들은 서뻘겋게 변하고 시체들이 둥둥 떠다닌다.

간신히 살아남은 자들은 집과 토지를 버리고 마을을 떠났다.

몇날 몇일을 걸어 도착한 또 다른 마을...

그러나 마을은 텅 비어있다. 



흑사병이 최고조에 이르던 중세 유럽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이런 상황에선 오히려 살아 남은 게 비극이다.  



2052년 인류의 미래 모습은 어떨까?


갑자기 한 사람이 쓰러져 병원에 실려온다.

각종 항생제를 써봐도 열은 내려가지 않으며 환자는 의식을 잃고 계속 헛소리를 한다.

바이러스 감염인 것같다. 변이를 일으킨 바이러스의 서열을 해독하고 백신을 만들어 접종을 실시해야 한다.

한동안 환자발생 지역은 격리구역으로 선포되고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게 갇힌다.

그렇지만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감염자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사망자가 속출한다. 

.......


여기까지다.

페스트가 창궐하던 중세처럼 인구가 감소하지도 않고 엑소더스가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미래에 대한 현생 인류의 예측과 기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전염병이든 전쟁이든 혹은 지금으로선 예측할수도 이해할수도 없는 이유들로 인해 인류가 종말에 직면할 개연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둠즈데이 북>은 코니 윌리스 특유의 불필요한 상황묘사와 대화들로 끝까지 읽기 위해선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지만, 흑사병이 창궐한 중세 유럽의 모습과 암울함을 가장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작품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SF소설들이 주로 마법사와 기사들의 활약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코니 윌리스의 <둠즈데이 북> 이 얼마나 독특하고 특별한지 쉽게 알 수 있으리라.

이 한가지 점만으로도 장시간 독서에 대한 보답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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