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딴청을 부리게 된다.

하던 일이나 해야만 하는 일들을 뒷전으로 미룬 채, '멍'하니 공허한 시선을 창밖으로 던진다.

얼마전까지 울긋불긋 화려함을 뽐내던 나무들은 온데간데 없고, 그 자리엔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있다.


'결국은 저렇게 다 내려놓을 것을... 어쩌자고 봄부터 싹을 틔우고 여름 내내 잎을 키웠을까...?'싶다.


무기력이 찾아오는 순간이다.

누군가 그러더라. 무기력은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병(病)이라고...

우울증이 병이라는 건 알겠는데 무기력이 병이라니...?

언뜻 이해가 안된다.

.

.

.

긍정심리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마틴 셀리그만은 한 발 더 나아가 무기력은 외부로부터 학습된다고 했다.

그는 개를 대상으로 한 공포반응실험을 통해,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하면 무기력에 쉽게 빠져버린다는 걸 확인했다.

전기충격이 가해지는 상황에서 옆 우리로 피할 수 있는 개들과 그렇지 못한 개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전자의 경우는 비록 전기충격이 가해지더라도 적극적으로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반면, 후자의 상황에 노출된 개들은 설령 옆 우리도 피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충격을 고스란히 감내했던 것이다!


인간 역시 개와 마찬가지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더 이상의 노력은 무의미하다고 단정짓고는 상황을 전환시키려는 그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이처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 자주 노출되면 누구나 무기력에 빠지고 만다. 무기력은 단순히 일시적인 의욕상실만을 불러오지 않는다. 무기력 상태가 지속되면 자신을 무가치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무기력이 무섭고 두려운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의 위대함은 스스로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존재(存在)'감으로부터 출발하는데, 무기력은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인정 즉, 자기 '부재(不在)감'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존재감을 잃은 인간은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앞의 실험에 처해졌던 개들은 전기충격이라는 실험 환경을 바꿀 수 없었다.

인간이 철저하게 계산해서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러번 시도해도 변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 개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런 환경에 '적응'하는 것 뿐이다.

이것이 바로 외적 환경으로부터 무기력이 학습되는 매커니즘이라 하겠다.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 어떠한 노력도 보이지 않게 된 개의 무기력은 누구의 잘못인가?

개의 무능력인가...?

아니면, 개의 나태함때문인가...?


개의 무기력이 인위적으로 조성된 실험 환경때문이라면, 우리를 종종 무기력의 늪으로 빠뜨리는 것은 불공정한 사회환경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틴 셀리그만은 어린 시절 학대와 소외에 시달렸거나 경쟁이 심한 조직에 몸담고 있는 경우 무기력에 훨씬 쉽게 노출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1등만을 기억하는 사회, 승자와 패자가 확실하게 구분되는 사회, 과정이 아닌 결과만으로 평가받고, 상명하달과 위계질서가 분명한 조직 사회에서는 누구나 결국엔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뛰어나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할지라도 영원한 1등일수는 없으며, 언제나 게임의 승자가 될 수도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무기력에 빠지는 건 개인의 잘못만이 결코 아니다.

무기력을 조장하는 우리 사회에도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소개된 각종 무기력 극복 방법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삶에 대한 개인의 의지력을 높이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다. 무기력을 조성하는 사회 환경을 둘러보고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다시 힘을 내서 바뀌지 않는 환경에 온몸으로 부딪히라고 개개인을 몰아세운다.

 

무기력에 빠지기는 쉽지만, 그 늪에서 벗어나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단순히 마음을 다독이고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삶에 대한 의지는 삶에 대한 의미를 발견한 순간 생겨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동안 개인의 심리 문제로 치부해왔던 무기력를 사회적 차원에서 바라봐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개인의 존재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회,

제도와 규범으로 개인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억압하는 사회,

그 속에서,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는 끝없이 경쟁하면서, 삶의 의미를 잃고, 삶에 대한 의지마저 꺽인 채, 자꾸만 무기력해지는 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 - 다큐PD 왕초의 22,000킬로미터 중국 민가기행
윤태옥 지음, 한동수 감수 / 미디어윌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시선을 '확' 잡아 끄는 제목 덕분(?)에 처음에는 중국인의 본심에 대한 책인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책 제목은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유령(劉伶)이라는 술꾼에 얽힌 일화에서 따온 것이었다.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유령은 만취하면 옷을 벗어제끼곤 했단다. 이를 보다못한 어떤 사람이 그의 집을 찾아가 그를 꾸짖자, '나는 천하가 내 옷이고, 집이 속옷인데 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왔소?'라고 댓구를 했단다. 

고대 중국인들의 담대함과 해학이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중국인의 속옷(?) 즉 집에 대한 기행 감상 기록문이다. 

'속옷'과 '집'을 연관시켜 책제목으로 삼을 정도이니, 일단 저자의 감각과 안목은 검증된 셈이다.

 

잘 알려진 베이징의 사합원에서 출발하여, 푸젠성의 방어용 집체가옥인 '토루(土樓)'와 광둥성 출신 화교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지었다는 동서합벽(東西合壁)의 대명사 '조루(碉楼)' 그리고 소수민족 좡족의 계단식논과 간란주택, 합창으로 유명한 둥족의 풍우교(風雨橋)를 살펴보고, 당나라에 노예로 끌려갔던 고구려 후예일지도 모르는 구이저우 먀오(苗)족의 조각루(弔脚樓)까지...

 

투로우! 중국의 원조   광서자치구여행: 12.유

<푸젠성 토우>                                                 < 간란주택>

 

 

청양 풍우교

                                                            <풍우교>

                           

 

인간에게 집이란 단순히 비바람을 피하는 곳이 아닌, 문화와 역사을 담아내는 그릇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탈골하지 않고 높은 절벽에 받침대를 수평으로 꽂고 관을 그 위에 올려놓는 현관장(懸棺葬)과 동굴 안에 관을 쌓아놓는 동장(洞葬)을 하는 먀오족만의 독특한 장례풍습은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면 조상의 관까지 들고 가겠다는 먀오족의 귀향에 대한 염원과 고난한 이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만약....

그들이 중국 대륙으로 끌려갔던 고구려 발해의 후예들이라면......?

정녕...

우리는 어떤 마음과 자세로 그들을 대해야 할까?

 

 

저자가 손과 발로 직접 엮은 '중국민가기행'을 읽고 있노라면, 당장 배낭을 짊어지고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런 행동파를 배려하기 위해 저자는 교통수단과 숙박 등 여행에 필요한 간단한 정보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저자가 운영하는 개인 블로그인 '왕초일기http://blog.naver.com/kimyto' 등에서도 관련 정보들을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이처럼 블로그 등으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면 나는 분명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반드시 한권을 구입했을 것이며, 서평 역시 훨씬 더 꼼꼼하게 기록했을 것이다. 미래를 위한 정보 제공과 기록의 목적으로 말이다. 

 

 

 

정말, 여행이란 아는 만큼 보고 느끼는 것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는 한장의 초상화로부터 시작된다.

'북구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리는 '진주 귀고리 소녀'는 17세기 네델란드 델프트 출신 화가인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이다. 렘브란트, 루벤스, 고흐 등등 네델란드 출신 화가들의 명성에 철저히 가려져 있던 베르메르처럼 초상화 속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 없다.

 

갈망과 체념이 함께 담겨 있는 눈빛...

뭔가 말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저 짧은 탄식을 내놓는 것 같기도 한,

살포시 벌어진 촉촉한 입술...

푸르고 노란 머리두건을 두르고 진주 귀고리를 한 채, 왼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려 쳐다보는 소녀는 과연 누구일까?

그러고 보니,

정말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는 바로 이와 같은 베르메르 작품에 대한 작가의 호기심과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화가와 작품속 주인공에 대해 알려진 바가 적을수록 작가의 상상력은 빛을 발하게 된다.

스승과 제자일수도 있고, 부모와 자식 사이일수도 있으며, 나이를 뛰어넘은 연인일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단순히 초상화를 의뢰한 고객과 화가의 관계일수도 있다.

 

슈발리에는 현재까지 알려진 베르메르의 출생년도 및 일대기와 남아있는 그의 작품 서른 다섯 점을 기반으로 하되, 특히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 설정에 공을 드린 것 같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진주 귀고리 소녀'가 그려진 시기로 추정되는 1665년도이고, 공간적 배경은 도기로 유명한 네델란드의 소도시 델프트다. 

 

 

도자기 타일 장인의 딸인 그리트는 아버지가 사고로 두 눈이 멀게 되자,

생계를 위해 마리아 틴스의 저택으로 하녀살이를 하러 간다.

저택에는 타네커라는 그리트보다 열살 정도 많은 하녀가 있었으며,

마리아 틴스의 딸과 사위...

그리고 다섯명의 손주들이 있었다.

 

열 일곱살인 그리트는 타네커의 지시를 받아 운하에서 물을 길어 빨래를 하고,

 시장으로 생선과 고기 등을 사러 가는 심부름을 도맡는다. 

저택의 주된 수입은 큰마님의 사위가 그린 그림을 판매하는 것이고, 

2층에 있는 그의 화실은 집안의 그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금지구역이다.

그런 화실의 청소를 맡게 되면서 그리트는 서서히 다가간다.

화실에 달린 다락방에서 염료를 갈면서...

한밤중 바라보는 미완성 그림들을 보면서...

 마침내 그의 작품 속으로 천천히...



 

하나의 예술 작품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들은 많았지만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처럼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키진 못했던 것 같다.

<진주 귀고리 소녀>는 문학작품 자체로만 보자면, 지극히 평이한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17세기 네델란드 델프트을 사실적으로 그려냈고, 염료가 만들어지고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들을 세세하게 묘사하긴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로 충분치 않다.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를 깍아 내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나,  이 작품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어쩌면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 '진주 귀고리 소녀'에 바쳐진 건 아닐까 싶다.  

 

 

끝으로,

루벤스의 초상화 중, 조선 청년을 그린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작품이 떠오른다. 

흔히, 일본으로 끌려갔던 조선인 노예가 어찌어찌하여 그 당시 일본과 통상을 하고 있던 네델란드까지 흘러 들어갔고, 루벤스 작품의 모델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루벤스의 '안토니오 코레아' 속 주인공의 일대기가 '진주 귀고리 소녀'의 그것보다 훨씬 더 파란만장하지 않았을까.

 

[명화] 루벤스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제는 무기력이다 - 인지심리학자가 10년 이상의 체험 끝에 완성한 인생 독소 처방
박경숙 지음 / 와이즈베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몇 개월 전, 한 학생으로부터 추천받은 책이었다.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가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우연히 발견하고는 읽게 되었다.


크게 보면, 어느 지식인(저자는 우리나라 1호 인지과학박사란다)의 '자기개발(성장?)경험기'라고 하겠다. 한가지 독특한 점은 난관에 부딪힌 사람들이 직면하곤 하는 '무기력'이라는 문제를 폭넓게 살펴보고 극복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무기력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는 질병이지만 스스로 감지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갔다. 무기력과 관련된 실험을 주도한 마틴 셀리그만은 무기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내렸다.

'무기력이란 인간이나 동물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를 경험하며 겪는 동기, 인지, 정서, 행동 장애를 나타내는 현상이다.'


 

특히, 마틴 셀리그만의 이론과 그 이론을 뒤받침해주는 많은 실험 결과를 인용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본인이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알고, 주변 사람들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뚜렷하게 외부로 드러나는 명백한 무기력이 있는 반면, 자각하지 힘든 '은밀한 무기력'도 있다. (......) 중요한 일에 쏟아야 할 에너지를 부수적인 데 쓰는 이들도 사실은 무기력한 사람이다.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것도 무기력이지만, 집중해야 할 일 대신 다른 일에 몰두하는 것도 무기력의 결과다. 자기 일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그만큼 에너지를 허투로 낭비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든다. 당장은 자신이 열심히 산다고 착각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박경숙, <문제는 무기력이다>p36~38 中-


 

 

마틴 셀리그만은 여러 실험 결과, 인간은 외부로부터 무기력을 배운다는 사실을 증명해 냈다. 여기서 '배운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주변 환경과 주위 사람들에 의해 무기력지며 그와 같은 상태에 익숙해지기 메커니즘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즉, 놀랍게도 무기력은 학습되는 것이다!

 

그가 실시한 전기충격을 가하는 개실험과 날지 못하는 독수리 등의 실험을 통해서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설령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마치 조건반사처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식하고는 아무런 대응도 반응도 못한 채 무기력해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인간과 동물은 이처럼 통제할 수 없는 상황과 함께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무기력해진다.



그렇다면 무기력은 왜 발생하는걸까?


<문제는 무기력이다>의 저자는 어린 시절의 소외와 방치, 그리고 소외와 고립 및 경쟁과 결과만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가 무기력을 더욱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엘리트 집단이라 할 수 있는 명문대 교수들과 그들로 이루어진 연구소 등에서 저자가 직접 보고 겪은 무기력 체험담들은 저자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경쟁 속에서 1등만을 기억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구성원 전체를 패배의 공포와 무기력의 늪속으로 빠뜨리고 있다. 1등 역시 영원히 1등일수없으므로 패배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경쟁과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는 결국 필연적으로 구성원 전부를 무기력 속으로 몰아넣는다. 


나 역시 교육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시험 결과에 대해 칭찬을 받은 아이들이 과정에 칭찬을 받은 아이들보다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는 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실험 결과를 보고는 경악했던 적이 있다. 특히, 상을 주거나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았던 경우에 자발적으로 실험을 즐겼던 참가자들이 보상을 제공한 경우에는 오히려 결과에 집착하면서 행위 자체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보상이 따르지 않는 상황에서 자발성과 흥미 모두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는 크게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그동안 효과적이라고 추앙받으며 우리 사회 곳곳에 적용되어왔던 미국식 제도들이 사실은 우리들에게 무기력을 은밀하게 학습시켜왔던 것이다!


<문제는 무기력이다>의 가장 큰 장점은 대부분의 자기개발서들이 문제(여기에서는 무기력) 발생 원인을 개개인에게 돌리고 있는 반면, 저자는 개인의 성격 못지 않게 사회적 제도와 환경에도 책임을 묻고 있다는 점이다. 


책의 후반부는 저자의 경험에 입각하여 무기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일단 무기력은 동기, 정서, 인지, 행동 등 네가지 기제에 문제가 발생할 때 야기된다고 보고, 각각에 대해 구체적인 심리치료법을 제시하고 있다.  심리치료란 말 그대로 마음을 바꾸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삶의 동기를 잃었다면 가장 중요한 일이나 중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는 것 등이다. 삶에 대한 의지 못지 않게 중요한 건 바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임을 스스로에게 납득시켜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일찍이  <죽음의 수용소>를 쓴 빅터 프랭클이 체험했고 제시했던 '로고테라피'다.


이틀 동안 틈틈이 짬을 내서 다 읽었다.

흥미진진하고 인상적인 책이었지만 생각만큼 여운이 길진 않았다.

그 이유가 뭘까?  

저자의 무기력 체험담이 지나치게 개인적이라서....?

저자가 연구를 통해 새롭게 도출해낸 기발한 주장이라기보다는 국내외의 각종 서적들의 내용들을 혼합해 놓아서...?

 

글쎄 잘 모르겠다.


내가 너무 냉담해진걸까? 아니면 독자로서 까다로워진 걸까?

그나저나 냉담함도 무기력의 초기증상에 해당되는 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세 번째 이야기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덧 가을이 저물어간다.

여전히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9월.

우연히 세라 워터스의 소설을 접하게 되면서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흥미가 발동했다.


큼지막한 패티코트와 실크 헷을 착용한 신사, 숙녀들..

주된 이동수단으로는 기차와 마차를 이용했으며...

하녀와 집사 그리고 귀족들이 살았고...

유서 깊은 저택마다 비밀 한두가지씩은 품고 있었던...

그런 빅토리아 시대는 애드가 알렌 포우와 찰스 디킨스와  마크 트웨인 등의 문호들이 태어나 살다갔으며, <제인에어>와 <폭풍의 언덕> 등등 소위 고전이라고 불리우는 책들이 탄생한 시대였다.


다이안 세터필드의 <열세번째 이야기>는 빅토리아적 분위기가 잔뜩 묻어나는 소설이다. 그래서 '고딕소설'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절대로 시대소설의 테두리 안에 국한시킬 수 없는 독특한 소설이다. 추리소설적 요소도 있지만 범죄와 범인과 범죄 방법을 탐구하는 작품은 더더욱 아니다. 





독자들은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빅토리아 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어느덧 비다 윈터 여사의 목소리에 숨죽이게 된다.




옛날 옛적...

영국 요크셔 지방에 엔젤필드라는 대저택이 있었지...

그곳의 주인인 조지와 그의 아내 마틸드, 그리고 그들의 장남 찰리가 살았어...

그러던 어느날 마틸드가 딸 이사벨를 낳다가 그만 죽고 말아.


아내를 잃은 슬픔에 조지는 문을 걸어잠근 채

자기방에서 나오지 않게 되면서,

정원사와 가정부와 하녀들에 의해 잘 가꾸어지던 엔젤필드는

소리없이 쇠락하기 시작해...

찰리와 이사벨은 정직하고 성실한 가정부와 정원사가 아니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몰라...

사실 부모로부터 철저하게 방치되다시피 한 찰리가,

아버지 조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이사벨에게 집착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몰라...

이 사실이 이사벨에게는 비극이었지만 말이야.


그러던 어느날.

집을 나갔던 이사벨이 6개월 뒤 결혼한 몸으로

쌍둥이 여자 아이들을 데리고 온 거야.

하나는 에덜린이라고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애멀린이라고 불렀지...

그런데 이상한 건 쌍둥이의 외모는 이사벨의 남편쪽과는

조금도 닮지 않은 거야.

오히려 외삼촌 찰리의 적갈색 머리카락과 초록빛 눈동자를 물려받았지...

타고난 미모에도 불구하고 쌍둥이는 정상이 아니었어.


그리고 또 다른 한명이 있었지...

찰리의 진짜 자식말이야...

비록 부모 양쪽 모두로부터 버림받고 엔젤필드의 화원에 버려졌지만

충직한 가정부와 정원사에 의해 엔젤필드 정원에서 살았더랬지...

쌍둥이 자매인 애덜린, 에멀린과 함께 말이야.




비다 윈터 여사의 고백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작가가 꾸며낸 소설이 아닌 그 누군가의  진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 같다.


이 작품은 정말 그냥 이야기다.

우리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의 이야기일수도 있고...

우리 엄마 아빠 혹은 삼촌 이모의 이야기일수도 있으며...

나의 자식 혹은 손주의 이야기일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내 이야기일수도 있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비다 윈터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멸감은 어느덧 경외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쌍둥이 자매에게 보여준 그녀의 사랑과 희생은 가족애와 인간애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다이안 세터필드가 들려주는 <열세번째 이야기>는  마지막 이야기이자 맨처음 이야기이며, 또한 영원히 끝나지 않는 '네버엔딩 스토리'다.


무릇, 소설가란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문조차도 사실로 믿게끔 만드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라고 한다면, 비다 윈터 아니 다이안 세터필드야말로 진정한 소설가라 하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11-16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