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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무기력이다 - 인지심리학자가 10년 이상의 체험 끝에 완성한 인생 독소 처방
박경숙 지음 / 와이즈베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몇 개월 전, 한 학생으로부터 추천받은 책이었다.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가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우연히 발견하고는 읽게 되었다.
크게 보면, 어느 지식인(저자는 우리나라 1호 인지과학박사란다)의 '자기개발(성장?)경험기'라고 하겠다. 한가지 독특한 점은 난관에 부딪힌 사람들이 직면하곤 하는 '무기력'이라는 문제를 폭넓게 살펴보고 극복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무기력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는 질병이지만 스스로 감지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갔다. 무기력과 관련된 실험을 주도한 마틴 셀리그만은 무기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내렸다.
'무기력이란 인간이나 동물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를 경험하며 겪는 동기, 인지, 정서, 행동 장애를 나타내는 현상이다.'
특히, 마틴 셀리그만의 이론과 그 이론을 뒤받침해주는 많은 실험 결과를 인용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본인이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알고, 주변 사람들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뚜렷하게 외부로 드러나는 명백한 무기력이 있는 반면, 자각하지 힘든 '은밀한 무기력'도 있다. (......) 중요한 일에 쏟아야 할 에너지를 부수적인 데 쓰는 이들도 사실은 무기력한 사람이다.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것도 무기력이지만, 집중해야 할 일 대신 다른 일에 몰두하는 것도 무기력의 결과다. 자기 일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그만큼 에너지를 허투로 낭비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든다. 당장은 자신이 열심히 산다고 착각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박경숙, <문제는 무기력이다>p36~38 中-
마틴 셀리그만은 여러 실험 결과, 인간은 외부로부터 무기력을 배운다는 사실을 증명해 냈다. 여기서 '배운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주변 환경과 주위 사람들에 의해 무기력지며 그와 같은 상태에 익숙해지기 메커니즘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즉, 놀랍게도 무기력은 학습되는 것이다!
그가 실시한 전기충격을 가하는 개실험과 날지 못하는 독수리 등의 실험을 통해서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설령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마치 조건반사처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식하고는 아무런 대응도 반응도 못한 채 무기력해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인간과 동물은 이처럼 통제할 수 없는 상황과 함께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무기력해진다.
그렇다면 무기력은 왜 발생하는걸까?
<문제는 무기력이다>의 저자는 어린 시절의 소외와 방치, 그리고 소외와 고립 및 경쟁과 결과만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가 무기력을 더욱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엘리트 집단이라 할 수 있는 명문대 교수들과 그들로 이루어진 연구소 등에서 저자가 직접 보고 겪은 무기력 체험담들은 저자의 주장에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경쟁 속에서 1등만을 기억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구성원 전체를 패배의 공포와 무기력의 늪속으로 빠뜨리고 있다. 1등 역시 영원히 1등일수없으므로 패배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경쟁과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는 결국 필연적으로 구성원 전부를 무기력 속으로 몰아넣는다.
나 역시 교육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시험 결과에 대해 칭찬을 받은 아이들이 과정에 칭찬을 받은 아이들보다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는 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실험 결과를 보고는 경악했던 적이 있다. 특히, 상을 주거나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았던 경우에 자발적으로 실험을 즐겼던 참가자들이 보상을 제공한 경우에는 오히려 결과에 집착하면서 행위 자체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보상이 따르지 않는 상황에서 자발성과 흥미 모두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는 크게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그동안 효과적이라고 추앙받으며 우리 사회 곳곳에 적용되어왔던 미국식 제도들이 사실은 우리들에게 무기력을 은밀하게 학습시켜왔던 것이다!
<문제는 무기력이다>의 가장 큰 장점은 대부분의 자기개발서들이 문제(여기에서는 무기력) 발생 원인을 개개인에게 돌리고 있는 반면, 저자는 개인의 성격 못지 않게 사회적 제도와 환경에도 책임을 묻고 있다는 점이다.
책의 후반부는 저자의 경험에 입각하여 무기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일단 무기력은 동기, 정서, 인지, 행동 등 네가지 기제에 문제가 발생할 때 야기된다고 보고, 각각에 대해 구체적인 심리치료법을 제시하고 있다. 심리치료란 말 그대로 마음을 바꾸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삶의 동기를 잃었다면 가장 중요한 일이나 중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는 것 등이다. 삶에 대한 의지 못지 않게 중요한 건 바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임을 스스로에게 납득시켜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일찍이 <죽음의 수용소>를 쓴 빅터 프랭클이 체험했고 제시했던 '로고테라피'다.
이틀 동안 틈틈이 짬을 내서 다 읽었다.
흥미진진하고 인상적인 책이었지만 생각만큼 여운이 길진 않았다.
그 이유가 뭘까?
저자의 무기력 체험담이 지나치게 개인적이라서....?
저자가 연구를 통해 새롭게 도출해낸 기발한 주장이라기보다는 국내외의 각종 서적들의 내용들을 혼합해 놓아서...?
글쎄 잘 모르겠다.
내가 너무 냉담해진걸까? 아니면 독자로서 까다로워진 걸까?
그나저나 냉담함도 무기력의 초기증상에 해당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