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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평점 :
그녀를 알고 싶었다.
선의든 악의든 사람들의 상상력에 의해 그려진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녀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사람들의 끊이지 않는 관심을 잘 보여주듯 그녀에 관한 책들은 제법 많은 편이다. 그러나 샹탈 토마의 작품(영화<페어웰, 마이퀸>의 원작)처럼 작가의 상상이 추가된 경우이거나 프랑스 혁명의 가치에 맞게 각색된 非역사적인 역사서적들은 내 관심권밖이었다.
심사숙고하여 찾아낸 작품이 바로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다. 일찍이 평전과 전기로 명성이 자자한 슈테판 츠바이크라면 충분히 신뢰해도 될 것 같았다.
서문에서 츠바이크가 밝힌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인물평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가 마리 앙투아네트와 같은 나라(오스트리아) 출신으로 같은 모국어(독일어)를 사용했다는 점도 특별히(?) 작용했다.
진실이란 대개 그렇듯이 중용에 가까이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권주의의 위대한 성녀도 아니었고, 혁명의 '매춘부'도 아니었으며, 중간적인 성격에 유난히 영리하지도 유난히 어리석지도 않으며, 불도 얼음도 아니고, 특별히 선을 베풀 힘도 없을뿐더러 악을 행할 의사 또한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인일 뿐이었다. 마성(魔性)을 과시할 소양도 없고 영웅적인 행위를 이룰 의지도 없으며, 따라서 비극의 대상이 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역사라는 위대한 창조주는 감동적인 드라마를 고조시키기 위해서 영웅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을 필요를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 비극의 긴장은 등장인물의 과도한 성격에서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운명과의 알력에서도 생긴다. 그것은 한 막강한 인간, 영웅이나 천재가 천부적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에 비해서 너무나 협소하고 너무나 적대적인 주위 세계와 충돌할 때 생기는 법이다. 예컨데 나폴레옹 같은 인물이 세인트헬레나의 좁디좋은 감방에서 질식할 때, 또는 베토벤같은 인물이 귀머거리 상태에 갇혀 있을 때이다. 언제 어디서든 자기에게 적당한 자(尺)와 분출구를 차지 못하는 위대한 인물에게서 나타나는 법이다. 그렇지만 평범한 혹은 아주 나약한 천성의 인물이 엄청난 운명의 수렁에 빠져들었을 때, 또 무시무시한 개인적인 책임에 몰릴 때에도 비극은 발생한다. 필자는 이런 형태의 비극을 보다 인간적인, 보다 통절한 비극으로 생각한다. 비범한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비범한 운명을 추구하므로 자신의 차원을 초월하려고 하는 그의 본성에는 영웅적으로 사는 것 혹은 니체의 말을 빌리면 "위험하게"사는 것이 유기적으로 걸맞기 때문이다. (......)
영웅이 아닌 사람, 보통 사람이 받는 이런 수난을 그 사람 스스로 이해할 안목이 없다.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진짜 영웅이 겪는 비장한 수난만큼이나 대단하다. 어쩌면 보다 감동적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이란 그런 수난을 혼자서 감내해야만 하며 예술가들처럼 고통을 작품이나 혹은 지속적인 다른 어떤 형태로 변용시키는 축복 속의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명은 더러 그런 평범한 사람도 뒤집어엎을 수 있고, 명령조의 주먹을 휘둘러 강압적으로 보통을 넘어 나아가도록 몰아가기도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야말로 그러한 역사의 분명한 증거이다.
38년이라는 생애의 초반 30년 동안 이 여인은 무심한 길을 간다. 적어도 눈에 띄는 범위 안에서는, 그녀는 한번도 선이든 악이든 평균치를 넘지 않았다. 미적지근한 인생이요 평범한 성격이며, 역사적으로 보면 처음에는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쾌활하고 구김살 없는 그녀의 유희 세계 안으로 혁명이 밀어닥치지만 않았더라면. 미미한 이 합스브르크가(家)의 여인은 모든 시대의 수많은 여인들처럼 그저 그렇게 무심히 살아갔을 것이다. 춤추고 잡담하고 연애하고 웃고 화장하고 사람들과 만나고 적선도 하고 애를 낳고, 마지막에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취도 남기지 않고 조용히 임종의 침상에 누웠을 것이다.
- 슈테판 츠바이크,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서문 中-
그러나 그녀는 그렇지 못했다.
너무도나 사랑스럽고 평범했던 그녀를 1793년 10월16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든 건,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였고 개인이 어찌하지 못하는 운명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 여대제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 딸로 태어나 프랑스와의 동맹을 위해 16살에 루이 15세의 손자인 왕세자와 정략 결혼을 한 인물이다. 루이 16세는 한나라의 국왕으로서도 한 여자의 남자로서도 수준 이하였지만 남편으로서 아내에게만큼은 최선의 호의를 베푼 인물로 기억해도 좋으리라.
그녀는 열여섯이라는 아직은 한참이나 어린 나이에 왕세자비가 되어 이국땅에 왔다.
모든게 낯설었지만 호기심 많고 활동적이었던 그녀는 곧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 나갔다.
화려한 궁중 무도회를 열고...
파리 가면극에 놀러가 친구를 사귀고...
왕세자비에 걸맞는 보석들과 드레스를 구입했다.
황녀의 신분으로 태어나 일국의 왕세자비였고 21세의 꽃다운 나이에 왕비의 자리에 오른 사람에게 이 정도의 소비를 과연 사치라고 할 수 있을까?
잊지 말자! 그 당시는 민주정도 공화정도 아닌 황제정이었던 시대였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당시 프랑스의 재정 악화는 왕실의 사치가 아니라 미독립 전쟁에 대한 지나친 개입과 무분별한 대외전쟁이었음이 밝혀졌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운명이 자신에게 부여한 권한을 아무런 의심없이 충실히 사용했을 따름이었다. 그녀의 유일한 잘못이라면 철이 너무 늦게 들었다는 점일 것이다. 여기에 세상물정에 밝았던 어머니의 성격(마리아 테레지아)을 물려받지 못했다는 점 역시 그녀에게는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지적하자면, 그녀는 참으로 매력적이었다는 점이다.
그녀가 조금만 덜 아름다웠더라면....
그녀가 조금만 덜 매력적이었더라면....
그녀가 조금만 더 못생겼고 못되먹은 성격이었더라면...
어쩌면 그녀는 생명을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인간적인 매력과 아름다운 자태는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자아냈을 뿐만 아니라 위급한 순간 무분별하게 그녀에게 내밀어진 도움의 손들로 인해 그녀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만약 그녀가 탈출을 도와주겠다는 그 모든 호의를 거절했거나 아니면 여러차례 있었던 탈출 기회 중 단 한번만이라도 성공했더라면 역사는 다시 쓰여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되었던, 그리고 너무 가슴 아팠던 점은 다름 아닌 그녀의 죽음이 예기치 못한 파도처럼 한순간에 휘몰아친 것이 아니라 서서히 차오르는 물처럼 천천히 그녀의 숨통을 조이며 다가왔다는 점이다.
역사는 1789년 7월 바스티유 함락과 동시에 베르사유궁과 프랑스왕정이 몰락했다고 간단히 말해줄 뿐,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후 1793년 죽기까지 4년 3개월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는 기록하지 않고 있다. 루이 16세 가족은 베르사유궁에서 쫒겨나 생클루궁으로 옮겨갔으며 그곳에서 스웨덴 귀족인 페르센의 도움으로 바렌으로의 탈출에 성공하기 직전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파리로 이송된다. 튈르리에서 베르됭으로 다시 탕플로 이주한 왕가는 혁명군의 공격과 폭도들의 공격에 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살얼음판과도 같은 긴장속에서 살아간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과 친하게 지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음을 맞이한 랑발 공작 부인의 목이 폭도들에 의해 잘려져 막대에 매달려진 채 왕궁 앞에 서 있는 모습을 억지로 지켜봐야만 했다.
어디 이뿐이랴.
프랑스 민중이 그녀에게 행한 고통과 모욕은 시작에 불과했다. 루이16세가 1793년 1월 21일 단두대에서 처형 당하고, 같은해 7월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들, 딸(앙굴렘 백작부인이 됨)과 격리된 후, 8월 정치범 감옥으로 악명이 자자한 콩시에르즈리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심문과 재판이 이어지고 가족과의 마지막 작별도 허용되지 못한 채 결국 10월16일 단두대에 오른다.
특히, 그녀가 단두대까지 이동할 때에는 짐승들을 실어나르는 짐마차에 태워져 군중 사이를 지나갔다고 한다. 그 당시의 모습은 당시 자코뱅파의 화가였던 다비드의 스케치로 남아 있다.
이 무서운 시련이 계속된 몇 주일 동안 왕비의 얼굴에서 사라진 것이 있었다. 이 여름에 어느 무명화가가 그린 마리 앙투아네트의 최후의 초상을 보면 목자극에 출연했던 과거의 여왕, 로코코의 여신은 상상할 수도 없으며 튈르리 궁에 있을 때처럼 오만하고 당당하고 위엄 있는 여자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백발에 베일을 쓰고 있는 이 초상화의 얼굴은 서른여덟 살의 모습이지만ㅡ너무나 많은 고생을 해서ㅡ이미 노파처럼 보인다. 지난날 그다지도 거만했던 눈에 나타나던 생동감은 전부 사라지고 말았으며 무서운 피로 속에서 두 손을 축 늘어뜨리고 앉은 채 종말의 부름까지도 아무런 반항 없이 따라가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지난날 얼굴에 보이던 우아한 품격은 고요한 슬픔으로 변했으며, 불안은 온전히 사라지고 무관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마리 아투아네트의 최후의 초상은 수녀원 원장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이미 현세적인 생각은 하나도 없이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희망도 없이 이미 이 세상의 삶이 아닌 저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거기에는 아름다움도, 용기도, 힘도 찾을 수가 없다. 왕비는 퇴위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 여자다움까지도 포기했다. 피로하고 생기 없는 노부인이 아무것에도 놀라거나 겁내지 않는 푸르고 맑은 눈망울을 들고 있을 따름이었다.
- 슈테판 츠바이크,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p465~466 中-
프랑스 민중은 한때 자신들의 왕비였던 한 여인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했더란 말인가?
무지한 대중의 광기는 혁명이라는 깃발 아래 선동되어 무책임하게 나부끼는 법이다.
츠바이크는 루이16세 처형 이후, 10여 개월 동안 마리 앙투아네트가 어떻게 숭고한 인간으로 거듭났는지...어떻게 어머니가 되어갔는지... 어떻게 진정한 왕비로 재탄생했는지.... 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철없던 왕세자비와 향락에 물들어 있던 왕비의 모습 대신 침착하게 생각에 잠기고, 정성껏 편지를 읽고 썼으며, 왕비로서의 기품을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비장하고 숭고하다. 특히, 그녀는 왕실을 모독하는 일체의 비방과 날조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용감하게 대처했다. 역사와 국민 앞에서 조금도 부끄럽지 않도록 마지막 남은 용기와 힘을 자아냈던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말처럼.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야 진정한 왕비가 되었다.
죽음 앞에서 그녀는 두려워하기는 커녕 참으로 담담했다.
오히려 "이제 마침내 고통이 끝나는구나...'라는 일종의 안도감마저도 엿보인다.
그녀는 모든 이들로부터-심지어는 조국으로부터도- 버림받은 것에 일말의 아쉬움도 여한도 남아 있지 않은 듯하다.
그녀는 그렇게 떠나갔다.
자신이 마지막까지 사랑했던 인물을 기억하면서...
사랑만을 가슴에 품은 채 조용히....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이 이다지도 파란만장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한 가족의 삶이 이처럼 극과 극을 오고갈 수 있단 말인가?
어느새 눈가에 맺힌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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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마지막까지 왕비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으며, 영원히 둘만의 비밀로 간직하려했던 페르센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