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헤르타 뮐러라는 작가 이름도, <숨그네>라는 작품명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출판사가 야심차게 출판한 세계문학전집목록에 올라있는 걸 확인하고는 <호텔 뒤락>과 함께 '선정'한 책이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이란 걸 알고는 처음부터 재미를 기대한 건 아니었으나 역시 진도가 쉽게 나가진 않았다. 처음 몇 페이지만 읽다가 2~3일 공백기(?)를 거친 후, 한나절만에 완독했다.  


일단 작가 소개부터 간단히 하면, 헤르타 뮐러는 루마니아에 거주하던 독일인 가정에서 태어나 공산독재 시절 엄청난 탄압을 받다가 80년대 독일로 망명했다. 그후, 그녀는 루마니아에서 공산독재정권에 '침묵'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의 삶을 주로 그렸다고 한다. 특히, <숨그네>는 독일계 루마니아인이 패전후 소련의 수용소로 끌려가 5년동안 강제노동을 당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작가의 모친 역시 그녀를 출산하기 전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노역을 했다고 하니, 작가로서의 그녀의 성향은 어쩌면 이미 '결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1944년 2차 세계대전이 종착력 향해 숨가쁘게 달려가던 때였다.

그 당시 친독일 국가이던 루마니아가 소련의 침공을 받고 공산주의화되면서 소련으로부터 나치 독일에 의해 파괴된 소련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에 거주하던 독일인들을 소련으로 보내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하여, 17세부터 45세까지 당시 독일계 루마니아인들은 가축을 실어 나르는 기차에 태워져 우크라이나에 있는 수용소로 끌려가 5년동안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나치 독일에 의한 '홀로코스트'의 역사가 널리 알려진 것에 비해, 패전 후 평범한 독일인들 역시 승전국 소련에 의해 고통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나 역시 <책 읽어 주는 남자>라는 작품을 접하고 나서야 독일인의 입장으로 2차 세계대전을 바라볼 수 있었다. 전쟁을 일으킨 행위를 옹호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 당시 전쟁과 전체주의가 휩쓸던 독일 사회에서 개인이 양심과 이성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으며 용기가 필요했는지... 전후, 패전국민으로서 감내해야했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무엇보다도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이해받을 수 없었던 수치와 고난의 역사가 평범한 독일인들의 삶을 어떻게 갈갈이 찢어놓았는지... 한번쯤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뮐러의 작품 <숨그네>의 주인공 레오 역시 1944년 새벽 3시에 루마니아 경찰의 손에 이끌려 수용소행 기차에 오른다. '너는 반드시 돌아올 거야'라는 할머니의 '영혼없는 인삿말'을 가슴에 품고서 열일곱살 레오는 그렇게 가족과 '생이별'을 했다. 그렇지만 레오에게 가족과의 이별이 커다란 슬픔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그의 가족이 레오를 홀가분히 떠나보냈기 때문이고 레오 역시 가족으로부터의 '떠남'을 일종의 '탈출'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레오는 당시 루마니아 사회에서 범죄자 취급받던 동성애자였고, 그의 가족 역시 동성애자인 레오를 수치스럽게 여기고 불편해했다. 


수용소에서의 삶은 '배고픔' 그 자체였다. 

작가는 주인공 레오의 시선으로 수용소에서의 중노동과 일상화된 죽음 그리고 굶주림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1인칭 주인공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주인공 레오는 자신이 겪은 일들을 실감나게 들려주는 적극적인 이야기꾼이라기보다는 사실을 보고(報告)하는 마치 제3자의 역할에 충실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독자는 주인공과의 감정이입에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등장인물과의 동화 여부가 작품의 '흥행'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이와 같은 글쓰기 전략은 작가에게 상당히 불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뮐러가 이와 같은 글쓰기 전략을 채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소위 '전범(戰犯)'의 후손으로서 행여 자신의 '폭로'가 또다른 손가락질이나 오해를  불러오지는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일까? 작품을 읽는 내내 풀리지 않던 의문은 '작가 후기'를 읽으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어머니도 오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다.

루마니아의 전체주의적인 과거를 회상시키는 강제추방이라는 주제는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금기였다. 가족끼리나 함께 추방되었던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만 수용소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마저도  늘 암시에 그쳤다. 이 비밀스러운 대화가 내 어린 시절을 함께 했다. 나는 대화의 내용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두려움은 감지할 수 있었다.

2001년, 나는 강제추방을 당했던 우리 마을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동료 오스카 파스티오르도 강제추방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는 그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기억을 더듬어 나를 돕고자 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났다. 그가 이야기하면 나는 받아 적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함께 책을 쓰자는 바람이 우리 안에 싹텄다.

오스카 파스티오르가 2006년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초고 일부와 수기 메모로 채워진 공책 네 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죽음 이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메모에서 느껴지는 인간적인 친밀함 때문에 상실감은 더욱 커졌다.

그로부터 일 년 후에야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와 이별하고 혼자 소설을 써야 한다고. 그러나 오스카 파스티오르가 없었다면 수용소 일상에 대한 세세한 묘사들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2009년 3월 헤르타 뮐러, <숨그네> 작가후기 中-


 

그러니까 그녀의 모친을 포함하여 강제추방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집단 침묵'이라는 암묵적인 방식으로 과거와 상처에 접근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침묵한다고 아물거나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되어 끊임없이 되새기고 회상함으로서 천천히 과거의 상처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진정으로 '화해'하지 않으면 절대로 치유될 수 없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마음의 상처는 가슴 깊이 흔적을 남겨 시시때때로 우리를 공격하는데,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는 '트라우마'라고 한다. 이처럼 치유되지 않은 마음의 상처에 빠져 있는 사람들 곁에서 성장한 작가에게 트라우마의 잔영은 고스란히 전해져, 그녀 역시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거대한 침묵의 유리벽 안에 갇힌 삶을 '강요'받았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때, 그녀는 스스로를 갇두는 행위라는 것도 모른 채 자꾸만 유리벽 속으로 숨어들기만 하는 주변 사람들과는 달리 그 벽을 깨고 나온다. 그녀의 선택은 집단침묵 대신 폭로였다. 그러나 간접 체험자인 그녀는 직접 체험자이면서 독일로 망명한 글쓰기 동료이자 같은 고향출신인 오스카 파스티오르도의 고백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숨그네>가 1인칭 주인공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관찰자적 심지어 방관자적 시선처럼 느껴졌던 것은 이와 같은 작가의 '거리 두기'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공교롭게도 <숨그네>가 발표된 해인 2009년 가을 그녀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선정 이유로는 "응축된 시와 진솔한 산문으로 박탈당한 삶의 풍경을 그려냈다"라고 한다. 책 제목이기도 한 '숨그네'는 그녀 특유의 조어법에 의해 탄생한 단어로, 말 대신 침묵하면서 심호흡을 하는 것으로 대신했던 강제 수용소 체험자들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치 그네가 왔다 갔다 하듯 들숨과 날숨을 쉬면서(어찌됐던 살아야 함으로 숨은 쉬어야 하니...) 고통을 들이마시고 희망을 내품는 '실존'을 상징한다.   

 

역자의 소개에 따르면, 강제추방 당해 5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했던 파스티오르는 수용소의 상황을 '실존의 절대영도'라고 표현했단다. 한계 상황으로 인간을 몰아넣는, 그래서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수용소들이 여전히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퍽 유감스럽다. 특히 이런 곳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살고 있는 우리들은 호흡하는 매순간마다 희망 대신 고통을 들이마시며 생존과 투쟁을 벌이는 이들이 있다는 걸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끝으로, 뮐러의 <숨그네>는 나로 하여금 루마니아라는 나라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루마니아'하면 먼저 공포 환상 문학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드라큐라 백작과 전설의 체조선수인 코마네치 그리고 차우세스쿠라는 독재자가 떠오른다.

 

동유럽 어딘가에 있는, 사회주의 국가로 소련의 영향을 받았던 소위 '빨갱이 나라'...

미치광이 독재자를 20년 동안이나 숭배했던...

그래서 그가 처형된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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