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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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작가인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을 제외하고는 스칸디나비아 3국 출신 작가의 작품은 이번이 두번째인 것 같다.

스웨덴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다. 

그러나 밀레니엄 시리즈의 스티그 라르손을 비롯해서 영화 <렛미인>의 원작가인 욘 아이비데 등등... 요즘 스칸디나비아 문학 열풍이 만만찮다. 그러고보면 북극과 가까운 이들 나라들은 옛부터 북극 신화의 발원지로 유명했다. 산타클로스 역시 이곳 출신이지 않은가. 이 지역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풍부한 상상력과 스토리텔링 능력을 갖고 태어나는 것 같다.

스웨덴 출신인 요나스 요나손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첫 작품부터 봇물 터지듯 이야기를 쏟아낸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말 그대로 100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양로원을 탈출한 알란 엠마누엘 칼손이라는 어느 영감님의 이야기다.

작품은 2005년 5월2일부터 한달 남짓한 기간 동안 알란 영감의 도피행각을 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알란 영감의 파란만장한 과거사가 펼쳐지는데, 한 사람의 과거사인지 20세기 인류역사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1905년 5월2일 스웨덴 플렌시의 소읍 윅스훌트에서 태어난 알란은 10세에 폭약 회사에 취직해서 폭약 기술을 익히다가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거세까지 당한다. 병원에서  풀려난 그는 스페인 사회주의자인 에스테반을 만나 스페인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스페인 내전(1936~1939년)을 겪으며 프랑코 장군을 만나고, 다시 미국으로 흘러들어가 핵폭탄 개발을 담당하던 앨러모스에서 커피 나르는 웨이터 일을 하다가 당시 미부통령 트루먼과 친구가 된다. 결국 그의 요청으로 알란은 쑹메이링 장제스 부인을 따라 중국 대륙으로 가게 되는데, 뜻밖에도 이빈 시에서 마오쩌둥의 세번째 부인인 장칭을 구해준다. 시베리아 산맥을 넘어 중국 대륙을 탈출한 알란은 이란의 테헤란에서 비밀경찰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가 1948년 무사히(?) 조국으로 돌아온다. 스웨덴 정부가 제공한 사례금으로 호텔에서 머물며 느듯한 한때를 보내던 알란은 우연히 만난 한 남자를 따라 가게 되는데 그 남자는 다름 아닌 러시아 핵무기 과학자인 포포프였다. 알란은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을 만나지만 반공산주의자로 몰려 블라디보스토크 수용소에 갇힌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블라디보스토크를 탈출한 알란은 소위 아인쉬타인의 숨겨진 동생과 함께 북한으로 들어가 김일성과 김정일을 만나는가 하며, 때마침 북한을 방문한 마오쩌둥을 만나  그에게 장칭을 구해줬던 사례를 톡톡히 받는다. 그 사례는 다름 엄청난 '달러'였다. 이 돈은 미국이 장제스에게 제공했던 대외원조비로 장제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마오쩌둥이 차지한 달러의 일부였다. 이 돈으로 알란과 아인쉬타인 동생은 함께 인도네시아 발리로 건너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곳에서 아인슈타인은 아만다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만다는 정치인이 되었다가 수하르토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프랑스 인도네시아 대사로 임명된다. 이때 프랑스로 함께 오게 된 알란은 68프랑스 혁명이 한창인 가운데 영국의 수상 처칠과 미국의 존슨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인연으로 미국의 스파이로 암약(?)하게 되는데 임무는 다름 아닌 러시아의 핵물리학자인 포포프를 첩자로 포섭하는 일이었다. 80세를 코앞에 둔 알란은1982년 고향으로 돌아와 고양이 한마리와 함께 잘 살다가 고양이를 잡아 먹은 여우를 잡기 위해 폭약을 설치했다가 집을 통째로 날리면서 양로원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양로원에서 100번째 생일을 맞이한 날 창문을 넘어 탈출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 사고들...

결국, 갱단의 돈가방을 훔친 알란 노인은 악명 높은 도둑이었던 율리우스. 만년 학생 베니, 코끼리 소냐의 보호자인 <예쁜 언니> 구닐라, 베니의 형 보세, 前 갱단 두목인 예르딘 그리고 그들을 쫓던 수사관 아론손 등을 모두 친구로 만들어 발리로 건너가 행복한 여생을 보낸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황당무계한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재밌다. 개인적으로 유일한 여성 등장인물이라고도 할만한 구닐라 비에르클룬드, 즉 4.5톤 코끼리 소냐를 키우는 <예쁜 언니>의  과거사가 빠져 있어 무척 아쉽긴 하지만 20세기 역사적 인물들과 주인공 알란 영감을 엮어내는 작가의 솜씨가 제법이다. 물론, 억지스러움도 없지 않으나 인생이 교과서대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소설이 사실을 나열하는 것도 아닌지라 '이런 거짓말이 어딨어?'라는 독자의 볼 맨 소리에, 작가는 '여기 있지. 어딨긴 어딨어!'라는 시치미로 응수한다.


그나저나 북극의 사람들이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들의 성격이 주인공 알란 노인처럼 낙천적인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작가인 요나스 요나손은 1994년까지 기자로, 그 이후에는 성공한 사업가였다가 2005년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한 후 스위스 티치노에 머물면서 2009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출간했다고 하니, 요양차 심심풀이로 소설을 썼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아궁~ 부러워라)

사업가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번 만큼 (세금을) 내야 하는 그들 나라'의 제도적 특성상, 요나손의 경제력은 우리나라의 은퇴한 중산층 수준에서 그다지 높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만약 그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일찌감치 은퇴하여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마음껏 글로 엮어낼 수 있었을까? 도대체 한국에서 요양하기 위해 40대 중반에 은퇴하여 한적한 휴양지에서 4년 동안 푹 쉬면서 소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 걱정에 노심초사 은퇴는 커녕 아픈 몸을 일으켜 억지로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설령, 은퇴했더라도 노후를 생각하며 모아 놓은 돈을 쓰지도 못하고 쳐다만 보면서 하루하루를 한숨속에서 보내야 하지 않을까?


이 작품은 나에게 묘한 '시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부럽고 또 부러웠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그 사회제도가 부럽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쓸데없는 기대나 걱정을 하지 않는 주인공의 유연함과 낙천성이 부러웠으며....

삼촌의 유산으로 30년 동안 대학에서 이것저것 공부만 한 베니라는 등장인물의 팔자도 부러웠고...

무엇보다도 작가인 요나스 요나손이 한없이 부러웠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받고 싶어 목을 매는 노벨문학상을 주관하는 나라가 바로 스웨덴이다. 잘 알다시피, 노벨은 스웨덴 출신으로 다이나마이트를 개발하여 엄청난 돈을 번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작품 속 100세 노인 알란 칼손이 폭약 전문가로 나오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 오히려 스웨덴 출신으로 70년대 활동한 그룹 아바(ABBA)가 언급되지 않은게 이상할 정도다. 


이런 작품들을 읽으면 솔직히 나도 모르게 애국심이 옅어지곤 한다. 

아무튼, 여러모로 '문화강국은 행복하고 창의적인 국민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말을 재확인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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