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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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

낯선 이름이다. 그런데 약력을 보니 1959년생에 이미 <공중그네>로 나오키상까지 수상한 작가였다. 나오키상은 작품성을 중시하는 아쿠타가와상과는 달리 대중성에 무게를 두고 있으니, 이 작품 역시 당연히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장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섯 편의 단편으로 묶어져 있었다. 각각의 작품들은 이라부 이치로라는 신경과 전문의가 주인공들(환자)을 치료하는 내용으로, 일종의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신경과 전문의로 나오는 이라부 이치로는 우리로 치면 정신과 전문의가 아닐까 싶은데, 신경과로 번역하니 다소 헷갈렸다. 일본에는 뇌신경 구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신경과가 없다는 말인지, 아니면 신경과가 아닌 다른 명칭으로 사용되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치만, 우리나라가 과거 일본식 체제를 꽤 많이 답습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럴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그럼, 또 번역 '탓' 인가?)

 

한편, 작품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럼, 재미는,,,?

고민된다. 

나는 이런 분위기의 작품을 재밌다고 생각하는 부류는 결코 아니지만, 사람에 따라선 재밌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는 그만큼 이야기가 단순하고 쉽다는 뜻이다. 그래서 심지어는 계도와 훈계를 목적으로 쓰여진 이야기책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글쎄, 내용은,,,?

선단공포증(뾰족한 걸 무서워 하는 일종의 강박증)에 걸린 야쿠차와 공중그네뛰기를 실패하기만 하는 서커스 공연자가 나오는가 하면, 비슷한 작품을 과거에 쓴 적이 없는지 전전긍긍하는 전업작가나 1루 송구를 처리하지 못하는 3루수가 나온다. 다들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나름 일가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하나같이 강박증을 보인다. 원인도 이유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좌절... 좌절... 좌절... 만 하다가 괴짜 의사를 만나 완쾌(?) 된다는 줄거리다.

 

내용이 아무리 긍정적이고 교육적이라고 하더라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작품에 소위 '문학상'을 안겨 줄 수 있었을까? 의구심이 솟구쳤다.

 

독후감도 서평도 쓸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을 접하게 되었다.

지난 일요일 <아무도 모른다>를 시작으로 화요일엔 <걸어도 걸어도> 그리고 <공기인형>까지...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아무도 모른다>는 영화가 아닌 한편의 다큐멘터리로 읽혀졌다. 그리고 마지막 엔딩 자막이 올라간 순간,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영화 제목이 어째서 '아무도 모른다'인지를...

 

한편, <걸어도 걸어도>는 일본의 어느 가족 이야기다.

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얕은 구릉 속에 자리잡은 마을과 좁은 안마당에 정성스럽게 가꾸어진 화단 등등... 내가 자랐던 그 시절 그 동네를 닮아있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조금씩 벌어질 수밖에 없는 가족관계는 마치 걸어도 걸어도 자꾸만 멀어지는 달빛 같다.

역시,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된다.

 

그리고...

다시 <공중그네>를 떠올렸다.

작품 속 주인공들 역시 하나같이 소외감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고통과 고민이 주위에 알려질까봐 몹시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꽁꽁 숨기고 살아간다. 행복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두꺼운 '가면'을 뒤집어 쓴 채, 위로받는 방법도 위로하는 방법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외로움에 젖어 천천히 죽어간다.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 이 모든 것들을...

 

작가가 꾸밈없이 직접적이고도 노골적으로 비정상적(?)인 인물들을 그려낸 이유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 작품을 읽고선 '어, 바로 내 이야기인데...'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하는 생각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즉, '아무도 몰랐던 것'들을 '누구나 아는 것'들로 만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는지도 모른다.   

 

타인에 대한 관심을 민폐라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초상은 어딘지 모르게 슬프다. 그래서 일찍이 나쓰메 소세키라는 일본작가는 '행복해보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라고 말했나 보다. 

 

우리나라라면 어땠을까?

이런 작품이 커다란 반향과 호응을 얻을 수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은 그 정도로 인간소외라는 병이 깊지 않다는 방증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보단 예술이라는 틀에 얽매여 현실 반영이라는 문학 본연의 의무를 망각한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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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급에서 고급까지 일본 문화의 스펙트럼은 참으로 넓고도 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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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둑 1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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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읽는 걸 무엇보다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물론, 읽고 난 후 마음만 먹으면 그럴듯한 독후감 정도는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을 만큼 글쓰기 또한 가능하다. 아니, '가능하다'고 생각했더랬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호주의 신예 작가 마커스 주삭의『책도둑』은 나에게 책읽기과 글쓰기의 두려움을 동시에 가져다 준 작품이다. 

 

이야기는 1939년 1월 열번째 생일을 얼마 안 남긴 소녀(리젤 메밍거)가 엄마의 손에 이끌려 남동생과 함께 남매를 입양한 독일인부부에게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기차여행 도중, 여섯살배기 동생이 죽자 기차에서 내려 눈 위에 동생을 묻는다. 그리고 꽁꽁 언 땅을 파던 아이가 떨어뜨린 책을 집어온다. 제목은『무덤 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소녀에게 이 책은 동생의 마지막을 잊지 않기 위한 '기억'이자, 소녀가 앞으로 갖게 될 열네권의 책중 첫번째 책이다.

 

양부모인 한스 후버만과 로자 후버만으로부터 성탄절 선물로 받은『휘파람 부는 사람』과 『등대』가 소녀에게 책읽기의 '즐거움'을 전해 주었다면, 퓌러(독일러로 '총통'이란 뜻으로 히틀러를 일컬음) 생일날 화염 속에서 건져낸『어깨 으쓱거리기』와 어느날 갑자기 식탁위에 나타난『마인캄프』(히틀러 자서전 '나의 투쟁'의 독일어)는 말(글)의 '위력과 위험'을 알려준다. 그리고 유대인 막스로부터 선물 받은『굽어 보는 사람』과『말을 흔드는 사람』은 소녀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물론, 더불어 '용기'라는 것도 함께...

 

소녀는 퓌러(히틀러)의 광기가 말에 의해 형성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책(말)이 좋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어쨌든 말(글)의 '힘'에 휩싸인 소녀는 옆집 남자애인 루디 슈타이너와 함께 일자 헤르만(뮌헨 몰링市 시장 부인)의 서재에 몰래 들어가 책을 한권씩 한권씩 훔쳐낸다. 구멍 난 가슴을 책으로라도 메우려는 것처럼...

 

소녀에게 온 마지막 책은 노란 드레스를 입은 오후가 가져다 준다. 그리고 그 마지막 책으로 인해 우리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게 된다.

 

 

 

주인공 리젤 메밍거는

1943년 7월 연합군의 대폭격 속에서 살아남은 몰힝市 힘멜거리의 유일한 생존자다.

 (그녀의 생존은 운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먼저 죽은자들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말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녀의 양아버지 한스 후버만은 페인트공이자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는 약속을 하던 당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알았을까...?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약속을 지켰다.)

 

 그녀의 양어머니 로자 후버만은 교양은 없을지 모르나 양식만큼은 갖추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남편과 양녀를 무척 사랑했다.

(그녀의 욕지거리와 코고는 소리는 어딘가 낯설지 않다. 우리가 아줌마라고 부르는 그 모습 그대로다.)

 

리젤 메밍거의 옆집에 사는 남자애 루디 슈타이너는

리젤 메밍거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그녀로부터 뽀뽀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물론, 살아남아야 할 가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루디 때문에 나는 여러 차례 눈꺼풀이 떨렸더랬다.)

 

유대인 막스 판델부르크는

아버지를 두살때 잃어버려 기억조차 하지 못하지만, 먼훗날 일찍 죽은 그 부친 덕분에 살아남는다.

 (그가 살아남은 건 어쩌면 밤하늘의 별과 구름 떠있는 하늘과 피부에 닿는 바람과 새하얀 눈을 좋아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편, 에릭 판델부르크는 아코디언 연주자였으나 순전히 선의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그는 분명 두살짜리 아들을 둔 아버지가 되면 대개 선의 따위는 깨끗이 잊어버리는 보통 남자들과는 다른 인물이다.)

 

일자 헤르만은

책으로 가득 한 서재를 갖고 있는 여인으로 책을 사랑했지만

책보단 사람을 더 많이 사랑했던 분별 있는 사람이었다.

(비중없이 중요한 존재다. 세상엔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존재해서 여전히 희망을 품게 만든다.)

 

 

죽음의 신은

그의 고백에 따르면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장소에 있을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결과,

언제나 최선이자 최악의 상태에 처한 인간을 발견하곤 한다.

그는 인간의 추와 미를 보면서 어떻게 똑같은 것이 동시에 둘일 수 있는지 의아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수 있는 인간의 운명을 부러워한다.

(내가 죽음의 신이라도 이점만큼은 분명 부러워 했으리라. 인간이 죽을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 말이다. 내가 언젠간 죽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마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깊이 감사하게 된다.) 

 

끝으로, 마커스 주삭은

흔하디 흔한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를 갖고 있다.  

(작가에게 꼭 필요한 그러나 나에겐 없는... 책도둑을 읽고 나서 그의 문장들을 훔치고 싶어졌다.)

 

 

 

마커스 주삭의『책도둑』은 또한번 나에게 커다란 혼란을 가져다 주었다. 

사람들을 잔인하게 학대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끝없는 반성과 깊이 있는 성찰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이렇게 천국과 지옥이라는 전혀 다른 두개가 하나의 세상에서 나타날 수 있는지...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 중,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과와 반성할 줄 모르는 것만큼 크나큰 죄도 없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 또한 잘못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받은 피해와 박해를 또 다른 타인을 박해하는 이유로 삼는 것만큼 용서받지 못할 죄악도 없다. 하물며 그 상대가 과거 자신들을 박해했던 당사자도 아닌 바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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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0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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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가슴에 품으면 상처를 입게 되는 법.
비르기니아가 관계를 이어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을 가슴에 품지 마. 그들이 들어오면 상처받을 일도 많아져. 너 자신외에 너를 위로해줄 사람은 없어. 너 자신만의 문제라면 고통스러워도 그럭저럭 살 수 있을 거야.

희망을 품지 않는 한 괜찮을 거야.

 

- 욘 A. 린드크비스트 <렛미인> p338 -

 

 

 

스웨덴 작가의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동명의 영화가 먼저 개봉된 후 책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린드크비스트와 <렛미인>은 뜻밖의 흥행(?)을 불러오는 대기만성형 작가와 작품이 갖는 특징이란 특징들은 죄다 갖춘 것 같다.

 

<렛미인>은 불우한 십대와 불안정한 직업을 전전했던 사람이 작심하고 쓴 작품으로, 완성 후 여러차례(무려 8번) 출판사 문을 두드렸으나, 모두 거절당하고 포기하기 직전. 기적처럼 출판되어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킨 작품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은 스웨덴 스톡홀름의 서부 외각 지역에 위치한 '블라케베리'다.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이 곳은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란다. 그러니까 복지천국인 스웨덴 정부가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공동주택을 짓고 단기가내에 대대적으로 사람들을 이주시킨 그래서 80년대초까지 과거도 교회도 없는 곳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비슷비슷한 콘크리트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

저 너머 멀리 보이는 들판과 숲들...

사회와 단절된 채 각종 연금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술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

그리고,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새하얀 눈송이들...

 

엄마와 단 둘이 사는 열 두살 소년 오스카르 역시 이런 곳에서 산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집단괴롭힘을 당하는 오스카르의 유일한 낙은 범죄사건을 다룬 신문기사를

스크랩하는 것이다. 

 

이런 오스카르의 옆집으로 한 소녀가 이사를 온다. 아빠와 단 둘이서...

어느날 저녁. 

놀이터에서 마주친 소년와 소녀...

둘은 금방 친해진다. 

어쩌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과 죽을 만큼 외롭고 힘든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는 공통점이 

서로를 끌어당겼는지도 모른다.  

 

 

뱀파이어가 나오지만 무섭지 않다. 아니 무섭다. 그러니까 뱀파이어가 나오기 때문에 무서운 그런 무서움은 없다는 말이다. 대신 시간이 지날수록 차곡차곡 차오르는 무서움에 차갑고 서늘해진다. 마치 칼날같은 얼음에 새하얀 피부가 닿기라도 한 것처럼......

 

영화에 비해 원작은 훨씬 더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며 다양한 사건들이 전개된다. 그리고 영상으로 담아내기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들도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보다 훨씬 더 세기말적이고 음울하다.  

 

 

1897년 아일랜드의 소설가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탄생한 이후, 뱀파이어 작품에는 일정한 규칙이 만들어졌다. 예를 들면, 햇빛을 싫어해서 저녁에만 활동한다든지, 뱀파이어에게 물린 사람 역시 전염되어 뱀파이어가 된다든지... 퇴치방법은 낮에 자고 있는 틈을 타 심장에 십자가를 박는다든지...

 

지난 50년대 리처드 매디슨의 <나는 전설이다>와 70년대 스티브 킹의 <샬렘스 롯>에 이르기까지 뱀파이어의 모습은 공포스럽고 잔인하며 무서운, 그래서 인간에 의해 마땅히 응징되고 사라져야 할 존재로 그려진다. 그런데 이런 뱀파이어의 모습이 2000년대에 들어와 새로운 형태를 띄게 된다. (대표작으로는 스테파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매력적이고 감성적일 뿐만 아니라 하나같이 보듬어 안아주고픈 사랑스런 모습으로 나타난다. 요즘 뱀파이어는 진화해서 오히려 인간보다 더 매력적이고 강하다.  <렛미인>의 소녀 역시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를 들여보내 줘." 라는 소녀의 부탁을 과연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스카르는 소녀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또한 소녀을 선택할 경우 다가올 자신의 미래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소녀를 선택한다. 인간이 아닌 뱀파이어를... 말이다. 

 

앞으로 오스카르는 제2의 호칸이 되어 소녀를 위해 피를 조달해야 하리라. 그리고 어쩌면 호칸과 같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리라. 그래도... 그래도... 소년은 소녀를 선택했다. 인간으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말이다.  

 

누군가를 가슴 깊이 들여놓은 적이 있는가?

누군가의 가슴을 두드리며 들여보내달라고 한 적이 있는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슴을 열어준 상대를 위해 모든 걸 불사하는 것! 이런 게 바로 사랑인 거다. 소년은 뱀파이어가 아닌 사랑을 선택한 거다.

 

 

한때, 나는 복지강국 스웨덴 같은 곳에서 살길 꿈꿨더랬다.

그런데 스웨덴도 마찬가지더라...

살인, 강도, 납치, 변태, 왕따, 등등....

인류 사회은 어디든 비슷한 것 같다.

 

흔히, 사람들은 인류 사회가 발전할수록 '선' 대신 '악'이 넘쳐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류 사회는 과거에도 '선'하지 않았더랬다.  인간은 존재할때부터 줄곧 불안하며  불안정한 미완의 존재였을 뿐이다. 과거에 비해 현재가 더 비극적으로 비춰지는 건 예전엔 쉽게 감춰지고 들어나지 않았던 '악'이 오늘날엔 기술 발달로 더 쉽고 더 빠르게 알려지기 때문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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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 추위가 한창이다.

산간지방 어딘가에는 폭설이 내렸다지...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내 마음 속에도 눈이 내려 어느새 내 키만큼 쌓여버렸다.

쌓인 눈이 녹아 세상과 '통'하려면 아무래도 한참이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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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3 (보급판) - 두 개의 탑 1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이미애 외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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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반지의 제왕>을 다 읽고 영화도 봤다.

꼬박 한달 걸린 것 같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확실히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나'는 분명 달라졌으리라. 마치 프로도에게 간달프가 원정을 떠나면 돌아올지 어떨지 장담할 순 없지만 만약 돌아온다면 떠나기전과는 확실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말처럼...

 

우선, 번역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1편 '반지원정대'와 2편 '두 개의 탑'에 해당되는 1권부터 4권까지는 황금가지 출판사(번역 한기찬)에서 출간되었으나 3편인 '왕의 귀환'은 어찌된 영문인지 출판사(씨앗을 뿌리는 사람들)도 역자(김번, 김보원)도 바뀌어 있었다. 양자의 우열을 가리기에 앞서, 고유명사가 통일성있게 번역되지 않아 어리둥절했다. 예를 들면, '이센가드'를 '아이센가드'로 '중원'을 '가운데 땅'으로 '흑기사'를 '어둠의 기사로 옮긴 것 등은 그나마 유추가 가능하다지만 '아르고르(순찰자)'를 '성큼걸이'로 '실롭(왕거미)'을 '쉴로브' 등으로 옮긴 이유는 뭘까? 시리즈 중, 전편 번역본이 있다면 후편 시리즈 번역작업할 때 전편 번역본을 먼저 확인해봐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행히도, 최근 출판사 한곳에서 반지의 제왕 시리즈 전편을 번역 출판했다고 한다. 나처럼 2000년대 초반 두곳의 출판사에서 1~4권과 5~7권으로 나눠 출판된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읽으실 분들은 참고하시면 좋을듯...)

 

제3편 <왕의 귀환>은 절대반지의 파괴와 곤도르의 왕 귀환 그리고 샤이어의 상황과 그 뒷 이야기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이제 막 악의 세력을 물리친 간달프(알고보니, 그는 악을 막기 위해 중간계로 보내진 5명의 使子 중 한명이었다.)일행은 그의 지략으로 프로도와 샘이 절대반지를 모르도로의 용암 속으로 던져넣을 수 있도록 사우론의 시선을 끌기 위한 전투를 펼친다. 

 

그 사이 오르크족에게 잡혔던 프로도는 샘에 의해 구출된 후, 계속해서 전진하여 마침내 사우론 영토의 심장부인 삼마스 나우르에 도착한다. 절대반지를 용암 속에 던져넣어야 하는 순간, 절대반지에게 지배된 프로도는 샘이 보는 앞에서 "절대반지는 이제 내 것이야!"라고 외치며 사라져버린다.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골룸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 속에서 몸부림을 치는가 싶더니 골룸의 어금니사이로 번득이는 무엇인가가 언뜻 스치는 순간 손을 부여잡은채 쓰러진 프로도의 모습이 나타났다. 절대반지에 집착한 골룸이 반지를 끼고 사라져버린 프로도의 손가락을 깨물어 뜯은 것이다. 그런데 그만 기쁨에 겨워 반지를 손에 들고 날뛰던 골룸이 용암속으로 반지와 함께 떨어지고 만다. 영화에서는 프로도가 골룸을 떠밀어 떨어뜨리지만 원작에서는 골룸이 혼자 날뛰다가 스스로 미끄러 떨어진다. (영화 1~2편을 거치며 이미 영웅의 이미지로 떠오른 프로도의 마지막 모습을 나약하게 묘사하지 않으려는 감독의 고민과 배려가 엿보인다.)

 

때마침 독수리를 타고 나타난 간달프(미스란디스)에 의해 프로도와 샘은 무사히 구출된다. 아르곤은 곤도르의 왕이 되어 엘론드의 딸인 요정 에오웬과 결혼을 하고 에오메르는 로한을 통치하며 파라미르는 아르곤에 의해 영주로 임명된다.

 

다시 뭉친 네명의 호빗족은 고향 마을 샤이어로 돌아가는데...

샤이어가 가까워질수록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느낀다. 알고보니, 사루만이 샤이어에까지 악의 손을 뻗친 것이었다. 샤이어 호빗들은 샤르키라고 불리우는 우두머리를 섬기는 나쁜 무리들에 의해 지배받고 있었던 것이다. 

 

프로도와 샘, 메리와 피핀은 전쟁터에서의 용맹을 다시 한번 발휘하여 호빗들을 봉기시켜 악의 세력을 무찌른다. 마침내 샤르키를 붙잡고 보니, 그는 다름 아닌 사루만과 뱀혓바닥(그리마)이었다!  그를 죽이려는 순간, 악을 악으로 막지 말고 선으로 막아야 한다며 프로도가 말려 사루만은 간신히 목숨을 지키지만 뱀혓바닥의 배반으로 결국 그의 손에 죽는다. 이리하여 미스란디스(간달프)와 함께 중간계를 지키기 위해 파견되었던 다섯 명의 마법사 중 하나인 사루만이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샘이 골룸을 죽이려고 했을 때도 그렇고 사루만의 목숨을 지켜준 것도 그렇고 프로도의 행동을 통해 엿본 톨킨의 세계관은 명확해보인다. 톨킨이 살았던 시대는 1,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였다. 그에게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제국주의 열강들의 모습은 마치 중간계의 각 종족들이 '보물'과 '반지'를 놓고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는 것과 흡사하지 않았을까?

 

이런 점에서 볼면, 톨킨은 분명 반전(反戰) 평화주의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서양과 백인 위주의 세계관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남성우월주의와 신분계급사회를 당연하게 여긴 인물이기도 하다. 

 

부록을 통해 제1시대와 제2시대 그리고 제3시대의 주요 사건들과 인물들 그리고 생몰연도까지 자세하게 기록된 가계도를 만들만큼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세세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톨킨은 여성에게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평범한 인물일지라도 영웅이 될 수 있으며 오히려 평범하기 때문에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열린 세계관과 역사관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범한 인물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점은 끝끝내 간과하고 말았다.

 

잘 알다시피, <반지의 제왕> 속에는 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이름 있는 인물도 많지만 이름 없는 인물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런데 그중 이름이 부여된여성등장인물은 고작 세네명에 불과하다. 꼽아보자면, 요정 여왕인 갈라드리엘과 엘론드의 딸 에오윈 그리고 로한의 공주 아르웬이 전부다. 그나마 갈라드리엘을 제외하면 에오윈과 아르웬은 주로 남자 주인공을 빛내줄 '짝'으로써의 역할이 강조될 따름이다. (아, 참! 나중에 샘과 결혼하는 호빗족 로지도 있었지...)

 

만약, 이 작품이 영웅이 등장하는 신화의 세계를 다루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건 인류 신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문외한의 변명일 뿐이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영웅 신화의 원형을 살펴보면 인류 최초의 신은 여성이었다. 초기 인류는 여성의 생식능력을 무엇보다도 신비롭고 높게 평가했으며 이 과정에서 남성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잉여생산물이 생기고 이를 지배한 우두머리가 나타나면서 힘의 우열에 따른 역사가 펼쳐지고... 이 과정에서 힘으로 권력을 쟁취한 남성지도자들이 의도적으로 인류 신화에서 여성을 배제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성이 우위를 갖춘 분야라 할 수 있는 전쟁과 싸움에만 초점을 맞춘 신화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반지의 제왕> 역시 이와 같은 남성주의적 세계관의 확장 혹은 전형이라고 봐야 한다. 다만, 한 사람이 만들어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방대한 이야기와 배경 등은 분명 놀라움을 자아내며, 무엇보다도 그가 창조해낸 세계 속에서 후대 사람들에 의해 또 다른 이야기들이 잉태되고 성장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위대한 일을 했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한편, 프로도와 골룸 그리고 샘이라는 세개의 캐릭터를 놓고 봤을 때 나의 마음을 마지막 순간까지 부여잡았던 인물은 단연 샘과 골룸이다. 주인공인 프로도 배긴스는 삼촌이자 자신보다 먼저 원정에 나섰다가 돌아온 빌보 배긴스와 같은 선상에 놓인 인물로 봐야한다. 즉, 절대반지에 대한 욕망과 욕구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다. 한편 정원사로서 프로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샘은 원정대의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깨닫지도 부여하지도 못한다. 그에게 원정이란 그저 '주인님(프로도)을 잘 모시고 따르기 위한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런 그의 모습은 분명 영웅적인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의 아니게 전근대적인 신분제 사회의 가치관을 옹호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골룸(스메아골)이다. 

골룸은 이중인격과 자아가 분열된 존재로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절대반지(권력과 물질)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타락해버린 인물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이런 골룸의 모습이야말로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에서 매순간 선택을 해야하는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 절대반지를 파괴한 인물도 다름아닌 골룸이다. 만약, 골룸이 없었더라면 프로도는 마지막 순간에 절대반지에 대한 욕망을 이겨내고 반지를 용암 속으로 던져넣었을까? 아니면, 프로도 주인님을 목숨 걸고 지켜왔던 샘이 주인님의 명을 어기고 그로부터 반지를 빼앗아 대신 파괴시켰을까? 피터 잭슨 감독 역시 이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기쁨에 미쳐 날뛰는 골룸을 원작과는 달리 프로도가 밀어떨어뜨리게 만든 것이리라. 

 

 

1편(반지 원정대)과 2편(두 개의 탑) 모두 영화와 원작이 약간씩 차이가 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야기 흐름이나 극적인 효과를 위한 작은 차이일 뿐 원작의 내용을 바꾸거나 누락시킨 부분은 거의 없었던 것에 반해 3편(왕의 귀환)은 원작에서 다룬 '샤이어 전투' 부분을 통째로 누락시켜 아쉬웠다. 아이센가드에서 쫓겨난 사루만이 샤이어까지 흘러 들어와 악의 손길을 뻗치다가 결국 고향으로 되돌아온 호빗들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는 내용인데...

 

빌보 배긴스와 빌보 프로도는 회색항구를 떠나 서쪽으로 가는 요정들과 동행함으로써 요정의 세상이었던 제3시대가 막을 내리고, 또한 배긴스家의 이야기 역시 마무리되는 것으로 일단락된다. 한편 앞으로 도래할 제4시대는 곤도르왕국을 중심으로 한 인간의 세상이자 샤이어의 호빗인 샘 와이즈 감지家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요정들에게 주어졌던 3개의 반지인 빌랴, 네냐, 나랴는 각각 엘론드, 갈라드리엘 그리고 간달프가 갖게 된다.)

 

 

분명, 재밌고 놀라운 작품이다.

나 역시 <반지의 제왕>과 함께 했던 지난 한달 동안 매우 행복했고 즐거웠다. 그러나 많이 즐기고 좋아했기에 그만큼 안타까움과 아쉬움도 크다.

 

작품을 즐기는 내내 많은 것들을 생각했고...

또 앞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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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2 - 두 개의 탑, 양장본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김번 외 옮김, 알란 리 그림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두개의 탑'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 <반지의 제왕>3, 4권은 읽었다기(read) 보다는 보았다는(watch) 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1탄격인 '반지 원정대'를 다룬 1,2권을 간신히(?) 다 읽은 후, 영화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을 봤을 땐 가히 충격이었다. 책으로부터 얻지 못했던 재미가 영화 한편으로 '종결'되었다고나 할까. 아무리 책을 꼼꼼하게 읽어도 스토리만 이해될 뿐, 원작이 담고 있는 분위기와 등장인물들의 구체적인 모습을 도무지 떠올릴 수가 없었더랬다. 한마디로, 상상력의 부재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셈이다.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2편은 1편의 시행착오를 거쳤기에 훨씬 더 빨리 그리고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1편에서 9인으로 형성된 반지원정대는 모리아 전투에서 간달프를 잃고 요정(갈라드리엘)의 도움으로 다시 길을 떠나게 된다.

 

더 이상 일행이 위험해지는 걸 원치 않았던 프로도가 홀로 길을 나서면서 원정대는 그만 해체되고 만다.

 

곤도르 출신 보로미르가 반지의 유혹에 빠졌다가 다시 벗어나 오크와 맞서 싸우지만, 호빗족인 피핀과 메리가 붙잡혀가는 걸 막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흩어진 원정대를 찾아나선 아라곤과 김리 그리고 레골라스는 회색의 마법사에서 백색의 마법사로 환생(?)한 간달프와 극적으로 재회하면서 로한 왕국으로 향한다.

 

로한의 왕 세오덴은 사루만의 첩자인 뱀혓바닥(그리마)의 농간으로 제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간달프의 도움으로 원래의 기백과 정신을 되찾는다. 세오덴의 지휘하에 로한 왕국은 사루만이 불러모은 적들과 헬름 계곡에서 치열한 싸움을 치룬다.

 

2편격인 영화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에서는 헬름 계곡의 전투가 스펙터클하고 생생하게 그려진다.

코끼리처럼 생긴 어마머마하게 큰 괴물 '무마킬(올리파운트)'를 비롯해서 곰, 늑대, 하이에나를 합한 와르그스(wargs)를 탄 오크들... 

하늘 위의 어둠을 몰고 날아 오는 나즈굴 등등...

볼거리가 충만하다. 오랜만에 다시 어린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세 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웃고... 울고... 박수치고... 발 구르고...

 

헬름 계곡에서 사루만의 부대를 물리친 로만 왕 세오덴과 간달프는 이센가드로 사루만을 찾아간다. 백색의 마법사 사루만은 간달프를 여전히 회색의 마법사로 알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자, 결국 간달프가 사루만의 지팡이를 두 동강 내고 만다. 이제 사루만은 탑위에서 물에 잠긴 자신의 영토를 바라보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 부분은 영화에선 다루지 않은 듯...)

 

한편, 오크족에게서 간신히 도망친 피핀과 메리는 팡고른 숲에서 나무수염(엔트)을 만난다. 엔트들은 중간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생존한 존재로 일찍이 사루만과 오크의 공격으로 숲이 황폐화된 후 서서히 쇠락해가고 있는 중에 두명의 호빗족을 통해 상황을 전해 듣고는 사루만의 본거지인 이센가드를 공격하여 물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책에서는 헬름 계곡 전투에서 승리한 세오덴과 간달프 일행이 이센가드로 가는 도중, 나무수염과 함께 와 있던 피핀, 메리와 만나지만 영화에서는 원정대가 3조로 갈라져서 각개전투를 펼친다.

 

피핀-메리와 아라곤-김리-레골라스 등 일행과 헤어진 프로도-샘은 에뮌 무일 언덕에 이르어 길을 잃고 만다. 바로 이때, 골룸(스메아골)이 나타나 그들을 모르도르까지 안내하는 역할을 기꺼이 맡는다.

 

1편에서도 느꼈지만 골품이라는 존재는 톨킨이 창조해낸 캐릭터 중 단연 최고가 아닐까 싶다. 절대반지에 대한 욕망으로 자아가 분열된 골룸이야말로 물질문명에 잠식당한 인류의 모습을 가장 가깝게 반영하고 있다.  절대반지 운반자인 프로도를 마스터(주인)로 섬기는 골룸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절대반지에 경도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악한 악이 화신 골룸과 일말의 도덕성을 간직한 호빗족 스메아골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용감무쌍한 난쟁이족이 금속(보물)에 대한 욕망을 극복하지 못하고 모리아 광산에서 멸망했듯이 절대반지에 대한 지배와 욕망에 갖혀 있는 골룸을 지켜보는 것 또한 매우 큰 즐거움이었다. 골룸이라는 캐릭터의 완성은 전적으로 컴퓨터그래픽의 기술적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골룸은 사악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결국 프로도를 왕거미 '실롭'에게 재물로 바치고, 프로도가 죽은 줄 알았던 샘은 용기를 내 스스로 반지운반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때마침 나타난 오크족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절대반지를 낀다. 그리고 프로도가 죽은 게 아니라 거미 독에 마취되었다는 사실을 오크들의 대화를 엿들어 알게 된다.

 

프로도 일행은 곤도르 병사를 이끌고 있는 대장 파라미르와 만나 함께 길을 걷다가 뜻밖에도 파라미르가 보로미르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형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프로도에게 호감과 호의를 함께 보이던 파라미르...

영화에서는 형처럼(?) 절대반지에 대한 유혹으로 프로도를 위협하지만 결국에는 프로도와 절대반지 그리고 골룸마저도 풀어주지만(모르도르로 가는 길을 안내할 '가디언'이라는 프로도의 설명과 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원작에서는 절대반지에 대한 욕망을 내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톨킨은 파라미르의 인물됨됨이를 그의 형이자 아버지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던 보로미르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반지 전쟁의 때가 점점 무르익었고 데네소르의 아들들도 장성해 갔다. 다섯 살 연상에다 아버지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큰 아들 보로미르는 용모와 자존심에서는 아버지를 닮았으나 다른 면에서는 닮은 점이 없었다. 보로미르는 오히려 저 옛날 에아르누르 왕이 그랬듯이 아내를 취하지 않고 오로지 무예를 연마하는 데만 기쁨을 느끼는 부류였따. 그는 두려움을 모르고 강인했으나 과거의 전투담을 빼고는 학문에도 관심이 없었다. 아우 파라미르는 용모에서는 형과 닮았으나 마음은 전혀 달랐다. 그는 부친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빈틈없이 읽을 줄 알았지만 그것으로 상대방을 멸시하기보다는 가엾이 여겼다. 그는 온화한 태도의 소유자로 학식과 음악을 사랑했기에 당대인들은 그의 용맹이 형만 못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쓸데없이 위험에 몸을 내맡김으로써 영예를 얻으려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파라미르는 간달프가 도성을 찾을때마다 크게 반기고 그의 지혜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다른 모든 일들도 그랬지만 특히 이 일이 그의 부친을 언짢게 만들었다.

 

-J.R.R. 톨킨<반지의 제왕> 부록A-왕들과 통치자들의 연대기 p283~284 中-

 

 

<반지의 제왕> 제3편 '왕의 귀환'을 암시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영화나 원작 속에서 주인공으로 비춰지는 프로도는 반지운반자일 뿐 결코 '왕'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영웅이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그의 용감한 행동은 중간계에서 전설과 노래가 되어 길이길이 전해 내해질것이다. 

 

<반지의 제왕> 3편에서는 프로도가 절대반지를 모르도르의 용암속에 던져넣음으로써 중간계에 또 다시 평화가 찾아오고 기울었던 왕국들이 다시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그중 하나인 곤도르 왕국은 새로운 왕을 맞이하게 되리라. 귀환한 왕은 과연 누굴까? 아마도 아라곤이지 않을까...

 

참!

2편의 원서에는 부록이 있어 각 왕국의 배경 스토리와 여러 종족들에 대한 설명이 첨부되어 있다. 아마 톨킨이 처음부터 이렇게 편집한 것 같다. 톨킨 책을 출판한 출판사는 말할 것도 없고 영화 역시 최대한 원작자와 원작을 최대한 그대로 재현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부록에 요정 엘론드의 딸 아르웬과 아라곤의 러브스토리도 실려 있다.

 

부록을 보며 느낀 건데, 정말 톨킨은 인류 역사와 비슷한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하려고 했고 또한 그렇게 했음을 알 수 있다.  <호빗>과 <반지의 제왕>은 모두 중간계 재3기시대에 해당되는 이야기들이고, 부록을 보면 톨킨이 제3기뿐만 아니라 제1기시대와 제2기시대까지 세심하게 구성해 놓았음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들 시기를 바탕으로 한, 소위 '미들어스(중간계) 스토리' 가 얼마든지 탄생할 수 있으리라. 

(3부 '왕의 귀환'편을 보면, 배긴스 집안의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샘 와이즈 감지 집안이 이야기를 이끌어 갈 것임을 암시하고 있어, 톨킨 또한 자신이 창조한 미들어스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음을 엿 볼 수 있다.)

 

마치, 인류의 역사가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앞으로 톨킨이 창조한 중간계와 그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제2, 제3의 '반지의 제왕'과 같은 이야기들이 탄생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내 생애에 접할 수 있을런지...

 

 

끝으로, 반지의 제왕 2편의 소제목인 '두 개의 탑'이란 사루만의 '오르상크'와 사우론의 '바랏두르'를 가리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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