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둑 1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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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읽는 걸 무엇보다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물론, 읽고 난 후 마음만 먹으면 그럴듯한 독후감 정도는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을 만큼 글쓰기 또한 가능하다. 아니, '가능하다'고 생각했더랬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호주의 신예 작가 마커스 주삭의『책도둑』은 나에게 책읽기과 글쓰기의 두려움을 동시에 가져다 준 작품이다. 

 

이야기는 1939년 1월 열번째 생일을 얼마 안 남긴 소녀(리젤 메밍거)가 엄마의 손에 이끌려 남동생과 함께 남매를 입양한 독일인부부에게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기차여행 도중, 여섯살배기 동생이 죽자 기차에서 내려 눈 위에 동생을 묻는다. 그리고 꽁꽁 언 땅을 파던 아이가 떨어뜨린 책을 집어온다. 제목은『무덤 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소녀에게 이 책은 동생의 마지막을 잊지 않기 위한 '기억'이자, 소녀가 앞으로 갖게 될 열네권의 책중 첫번째 책이다.

 

양부모인 한스 후버만과 로자 후버만으로부터 성탄절 선물로 받은『휘파람 부는 사람』과 『등대』가 소녀에게 책읽기의 '즐거움'을 전해 주었다면, 퓌러(독일러로 '총통'이란 뜻으로 히틀러를 일컬음) 생일날 화염 속에서 건져낸『어깨 으쓱거리기』와 어느날 갑자기 식탁위에 나타난『마인캄프』(히틀러 자서전 '나의 투쟁'의 독일어)는 말(글)의 '위력과 위험'을 알려준다. 그리고 유대인 막스로부터 선물 받은『굽어 보는 사람』과『말을 흔드는 사람』은 소녀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물론, 더불어 '용기'라는 것도 함께...

 

소녀는 퓌러(히틀러)의 광기가 말에 의해 형성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책(말)이 좋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어쨌든 말(글)의 '힘'에 휩싸인 소녀는 옆집 남자애인 루디 슈타이너와 함께 일자 헤르만(뮌헨 몰링市 시장 부인)의 서재에 몰래 들어가 책을 한권씩 한권씩 훔쳐낸다. 구멍 난 가슴을 책으로라도 메우려는 것처럼...

 

소녀에게 온 마지막 책은 노란 드레스를 입은 오후가 가져다 준다. 그리고 그 마지막 책으로 인해 우리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게 된다.

 

 

 

주인공 리젤 메밍거는

1943년 7월 연합군의 대폭격 속에서 살아남은 몰힝市 힘멜거리의 유일한 생존자다.

 (그녀의 생존은 운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먼저 죽은자들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말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녀의 양아버지 한스 후버만은 페인트공이자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는 약속을 하던 당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알았을까...?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약속을 지켰다.)

 

 그녀의 양어머니 로자 후버만은 교양은 없을지 모르나 양식만큼은 갖추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남편과 양녀를 무척 사랑했다.

(그녀의 욕지거리와 코고는 소리는 어딘가 낯설지 않다. 우리가 아줌마라고 부르는 그 모습 그대로다.)

 

리젤 메밍거의 옆집에 사는 남자애 루디 슈타이너는

리젤 메밍거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그녀로부터 뽀뽀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물론, 살아남아야 할 가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루디 때문에 나는 여러 차례 눈꺼풀이 떨렸더랬다.)

 

유대인 막스 판델부르크는

아버지를 두살때 잃어버려 기억조차 하지 못하지만, 먼훗날 일찍 죽은 그 부친 덕분에 살아남는다.

 (그가 살아남은 건 어쩌면 밤하늘의 별과 구름 떠있는 하늘과 피부에 닿는 바람과 새하얀 눈을 좋아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편, 에릭 판델부르크는 아코디언 연주자였으나 순전히 선의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그는 분명 두살짜리 아들을 둔 아버지가 되면 대개 선의 따위는 깨끗이 잊어버리는 보통 남자들과는 다른 인물이다.)

 

일자 헤르만은

책으로 가득 한 서재를 갖고 있는 여인으로 책을 사랑했지만

책보단 사람을 더 많이 사랑했던 분별 있는 사람이었다.

(비중없이 중요한 존재다. 세상엔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존재해서 여전히 희망을 품게 만든다.)

 

 

죽음의 신은

그의 고백에 따르면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장소에 있을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결과,

언제나 최선이자 최악의 상태에 처한 인간을 발견하곤 한다.

그는 인간의 추와 미를 보면서 어떻게 똑같은 것이 동시에 둘일 수 있는지 의아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수 있는 인간의 운명을 부러워한다.

(내가 죽음의 신이라도 이점만큼은 분명 부러워 했으리라. 인간이 죽을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 말이다. 내가 언젠간 죽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마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깊이 감사하게 된다.) 

 

끝으로, 마커스 주삭은

흔하디 흔한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를 갖고 있다.  

(작가에게 꼭 필요한 그러나 나에겐 없는... 책도둑을 읽고 나서 그의 문장들을 훔치고 싶어졌다.)

 

 

 

마커스 주삭의『책도둑』은 또한번 나에게 커다란 혼란을 가져다 주었다. 

사람들을 잔인하게 학대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끝없는 반성과 깊이 있는 성찰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이렇게 천국과 지옥이라는 전혀 다른 두개가 하나의 세상에서 나타날 수 있는지...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 중,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과와 반성할 줄 모르는 것만큼 크나큰 죄도 없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 또한 잘못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받은 피해와 박해를 또 다른 타인을 박해하는 이유로 삼는 것만큼 용서받지 못할 죄악도 없다. 하물며 그 상대가 과거 자신들을 박해했던 당사자도 아닌 바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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