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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청년 논객 한윤형의 잉여 탐구생활
한윤형 지음 / 어크로스 / 2013년 4월
평점 :
- 장년세대(1950~1960년생): 산업역군으로 통칭되며 산업화세대라고 부른다. 이들 중, 특히
1955년~1963년도에 태어난 이들을 베이비붐세대라고 한다.
- 386세대(1960~1970년생): 민주화세대 혹은 민주화 1.0세대라고 하며,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 내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다.
- X세대(1970~1980년생): 서태지와 HOT로 대표되는 대중문화를 본격적으로 소비한 세대로, 신세대
혹은 정보화 1.0세대라고 부른다.
- N세대(1980~1990년생): 문화적으로 X세대의 계보를 잇고 있으며 십대에는 N세대 혹은 웹
1.0세대로 불리웠다. 2013년을 기점으로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인 이들은 소위 '88만원 세대'로 통칭된다.
- G세대(1990년대~2000년대생): 대한민국 수립 이후, 가장 많은 경제적 자원이 투입된 십대를 보낸
세대로 외국어 능력과 컴퓨터 및 모바일 기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이제 막 20대 초반에 접어든 이들의 미래 또한 바로
직전 세대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 같진 않다.
한윤형의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을 읽었다.
이 책은 2013년 책이 출판된 시점을 기준으로 30대 초반인 저자가 20대 중반 정확하게는 2007년부터 발표한 글들을 엮은
책이다. 2007년도는 소위 '88만원 세대' 담론이 탄생(?)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책을 직접 읽지는 않았으나 당시 사회적으로 교류하던
대다수 사람들이 88만원 세대라는 특수한 환경 덕분에 나는 88만원 세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비슷한 정서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88만원세대'란 19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십대를 보내고 2000년대에 이십대에 접어든 이들로, 이들이 십대를 보내던
시기엔 N세대로 불리웠다. 이들은 전쟁의 폐허위에서 산업화를 거둔 장년세대의 자녀들로 대중문화를 최초로 소비한 세대인 X세대의 뒤를 이어
출현했다. X세대란 197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두 차례의 올림픽을 보면서 십대를 보내고 대학진학률이 채 50%가 되지 않던 90년대 초중반
대학에 입학한 후, 1997년 IMF가 터지기 직전 취업을 한 세대를 말한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나타난 이들을 소위 '88만원 세대'라고 부른다. 이들은 월드컵과 노무현 정부의 탄생과 더불어 이십대를 맞이했다.
6,70년대의 산업화와 80년대의 민주화 그리고 90년대의 대중소비문화를 거친 한국사회에 화룡정점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지도 않았건만 이들의 취업 상황은 녹록찮았다.
저자인 한윤형에 따르면 '88만원세대'는 2007년 당시 88만원을 벌던 세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88만원 세대론'은 원래부터 88만 원을 벌었던 젊은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왔는데도
88만 원을 벌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진 젊은이들을 위한 담론이었다. 그것이야말로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베스트 셀러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이 던지는 질문은 사실 "한국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체제를 재생산할 수 있는가?"다. -한윤형,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p179-
상승과 발전의 시대만을 거쳐온 한국 사회에서 이들은 처음으로 하락과 정체 심지어 쇠퇴를 경험했거나 하게될 세대다.
바로 이와 같은 특징으로 인해,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이들을 위로하는 책들이 볼 물 터지듯 쏟아졌던 것이다.
그런데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우석훈과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한윤형은 이와 같은 '청춘 상담'에 강한 거부감을
표출했다. 그리고 이들의 지적은 현실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다.
김난도의 조언이 결국 그의 강의가 대상으로 하는 서울대생들에게나 최적화된, 80년대 대학을 다닌 기성세대의 꼰대질이라 말해야 할까? 자못
진보적인 척하는 김어준과 김형태의 조언이,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과 동떨어진, 서구 68세대나 한국 386세대의 추억을 더듬는 퇴행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말해야 할까? 엄기호는 이들과는 전혀 다르게 강의실의 청춘들의 생각을 수렴하여 시대를 모색하는 방법을 택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는
결코 20대들의 멘토가 될 수 없었다고 말해야 할까? 물론 이 모든 말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질없어 보인다. 그 이유는 이들의 담론이
소비되는 양상이 이런 식의 조언의 내용에 대한 비판과 전혀 다른 층위에 놓여 있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한윤형,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p139-
저자의 지적처럼 20대는 말을 잃은 세대다. 그들은 침묵함으로써 스스로를 규정한다. 2007년과 2012년 대선에서의 여당 승리를 두고는
'개념없는 20대의 정치 무관심'과 '20대의 보수화'를 원인으로 지목한 목소리들이 한동안 울려퍼졌더랬다. 그러나 20대의 정치무관심과 보수화를
언급하기에 앞서, 소위 386세대의 보수화와 기득권화를 먼저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민중해방과 조국통일을 부르짖던 그들....
80년대에 대학에 입학했던 그들은 소비문화에 젖어 있다며 90년대 학번들을 꾸짖으면서 자신들의 낮은 학점을 마치 계급장처럼 자랑했더랬다.
학사경고가 누적되고 학점이 바닥을 기어도 그들은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 노조가 있는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IMF때에는 비교적 젊은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조기퇴직의 철퇴를 운좋게 피해갔을 뿐만 아니라 대량 퇴직한 50대의 빈자리를 빠르게 차지하면서 예상보다 빠른
승진과 연봉 상승의 혜택을 입은 세대다. 그리고 '양키 고 홈!'을 외치던 그들은 결혼하자마자 2세를 위해 원정출산을 감행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교육의 부조리를 일갈하면서 기꺼이 기러기 아빠가 되길 자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에 의해 탄생한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
상승을 막지 못하자 부동산 투기의 막차에 올라탔고, 2007년과 2012년 대선에선 부동산 가격 하락을 막아줄 것 같은 보수여당에 몰표를 주면서
중산층으로서의 기득권을 필사적으로 수호하고자 했다.
이 정도면 거의 '386 X새끼론'에 버금가지 않을까?
'20대 X새끼론'을 이야기한다면 얼마든지 '386 X새끼론'도 성립될 수 있다는 말이다.
자, 이게 바로 세대 충돌과 세대 담론이 생산되고 확대되는 공식이라 하겠다.
실제로 일부 50대이상 보수 장년층은 386세대와 20대를 세대 갈등의 전위병으로 삼으려 시도한 바 있으며, 이와 같은 시도는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이에 대해 한윤형은 서서히 한국 사회에 뿌리잡기 시작한 세대 담론 속에는 사회문제를 특정 세대의 책임으로 전가하려는 의도가 감추어져있다고
지적한다. 정말이지 탁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세대론에서 설득력을 느끼는 이들의 불안감이 폭로하는 사회문제는 어떤 진보적인 가치 지향에서 잡히는 그런 문제가 인다. 그 불안감이 던지는
질문은 "한국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체제를 재생산 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한국의 중산층은 부동산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을 통해 자산을
축적했고, 약해진 기업의 경쟁력을 신규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들의 임금을 낮추면서 보충해 왔다. 적나라하게 요약하자면 '집값'은 높이고
'사람값'은 낮추는 체제를 운용해온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 체제를 지지해왔던 중산층 자신들의 자녀조차 월급으론 독립을 꿈꾸지 못하게 된
'멋진 신세계다. -한윤형,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p168-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가 팽배한 지금. 세대 갈등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은 심정이다.
그러나 정치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아니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깨달은 지금. 우리는 또 다시 정치를 논해야 하지
않을까?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게 정치라면 이 세상을 바꾸는 것도 결국은 정치이기 때문이다.
20대는 산업화 세대가 더 이상 산업화가 되지 않는 이유로 자신들을 지목해도, 민주화 세대가 더 이상 민주화가 되지 않는 이유로 자신들을
지목해도, 군소리 없이 듣기만 했다. 어쩔 때는 자기네들 스스로 그 말이 좋다고 여기저기 퍼다 나르는 마조히즘적인 작태를 보이기도 했다.
냉소적으로 말한다면 시대를 잘 만나 예술을 그 정도로 할 수 있었다 평할 수 있는 김형태나 신해철 같은 이들이 청년의 무기력함이나 정치 무관심을
질타해도 그게 옳은 말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부모로부터 많은 투자를 받았으나 그 투자를 회수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20대들은 부채감에 시달린다. 그 부채감이 그들로부터 말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나 현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얘기하지 않고 자신들을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사회에서 겉돌게
된다. -한윤형,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p284-
정치적으로 무능한 오늘날 20대의 현실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비평'의 대상이다. 그리고 비평을 넘어 상황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정치적 행동이 절실하다. -한윤형,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p290-
이글을 마주한 순간, 코끝이 시큰해졌다.
20대는 훈계를 해야할 철모르는 다 큰 아이도 아니고 개념없다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이들도 아닌, 그저 내 손주고 자녀이며 조카고 후배일
뿐만 아니라 또한 십대의 선배라는 사실이 불연듯 가슴 깊숙히 파고 들었기 때문이리라.
이제, 다같이 고민해야 한다.
지금 당장 현재가 아닌,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말이다.
미래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해야 한다면 기꺼이 희생하겠다는 각오가 기성세대에게서부터 피어올라야 하는 건 아닐까....?
그게 나이 한살이라도 더 먹은 이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