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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배신 - 생각을 멈추면 깨어나는
앤드류 스마트 지음, 윤태경 옮김 / 미디어윌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최근에 나온 신간이다.
꼼꼼한 독서목록에 의해 읽을 책들을 선별(?)하곤 하는 내가 신간을 그것도 제목조차 들어본 적 없는 책을 집어 드는 경우는 매우 드문 편에
속한다. 앤드류 스마트의 <뇌의 배신> 역시 습관적으로 신간코너를 살피던 내 시선에 포착된 책으로, 일단 제목에 낚인 듯...
주제는 간단명료하다.
창의적인 발상과 철학적 성찰은 바쁘게 일하는 다망(多忙)한 때가 아니라, 소위 '무위(無爲)'의 순간에 찾아온다는 것이다.
뉴턴이 산책을 하다가 때마침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저자는 바로 이와 같은 통찰과
깨달음의 순간인 '아하 모멘트(Aha moment)'를 신경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2001년 위싱턴대학교 신경과학자인 마커스 라이클은 '휴지 상태 네트워크' 또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고 부르는 신경망을 발견한다. 이
두뇌 부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된다.
(...) 두뇌에는 특정 기능을 전담하는 부위가 여럿 존재한다. 예를 들어, 시각 피질은 초기 시각 정보를 처리하고, 편도체는 경고신호를
보내 절체절명의 시기의 위험요소에 맞서서 대응할지, 도망칠지를 결정하도록 돕는다. 휴지 상태 네트워크는 다행스럽게도 길에서 강도를 만나는 일을
겪지 않았을 때나, 누군가에 분신과 같은 휴대전화를 빼앗겨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때에 작동하는 두뇌 부위다. 딱히 하는 일이 없을 때, 휴지
상태 네트워크에 불이 들어와 자신, 즉 본인에게 얘기하기 시작한다.
휴지 상태 네트워크는 고유구조를 띠고 있고 개인별 편차가 거의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딴생각을 하거나 몽상에 잠겼을 때, 화창한 오후에 눈을 감고 잔디밭에 누워 있을 때나 근무 중 창밖을 바라볼 때 활성화된다.
흥미롭게도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아하 모멘트'는 본인 두뇌의 휴지 상태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도록 허용하는 사람들이 더 자주 경험하게 된다.
사실
휴지 상태 네트워크는 상당수 실험심리학자들과 신경과학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개념이다. 외부 신호로 두뇌를 자극하지 않는 상태에서 관찰되는
모든 두뇌 활동은 그저 노이즈일 뿐이라는 것이 인지 신경과학의 기본 가정이기 때문이다.
(한편,) 조지 부자키 교수는 두뇌 활동은 대부분 내면적 요인에 따라 나타난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외부에서 들어오는 신호는 두뇌 활동에
사소한 동요만 일으킬 뿐이다. (....하지만) 어떠한 두뇌도 외부 자극이 차단된 상태에서 개발될 수 없다. 두뇌는 외부 세계를 경험하면서
수정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두뇌는 자기 생성적 패턴을 통해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는 복잡계다.
-앤드류 스마트, <뇌의 배신> p32~37 발췌-
나는 저자가 주장하는 '두뇌의 휴식'이 창의성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내면적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는 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바쁨을 능력 있음으로, 반면 한가함을 무능력으로 연관지어 버리는 현대 사회는 일찍이 자본주의가 자리잡고 팽창하기 시작하면서 노동 시간과
내용을 통제하려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물론, 저자의 주장처럼 인구와 도시의 폭발적인 확장으로 늘어나는 도시 빈민들을 보면서 당시 마틴 루터와 같은 종교인들이 '의욕이 없는
게으름뱅이'로 간주한 것이 노동과 효율에 대한 현대인 특히 미국인의 집착을 불러왔다는 관점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이와 같은
'한가=나태=빈곤'이라는 일차원적인 등식의 성립은 빈곤의 발생 원인이 복잡한 경제, 사회적 환경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태만 때문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는 진작부터 글쓰기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름 괜찮은 책들을 내는 사람들이 주로 교수나 시간적 여유가 많은 직업군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더랬다. 그리고 한가하게 골프치고 놀러(?)다니는 소위 '경영자'들이 비지니스 분야에서 보여주는 놀라운 발상과 통찰력 심지어 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취미를 전문가 못지 않은 안목과 취향으로 발전시켜 나갔는지가 늘 궁금했다.
특히, 이들은 사회적으로 하나같이 바쁜 사람들ㅡ진짜는 바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던 바빠 보이는 사람들ㅡ로 분류되지 않는가?
수업을 하고 연구를 하고 ....
학회에 나가거나... 미팅과 회의를 주재하고....
결재 서류를 읽고 서명을 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책을 집필할 여유가 있으며, 빼어난 통찰력과 전문가 뺨치는 취미와 안목을 갖출 수 있었을까?
이 책은 바로 이와 같은 궁금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명확한 답을 알려준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들은 전혀 바쁘지 않다.
즉, 시간과 노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특별한 극소수의 경우가 아니라면 그들은 하나같이 언제 뭘 어떻게 얼마만큼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인간이란 무릇 남이 시키면 하기 싫은 법이다.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의 경우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신나고
재밌다. 인간은 이처럼 신나고 재밌는 유희의 시간 속에서 성장하고 발전한다.
"진정으로, 철저하게, 철학적으로 나태한 사람만이 철저하게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한 사람은 세상에 혜택을 준다. 이는 피할
수 없는 결론이다."
-크리스토퍼 몰리의 <게으름에 관하여> 中-
저자는 미국 소설가 크리스토퍼 몰리의 <게으름에 관하여>라는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한가는 나태와 빈곤의 원흉이 아니라 개인을
행복으로 이끄는 복음이자 인류를 진보시키는 원동력임을 설득력있게 알려준다.
이와 같은 관점에 비추어, 저자는 노동자의 업무 방식과 노동 시간 등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프로그램인 '테일러주의'와 '식스시그마' 등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와 함께 어린 시절의 공상이야말로 아이의 두뇌 발달과 인성 함양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언급한다.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불안감에 휩싸이는 부모들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직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리하려고만 하는 경영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저자는 어린 아이의 두뇌는 한가지 놀이나 행위에 몰두하는 것처럼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상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건강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는 이처럼 공상할 권리를 아이로부터 빼앗아가는 교육제도와 사회구조가 너무나도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아니
어쩌면 교육제도 자체가 아니라 바로 '내 아이는 남과 다르게!'를 외치면서도 결국은 '남들보다 빠르게!'에 몰두하는 부모의 교육관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부모의 가치관이 변하려면 효율과 능률만을 강조하는 사회적 통념과 제도가 통째로 바뀌지 않으면 안되리라.
다소 엉뚱한 발상이긴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어린 시절 들었던 '먹으면 죽는 약'이라는 이야기 한토막이 떠오른다. 이 이야기는 뭐 다들 알고 있을 테지만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소화(笑話)>중 '지략담(智略譚)'에 나오는 이야기로 상좌스님이 아끼는 꽃병을 실수로 깨버린 동자스님이 평소 스님이 애지중지하면서
'먹으면 죽는 약'이라고 하던 '꿀'을 다 먹어 버린다. 출타했다 돌아온 스님이 자초지종을 묻자, 스님이 아끼는 꽃병을 깨는 죽을 죄를 저질러서
스스로 죽으려고 '먹으면 죽는 약'을 먹었단다.
이야기의 핵심은 어린 스님의 현명함과 상좌스님의 위선을 폭로하는 데에 있다.
역설적이게도 다수의 사람들에게 근면함과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하는 사람들일수록 하나같이 대부분의 시간을 하릴없이 빈둥거리면서 보낸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들은 나태야말로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 주며 창조적 영감의 씨앗이라는 걸 일찌감치 파악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나태의 장점을 깨닫고 나태함을 즐기다가 세상의 진실을 알아버릴까봐 혹은 자신들을 부양하기 위한 노동의 의무를 등한시하거나
저버리려고 할까봐서 칭송받아 마땅한 '나태'에 주홍글씨를 깊게 새겨 놓은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