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좋은 이별 후에 온다 - 더 나은 나를 위한 이별 심리학
선안남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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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지금 난, 이별(?)중임으로...

 

이별의 순간을 조금 더 유예시킬 수는 있어도 이별을 피할 수는 없다.

단지 사람과의 이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정들었던 장소(직장)나 환경, 물건 혹은 애완동물 등과도 언젠가는 이별의 순간이 오고야 만다.

상담심리사인 저자는 이처럼 피할 수 없는 이별일지라도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따라서 상처를 줄일 수도 있고 오히려 더 한층 성숙해질 수 있다고 속삭인다. 

 

그녀의 속삭임은 메마른 대지를 촉촉히 적시는 빗물처럼 가슴 깊이 스며든다.

 

이별은 우리가 아이일 때 품었던 원초적이면서도 맹목적인 아픔을 건드린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를 어른스럽게 만들어 준 모든 사고의 진화와 통제력을 이별 앞에서는 잃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아이로 퇴행한다. 퇴행이란 '미성숙하고 아이 같다고 생각되는 마음으로 돌아가고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나의 퇴행은 물론 타인의 퇴행도 가만히 지켜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별은 크나큰 사건이니 이별 앞에서는 나 자신에게든, 다른 사람에게든 조금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p23

 

 

'그래, 조금은 관대해질 필요가 있어.'

 

그렇지만 전문가인 그녀 역시 몇 번의 이별을 겪으면서, 이별은 아무리 여러번 겪는다하더라도 익숙해지지도 아픔이 줄어들지도 않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모든 이별은 '처음'일 수밖에 없기에 한 번 해봤다고해서 이별이 쉬워지지 않으며, 이전의 이별이 그 다음 이별의 '예행연습'이 될 수도 없고 모든 이별은 그저 '실전'일 뿐이다. -p30

 

♡ 과거에 이별을 경험했다고 해서 현재의 이별 익숙해지거나 그 아픔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내가 이 책을 통해 깨달은 첫번째 통찰이다.

이별은 아무리 반복 연습을 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라는 거... 그리고 애착의 강도가 크면 클수록 이별의 상처도 커지며 애도의 기간 또한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

 

애도는 모든 의미있는 상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다. 애도란, 있었다가 사라진 것, 머물렀다가 떠나간 것, 가졌다가 잃어버린 것, 알았다가 잊어버린 것, 품었다가 밀쳐 낸 것, 살았다가 죽어 버린 것 등 세상의 모든 변화에 대한 아쉬움, 상실감, 그리움을 의미한다. -p246

 

마음껏 울고 충분히 아파하는 애도의 기간이 끝나면, 다시 밥도 먹고 웃기도 하고 또 다른 만남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 속 이별의 대상이 영원히 지워지는 건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

 

 

♡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스토킹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별 후의 흔적은 처음엔 피가 철철 나는 상처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잊고 싶은 아픈 기억이지만, 여기서 또 다시 시간이 흐르면 아련한 추억이 된다. 사랑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굳이 지워버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세월에 흐릿해지다가 결국엔 망각(?) 속으로 빠져 나간다. 그러나 지구가 하루에 한번씩 회전하여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듯... 잊혀졌던 망각은 어느날 불쑥 떠오른다. 

 

추억이란 실제 일어났던 혹은 겪었던 사실에 개인의 감정과 해석이 뒤섞여 마음 속 깊숙히 가라앉은 '어떤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과 추억은 엄연히 다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별은 우리에게 아픔과 상처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추억과 행복을 전해주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님은 갔지만 님을 떠나보내지 않음'으로써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여유로워질 수 있다. 만약 '이별'이라는 게 없었다면, 이 세상 모든 예술작품은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때는 내 눈앞에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사람들은 모두 어디엔가 자신의 자리에서 주어진 몫을 다하며 존재한다. 그들은 우리와 이별했다고 해도 우리들 마음속에는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리울 때마다 사람들은 눈을 감는 것인지도 모른다. -p71

 

♡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말없이 떠난 이별만큼 당사자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일도 없다

 

과거의 이별은 현재의 만남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관계가 어떠했는지, 특히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끝이 났는지에 따라 우리는 다음 관계를 잘 해 나갈 수도, 못 해 나갈 수도 있다. 잘 이별해야 잘 만날 수 있다. 그러니 누군가와 이별을 할 때, 그 이별의 방식이 상대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하고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이별이 이토록 중요함에도 사람들은 이별 앞에서 쉽게 비겁해지고 염치없어지고 유치해진다.

 

이별이 끝을 의미하고 또 이별을 하고 나면 잘못을 만회하거나 설명하거나 번복할 기회를 다시 얻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별은 만남보다 더 강도 높은 예의를 갖춰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든 이별은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게 되는 아픈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남보다 더 신중하게 이별의 방식을 고민하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는다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기습적으로 쪽지만 달랑 남겨 놓고 도망치는 것은 남겨질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러면 상대방 역시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됨으로써 제대로 이별하지 못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별 앞에서 작아지고 마음 약해진 탓에 예의를 차리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이별 앞에서 비겁하고 무례하며 성급하게 등을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이별 방식으로 자존심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 많다.

 

이별앞에서 버겁해지고 예의를 차리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고 이를 이야기할 내면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면의 힘이 약한 사람은 '진지함과 솔직함'이 필요한 순간에 도망치거나 변명하기 바쁘다.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거나 불편한 진실을 불러왔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그 결과를 감수할 만큼의 결단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p93~95

 

'이별의 방식이야말로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다.'

이 문장 앞에서 오랫동안 서성였다.

 

그동안 나의 뒷모습은 어떠했을까...? 

상대방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겨졌을까...? 아니면, 떠올리고 싶지도 않을만큼 안 좋았을까...? 

 

사랑하면 누구나 아이처럼 유치해지지만, 이별 앞에서 만큼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 또 공감한다.

 

 

♡  만남이 아닌 이별에 이르러서야 한 사람의 본질과 그 만남(관계)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

 

결단력과 용기는 이별을 고하는 예의 바른 어른들 뿐 아니라 사랑을 원하는 모든 어른들이 갖춰야할 마음의 덕목이다. (...) 물론 마음을 다시 열어도 또 상처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상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하는 결단과 용기는 원하는 관계와 만남(사랑)을 얻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우리는 이렇게 상처를 딛고 서는 경험을 통해 이별하고도, 또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이별을 해도 괜찮다고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누군가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며 '함께'를 약속할 수 있다. 그 약속은 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에게 어른이 되어 준다면 그 약속은 지켜질 가능성이 더 커진다. -p99~100

 

사랑을 얻기 위해서만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다.  

이미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사랑에 이별을 고할 때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예의 바른 어른으로서 예의 바른 뒷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말이다.

만남이 아닌 이별의 시점에 이르러서야 한 사람의 본질과 그 만남(관계)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비수처럼 꽂혔다.

 

 

♡  이별은 발 밑에, 사랑은 심장 위에

 

 

이처럼 이별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동안 이별을 참 쉽게도 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재미있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의 마음을 외면한 채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관계에서는 명백한 권력자이자 상처의 가해자이며 잔인한 폭군과 같았던 인물도 다른 관계에서는 맥없이 가슴을 짓밟히는 고통을 감내하고, 그러면서도 상대를 원하고, 그럼으로써 무기력한 피해자가 된다. 권력을 덜 가졌거나 혹은 권력을 전혀 갖지 못한, 이미 피해자이거나 앞으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랑의 포로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관계에 있어서는 항상 권력자가 되는 일도 항상 포로가 되는 일도 불가능하다. -p133

 

'관계는 곧 권력이다.'라는 말이 있다.

모든 관계에는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는 뜻이다. 더 먼저 더 많이 더 오래 마음을 준 사람이 언제나 더 아플 수밖에 없는 게 사랑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얼마나 불공평한 이치란 말인가. 그래서 차라리 사랑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굳이 분류하자면 나 역시 이런 부류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잃어버리는 아픔과 고통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애초부터 관계에 많은 기대를 걸지 않고 스스로를 단독 행동에 익숙해지도록 훈련해 온 사람이 있다. 또 한편에는 관계가 끝나기도 전에 '혼자'가 될까 봐  두려워 여러 관계에 발을 디디고 서 있거나, 하나의 관계가 끝나면 충분히 애도할 시간도 가지지 않은 채 허겁지겁 다른 관계에 발을 내딛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별이 두려워 혼자임을 택하는 것도, 이별이 올까 봐 서둘러 다른 만남을 준비하는 것도 결국에 마음에 상처가 된다. -p247

 

 

인생은 '그래서'로 이어지는 인과적 관계가 분명한 과학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이어지는 윤리적 관계 즉, 철학이라고 한다.

우리의 삶에서 이별이 아무리 아픈 상처를 수반한다 하더라도 만남과 사랑을 피할 수 없다면, 정답은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랑할 것!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랑하자

 

사랑한 만큼 아프겠지만 또 아픈 만큼 굳건해진다.

상실을 두려워한다면 다시 사랑할 수 없다. 여전히 아프고 아직도 아프지만 언제나 새로운 만남과 이별을 해내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끝이 어디일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있는 동안 만남에 충실했듯, 이별 후에는 충분히 애도함으로써 상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p253

 

 

책으로부터 많은 위안과 위로를 받곤 했지만, 이번만큼 도움이 되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사람과의 인연처럼 책 역시 인연, 즉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잊기로 했고 잊었다고 생각했으나,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별 것 아니지만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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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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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부커상 수상작으로, 2012년 국내에 출간된 이후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비롯해서 각종 미디어의 집중 조명을 받았던 작품...

한결같은 극찬과 함께 쏟아지던 예언들(?)....

이중 가장 압권이었던 건, '마지막 반전으로 책을 다 읽은 다음, 처음부터 다시 읽게 된다'는 예언이었다.

 

그만큼 난 이 작품에 대해서 읽기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에 압도 당하고 말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마자 충격에 휩싸인 채, 내가 이해한 결말이 맞는지 확인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작가의 이름과 작품명을 미처 다 입력하기도 전에 자동 검색 기능으로 완성된 문장 역시,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결말'이었다.

 

책 한권을 읽은 후 이처럼 누군가와 미치도록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쳤던 적도 처음이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 걸었다. 걷고 또 걷고...

생각이 멈추면 걸음도 멈추고... 생각이 이어지면 걸음도 다시 이어지고...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말을 걸고 싶은 욕망을 꾹꾹 누르면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를 비롯해서 이 작품을 나보다 먼저 읽었던 사람들이 예언(?)한 그대로...

 

 

 

맨 부커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을 때 150여 페이지밖에 안되는 짧은(?) 작품 길이가 문제가 되자, 줄리언 반스는 '수많은 독자들이 나에게 책을 다 읽자마자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고 말했다. 고로 나는 이 작품이 삼백 페이지짜리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단다. 

 

작가의 예언대로 하기에 앞서 나는 우선 이동진의 빨간책방부터 뒤졌다. 그리고 진작부터 그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단 한편도 들어보지 않았던 '빨책'을 처음으로 들었다. 

 

 

우선 이동진 기자는 원문 제목을 언급하면서 제목의 한국어 번역을 걸고 넘어갔고, 김중혁 작가는 '반어'라고 되받아쳤다.

 

그렇지만 영어 원제목을 눈여겨 보지 않았던 나로선, 이 작품의 한국어 제목이 상당히 좋다고 생각했더랬다. 그래서 독후감 제목도 '예감은 종종 틀리지 않고, 기억은 언제나 왜곡된다'로 정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눈치챘을 수도 있지만, 나는 예감을 '예언'으로 해석했다.

 

이 작품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경솔한 예언이 현실이 되면서 불러온 비극으로 인한, 돌이킬 수없는 회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단순히 사건만을 쫒는다면 그러니까 사건의 발생 원인과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 여부에만 집중한다면 작품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것이므로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한다.  그러므로 작품의 줄거리를 두고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라는 따위의 질문일랑은 더 이상 하지 말기로 하자.

 

 

'빨책'의 두 남자들은 사춘기 남자애들의 우정을 다룬 앞부분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듯 싶었다. 이동진기자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비유했고, 김중혁 작가는 남자애들이 주고 받는 농담에 포복절도했음을 고백했다. 

 

반면 나는, 40여년의 시차를 두고 펼쳐지는 1부와 2부는 소위 '평행이론'이 완벽하게 작용한 사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부에서 했던 등장인물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는 2부를 불러오는 '기폭제'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역사 수업 시간의 문답들은 작품의 핵심 주제와 이어지며, 롭슨의 자살은 에이드리언의 자살과 놀랍도록 닮아있고, 역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수천년 동안 천편일률적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거...


 

1부가 2부를 존재하게 하는 소위 '복선'이라고 한다면, 2부는 시야가 훨씬 확대되어 삶과 인생을 아우른다.  나는 '시간과 세월' 그리고 '나이 듦'에 대한 토니의 독백 부분에서 여러차례 걸음을 멈추어야만 했다. 나는 이 작품의 주제를 두개로 나누어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모든 기억은 왜곡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이듦의 의미' 즉 '시간의 의미'와 '시간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하는 문제라 하겠다. 

 

 

더 정확히 말해 철학자를 고를 수 있는 가짓수가 하나 더 늘었다. 앨릭스가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을 읽었다면, 에이드리언은 카뮈와 니체를 읽었다. 나는 조지 오웰과 오더스 헉슬리를 읽었다. 콜린은 보들레르와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어디까지나 도식화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p22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에서 그는 검시관에게 자신의 자살 이유를 설명해놓았다. 그는 삶이 바란 적이 없음에도 받게 된 선물이며, 사유하는 자는 삶의 본질과 그 삶에 딸린 조건 모두를 시험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만약 바란 적이 없는 그 선물을 포기하겠다고 결정했다면, 결정대로 행동을 취할 윤리적, 인간적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p88

 

 

이야기는 세명의 친구 집단에 새로운 전학생이 끼어들면서 시작된다. 문제는 이 전학생이 범상치 않다는 것. 그가 카뮈와 니체를 읽었다는 건, 단순히 똑똑한 걸 너머 '실존'의 의미를 깨닫고 있음을 의미한다. '삶이란 바란 적이 없음에도 받게 되는 선물'이라는 것이야말로 카뮈 문학의 핵심이자 니체 철학의 시작이지 않은가.

 

'탄생 은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소멸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소멸' 즉 '자살' 이야말로 인간의 절대적 자유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하겠다. 독자인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에이드리언의 죽음(혹은 자살)을 일찌감치 예감했더랬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그런가, 과연? 어디에서 읽었나?"

"라그랑주입니다. 타르리크 라그랑주. 프랑스인입니다."

"그런 추측을 할 수도 있겠지. 예를 들어 설명해줄 수 있겠나?"

"롭슨의 자살이 그 예입니다." -p34

 

 

나는 살아남았다. '그는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과거, 조 헌트 영감에게 내가 넉살좋게 단언한 것과 달리,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가깝다는 것을. -p101

 

 

역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는 역사 선생님(조 헌트)의 질문에 토니가 '역사란 승자의 거짓말일 뿐'이라고 답하자, 선생님은 그건 '패자의 자기변명이기도 하다'고 답한다. 이에, 에이드리언은 위 인용문에서 보듯, '역사란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문서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자기 확신'이라고 답한다. 이 문장이 왜 그렇게 중요하며 여러 사람들에 의해 회자되는지는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난 다음 깨닫게 된다.  

 

한가지 재미있는 건, 빨책에서 라그랑주라는 프랑스인은 가공의 인물로,  줄리언 반스의  'Barnes'가 불어로 '마구간'이라는 뜻이 있는데, 마구간을 불어로 '라그랑주'라고 한단다. 그러므로 작품 속의 그 문장은 '줄리언 반스 가라사대~'라고 하겠다. 작가의 '위트'에 미소짓게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40년이 물처럼 흘러간 후,

토니는 역사란 승자의 기록도 패자의 변명도 아닌 살아남은 자의 기억 즉 회고에 가깝다.고 자신이 40년 전에 했던 대답을 수정한다.

 

이 문장 앞에서 나는 오랫동안 머물렀다.

내가 왜곡했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올라서...

 

당시에는 끔찍하고 고통스러웠던 일조차도 세월이 흐를수록 아름답게 느껴지는 연유를 이제서야 알 것 같다. 그건 바로 그 기억을 떠올릴때마다 조금씩 기억을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말 전달하기'라는 게임만 보더라도 두 세 사람을 거친 말(이야기)이 어떻게 변형 왜곡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섣불리 '지나간 모든 것들은 아름답다'고 주장하며, 과거에 대한 화해와 용서를 권장하는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p162

 

젊을 때는 서른 살 넘은 사람들이 모두 중년으로 보이고, 쉰살을 넘은 이들은 골동품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시간은, 유유히 흘러가면서 우리의 생각이 그리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해준다. -p107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과 천양지차인 삶을 허황되게 꿈꾸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런 게 자기만족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상상력이나 야심의 부족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아마도 사실은, 그렇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결국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일들을 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별종은 못 돼서 그런 것 같다. -p114

 

살아갈 날이 줄어들수록 헛되이 살고 싶지 않게 된다.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 자투리 시간을 아무리 잘 활용한다 해도......여튼, 그건 젊었을 때는 미처 예견하지 못하는 문제 중 하나다. -p120

 

 

나도 그랬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내가 십대였을 때, 30살 넘은 선생님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렇게 재밌어하고 흥분하는 일들에 대해서 그들은 어쩌면 그렇게 무심하고 무덤덤할 수 있는지...? 시간은 너무도 느려터졌고 매순간이 참을 수 없이 따분하고 심심하건만, 그들은 어째서 입만 열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말하는 것인지...? 당시의 나로선 이해불가였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삶은 물처럼 흘러간다는 걸....

느리기만 하던 세월은 마치 구름처럼 흩어져 사라진다는 걸....

처음엔 한없이 친절하기만 하던 시간이 결국은 뒤통수를 친다는 걸...

 

 

이십대에는 자신의 목표와 목적이 혼란스럽고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해도, 인생 자체와, 또 인생에서의 자신의 실존과 장차 가능한 바를 강하게 의식한다. 그후로......그후로 기억은 더 불확실해지고, 더 중복되고, 더 되감기하게 되고, 왜곡이 더 심해진다. 젊을 때는 산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 게 가능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돼버린다. 충돌사고 현황을 기록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재하는 블랙박스와 비슷한 데가 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테이프는 자체적으로 기억을 지운다. -p182

 

 

십대와 이십대 초반의 나는, 스스로 마흔쯤 되면 세상의 스승이 되어 있을 줄 알았더랬다.

 

이렇게 기껏(?) 소설이나 읽고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마음 한켠이 조여들며...

윗니와 아랫니를 앙당물고...

나도 모르게 자꾸만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할 줄은... 미처 몰랐더랬다.

 

 

토니도 그랬을 것이다.

아마 미처 몰랐을 것이다.

십대를 막 지난 이십대 초반, 타인을 죽음으로 내몰 만큼, 타인의 삶을 절망 속으로 던져 넣을만큼, 자신이 얼마나 경솔하고 치사하며 유치했었는지를...

 

 

에이드리언 식으로 말하면 나는 삶을 포기했고, 삶을 시험해보는 것도 포기했고, 삶이 닥쳐오는 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난생 처음, 나는 내 온 인생에 대해 한결 총체적인-자기연민과 자기혐오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후회의 감정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살아온 어느 하루도 후회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젊은 시절 알게 된 친구들을 잃었다. 아내의 사랑을 잃었다. 즐겼던 야망을 저버렸다. 인생이 너무 성가시지 않기를 바랐고 성공을 거두었다. 이 얼마나 옹색한 일인가. -p173

 

 

40년이 지난 어느날.

그는 회한에 젖는다. 자신이 지나온 물같은 삶속에 젖는다.

죄책감도 미안감도 아닌, 자기혐오와 자기연민의 중간 어디쯤에 젖어든다.  

 

 

 

이 책은 내용만 놓고 본다면 통속연애소설이고, 플롯과 전개방식만 놓고 보면 반전이 돋보이는 영락없는 추리소설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명작이다.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인간의 마음 속 저 깊은 곳까지 훤히 비추는 절대거울이요, 시간과 세월과 삶과 나이 듦의 의미을 알려주는 절대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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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어제 알아버린 이야기에 이쪽이 구멍 뚫리고...

오늘 알아버린 이야기에 저쪽이 구멍 뚫리고...

내일 알아버릴 이야기에 또 하나 구멍 뚫리고...

 


 

산다는 건...


이곳저곳 구멍난 마음 한복판으로,

 바람이 지나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간다.

 

산다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뎌내는 것이므로...


+



 







 


삶이란,

내가 원하는 걸 근원적으로 얻을 수 없다는 걸 인지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삶이란,

'그래서'로 연결되는 과학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이어지는 윤리적 철학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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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기로 했고 잊었다고 생각했으나,

아직 잊지 못했다.』

.

.

.

잊는다는 건,

잊었다 싶으면, 어느순간 불연듯 떠오르고... 

진짜 다 잊었다 생각했는데, 또 다시 떠오르는...


이런 과정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바라는 마음에서 바라보는 마음으로 변해있는 거...

그제서야 진짜 이별했음을 인정하게 되는 거...



 


 


 



 

 

 

 


 

그녀의 웃음소리뿐 - 박완규 & 전인권 & 윤도현 & JK김동욱


 

나의 마음속에 항상 들려오는

그대와 같이 걷던 그길가에 빗소리

하늘은 맑아있고 햇살은 따스한데

담배연기는 한숨되어


하루를 너의 생각 하면서 걷다가 바라본 하늘엔

흰구름은 말이없이 흐르고 푸르름 변함이 없건만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너는 무슨말을 했던가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가는걸

 


어느 지나간날에 오늘이 생각날까 그대 웃으며

큰소리로 내게물었지 그날은 지나가고

아무 기억도 없이 그저 그녀의 웃음소리뿐


하루를 너의 생각하면서 걷다가 바라본 하늘엔

흰구름은 말이없이 흐르고 푸르름 변함이 없건만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너는 무슨말을 했던가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가는걸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너는 무슨말을 했던가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가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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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12년 - Movie Tie-in 펭귄클래식 139
솔로몬 노섭 지음, 유수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동일한 주제를 엇비슷하게 다룬 작품들을 종종 접하곤 한다.

예를 들면,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든지.... 나치의 홀로코스트라든지... 아니면, 미국의 인종차별주의라든지...

주제도 결론도 심지어는 이야기 전개 방식도 매우 흡사하다. 예술작품의 가장 큰 특징을 '창조성'이라고 본다면, 이런 류의 작품들은 예술의 범주에서 논할 수 없다.

 

'뻔하고 식상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작품들을 접할 때마다 특별한 감동을 받는 이유는 뭘까?

바로 실제로 일어난 일, 즉 '사실성'때문이 아닐까 싶다. 창조성이 아무리 뛰어난 작품일지라도 사실성 앞에서 만큼은 한발 물러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기록문학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근간이리라. 


이 책의 주인공인 솔로몬 노섭은 1808년 뉴욕주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지만 1841년 워싱턴 DC에서 납치되어 무려 12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다가 극적으로 구출된 실존 인물이다.

 

『노예 12년』는 노섭이 풀려난 이후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기록한 책으로, 일말의 과장도 없이 '사실 그대로'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특히 책이 출간되기 한 해전인 1852년에 나온 해리엇 비처 스토의 소설『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비교되면서 그 가치가 더욱 커졌다고 하겠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출간되자마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키면서 흑인노예제 폐지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으나, 꾸며진 이야기라는 점에서 노예제 지지자들의 공격을 받아야만 했으나 솔로몬 노섭의 논픽션 자서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이 출판되면서 스토의 소설속 이야기들이 전혀 근거 없는 '사실무근'만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솔로몬 노섭은 12년 동안 3번이나 주인이 바뀌는 와중에서도 자유을 향한 투쟁을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짐승같은 주인으로부터 짐승처럼 학대를 당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두 딸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든든한 남편이었던 그가 어떻게 납치되어 노예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이 책 초반부에 잘 나와있다. 다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불운을 인간을 믿었던 그의 선량함과 남다른 바이올린 솜씨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아! 그때까지 나는 인간을 향한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서도, 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간이 얼마나 사악한 짓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몰랐던 것이다.

(...)

'하느님의 자비로운 중재로 제가 당신의 피조물의 피로 제 손을 더럽히는 일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놓여보지 않은 사람들은 나를 호되게 비난하지 말라. 쇠사슬로 몸이 묶이고 매질을 당하기 전까지는, 집과 가족을 떠나 속박의 땅으로 가던 나와 똑같은 처지에 놓이기 전까지는, 자유를 얻으려고 그런 짓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단언하지 말라. 하느님과 인간의 눈에 내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솔로몬 노섭, 『노예 12년』p49~67 中 발췌-

 

 

자신을 곡마단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로 고용하겠다고 속여 노예 상인 버치에게 팔아 버린 메릴 브라운과 에이브럼 해밀턴에 대한 노섭의 평가는 유보적이다. 그들이 준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정황상 그들의 악행이 분명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노섭은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단정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노섭은 자신의 이야기를 정확성과 사실성에 입각하여 기록하고자 하였다. 그러니 이 책은 사실 그 자체라고 믿어도 무방할 것 같다. 

 

노섭의 이야기를 받아 적은 데이비드 윌슨의 필체가 객관적이고 담담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번 읽기를 멈추고 숨을 골라야만 했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분노와 실망 그리고 역시 같은 이유로 생겨나는 인간에 대한 희망으로 여러번 가슴이 무너질 각오를 하기 전까지는 이 책을 함부로 펼치지 마시라.


특히, 인간 본성에 대한 솔로몬의 깊이 있는 성찰과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순간조차도 애써 담담하게 표현하는 그의 인간성 앞에서는 그 누구라도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두려움과 무지 속에서 자란 노예들은 백인의 눈길 앞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비굴하게 움츠려드는지 자각조차 못한다. -p68

 

태양이 그토록 불타오르듯 내리쬐고 또 그토록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그날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머릿속은 셀 수 없는 생각으로 넘쳐나지만,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온 종일 생각해 봤지만, 단 한번도 주인이 먹여주고 입혀주고 보살펴주고 매질도 하는 남부 노예의 삶이 북부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유색인종의 삶보다 더 행복하다는 결론을 얻지 못했다고만 말해두겠다. -113

 

피를 빨아먹는 악마같은 주인의 노예로 살아가면서 극한의 공포를 견뎌내는 것은 몹시 힘들었다. 나는 신께서 내가 꼭 살아야 할 이유이기도 한 사랑하는 내 아이들을 주시기 전에 왜 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p117~118

 

바유뵈프의 또 다른 농장주 짐 번스는 여자들만 노예로 부렸다. 그는 잔인성을 뽐냈으며, 근방에서는 엡스보다 더 철저하고 기운 넘치는 사람으로 평판이 나 있었다.  '자신도 짐승인 주제에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짐승들에 대한 약간의 자비심도 없이 어리석게도 자신의 재산을 만들어 주는 바로 그 힘을 향해 채찍질을 해댔다. -p165

 

오만과 질투 그리고 욕심과 분노로 가득 찬 복수극으로 인해 주인 엡스 내외의 집에는 다툼과 소란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가정불화의 불똥은 순진하고 마음씨 착한 노예 팻시가 받아야만 했다. -p178

 

남부에 존재하는 잔혹한 형태의 노예제 역시 남부인들의 성정과 기질을 난폭하게 만드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날마다 인간이 고통받는 모습, 즉 고통에 찬 노예들의 비명 소리, 무자비한 채찍질을 당하는 노예의 몸부림, 개한테 잔혹하게 물리고 뜯기는 모습, 사람이 죽어도 신경조차 쓰지 않으며 관을 짜거나 수의도 입히지 않고 그냥 묻어버리는 일 등을 목격하는 이들로서는 생명의 고귀함에 무뎌지고 잔혹해지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p182

 

그러나 모든 노예주인이 이처럼 잔인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드물긴 했지만...

 

노섭 역시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첫번째 주인인 윌리엄 포드 역시 자비심 넘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윌리엄 포드는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는 바람에 1년 반만에 노섭을 티비츠에게 넘겨야만 했다. 티비츠를 거쳐 세번째이자 마지막 주인인 엡스밑에서 노섭은 10여년을 노예로 살아야만 했다. 물론, 그도 도망을 치려고 했고 폭동을 일으키려고도 했으며 가족과 지인에게 편지를 부치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베스라는 백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노섭은 베스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는 미혼, 정확히 말하자면 독신주의의 노총각이었고 가족이나 왕래하는 친척도 없는 혈혈단신이었다.'라고만 적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베스가 엡스와 나눈 대화를 정확하게 기억했다가 기록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베스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법이란 것도 가변적이며 불변의 진리는 아닙니다. 법이 허용한다면 아무거나 해도 되나요?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영혼의 색깔마저 달라야 합니까? 하! 이 노예제도는 잔인할 뿐만 아니라 정당성마저 없는 제도입니다. 엡스씨는 죽어도 노예를 포기하시지 못하겠지만, 저는 루이지애나의 제일 좋은 농장을 준다고 해도 노예를 사지는 않을 겁니다." 


 -솔로몬 노섭, 『노예 12년』p239~241 中-

 

 

'침묵은 동조'라고 했던가.

악은 '어쩔 수 없다.'라는 식으로 자포자기하는 다수의 침묵을 양식 삼아 존속된다. 베스는 백인이었지만 노예제도의 부당성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용감하게 표현한 인물이다.


역사는, 인류 사회는 이런 인물들에 의해서 조금씩 진보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노섭이 뉴올리언스로 오는 배 안에서 보낸 편지가 가족에게 정확히 전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섭의 정확한 위치와 주소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를 구출할 수 없었다. 그 이후 배에서 내린 노섭은 자신의 이름이 노예 상인 버치의 동업자 시어필러스 프리먼에 의해 '플렛'으로 바뀌었음을 알게 된다. 그뒤, 노섭은 우연히 농장으로 목수일을 하러 온 베스를 만나 그를 통해 고향의 지인들에게 편지를 부쳐 구출될 때까지 플렛으로 불리운다. 이렇게 해서 가족들이 그를 수소문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마저 사라져 버린 것이다.


모든 노예들이 태어날때부터 전부 노예였던 건 아닐 것이다. 솔로몬 노섭처럼 분명 자유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예로 둔갑(?)된 노예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노섭처럼 구출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노섭은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바이올린으로 다져진 올바른 성정과 곧은 마음이 특별히 그를 구원했을지도 모른다. 

 

바이올린 연주 일자리를 주겠다는 꾐에 속아 노예로 팔린 노섭이건만, 단 한번도 바이올린이나 바이올린을 연주할 줄 알았던 사실을 원망한 적이 없다는 점이야말로 이와 같은 그의 성품을 잘 설명해준다.그는 오히려 노예 생활 중간중간 바이올린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자신 또한 치유받았노라고 고백한다.


 

바이올린은 내 동반자였다. 내가 기쁠 때는 나와 함께 기쁨의 노래를 불러주고, 슬플 때는 부드러운 위로의 노래를 불러준 내 친구, 간혹 불행한 운명에 대한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바이올린 연주가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곤 했다. 우리 노예들에게 한두 시간의 휴식이 허락되는 안식일이면 나는 바이올린을 들고 늪지대 근처의 조용한 곳으로 가 바이올린이 들려주는 상냥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또 바이올린은 내가 이름을 날리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연주가 아니었다면 나에 대해 잘 몰랐을 이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고, 해마다 열리는 크리스마스 연회에서 가장 상석에 앉을 수 있었던 것도 악기 연주 실력 덕분이었다.

 

-솔로몬 노섭, 『노예 12년』p192~193 中-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노예가 정말 물건처럼 매매,대여,상속되며 다른 농장에서 일하게 한 후 주인이 일당을 챙긴다는 사실과 주인이 써준 통행증 없이는 이동의 자유도 없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글을 읽거나 쓸 수 없었으며, 노예가 아닌 자유인라고 주장하는 노예는 재산을 잃을 것을 두려워한 주인에 의해서 더 외진 곳으로 재빨리 매매된다는 것과 도망친 노예를 추적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통행증 없는 흑인 노예를 발견한 백인은 그 노예를 소유하거나 판매할 수 있었고, 원래 주인이 되찾아오기 위해선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도 알게 된다.


 

마치 그물망과 같아서 한번 노예의 삶에 빠지면 북부의 자유인일지라도 천운이 닿지 않는 한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한편,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노섭은 자신을 노예로 만들어 팔아버린 노예 상인을 법정에 고소하지만 그들은 무죄로 풀려나고 만다. 이후, 그는 이 책을 출판하고 노예제의 참상을 고발하는 연설과 강연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던 중 행방이 묘연해졌으며 사망 연도는 1863~1875년로 추정되고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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