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가난해서
윤준가 지음 / 미래의창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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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우연히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제목에 낚여(?) 목록에 저장해놓았었는데, 어제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읽고 싶었던 <유럽사 산책>이 1권만 있고 2권은 없어서 쉬어간다는 의미에서 교양서 위주로 대출해온 여섯 권 중 이 책이 끼어 있었다. 사이즈가 작아 손에 폭 안기는 게 의심스러웠지만(?) 머리 식힌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제일 먼저 읽기 시작했다. 


언젠가 서촌이며 종로5가 쪽방촌이 급부상하면서 문 열면 바로 골목인 동네가 관광객들로 떠들썩했다. 그때, '가난도 구경거리가 되는구나' 싶었고, 늘 그렇듯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챙기듯' 지가와 임대료 상승의 혜택은 고스란히 집주인들에게 돌아갔더랬다. 



암튼, 책의 배경에 대해 좀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하여 출간되었다는데, 내가 느낀 소감은 이렇다. 




첫째, 가난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웠으나 결국은 평범한 외주 출판노동자의 일상 기록이었다.  


저자가 좋은 교육을 받고 출판사 편집자라는 전문직으로 경력을 쌓을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이런 책을 쓸 수 있을 만큼 자존감 있는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가난이라는 덫에 갇히지 않고 어떻게든 자식 세대에겐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부모 세대의 굳은 의지와 실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부모 세대에게 가난을 당연한 듯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배신에 가깝지 않을까. 소박하다 못해 태평한 평안함 속에서 조금씩 배어 나오는 무책임과 무기력에 살짝 분노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빈곤을 마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개인의 선택으로 둔갑시키고 미화시키는 것 또한 불편했고.



내 삶은 엄마와 다르다. 나는 엄마와 다른 시대를 살아간다.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가질 수 있는 성취는 엄마보다 많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엄마와 아빠가 열심히 일해 교육시킨 결과다. 미안한 이유는 내가 누리는 것들이 엄마 아빠의 노력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부모의 노력은 자식에게 들어가고, 자식에게 효력을 발휘한다. 정작 부모들은 큰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자식의 인생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싶어하는 부모들의 마음은. -198쪽 




둘째, 그럼에도불구하고 몇 가지 상념들과 느낌은 내 가슴 밑바닥을 휘저어 놓았다.


가난에 의한 기억과 경험은 단순히 과거로만 남지 않는다. 말투, 행동, 입맛, 취향, 취미, 분위기 등등...  그 사람이 머물다 떠난 공기 속에도 둥둥 떠다닌다.  

저자는 줄곧 가난했고, 여전히 가난하며, 앞으로도 계속 가난할 것이다.

그래서 부촌까지는 아니어도 중산층이 거주하는 안전한 동네의 중대형 아파트에서 살아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인간의 품위와 예의에 대해선 안타깝지만 영원히 모를 것이다.  


항상 밝고 인사성 바른 아이들...

마트든 음식점이든 재촉하거나 서두르지 않는 여유로움...

교통질서를 지키며 타인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운전자들과 보행자들...  

피아노 연주나 약간의 생활 소음 정도만 아주 가끔 날 뿐, 사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알고보니, 부모들이 어렸을 때부터 아파트에서 성장한 어른들이라 실내에선 아이들에게도 뒷꿈치를 들고 걷거나 슬라이딩하듯 걷도록 교육을 시켰고,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건 가족이 화목하다는 뜻이다. 확실히 분노조절장애는 지역병이다. 가난한 동네 출신들이 유독 많이 걸리는 것 같다. 


나도 이런 곳에 살게 되면서 더이상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후줄근한 옷차림을 하지 않게 되었고, 목청 높여 고함을 치는 일이 사라졌으며, 주차 라인을 잘 지켜 차를 세우고, 앞사람을 앞질러 지나가거나 마트줄이 길어져도 초조해하지 않게 되었다. 

의지만으론 쉽사리 바뀌지 않던 것들이 그냥 이사 한 번 했을 뿐인데 특별한 노력없이도 바뀌더라.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환경이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는 걸...  

좁고 더러운 집에 살면 꿈도 작아지고 속도 좁아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슬그머니 머무는 집과 사는 동네를 닮아가는 것 같다.

좀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좀더 좋은 환경으로 옮겨가려고 스스로 독려하고 노력해야 한다. 자포자기하지 말고...




그때 알게 됐다. 싸구려에다 오래되기까지 한 장판은 아무리 청소를 해도 깨끗하지 않는다는 걸. 가난한 살림이 더러워 보이는 건 꼭 게을러서가 아니라는 걸. 룸메(남편)는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열심히 바닥을 닦았지만 여전히 더러워 보였다. 바닥뿐만이 아니었다. 부엌의 벽과 싱크대 사이에 틈새가 너무 좁아 청소를 전혀 할 수 없는 공간이 있었는데, 이전 세입자 혹은 그 이전 세입자부터 차곡차곡 쌓인 먼지와 때가 잔뜩 낀 그곳은 너무 더러워서 쳐다보기도 싫었다. 나는 그리 깔끔 떠는 타입이 아닌데도 집에 그런 구석이 있다는 걸 참기가 힘들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화장실 문은 계속해서 물기가 닿으니 페인트가 벗겨지고 나무가 썩어갔다. 화장실이 워낙 좁아서 물방울이 튀지 않게 샤워나 청소를 하는 건 불가능했다. 문을 통째로 갈지 않는 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좁고 더러운 집'. 내 마음속에서 우리 집이 그랬다. -74쪽  




셋째, 일하는 여성으로서 일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비하를 내재화했다.



왜 모든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는걸까?

자기 일이 없고 전업주부로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들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과 주장만  '에코 효과'처럼 지속적으로 접하면, 웬지 모를 '피해자 의식'과 결합해서 마치 거대한 사회적 물결이 형성된 것처럼 느껴지면서 또다른 관점과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가부장제는 초부유층과 저소득층에서 오히려 더 강하게 남아 있으며, 중산층에서 가장 덜하다는 걸 실감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착각현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자발적으로 전업주부가 되었거나 되고 싶고, 일하지 않고도 내가 만족하는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다면 그 경제적 바탕이 배우자의 수입이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이든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의 목소리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일하지 않는 혹은 일할 수 없는 사람은 사람으로서 가치가 없다'라는 논리가 통용될 수 없듯이  '일하지 않는 여성은 가치가 없다'는 식의 사고가 페미니즘의 중심 코어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은 모두들 나보다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다녔고 아이들은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을 받았다. 남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다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자신의 일을 찾으려면 무척이나 힘든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남편들은 돈 번다는 말을 방패로 삼고, 아내를 '도와준다'며 작은 집안일 하나에도 생색을 냈다. 가능한 만큼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권리라 여기는 것 같았다. 남편의 외벌이로도 온 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안정과 행복인 동시에 여성의 발목을 붙잡는 일종의 함정으로 작동했다. 사회는 우리 세대 여성들에게 가부장제에 순응하며 살 것인지, 아니면 싸우고 개척하며 자기 자리를 지킬 것인지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130쪽






마지막으로, 브런치라는 SNS의 수준이 이 정도라는 데 조금 실망했다.


일단은 개인 블로그에 올려도 그만인 듯한, 아마추어보다는 조금 낫고 전문가보다는 훨씬 못한 콘텐츠와 글솜씨들은 마치 독서로 성장하고자 하는 독자를 쉽고 편안한 저가 취향의 세계로 인도해 싸구려 소비자로서의 역할에만 머물게 만드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저자가 물질에 대한 저가 취향으로 소비자를 인도한다고 지적한  '다이소 함정'의 출판물 버전은 아닐런지 브런치 운영자들은 고민해봐야 한다. 



조심스럽게 말해보자면 다이소는 취향을 죽이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1,000원, 2,000원짜리 조악한 제품들을 구매하다 보면 그만 다이소의 세계에 갇혀버린다. 그곳에서 살 수 있는 제품을 굳이 다른 데서 찾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아니 세상까지 갈 것도 없다. 한동네에만 해도 다양한 질의 물건이 존재하는데, 가성비라는 미명하에 갇히면 뭐가 더 좋으니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입장할 때부터 어느 정도 체념하고 들어가서는 저렴한 물건, 가성비가 좋아 보이는 물건을 집어 들고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의 질이면 만족해야 한다며 오히려 자기 자신을 설득한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다이소 물건으로 가득한 집에 살고 있다. 그야말로 가성비의 늪이다. 49~50쪽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나만 이렇게 사는 건 아니구나...' 

'너도나도 다같이 궁핍해도 괜찮겠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위안과 안도를 얻는 대신 분노하고 불편해했으면 좋겠다.

'열심히 일하는데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하지? 혹시 내 능력이 부족한 건 아닐까?'하고 의심해 보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부자가 될 수 없는 사회는 잘못되었으니 바꿔야 해.'하고 분개해야 한다. 

다양한 계층이 존재하고 다른 삶의 층위가 존재할 수 있음을 가로막는, 다같이 가난해도 괜찮다는 생각은 개인과 사회의 건강한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다.

우리 사회가 이만큼 살게 된 것도 더 나은 삶에 대한 개개인의 열망과 희망 때문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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