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펌 -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는 삶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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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자기계발서가 지겹다면, 자기계발서가 쓸데없다는 걸 알고 있다면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 아니 자기계발을 비판하는 책이다.

 

항상 긍정적이어야 하고, 나긋나긋한 사람이어야 하고, 새로운 걸 거침없이 시도할 수 있어야 하고, 뭔가 계속 배우고 채우고 발전해야 한다는 말에 지치는 시대다. 이 책은 그런 말들을 철학으로 시원하게 꾸짖는다. 그런 말들이 왜 나쁜지, 그 이면에 어떤 배경이 숨어있는지도 짚어본다. 그런 말들이 어떻게 삶의 뿌리를 흔들고 누군가에게, 조직 사회에,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게 만드는지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자아실현 쓰나미는 고분고분하고 유연한 노동력을 원하는 시장의 요구를 지원하고 부추겼다. 자아실현은 더 이상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직장에 도움이 되도록 계발하고, 심지어 자본으로 삼아야 하는 내면의 자아가 우리 안에 있다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 제도에 대한 진짜 저항은 자아든 무엇이든 찾기 위해 우리 안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자아를 찾고 계발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거부하고도 떳떳하게 사는 길에 있다. p55.

 

 

삶은 복잡하고 어렵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최선의 삶이 따로 정해져있으며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속삭이는 사람들이 많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속절없이 따라가면 무엇을 만나게 될까? 진짜 최선의 삶을 살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아무리 뜨겁게 내달려도 결국 누군가의, 조직의, 자본의 충실한 노비가 될 뿐이다. 자기 스스로 단단하게 빚은 정체성도 없이 남의 말대로 따라다니는 사람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 리 없다. 글쓴이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한다. 휘둘리지 말고 자기의 뿌리를 내리라 한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자기계발서가 해법을 일러준다면, 철학책은 태도를 고민하게 한다. 해법이 남이 정해놓은 답으로 이르는 길이라면 태도는 나의 정체성을 쌓아올리는 디딤돌이다. 전자보다 후자가 몇 백 곱절은 어렵다. 명쾌하고 간단하게 말하는 자기계발서보다 어려운 말로 아리송하게 더듬거리는 철학책이 이해하기 어렵듯이. 그렇다면 철학을 가르쳐주는 책보다 철학으로 생각해보게 하는 책은 어떨까? 말랑말랑하면서도 단단하게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이 무척 반가웠다.

 

우선 아래 두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다.

 

우리는 투덜댈 수 있는 권리를 지켜야 한다. 투덜댄다고 긍정적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지라도 투덜댈 수 있어야 한다. p86.

 

인생이 힘든 건 진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힘들지 않은 척 살아야 하는 게 문제다. 불평과 비판은 단지 상황을 견디는 방법만은 아니다. 투덜댈 자유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라야 우리는 일종의 인간적 존엄을 갖출 수 있다. p85-86.

 

우리 일상에서 투덜대기는 죄악이다. 투덜대는 사람은 아무도 좋게 생각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투덜대기는 죄악이 아니라 해방이고 존엄성이다. 일상이, 사회가, 조직과 집단이 마냥 좋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좋지 않은 상황을 좋게 생각하고 받아들이자는 이야기는 언뜻 듣기에 그럴듯할지 몰라도 대부분 문제 상황을 마주보지 않고 도망가자는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다. 그렇게 도망만 다닐 수 있을까? 마주 봐야 한다. 나쁜 건 나쁘다고 떠들 수 있는 자유를 스스로에게 허락해야 한다.

 

 

아니요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존엄하고 성숙한 사람이다. 아이의 입에서 처음 나온 아니요는 성숙과 독립을 향해 내딛는 중요한 첫 걸음을 의미한다. 이런 저항은 자율성을 향한 첫걸음이다. p100.

 

존엄함이란 최신 유행을 좇는 대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신념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존엄함은 시간과 상황을 초월하는 일관된 정체성을 구축하고 지키려는 노력이다. 존엄함의 반대는 노상 라고 말하는 것이다. p101.

 

우리는 부정보다는 긍정이 옳다고 가르치는 문화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때때로 긍정보다 부정이 옳을 때도 있다. 뭔가를 부정한다는 건 타자의 압력으로부터 자기가 믿는 바를 지켜내는 행위이기도 하니까. 모든 제안과 요청에 라고 말하고 모든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충성스럽고 사랑스러워 보일 수는 있어도 자기를 지킬 수는 없다. 글쓴이는 자기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뭔가 대답하기 전에 한숨 돌리면서 의심해보는 일이라 한다.

 

의심할 때 우리는 으레 글쎄요라고 답한다. 그러니 글쎄요라는 대답을 늘 준비해두라. 달리 말해, (검증되지 않은 확신으로) “긁어 부스럼만들지 말고 그냥 놔둬라. p110.

 

 

그럼 뿌리를 어디에 내려야 할까? 흔히 볼 수 있는 책들은 그 뿌리를 내 안에 굳게 내리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려면 나를 좀 더 발전시키고 뭔가를 더 배우고. . 이래서는 또 반복이다. 글쓴이는 답을 에서 찾지 말고 에서 찾으라 한다. 나를 발전시키고 나를 채우고 나를 바라봐도 내가 원하는 답은 나오지 않는다. ‘라는 옹색한 껍데기를 벗어나 세계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내 안으로 파고들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고 같이 서있을 수 있는 나무를 찾는다면 어떨까? 답은 나무 한 그루에 있는 게 아니라 숲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안이 아니라 밖을 쳐다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문화, 자연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열쇠가 내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자아는 하나의 생각일 뿐이다. 문화사의 구성물이자 부산물일 뿐이다. 그러니 본질적으로 우리 안이 아니라 밖에 있다. p45.

 

사실 자기 자신이 되는 일에는 본질적인 가치가 별로 없다. 반면에 우리와 서로 연결된 사람들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그렇게 책임을 다하다보면 우리가 진짜우리 자신인지 아닌지는 사실 의미가 없어진다. p60-61.

 

우리는 내면의 자아나 일련의 틀에 박힌 성격 특성들로 우리가 누구인지가 본질적으로 결정된다는 생각에 익숙하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약속과 의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의무는 그냥 그냥 귀찮지만 해야할 일이 아니라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근본적으로 누구인지를 표현하는 일이다. p212-213.

 

 

글쓴이의 재료는 스토아 철학이다. 책을 읽다보면 에픽테토스, 세네카, 아우렐리우스 같은 스토아 철학자들의 말도 만날 수 있다. 글쓴이는 왜 고대 철학을 다시 들고 나왔을까?

 

고대 그리스인은 폴리스라는 자그마한 공동체 울타리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어느 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나타나 그 울타리를 부수었다. 망가진 울타리 바깥에 광대한 제국이 있었다. 안락한 공동체를 떠나 바깥세상에서 떠다니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이 넓은 세계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헬레니즘 제국, 그리고 그 뒤의 로마 제국 시대에도. 이렇게 스토아 철학이 태어났다.

 

우리 시대와 헬레니즘 시대는 닮은 점이 많다. 끝이 안 보이는 세계 앞에 내던져졌다는 점에서, 특히 마음껏 노닌다기보다는 삶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파도에 휩쓸려 다닌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으로 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길을 찾고 걸어가는 태도가 어때야 좋을지를 알 수 있는 지도는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도 나를 쉽게 흔들지 못하게 단단하게 뿌리를 내려야겠다. 아니, 나부터 나를 그만 휘두르는 게 좋겠다.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에 따르면 지나치게 바쁜 사람은 과거를 응시하지 않는다. 동시에 이곳저곳에 있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도 단단히 서 있지 못한다. 침착하고 잔잔한 마음은 삶의 구석구석을 산책할 힘이 있다. 그러나 너무 바쁜 마음은 무거운 멍에를 지기라도 한 듯 몸을 돌려 뒤돌아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은 어두운 나락으로 사라져버린다.”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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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당신을 위하여 - 철학 범우문고 15
루이제 린저 지음, 곽복록 옮김 / 범우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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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끌리는 책이 있다. “고독한 당신을 위하여라니. 왠지 나 같은 사람-찬바람을 피해 전기장판 끌어안고 키보드를 두들기는 34세 남성-이 보라고 쓴 책 같다. 무슨 내용이 들었을까?

 

 

저는 혼자서도 인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질 때 한 번도 영화관에 가본 적이 없습니까? 울적한 기분에서 술을 마셔본 적이 없습니까? 당신은 생의 두려움을 막기 위해 자극을 주는 약물을 복용해 본 적은 없습니까? 아무 것도 생각하기가 싫어 미친 듯이 자동차를 몰아본 적은 없습니까? 당신의 근면한 활동, 잘난 체 하는 행위 등은 결국 당신이 이렇다고 꼬집어 부를 수 없는 위험 앞에서 살려달라고 하는 절망적인 외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p19.

 

눈에 띄는 구절이 책 앞머리에 있다. 혼자 영화보고 울적한 기분에 술 마시고 하는 건 나도 해봤다. 마지막 문장을 곱씹어 본다. 왠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이렇다 꼬집어 부를 수 없는 위험이 무엇일까? 아마 세상에 혼자 내던져진 것 같은 불안과 외로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쭉 읽어보니 무척 종교적인 책이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하나님께 돌아가라로 끝난다. 나처럼 종교적이지 않은 속세 사람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지만 종교 이야기를 걷어내고 읽으면 좋은 내용이 꽤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을 병들게 하고 외롭게 하는 게 무엇인가를 다룬 구절.

 

 

우울증과 히스테리는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동일한 개념입니다. 둘 다 마음이 병들고’ ‘순조롭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며 마음이 너무 긴장하여 기대를 하거나 지나치게 갈망을 하거나 열띤 감정을 갖고 있는 것, 즉 자아광란狂亂에까지 이를 정도로 지나치게 자기 몰두를 한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만 걱정합니다. 그들의 생각은 끝없이 자아의 주위를 돕니다. p63.

 

글쓴이는 우울증을 이렇게 진단한다. 한 마디로 우울한 사람은 너무 자기에게만 빠져 들어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 같다. 자기 안의 세계에 묶여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갉아 먹게 되기 마련이니까.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는 병아리는 그 안에 갇혀 죽는다.

 

에고이스트란 자기의 자아를 유별나게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갖고자 원하면서 그것을 찾아 자기에게로 끌어당기려하나 제대로 못 찾는 사람입니다. 에고이스트들은 불행합니다. 그들은 항상 확증을 받고 싶어 하며 몹시 예민합니다. 그래서 어떤 비평의 그림자도 그들에게는 절망을 느끼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그들에게는 어떤 사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 자신이 중요합니다. p135.

우울증, 자기중심, 이기주의는 실제로 거의 동시에 나타나는 특성이며 정말 기분 나쁜 것들입니다. p64.

 

너무 자기에게 몰입하면 불행해진다. 자기만 보고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은 외롭고 아플 수밖에 없다. 내가 나를 외롭게 하고 아프게 찌른다.

 

나는 어땠는지 돌아본다. 힘들고 피곤하다고 내 감정과 내 상황만 살피며 지내지는 않았는지. 이불 밖은 위험하다지만 그렇다고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있으면 숨이 막힌다. 눈과 귀는 바깥으로 열어 놓아야 제 몫을 다할 수 있다. 내가 스스로 만든 틀에 스스로 갇히지 않았는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때 행복합니까? 나는 이럴 때 행복을 느낍니다. 행복을 바라지 않거나 일에 몰두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을 때 행복합니다. 요컨대 어떤 인간이나 어떤 사건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겼을 때 행복합니다. 사람들은 완전히 자기 자신일 때만이 행복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되려고 하지 않을 때가 바로 자기 자신이 되는 때입니다. p136.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한 과중한 근심은 전연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무엇에 헌신할 때 사람들은 왜소한 자연의 한계선을 넘어서서 자신의 힘보다 훨씬 위대한 힘의 결합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이기주의의 극복은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가장 건강한 사람이란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는 생각할 시간이 없는사람이며 어떤 이념의 힘에 의해 승화承華된 사람인 것입니다. p68.

 

하지만 글쓴이가 내놓은 처방은 왠지 마뜩치 않다. 자기 자신이 되려고 하지 않을 때에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문장은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별로 와 닿지 않는다.

 

나보다 더 큰 세계에 발을 들이고 힘껏 함께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모든 걸 내던지면 어떻게 될까? 일 잘 하고 사람 잘 챙겨서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 될 수야 있겠지만 내 안은 텅 비게 되지 않을까? 그런 게 행복일까? 그런 게 충만함일까? 그러다가 결국 삶 자체를 공허하게 느끼는 사람들을 꽤 봤다. 나는 그런 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뭔가에 몰두하는 것만큼 나를 잘 챙기는 일도 중요하다. 너무 내 안에 갇혀있어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나를 잃어버리는 것도 안 될 일이다. 무엇이든 균형을 맞춰야 한다. 나를 나보다 더 큰 무언가에 바치라는 말은, 조금 극단적으로 보자면 신에게 모든 걸 바치라고 외치는 광신도나 국가와 집단의 영광을 부르짖는 파시스트에게나 어울리는 말이다. 물론 글쓴이는 그런 불순한의도에서 이런 말을 한 건 아니겠지만.

 

이 책은 좋은 책이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내용이 많다. 다만 윤리적인 삶을 종교적 관점에서 너무 딱 잘라서 말하는 게 불편하다. 도움이 될 말만 가려서 본다면 시간낭비를 하게 하는 책은 아니다.

 

죽음을 주제로 쓴 구절이 마음에 든다.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본질적으로 외롭다. 우리는 죽음을 피하고 싶어서 외면하지만 결국은 누구나 죽게 된다. 글쓴이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꿋꿋하게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한다. 귀담아 들을 말이다.

 

생물학적인 죽음은 한번뿐이겠지만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번 죽습니다. 출생조차 말하자면 하나의 죽음입니다. 모체를 떠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춘기에 맞이하게 되는 유년 시절과의 결별, 처녀성의 상실, 성적 능력의 사라짐, 나이가 먹어 아름다움을 잃는 일, 자식들의 분가, 애인의 죽음, 환상과의 결별, 자기의 자질과 계획들의 포기, 이 모든 것들이 모두 그때그때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이별이나 모든 체념도 죽음입니다. 그러나 그런 결별 없이는 발전이란 불가능합니다. 모든 결별은 잃음이면서 동시에 얻음입니다. 우리는 무언가 낯익은 것을 포기하기 싫어하고 변화를 즐거워하지 않으며 성장의 아픔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용감하게 그런 죽음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왜 최후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합니까? p11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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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 사진과 삶에 관한 단상
필립 퍼키스 지음, 박태희 옮김 / 눈빛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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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장소에 서 있다.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앞에 놓인 무언가를 바라본다. 그것에서 어떤 주제가 튀어나올지 알 이유도, 알 방법도 없다. 나와 그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빛. 그 빛을 기록하는 작은 카메라를 집어 든다. 결과는 내 한계를 초월하는 세계를 보일 수도, 고양된 내 감정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나는 모른다. 앞으로도 절대 알지 못하기를 희망한다. p58.

 

 

나는 사진을 왜 찍을까?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어쩌다보니 카메라를 들고 다니게 되었다. 어딘가 가는 길이다. 또는 누군가와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시간이 남는다. 그러다 뭔가 내 눈에 들어온다. 그게 왜 눈에 밟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슬쩍 건드렸다. 재빠르게 카메라를 들고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다 사진으로 남긴다. 찍어놓은 사진을 컴퓨터에 옮기고 보면 몇 개가 눈에 띈다. 다시 보니 무언가 느껴지는 바가 있어서 그것을 글로 옮긴다. 그러다보면 별로 특이할 것도 없었던 장면을 이제부터 특별하게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세상의 한 조각과 어쩌다 마주친다. 미리 어떤 장소나 주제를 정해두고 찍은 사진보다 이렇게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남긴 사진이 훨씬 더 많다. 사진과 삶은 서로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삶이 계획과 구상으로만 이뤄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면서 만나는 상황은 대부분 우연히 내게 닥치는 일들이다. 우리는 필연보다는 우연 속에서 살아간다.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소중하게 남기고 싶어서 사진을 찍는다. 대상이 누구든, 무엇이 되었든 그게 우리가 사진 찍는 일을 대하는 가장 소박한 태도일 것이다. 나도 그렇다. 삶은 짧고 한 번 밖에 없다. 찰나를 영원히. 사진은 티끌처럼 덧없이 흐르는 시간을 허무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게 도와준다.

 

강의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이 책에는 사진 잘 찍는 기술을 알려주는 내용이 없다. 하지만 사진을 왜 찍고 다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글들이 가득하다. 때때로 어떻게?’ 보다 ?’를 짚어봐야 한다.

 

 

사진 자체는 사진 속의 내용과 그 사진을 바라보는 구경꾼 사이에 걸쳐있는 다리일 뿐이다. p57.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보고 느끼는 사진 속에서 사진의 내용이 되는 질감과 명도를 제대로 살릴 수 있도록 사진가의 섬세함을 기르는 일이다. 음악의 음색, 목소리의 어조, 감정의 느낌, 시의 가락, 떨림의 장단, 동작의 선. p81.

 

 

책 군데군데 카메라를 잘 다루고 사진을 이리저리 예쁘게 잘 고치는 것도 좋지만,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잘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글쓴이의 문제의식이 녹아있다. 지당한 말이다. 보지도 못한 걸 사진으로 남길 수는 없다. 좋은 사진은 좋은 시각에서 나온다. 그럼 잘 보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글쓴이가 강조하는 덕목은 섬세함이다.

 

 

우리 문화에서 본다는 것의 목적은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는 데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게 바로 줄이다. 그런데 개의 털이 햇빛 속에서 반짝일 때, 한 밤 중에 어둠 속에서 넓은 방 안을 어슬렁거릴 때, 그 모습은 어떤가? 반가울 때나 두려울 때 흔드는 꼬리, 갸우뚱거리는 머리, 그 작은 몸으로 쏟아내는 무언의 메시지는 어떤가? 킁킁거리며 방 안을 분주히 돌아다닐 때 자아내는 생동감은 어떤가? p66.

 

 

섬세한 감각을 가지려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려면 보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명명하고 분류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껴야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람과 사물을 받아들이는 습관에 돈 문제가 깊이 끼어있다는 필립 퍼키스의 통찰이 놀랍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 전체를 포착하도록 노력한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나의 직관과 본능을 신뢰하지 않고 전체를 포착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저 생각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p41.

 

늘 같은 렌즈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렌즈가 제공해주는 시야에 익숙해지면 전체를 훨씬 빨리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줌렌즈야말로 악마의 작품이다. 줌렌즈는 대상을 날카롭게 잡아내는 경우가 드물며, 더 중요한 이유는, 사진가의 진정한 시각을 구축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p41.

 

한 가지 주제로 사람, 장소, 물건, 여러 가지 물건이 섞인 것 필름 한 통을 찍는다. p71.

 

해질 무렵, 여전히 볕이 드는 방 안에서 빛이 들어오는 쪽을 향해 편안히 의자를 놓고 앉는다. 완전히 해가 질 때까지 그곳에 머문다. 그저 빛을 지켜본다. p75.

 

 

섬세함을 기르고 잘 보기 위해 짚어보거나 해볼 만한 연습 과제가 몇 가지 있다. 특히 75페이지의 과제는 꼭 한 번 해봐야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이 책 맨 마지막 부분에 있다. 나도 니오타니가 되고 싶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항상 삶을 신기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특별할 게 없는 삶을 특별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니오타니란 분명히 생물학적 성장이 끝나는데도 의식 안에선 호기심, 상상력, 장난치기,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의 욕구들 같은 초기 성장 단계를 여전히 밟아나가며, 어린 시절의 감성과 환상들을 그대로 간직한 어른을 은유적으로 지칭하는 생물학적 용어라고 한다. 연로한 예술가들 대개가 이런 증상을 경험한다고 했다. “니오타니는 긍정적인 징후에요.” 존은 이어서 말했다. “또한 그들을 예술가로 만들었던 일등공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죠.” 겨울 하늘을 가르는, 헐벗은 나뭇가지를 스치며 날아가는 새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이 순간, 나는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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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가 말하지 않은 임진왜란 이야기
박희봉 지음 / 논형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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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어떤 전쟁인가?

 

세운지 200년 된 낡은 왕조가 위기에 처했다. 200년 동안 큰 전쟁 한 번 겪지 않았던 평화로운 왕국. 하지만 조선은 안에서부터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양반 사대부의 특권은 나날이 단단해졌다. 사화와 당쟁. 누가 특권을 더 많이 가져가느냐를 두고 조정에서는 권력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한 줌 밖에 안 되는 특권층의 안락을 위해 백성들 삶은 갈수록 고단해졌다. 원래 만백성이 모두 괴롭지 않게 살아가도록 설계되었던 조선의 시스템은 긴 세월 동안 특권에 봉사하는 모습으로 왜곡되었다.

나라 뼈대가 무너지는데 군대라고 온전할 리 없다. 다들 어떻게든 힘든 군역을 빠지려 아우성이었고 국가는 그것을 통제하지 못했다. 실전 경험은 말할 것도 없고 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러다 큰 전쟁이 터졌다. 군대가 나서서 막아야 하는데 모이는 병사가 없다. 어떻게든 사람을 모아 병력을 만들어보지만 실전 경험 많은 일본의 정예군을 상대하기에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감당 못할 전쟁이었다. 일본군은 국토를 유린하고 왕은 왕도를 버리고 피난했다. 수군의 활약과 의병의 봉기, 명군 참전으로 가까스로 나라가 망하는 것을 막았다. 이 전쟁은 많은 상처를 남겼다. 이 전쟁으로 많은 것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보통 임진왜란을 수업시간에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이번 책은 좀 다른 시각으로 이 전쟁을 바라본다. 조선은 전쟁 당시 그렇게 무능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글쓴이는 여러 자료를 조사해서 구체적인 수치를 내놓으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대단히 흥미롭다.

 

자료에 따르면 조선 땅에 발을 들여놓은 일본군은 절반 넘게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증발했다. 그 정도 타격을 입힐 정도면 당시 조선도 군사적으로 그리 무능한 상태였다고 할 수 없다는 것. 명군이 참전하긴 했지만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것보다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일본군을 결정적으로 괴롭힌 건 그들 보급선을 끊어버리고 지속적으로 타격을 입힌 조선군이었다. 바다에서는 이순신의 수군이 일본 함대를 괴멸시켜 침략자의 진격 속도를 늦추고 의지를 꺾었다. 내륙에서 의병이 일어나 육상 보급로를 끊고 곳곳에서 일본군 부대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다. 김시민 장군이 진주성을 지켜내며 일본군은 전라도 평야 쪽 진출에 실패한다. 진주성을 지킬 수 있었던 건 전쟁 전에 일본군 침략 통로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경상도 일대의 방어 시설을 조정에서 이미 상당히 보수해놓았기 때문이다. 조선 정부는 전쟁의 규모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다 뿐이지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대비를 해놓은 상태였다.

 

특히 의병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당시 의병은 사실 관군이나 다를 바 없다. 의병장은 대부분 전현직 관료나 양반 유생이었다. 성리학 이념에 따르면 모든 사대부는 나라가 위기가 닥치면 왕의 부름에 답해야 한다. 실제로 선조는 의병 봉기를 호소하는 명령을 전국에 보내기도 했다. 그에 응해 군대를 일으켜 전공을 세운 의병장에게 정부는 관직과 봉록을 내려주었다. 의병 부대와 관군을 한데 묶어 전투 단위로 편성하는 일도 흔했다. 전쟁 후반부로 갈수록 관군 지휘관과 의병장을 분명하게 나누기 어려워진다.

병사들은? 조선군은 병농일치제. 모든 성인 남성은 평소에는 농사를 짓지만 전쟁 터지면 곧 군인이 된다. 원래 관군에 속했어야 할 병력이 의병장을 따라 무기를 들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 전쟁 당시 조선군의 역량을 따져볼 때 관군뿐만 아니라 의병도 같이 묶어서 파악해야 한다는 게 글쓴이의 주장이다. 그렇게 따지면 조선군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약하고 엉성하지는 않았다.

 

글쓴이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행정학 교수다. 행정학자의 눈으로 본 임진왜란의 모습은 느낌이 좀 달랐다. 이런 책이 때때로 무척 반갑다. 특히 전쟁에 대한 여러 가지 구체적 수치를 비교 분석하고 정리한 열정이 훌륭하다. 재미있는 책이다. 역사 전공 서적이나 교과서는 이제 그렇지 않지만 대중적인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는 여전히 임진왜란을 낡은 시각으로 묘사하곤 한다. 당장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무능한 왕조와 막강한 침략자. 짠하고 나타나서 초인적인 의지와 전략으로 그들을 무찌르는 전쟁 영웅.

임진왜란은 조선이라는 국가가 나름대로 조직적으로 침략자에 맞서 싸운 전쟁이다. 그리고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잘 싸웠다. 뛰어난 장수들은 그 가운데 자기 역할을 다했을 따름이다. 이 전쟁을 국가와 국가의 싸움으로 봐야지 단순한 영웅서사로 그려서는 안 된다. 그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글쓴이의 지적에 동감한다.

 

다만 몇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

글쓴이는 선조 임금의 역할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좀 지나친 면이 있다. 글쓴이에 따르면 선조는 자기 안위를 내팽개치고 불철주야 나라를 위해 동분서주한 뛰어난 임금이다.

 

선조 임금은 신립을 삼도순변사에 임명하면서 어도를 하사하고 군통수권을 부여하였으며, 당시 말을 타고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을 신립에게 맡겼다. 심지어는 국왕을 수행하던 내시까지 신립과 함께 충주로 보냈다. 이로써 일본군이 한양성에 들이닥칠 때에는 한양성을 방어할 수 있는 병력이 없었고, 선조 임금의 피난 행차에 호위 군사도 없게 되었다. 선조 임금은 자신의 안위보다 국가의 보전과 침략군 퇴치를 우선시한 것이다. p257.

 

 

내시까지 전투 병력으로 뽑아 보내는 임금이라니. 눈물겹다. 실제로 선조가 무능하기만 한 왕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합리적 판단을 할 줄 아는 왕이었다. 그러나 글쓴이는 선조에 대한 모든 부정적 평가에 면죄부를 주려고 한다. 좀 극단적인 논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선조는 분명히 공도 있지만 과오도 있는 임금이다. 전쟁 중에 보여준 여러 용렬한 행동은 물론이고 전쟁 끝나고 치세 말기에 보여준 모습들을 볼 때 글쓴이가 말하는 것처럼 자기를 버리고 나라를 지키고 위하는이상적인 임금과는 거리가 멀다. 어디까지나 자기 권력을 무리 없이 지키려하고 나라 자체보다는 왕조의 안전을 꾀했던 딱 그 정도의 왕이었을 따름이다. 아마도 글 전체 논지를 강화하기 위해 그런 식으로 주장을 한 것 같은데 선조를 너무 무능한 임금으로만 몰아세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정도에서 멈췄으면 어땠을까하고 생각해본다.

 

 

일본의 경우 한 지역의 주둔군이 점령군에게 전투에서 패배하거나 항복하는 경우, 해당 지역의 백성들은 점령군의 통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따라서 일본군은 조선 관군을 상대로 거점 지역에서 승리하면 조선 8도 전 지역을 어려움 없이 통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초기 일본군이 조선 관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백성들은 모두 일본군의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이 혼연일체가 되어 일본군에 대항하였다. p262.

 

 

정말 그랬을까? 모두 하나같이 침략자에 용감히 목숨 걸고 저항하기만 했을까? 아니다. 실제로 일본군이 점령 지역에서 조선 왕조보다 더 나은 처우를 약속하자 그들에게 순응하고 충성하는 쪽을 택한 백성들이 무척 많았다. 일본군을 등에 업고 조정에 적극 반기를 들었던 백성들도 적지 않았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역사 서술에서 모두’, ‘전혀같은 말들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조선은 국민국가가 아니다. 국민국가는 국가와 구성원의 이해관계가 일치해야 한다. 아니, 적어도 그게 옳다고 믿고 실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근대 국민국가다. 하지만 조선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 조선은 양반 사대부와 국왕의 나라다. 철저히 그들만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왕조국가였다. 조선 피지배층의 사정은 조선이라는 국가의 이해관계와 대체로 무관했다. 물론 민본주의’, ‘애민정신이라는 말로 포장한 노력들도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왕조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사회 안정책에 불과했다. 조선은 백성들의 나라가 아니었다. 대다수 피지배층 농민들에게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왕이나 나라의 일보다는 이번에 어떤 관리가 우리 마을에 와서 세금과 부역 문제를 어떻게 하는지의 문제가 무척 절박했을 것이다.

 

이런 나라에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나라라는 강한 일체감이 있었을 리 없다. 전쟁이 터지고 침략자가 다가온다고 해도 그게 예전보다 덜 괴롭히고 덜 뜯어가는 지배자라면 두 손 들고 환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걸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게 고단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권리이자 그 시대의 당연한 생리였으니까.

글쓴이의 주장에 따르면 조선에는 무척 이상적인 백성들이 살고 있었던 셈이다. 그 이상적인 백성이라는 건 지배자가 어떤 횡포를 부려왔던 간에 지배자들의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그들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 따위 자발적으로 내던지는 너무 바보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 백성은 없다. 백성이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배자들이 있을지는 몰라도.

 

과거를 현재 시점에서 꺾어보면 안 된다. 누군가의 권력과 이익을 위한 논리를 역사에서 갖다 붙이면 그건 역사가 아니라 정말 나쁜 거짓말이 될 수도 있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은 그 시대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배울 건 배워야 한다.

 

나라는 어때야 하는가.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공동체가 위기 상황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건강한 체질을 갖게 되는가. 공동체의 이익을 누군가가 독점하는 것과 모두가 고르게 나눠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옳고 나은 방향인가. 좀 오래된 이야기지만 임진왜란에서도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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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 김규항 아포리즘
김규항 지음, 변정수 엮음 / 알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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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을 구분해야 한다. 고독은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고 외로움은 다른 사람들과 차단된 고통이다. 자신과 대화할 줄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제대로 대화할 수 있을까. 고독을 피한다면 늘 사람에 둘러싸여도 외로움을 피할 수 없다. 용맹하게 고독해야 한다. p6.

 

 

글을 어렵게 쓰지 않는다. 알아듣기 힘들게 말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맨날 쓰는 평범한 단어를 똑같이 쓰고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를 다시 한다. 굳이 또 읽거나 들어야 하나 싶은 말을 또 한다. 하지만 남다르다. 전혀 특별할 게 없는 말인데 가슴을 쿵쿵 울린다. 읽다 보면 무척 짜릿하다. 비결이 뭘까?

 

일상에서 우리가 얻는 배움이나 깨달음도 다 그렇지 않을까? 누구나 다 알 것 같은 그런 말 한 마디가 어느 날 갑자기 특별하게 다가와 마음을 움직인다.

 

마음을 움직이는 말 한 마디. 때때로 그런 말을 해주는 어른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이만 많이 먹은 무늬만 어른 말고 나이와 상관없이 진짜로 뭔가 배우고 싶은 면모가 있는 그런 어른. ! 이 책의 평범한 글들이 비범하게 마음을 울린 비결이 뭔지 알 것 같다. 그냥, 이 책을 쓴 사람이 진짜 어른이었던 것이다.

 

 

담배를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끊는 것이다. 나머지 방법들은 실은 담배를 끊는 방법이 아니라 담배에 대한 미련을 표현하는 방법들이다. p82.

 

 

김규항은 나이가 꽤 많다. 1962년생이다. 그런데 그의 글을 읽다보면 주변에서 보는 흔한 62년생 아저씨들과는 다른 어떤 새로운 종류의 어른을 만나게 된다. 칼 같이 단호하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 옳은 건 옳고 틀린 건 틀리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뭐’, ‘좋은 게 좋은 거지같은 말이 끼어들 틈이 없다. 화려한 수사법 같은 거 없다. 구차한 변명도 없다.

 

 

현명한 사람 중에, 단단하게 살아가는 사람 중에 매사에 남 탓만 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가? p120.

 

 

뻥으로 센 척 나오는 말들이 아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담금질해온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내뿜는 뜨거운 기운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평생 힘껏 자기 일 열심히 해온 어느 노동자의 단단한 뒷모습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어쩌다보니 나도 말로 뭔가를 가르치며 살아야 하는 노동을 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이상한 헛소리나 지껄이는 추한 아저씨가 되지 않을까?

 

 

아저씨는 나에 대해생각하거나 말할 줄 모른다. 나에 대해 생각하거나 말할 줄 모르기 때문에 남에 대해서도생각하거나 말할 줄 모른다. 나의 껍데기에 대해서만, 남의 껍데기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말한다. 아저씨는 더 이상 중년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경계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란 유기적이며 아저씨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누구든 조금씩은 아저씨다. p124.

 

 

김규항이 왜 여느 아저씨처럼 느껴지지 않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는 아저씨가 아니었으니까. ‘아저씨란 나이와 상관없이 참 애처로운 존재다. 껍데기나 훑으며 지나가는 삶이라니. 껍데기 말고 알맹이를 만나려면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면 안 된다. 물건 소비하듯 삶을 지나치면 안 된다. 대충 시간을 흘려보내면 안 된다. 인생의 파도 속에서 나를 잃으면 안 된다.

 

나는 상품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좀 더 훌륭하게 살 수 있다. p22.

 

자기를 성찰한다는 건 자기만 생각하지 않는 것, 남 생각도 하는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건 결국 나와 남이라는 구분을 해체하는 것이다. p109.

 

사람이 양식 있게 산다는 건 양식 있는 어휘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크든 작든 자신의 직접적인 이해가 걸린 일에 양식 있게 판단하는 것이다. 실은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고 그걸 지키는 사람들은 매우 적다. 유식하다 무식하다는 제도교육 학력과는 상관이 없다. 사회의 한 성원으로서 알아야 할 최소한의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볼 줄 모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무식한 사람이다. p39.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한다. 양식을 갖추고 살아야 한다. 그 생각, 양식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다. 자기가 누리는 깃털 같이 가벼운 안락한 일상의 허상에서 내려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 보려고 한다면. 나 자신만 편하고 부유하게 잘 살면 된다는 편협한 인식을 깰 수 있다면. 결국 김규항이 말하는 건 다른 게 아니다. 최소한의 상식이다.

 

 

남보다 호사를 누리는 게 자랑이 아니라 머리를 긁적이게 하는, 대개의 사람이 그 정도의 양식을 갖춘다면, 천국에 다가간 게 아닐까. p67.

 

남 겪는 걸 겪지 않고 남과 더불어 살 줄 아는 사람이 되긴 어렵다. p48.

 

오늘 20대는 모두 88만원 세대인가? 그렇진 않다. 그중엔 소수의 88억 세대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으로 존재한다. 대다수의 20대가 88만원 세대가 되어야 하는 이유 또한 소수의 88억 세대가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으로 존재하기 때문(혹은, 존재하게하기 위해서)이다. 인텔리들이 계급이라는 말을 폐기하려는 경향과는 아랑곳없이 계급적 격차는 더욱 더 벌어지고 있다. p87.

 

 

아직까지 계급을 빼놓고 인간세상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보지 못했다. 역사에서 계급 갈등을 뺀다면 역사책에 실린 수많은 글자들은 신화 속 옛날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대체 왜 계급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 걸까? 구닥다리 같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다보니 세대 간 갈등이니 세대 전쟁이니 같은 헛발질을 계속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틀은 현실의 부조리를 유지하려는 기득권 세력의 힘을 더 키워주게 된다.

 

글을 읽다가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된다. 나만의 착각 속에서 안주하지 않으려면 세상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내 옆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도 보지 못하게 된다. 다른 사람 눈물이 아픈 건 모르고 내 눈물 짠 것만 생각하며 살다간 악취 나는 삶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

 

 

이 책은 김규항의 신작은 아닌 것 같다. B급 좌파에서 읽었던 구절들도 보여 반가웠다. 아마도 글쓴이가 지금까지 써왔던 칼럼들을 엮은이가 잘 발췌해서 내놓은 모양이다. 김규항의 책들을 꾸준히 읽어온 사람이라면 이 책은 그다지 새롭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예전 책 한 두 권 읽어봤거나 처음 접해보는 사람은 무척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꾸준히 읽어왔던 사람이더라도 분명히 얻어갈 만한 게 있는 책이다.

 

칼럼의 구체적 장면들은 지워졌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좀 더 내 관점에서 읽기가 가능했다. “! 세상 다 끝난 거 아니야! 너는 충분히 가치 있고 멋있어! 그러니까 힘내라고 말해주는 책만 힘을 주는 게 아니다. 때때로 어떻게 살아야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는지를 따져보면서 따끔하게 등짝 때려주는 말도 필요하다. 대충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핑계 대지 말고 제대로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힘을 주는 책이다.

 

 

인간의 모습에서 겸손보다 더 품위 있는 건 없다. p13.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우애나 연대 없이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은 소비나 물질적 축적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순간, 바로 그 순간들이다.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경로는 사랑이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을 확인할 때 우린 어지간히 고단한 삶속에서도 행복하다. p23.

 

우리가 못 한다 아쉬워하는 많은 것들도 실을 안 해도 그만인 것들. p24.

 

남이 보기에 내가 어떤가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만드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혼 없는 좀비가 되지 않는 비결은 내가 보기에 나는 어떤가를 늘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혼자일 수 있는 시간과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힘. p6.

 

현재에 대한 비판이 없다면 대안도 없다. 현재에 대한 비판은 대안의 첫 걸음이다. ‘대안 없는 비판이라는 비판은 실은 어느 누구도 대안의 첫걸음도 떼지 못하게 하기 위해 살포되는 체제의 주문呪文이다. p78.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을 회복하는 건 벽돌에서 인간이 되는 것, 개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내 취향과 내 문화와 내 교육관과 내 인생관과 내 세계관과 내 연애의 기준을 가진 비로소 한 개인이 되는 것이다. p123.

 

 

 

덧붙여서.

이 구절은 무슨 말일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도 결혼을 하고 나중에 딸을 낳아서 키워보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 수 있을까?

 

 

딸은 단지 딸, 아들 하는 자식 중의 하나가 아니다. 딸은 한 남자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가장 정교하게 알아낼 수 있는(폭로하는), ‘삶의 시험지이다. 한 남자가 딸에게서 존경받는 인간이 되려고 애쓴다면 그의 삶은 좀 더 근사해질 것이다.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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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2017-07-0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책 중에 ‘짜장, 짬뽕, 탕수육‘이란 책이 있어요.어떤 아이가 그걸 읽고 독서감상문이라면서 서너줄 써왔는데 요는 그거더군요. 자기가 짜장을 좋아한다고 해서 짬뽕을 좋아하는 친구의 취향을 지적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향에 대한 존중과 취향에 대한 예의만 잘 지켜도 꼰대로서의 답답함은 벗어던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그리고 또 하나!! 사랑하는 딸에 대한 좋은 부모에 대한 접근과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모색이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강구로 전환되는 찰나...저는 독서라는 돌파구를 찾게 되었습니다.물론 어려운 책보다는 아직은 소설이 더 좋네요^^

돌아온탕아 2017-07-05 17:32   좋아요 0 | URL
서로가 불편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하는지를 모두가 깊이 고민한다면 지금보다는 세상이 훨씬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무척 멋진 돌파구를 찾으셨네요! 응원합니다.

cyrus 2017-07-05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자신이 누군지 모르면 남이 어떻게 살아가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 합니다. 라캉의 말대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게 됩니다.

돌아온탕아 2017-07-05 17:33   좋아요 0 | URL
라캉 철학을 읽어보고 싶어지는 댓글..이네요 :) 주변에도 꼭 남이 뭐하고 다니는지 캐고 다니고 남의 말 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대개 자기를 그다지 궁금해하지도 않고 사랑하지 않는 분 같더라고요.

데미안 2017-07-05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비슷한 어조의 책이 있어요. 황현산 선생남의 밤은 선생이다!!

돌아온탕아 2017-07-05 17:37   좋아요 0 | URL
황현산... 고종석의 문장이라는 책을 읽다가 접한 이름이네요.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