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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 사진과 삶에 관한 단상
필립 퍼키스 지음, 박태희 옮김 / 눈빛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어떤 장소에 서 있다. ―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 내 앞에 놓인 무언가를 바라본다. ― 그것에서 어떤 주제가 튀어나올지 알 이유도, 알 방법도 없다. ― 나와 그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빛. 그 빛을 기록하는 작은 카메라를 집어 든다. 결과는 내 한계를 초월하는 세계를 보일 수도, 고양된 내 감정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나는 모른다. 앞으로도 절대 알지 못하기를 희망한다. p58.
나는 사진을 왜 찍을까?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어쩌다보니 카메라를 들고 다니게 되었다. 어딘가 가는 길이다. 또는 누군가와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시간이 남는다. 그러다 뭔가 내 눈에 들어온다. 그게 왜 눈에 밟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슬쩍 건드렸다. 재빠르게 카메라를 들고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다 사진으로 남긴다. 찍어놓은 사진을 컴퓨터에 옮기고 보면 몇 개가 눈에 띈다. 다시 보니 무언가 느껴지는 바가 있어서 그것을 글로 옮긴다. 그러다보면 별로 특이할 것도 없었던 장면을 이제부터 특별하게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세상의 한 조각과 어쩌다 마주친다. 미리 어떤 장소나 주제를 정해두고 찍은 사진보다 이렇게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남긴 사진이 훨씬 더 많다. 사진과 삶은 서로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삶이 계획과 구상으로만 이뤄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면서 만나는 상황은 대부분 우연히 내게 닥치는 일들이다. 우리는 필연보다는 우연 속에서 살아간다.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소중하게 남기고 싶어서 사진을 찍는다. 대상이 누구든, 무엇이 되었든 그게 우리가 사진 찍는 일을 대하는 가장 소박한 태도일 것이다. 나도 그렇다. 삶은 짧고 한 번 밖에 없다. 찰나를 영원히. 사진은 티끌처럼 덧없이 흐르는 시간을 허무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게 도와준다.
“강의”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이 책에는 사진 잘 찍는 기술을 알려주는 내용이 없다. 하지만 사진을 왜 찍고 다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글들이 가득하다. 때때로 ‘어떻게?’ 보다 ‘왜?’를 짚어봐야 한다.
사진 자체는 사진 속의 내용과 그 사진을 바라보는 구경꾼 사이에 걸쳐있는 다리일 뿐이다. p57.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보고 느끼는 사진 속에서 사진의 내용이 되는 질감과 명도를 제대로 살릴 수 있도록 사진가의 섬세함을 기르는 일이다. 음악의 음색, 목소리의 어조, 감정의 느낌, 시의 가락, 떨림의 장단, 동작의 선. p81.
책 군데군데 ‘카메라를 잘 다루고 사진을 이리저리 예쁘게 잘 고치는 것도 좋지만,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잘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글쓴이의 문제의식이 녹아있다. 지당한 말이다. 보지도 못한 걸 사진으로 남길 수는 없다. 좋은 사진은 좋은 시각에서 나온다. 그럼 잘 보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글쓴이가 강조하는 덕목은 ‘섬세함’이다.
우리 문화에서 ‘본다는 것’의 목적은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는 데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게 바로 ‘돈’줄이다. 그런데 개의 털이 햇빛 속에서 반짝일 때, 한 밤 중에 어둠 속에서 넓은 방 안을 어슬렁거릴 때, 그 모습은 어떤가? 반가울 때나 두려울 때 흔드는 꼬리, 갸우뚱거리는 머리, 그 작은 몸으로 쏟아내는 무언의 메시지는 어떤가? 킁킁거리며 방 안을 분주히 돌아다닐 때 자아내는 생동감은 어떤가? p66.
섬세한 감각을 가지려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려면 ‘보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명명’하고 ‘분류’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껴야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람과 사물을 받아들이는 습관에 ‘돈 문제’가 깊이 끼어있다는 필립 퍼키스의 통찰이 놀랍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 ‘전체’를 포착하도록 노력한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나의 직관과 본능을 신뢰하지 않고 전체를 포착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저 생각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p41.
늘 같은 렌즈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렌즈가 제공해주는 시야에 익숙해지면 ‘전체’를 훨씬 빨리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줌렌즈야말로 악마의 작품이다. 줌렌즈는 대상을 날카롭게 잡아내는 경우가 드물며, 더 중요한 이유는, 사진가의 진정한 ‘시각’을 구축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p41.
한 가지 주제로 ― 사람, 장소, 물건, 여러 가지 물건이 섞인 것 ― 필름 한 통을 찍는다. p71.
해질 무렵, 여전히 볕이 드는 방 안에서 빛이 들어오는 쪽을 향해 편안히 의자를 놓고 앉는다. 완전히 해가 질 때까지 그곳에 머문다. 그저 빛을 지켜본다. p75.
섬세함을 기르고 잘 보기 위해 짚어보거나 해볼 만한 연습 과제가 몇 가지 있다. 특히 75페이지의 과제는 꼭 한 번 해봐야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이 책 맨 마지막 부분에 있다. 나도 ‘니오타니’가 되고 싶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항상 삶을 신기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특별할 게 없는 삶을 특별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니오타니란 분명히 생물학적 성장이 끝나는데도 의식 안에선 호기심, 상상력, 장난치기,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의 욕구들 같은 초기 성장 단계를 여전히 밟아나가며, 어린 시절의 감성과 환상들을 그대로 간직한 어른을 은유적으로 지칭하는 생물학적 용어라고 한다. 연로한 예술가들 대개가 이런 증상을 경험한다고 했다. “니오타니는 긍정적인 징후에요.” 존은 이어서 말했다. “또한 그들을 예술가로 만들었던 일등공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죠.” 겨울 하늘을 가르는, 헐벗은 나뭇가지를 스치며 날아가는 새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이 순간, 나는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p133.